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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기, 그런데 밀실수집가가 누구예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야."
지즈루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꼭 탐정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같잖아.
"...... 그런 사람이 현실에도 있었군요."
"나도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어. 하지만 보아하니 실존 인물인 듯하네. 그런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p.41~42
여고생 지즈루는 탐정소설을 좋아한다. 오늘도 점심 쉬는 시간에 공립 도서관에서 빌린 <Y의 비극>을 읽었는데, 깜박하고 두고 와버려서 초저녁 어스름이 깔린 시간에 다시 학교에 온다. 책을 찾아 돌아가려다 음악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발견해 다가가는데, 피아노를 치던 음악 교사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럽게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숙직실에 있던 선생님에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음악 교사는 이미 죽었고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다. 문제는 음악실 문과 창문은 전부 안쪽에서 잠긴 채였다는 것이다. 경찰인 삼촌과 사건 관련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야말로 탐정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지즈루는 살짝 흥분한다. 그런데 밀실수집가라는 사람이 삼촌을 찾아온다.
밀실수집가는 흔히 말하는 밀실 살인이 벌어지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경찰인 삼촌 역시 여태 경찰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농담 같은 건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까다롭고, 불가능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홀연히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왔다. 밀실수집가는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로 콧날이 오뚝하고 눈꼬리가 길며 눈빛이 맑은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는 경찰에게 수사 정보를 물어본 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한다. "진상을 알아냈습니다." 라고. 이야기가 끝이 나자마자 벌써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인지 다들 어리둥절한 기분일 때, 그는 놀라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사건이 교착 상태에 처했을 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사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경찰들은 술술 사건에 대해서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밀실수집가는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체 밀실수집가의 정체는 뭘까.

"밀실수집가를 둘러싼 소문 가운데 사건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이번 사건처럼 말입니다."
무카이는 끊임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정확한 신상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다 그렇게나 유력한 경찰 실세와 줄이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 다음 연기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꼭......" p.322
이 작품은 연작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1837년 교토, 1953년 신주쿠, 1965년 오사카, 1985년 도쿄, 그리고 2001년 후쿠시마까지 각각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진 다섯 건의 밀실 살인 사건이 각각의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밀실수집가가 해결한 사건들 사이에는 수년에 걸친 시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외모였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그의 존재 자체가 단지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를 실제로 만나보기 전에는 말이다. 경찰 내에서도 그를 실제로 만나 보았다는 형사가 없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서 떠도는 경찰 특유의 전설이나 농담 같은 무언가인 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들 밀실살인이 벌어지고 나서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면 당황스러운 기분부터 드는 것이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작품은 <붉은 박물관>, <기억 속의 유괴>로 이어지는 '붉은 박물관'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2년에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성과 트릭이라는 작가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시리즈물과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이후에도 수수께끼 풀이에 천착하는 본격 미스터리를 꾸준히 집필해 왔는데, 특히나 단편의 명수로 불릴만큼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완성도가 뛰어나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트릭,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다른 시간대로 만든 것은 슬쩍 나타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는 밀실수집가라는 캐릭터에 더욱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왜 그는 나이를 먹지 않고, 밀실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인지, 그의 이름은 무엇이며, 직업은 뭔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과연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질 것인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직접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