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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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 유우가 엄청나게 많은 도넛에 둘러싸여서 죽었다는 뉴스를 다들 알거든요. 시골에 사는 뚱뚱한 여자애의 자살 같은 건 전국 뉴스는 고사하고 지방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지만 소문은 도니까요. 시체 주위에 도넛이 백 개 넘게 뿌려져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더라고요. 도넛 개수가 걔 몸무게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랑 똑같다는 둥. 근데 뭐 때문인지 걔 엄마의 저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걔는 수면제를 엄청 먹고 죽었는데 도넛이 다잉 메시지다, 엄마를 고발하고 있다 등등. 유서가 없었으니 도넛이 유서라도 되는 것 마냥. 이상해요, 그런 거. 말도 안 되잖아요.    p.93~94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거라고, 외모 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삶의 중요한 덕목이자 재능이기도 하다는 걸 말이다. 예쁜 사람이 더 많은 애정과 배려를 받고, 예쁜 외모가 면접이나 승진에서도 유리하며, 같은 상황이라도 양보를 받는 건 대체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름다움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니 다이어트, 몸짱, 얼짱, 외모지상주의, 취업성형 등등 외모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정상체중의 사람도 체중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외모강박시대, 외모불안시대에 살고 있다.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과연 외모야 말로 삶의 덕목이자 재능인 것인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아름다움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의 원장 ‘히사노’는 미용을 위한 수술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왔다. 시력이 나쁘면 안과에 가고, 충치가 생기면 치과에 가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는 것처럼 쌍꺼풀을 만들거나 코를 세우는 시술 또한 고통 받는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뿐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고향 친구로부터 초등학교 동창의 딸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원래 밝은 성격에 평범한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등교 거부를 시작했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엄마가 학대를 했다거나 급격히 살이 찐 것이 원인이었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고, 엄청난 수의 도넛이 흩뿌려진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히사노 역시 어쩐지 마음이 쓰여 소녀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시력이 나쁜 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만 외모가 나쁜 건 어떤 지장을 주는데? 가령 인간관계 형성에 지장이 생긴다는 문제가 있다 치면, 그걸 개선해야만 하는 게 외모 나쁜 사람 쪽이야? 물론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지 말자는 도덕 교육을 몇십 년, 몇백 년 계속해도 가치관이라는 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아. 변화가 있다면 미인이나 핸섬가이의 정의 정도이고. 아, 요즘은 핸섬 가이라고 안 하지. 꽃미남? 미녀랑 미남을 부르는 말도 바뀌네. 하지만 못생긴 사람의 정의는 어떤 시대나 매한가지잖아. 세상은 안 변해.    p.147~148

 

무조건 예뻐지고 싶어요. 날씬해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마다의 고민으로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것은 미스 재팬 출신의 히사노이다. 이 작품은 히사노를 찾아온 환자들의 심리 상담과 히사노가 주변 인물들을 만나 소녀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각 챕터 별로 화자가 다른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 각자가 히사노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열등감, 질투, 선망 등등.. 그녀를 알았던 이들은 수십 년 묵은 감정들을 무심코 뱉어낸다. 외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TV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중시 현상 등 외모불안을 조장하는 것들은 이미 사방에 널려 있고, 그런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나 강박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힘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이 될 정도로 절대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이든, 행복이든 기준을 타인에게 맡기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장점이 있으며 단점이 있고, 좋아하는 게 있으며 잘 못하는 게 있는 것처럼, 외모 역시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들어간 곳이나 튀어나온 곳이 다르다는 것이다. 조각과 조각이 맞춰져서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조각이 만들어 지는데,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하면 주위 균형도 깨져버린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조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수의 도넛이 흩뿌려져 있는 방에서 자살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외모에 대한 다양한 콤플렉스 혹은 트라우마를 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외모강박시대'를 다시 한번 돌아 보자. 당신이 가지고 싶은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은 누구의 눈을 통해 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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