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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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부모의 집으로부터 독립한 나는 예산에 맞춰 적당히 괜찮은 집(이라고 말하지만 방)을 빌리고 그 안에 적당히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을 사서 넣었다. 6개월에 한 번씩 집 근처 요가원 정기권을 구매하고 매달 공과금을 이체하며 시간이 없어서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부지런히 주문해 쌓아 둔다. 나의 빌린 집에선 세상의 속도보다 비교적 내게 맞추어 돌아간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시계가 조용히 돌아간다. 샀던 것을 뜯고 살 것을 궁리하며 살 수 있는 것을 꿈꾸는, 내가 빌린 집.               p.82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의 세 번째 책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고상하고 천박하게>,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의 <우리 같은 방>은 에 이어 세 번째 책은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의 <관내 여행자-되기>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첫발을 떼게 되는 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속 깊은 친구가 된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도시-관통>이다. 여기에서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한다. 두 저자는 인천, 의정부, 안산, 이태원, 광주, 서대문 등의 장소를 방문하고, 각자의 감상을 글로 남긴다. 함께 걷고 따로 사유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섞었다. 덕분에 각 장소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사색이 담긴 두 편의 글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에 대한 사유는 넓고, 깊고, 진지하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의 현장 등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픔의 공간에서 슬픔을 마주하며 공간을 기록하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하고, 어떤 땅에 서든 시간은 우리를 통과한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를 통과하고 관통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으킴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유년을 지나며 구멍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게 결핍이란 단어와 동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 나는 구멍을 결핍과 치환하지 않는다. 세계의 틈을 메우려는 인간의 욕망이 낭만주의를 탄생시켰듯, 구멍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복원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애초에 구멍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구멍을 메우면 구멍은 존재할 수 없다. 어딘가 뻥 뚫린 구멍을 가졌다는 것은 완벽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대신 그쪽으로 난 깊은 마음, 깊숙이 듣는 귀, 오래 들여다보는 눈과 같이 내 안의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낸다.             p.266


시간을 죽이기 위해 두루 다녔던 도서관, 미술관, 영화관, 박물관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는 시인은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다. 발아래 축적된 것에 골똘한 문학평론가에게 <관>은 상자일 때도 있고, 건물일 때도 있으며, 수로나 지하도의 형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새운 관 건축, 지하 아래로 흐르는 지하철도 관, 수도관, 가스관, 마지막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관들이 있는 곳까지 걸으며 공기 속에 흩어진 고통의 미립자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살아간다. 


이 책은 수도권 권역이면서 바다를 품고 있는 곳인 인천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여성이었던 성냥 공장과 2백여 명의 여성이 한날한시에 기업과 공권력으로부터 당했던 동일방직 사건에 대해 사유한다. 한여름의 의정부에서는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의 성병 진료소였던 두레방에 가보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산에서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는 낭독회에 참석하고,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의 이름을 기억한다. 두 저자가 각자 사는 집과 동네에 대한 사유도 있었고, 일하는 공간인 사무실에 대한 글도 있었다. 찰나의 지옥과 찰나의 천국이 번갈아 일상을 뒤흔드는 곳, 매번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 언짢은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산책길, 사람의 손이 닿은 곳마다 추레하고 조악해지는 집 앞 공원의 걷어낸 자리, 무언가를 몰아붙이는 마감의 공간, 이태원에서 새벽에 택시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오해 받았던 심야 택시, 폭력과 욕망이 뒤섞인 사무실이라는 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 대한 사유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쓰였음에도 결코 가볍지 않아서 더 좋았던 책이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떤 사유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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