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지 영어회화 무작정 따라하기 - 국내 1호 영국 영어 인플루언서에게 배우는
박희아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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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21세기 런던에서 셜록의 활약을 그린  BBC 드라마 <셜록> 시리즈를 아주 좋아한다. 아마도 영국식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드라마가 시작일 것이다. 영국식 영어하면 독특한 발음과 억양부터 먼저 떠올릴텐데, 사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미국식 영어와는 표현 방식과 문화적 뉘앙스까지 다른 점이 아주 많다. 하지만 딱히 영국식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싶은 계기는 없었는데, 이번에 아주 시선을 잡아끄는 책이 나왔다. 


국내 1호 영국 영어 인플루언서가 런던에서의 오랜 학업과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영국식 말투와 생활 감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국 영어 입문서이다. 




영국식 영어의 발음은 정말 매력적이고 독특해서 자꾸 듣고 싶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영국식 발음 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발음에 영국 영어 특유의 억양과 어휘를 더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지 발음만 익히는 데 긏지 않고 영국의 문화와 소통 방식을 함께 이해한다면 더 흥미롭고 풍부한 배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우선 영국식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표현을 상황별로 만나본다. 영국식 인사라고 해서 미국식과 완전히 다르진 않지만, 영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투나 표현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매일같이 쓰는 인사말인 'Are you alright?'는 안녕? 잘 지내? 처럼 가볍게 주고받는 안부인사이다. 하지만 미국식 영어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어디 아파? 왜 그래? 처럼 걱정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Hi, lovely!' 라든가 'Hiya!' 같은 식의 표현도 영국식 표현이다. 영국인들은 lovely를 다양한 상황에서 정말 자주 사용한다고 하니, 익혀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킹스맨>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Manners maketh man'이 아닐까 싶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 짦은 한마디에 영국식 매너의 정수가 담겨 있다. 영국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도 '신사의 나라'인데, 실제로 영국에서는 감사와 사과를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영국식 영어는 제안할 때도 Why don't we ~?, How about ~?, Shall we ~? 처럼 배려와 정중함이 담긴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거적을 할 때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완곡어법을 활용해 부드럽게 표현하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비가 자주 오는 나라로 유명한 영국답게 '비'와 관련된 영국식 표현도 많았고, 놀라움이나 기쁨 등 감정을 표현하는 영국식 영어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입모양부터 다른 '영국식 발음'에 대해서도 포인트를 콕콕 짚어가며 설명이 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TALK, FEEL, SOUND, TEA, SENSE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실전 회화부터 자주 사용되는 표현과 발음, 억양, 그리고 티타임 등 문화적인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영국식 영어에 관심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대화들은 MP3 음원으로 제공되는데, QR 코드로 간단하게 접속해서 들을 수 있어 좋다. 영국식 말투와 생활 감각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영국 영어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런던 현지에서 담아낸 100% 리얼 영국식 영어를 배우기에 너무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중간중간 날씨, 교통, 돈, 축구, 육아 등 영국인의 일상 속 문화 상식들을 수록해 자연스럽게 영국에 대해서, 그리고 영국식 언어 감각에 대해서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리 포터, 킹스맨, 셜록 홈스,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영국의 언어와 문화를 멋지게 보여주는 요소들에 매혹되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영국식 영어의 매력까지 공부해보면 어떨까.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의 차이는 약 5% 정도라고 한다. 사소한 차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차이들이 두 언어의 개성과 매력을 만들어 준다. 같은 영어라도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다르게 쓰이면서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자, 브리티시 잉글리시의 정수를 배워보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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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 인생 9할을 웃음으로 버틴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
순자엄마(임순자)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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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근데 말이야, 그런 시간도 다 지나가더라고. 그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중엔 별거 아닌 일에도 감사하게 돼. 바람 한 줄기에도 웃음이 나고, 걱정 없이 뜨끈한 밥 먹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워져. 그런 게 인생이야. 그러니까, 오늘 힘들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 버티면 돼.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올 거니까. 진짜로. 버티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거야.             p.19


인생의 9할을 웃음으로 버텨온 순자엄마의 65년 인생 내공 에세이가 나왔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128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순자엄마’ 채널의 주인공이 유쾌함 속에 깃든 '진짜 어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책이다. 충북 제천의 농부이자 유튜버인 저자는 아들 쫑구, 며느리 유라, 그리고 남편과 함께  ‘가족 코믹 시트콤’ 같은 매력을 선보여왔다. 


이 책에서는 면목동 가발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14세부터 대림산업, 박달한우, 들깨공장, 박스공장 등 생계를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니던 수십 년간의 시간부터 유튜브를 시작하며 뒤바뀐 삶의 궤적까지가 모두 담겨 있다. 친근한 어조로 무심한 듯 툭툭 던져대는 말투가 편안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은 다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그게 다 자산이 됐다는 걸 알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까 고생도 좀 해보고 그래야 끈기라는 게 생긴다고, 경험을 더 많이 해보라고, 젊어서 고생은 그 자체로 자산이라고 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편한 길로만 가려는 게 있다. 잠깐 일하다가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죽을 만큼 힘든 경험은 애초에 시작도 안 하는 거다. 하지만 이것저것 부딪혀보고 할 수 있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봐야 나중에 어떤 일이 휘몰아쳐도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다. 인생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애정어린 조언들이 많아 전 세대의 독자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잘 살아내고 나면 내일도 다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도 싹 가셔지고 그저 좋은 기운만 갖고 살아가자 싶어. 유명세 좀 얻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면 쓰나. 둘에서 냉이 캐서 국 끓여 먹는 삶은 달라진 게 없는데. 이쯤 살아보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마음은 언젠가 사라지는 보잘것없는 잡생각이라는 걸 알거든. 그보다는 당장 오늘 뭘 하면서 열심히 사는지가 중한 거야.              p.162


저자는 요즘 인생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대단하게 성공하거나, 돈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평온하니까 젊었을 때 고생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마음이 왜 이렇게 좋을까, 생각해보다 깨닫는다. '아, 이제는 남하고 이러쿵저러쿵 비교를 안 하니까 이렇게 속이 편하구나.' 라고. 친구들 모임 한번 갔다 오면 맘이 막 쓰리고, 그냥 한없이 초라하고 울적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렇게 마음 상할 일도 아니었다고, 결국 인생이라는 게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야, 부러워하면 지는 거야. 왜 남 인생을 부러워 하냐. 내가 니 인생 살아줄 것도 아닌데." 사실 남하고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남을 부러워하거나, 그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날이 왔다는 저자의 말에는 평범한 듯, 소박한 진심이 담겨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맨날 햇빛 쨍쨍한 날들만 있겠는가. 비 오고 바람 불고 휘청거리는 날들도 오는 법이다. 저자가 그렇게 힌든 날을 벗어나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 뭐냐면, 바로 '생각 바꾸기'이다. '아이고, 빡세다. 근데 내일은 나아지겄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이 힘들어? 까불지 마, 인생 안 끝났어!" 라고 호통을 치기도, "오늘도 조졌다고? 별일 아녀. 다 지나가!" 라며 토닥여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지만, 그런 시간도 결국엔 다 지나간다고, 버티면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온다고 말이다. 절대 순탄하지 않았던 삶을 거쳐온 어른답게,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마음만큼, 불안조차 웃음으로 이겨낸 단단한 내면으로 써 낸 글이기에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겪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얼굴에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즐겁게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저자의 그러한 무한 긍정 에너지가 이 책 곳곳에 깃들어 있다. 따뜻한 응원이 필요한 당신에게, 든든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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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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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기, 그런데 밀실수집가가 누구예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야."

지즈루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꼭 탐정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같잖아.

"...... 그런 사람이 현실에도 있었군요."

"나도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어. 하지만 보아하니 실존 인물인 듯하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p.41~42


여고생 지즈루는 탐정소설을 좋아한다. 오늘도 점심 쉬는 시간에 공립 도서관에서 빌린 <Y의 비극>을 읽었는데, 깜박하고 두고 와버려서 초저녁 어스름이 깔린 시간에 다시 학교에 온다. 책을 찾아 돌아가려다 음악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발견해 다가가는데, 피아노를 치던 음악 교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럽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숙직실에 있던 선생님에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음악 교사는 이미 죽었고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다. 문제는 음악실 문과 창문은 전부 안쪽에서 잠긴 채였다는 것이다. 경찰인 삼촌과 사건 관련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야말로 탐정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지즈루는 살짝 흥분한다. 그런데 밀실수집가라는 사람이 삼촌을 찾아온다. 


밀실수집가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경찰인 삼촌 역시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까다롭고, 불가능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홀연히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왔다. 밀실수집가는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로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가 길며 눈빛이 맑은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경찰에게 수사 정보를 물어본 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한다. "진상을 알아냈습니다." 라고. 이야기가 끝이 나자마자 벌써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인지 다들 어리둥절한 기분일 때, 그는 놀라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사건이 교착 상태에 처했을 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사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경찰들은 술술 사건에 대해서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밀실수집가는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체 밀실수집가의 정체는 뭘까. 




"밀실수집가를 둘러싼 소문 가운데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이번 사건처럼 말입니다."

무카이는 끊임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정확한 신상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다 그렇게나 유력한 경찰 실세와 줄이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 다음 연기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꼭......"                p.322


이 작품은 연작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7년 교토, 1953년 신주쿠, 1965년 오사카, 1985년 도쿄, 그리고 2001년 후쿠시마까지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진 다섯 건의 밀실 살인 사건이 각각의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밀실수집가가 해결한 사건들 사이에는 수년에 걸친 시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외모였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그의 존재 자체가 단지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를 실제로 만나보기 전에는 말이다. 경찰 내에서도 그를 실제로 만나 보았다는 형사가 없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경찰 특유의 전설이나 농담 같은 무언가인 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들 밀실살인이 벌어지고 나서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면 당황스러운 기분부터 드는 것이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작품은 <붉은 박물관>, <기억 속의 유괴>로 이어지는 '붉은 박물관'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2년에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성과 트릭이라는 작가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시리즈물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이후에도 수수께끼 풀이에 천착하는 본격 미스터리를 꾸준히 집필해 왔는데, 특히나 단편의 명수로 불릴만큼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다른 시간대로 만든 것은 슬쩍 나타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는 밀실수집가라는 캐릭터에 더욱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왜 그는 나이를 먹지 않고, 밀실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인지, 그의 이름은 무엇이며, 직업은 뭔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과연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질 것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직접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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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지도의 뒷면에서
아이자키 유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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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둑어둑하던 길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길거리를 떠돌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런 후회가 잠깐 스치긴 했지만, 선을 넘어버린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지갑 안에 든 잔금을 계산할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고, 남은 인생에 비해 너무 큰 죄를 범한 건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점점 더해졌다. 이것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p.41~42


고등학생인 코이치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실직 후 술과 도박에 빠져 버렸고, 코이치로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긋지긋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틈틈히 일해 겨우 모은 돈 8만 엔이 사라져버렸다. 범인은 백수인 아버지였고, 결국 참았던 분노가 폭발해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만다. 눈이 쌓인 밤이었고, 그곳은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코이치로는 쓰러진 아버지가 폭설에 파묻혀 죽기를 바라며 그냥 내버려두고 도망쳐버린다. 


무작정 떠나왔지만 신분을 증명할 수도 없고, 지낼 곳도 없었다. 계속 도망치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아무리 배고픔을 참으며 추운 길을 걸어도, 가진 돈은 줄어들기만 했고, 모르는 지역을 걸어 다니면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가장 저렴한 소형 지도책도 가격이 천 엔이 넘어 선뜻 지갑을 열 수 없었다. 코이치로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취직하고, 누군가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소박한 인생을 꿈꿨을 뿐인데, 이렇게 앞길이 막막해지고 나니 그 꿈조차 얼마나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것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정밀하게 조직된 사회의 톱니바퀴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애초에 자신은 톱니바퀴는커녕 어디에 맞는 부품조차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진저리나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코이치로는 공원의 노숙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며, 비로소 머물 곳과 매일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싫은 인생이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참 하찮은 인생이었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고 자란 땅밖에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고향에 뿌리내린 사람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내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 사이엔, 분명 후회의 깊이가 다를 것이다.            p.265~266


함께 지내던 노숙자 하마 씨를 통해 인력시장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된 코이치로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시작한다. 인력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정은 굳이 캐묻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처럼 되어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코이치로는 친구 같은 존재를 만난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지만, 그런 와중에 비슷한 또래의 노동자였던 A군과 가까워진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하지 못해 방황하다 지금의 일용직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이치로가 멋대로 동료 의식을 느꼈던 A군은 단순한 실업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A군은 자신이 이곳에서 음습하고 가혹한 밑바닥 인생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코이치로가 성실하게 사는 걸 보고는 일용직 생활도 제법 귀중한 체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후로도 코이치로는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있는 노숙자, 프리터족, 일용직 동료 등을 만나며 그들을 통해 조금씩 삶을 배우고 성장해나간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코이치로는 지도를 산다. 빈 캔을 주우러 다니면서 동네 지리를 알아보기 위해, 노점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기록해두기 위해 지도를 사용한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남긴 지도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인생을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아들의 이야기이자, 사회의 밑바닥을 직접 겪으며 살아남기 위해 고생을 버텨낸 한 청춘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에 대해서, 세상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코이치로가 힘들었던 순간에 그를 구원해준 것이 세상 속에서 별볼일 없어 보이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의미있다.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자는 그들의 소박한 마음이, 뭐든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코이치로에게 삶의 무게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후회 없이 살 수 있을지 고민해 본 적이 있다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이 담담한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희망을 밝혀 내는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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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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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부모의 집으로부터 독립한 나는 예산에 맞춰 적당히 괜찮은 집(이라고 말하지만 방)을 빌리고 그 안에 적당히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을 사서 넣었다. 6개월에 한 번씩 집 근처 요가원 정기권을 구매하고 매달 공과금을 이체하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부지런히 주문해 쌓아 둔다. 나의 빌린 집에선 세상의 속도보다 비교적 내게 맞추어 돌아간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시계가 조용히 돌아간다. 샀던 것을 뜯고 살 것을 궁리하며 살 수 있는 것을 꿈꾸는, 내가 빌린 집.               p.82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의 세 번째 책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고상하고 천박하게>,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의 <우리 같은 방>은 에 이어 세 번째 책은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의 <관내 여행자-되기>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첫발을 떼게 되는 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속 깊은 친구가 된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도시-관통>이다. 여기에서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한다. 두 저자는 인천, 의정부, 안산, 이태원, 광주, 서대문 등의 장소를 방문하고, 각자의 감상을 글로 남긴다. 함께 걷고 따로 사유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섞었다. 덕분에 각 장소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사색이 담긴 두 편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에 대한 사유는 넓고, 깊고, 진지하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의 현장 등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픔의 공간에서 슬픔을 마주하며 공간을 기록하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하고, 어떤 땅에 서든 시간은 우리를 통과한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를 통과하고 관통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으킴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유년을 지나며 구멍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게 결핍이란 단어와 동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 나는 구멍을 결핍과 치환하지 않는다. 세계의 틈을 메우려는 인간의 욕망이 낭만주의를 탄생시켰듯, 구멍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복원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애초에 구멍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구멍을 메우면 구멍은 존재할 수 없다. 어딘가 뻥 뚫린 구멍을 가졌다는 것은 완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대신 그쪽으로 난 깊은 마음, 깊숙이 듣는 귀, 오래 들여다보는 눈과 같이 내 안의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낸다.             p.266


시간을 죽이기 위해 두루 다녔던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 박물관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는 시인은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다. 발아래 축적된 것에 골똘한 문학평론가에게 <관>은 상자일 때도 있고, 건물일 때도 있으며, 수로나 지하도의 형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새운 관 건축, 지하 아래로 흐르는 지하철도 관, 수도관, 가스관, 마지막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관들이 있는 곳까지 걸으며 공기 속에 흩어진 고통의 미립자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살아간다. 


이 책은 수도권 권역이면서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인 인천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여성이었던 성냥 공장과 2백여 명의 여성이 한날한시에 기업과 공권력으로부터 당했던 동일방직 사건에 대해 사유한다. 한여름의 의정부에서는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의 성병 진료소였던 두레방에 가보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산에서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는 낭독회에 참석하고,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의 이름을 기억한다. 두 저자가 각자 사는 집과 동네에 대한 사유도 있었고, 일하는 공간인 사무실에 대한 글도 있었다. 찰나의 지옥과 찰나의 천국이 번갈아 일상을 뒤흔드는 곳, 매번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 언짢은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산책길, 사람의 손이 닿은 곳마다 추레하고 조악해지는 집 앞 공원의 걷어낸 자리, 무언가를 몰아붙이는 마감의 공간, 이태원에서 새벽에 택시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오해 받았던 심야 택시, 폭력과 욕망이 뒤섞인 사무실이라는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 대한 사유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쓰였음에도 결코 가볍지 않아서 더 좋았던 책이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떤 사유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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