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인류
이상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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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 부실한 움직임에 인생을 맡겨야 한다니. 인간의 두 발 걷기는 치열한 자연의 삶에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기다 그다지 빠르지도 않다. 빠르지도 않고 넘어질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데 심지어 두 발 걷기 외에 스스로 이동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사실상 두 발 걷기가 인간의 이동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게는 두 발 걷기 외에 이동할 다른 방법이 없다.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나무를 타기에도 엄지발가락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맹수가 뒤쫓아 온다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니, 고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잡아먹힐 것이다. 자연에서라면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인류 계통은 이런 부실한 두 발 걷기로 수백만 년을 멸종하지 않고 살아왔다.              p.42~43


'대한민국 1호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기원>, <인류의 진화> 모두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처음으로 고인류학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고인류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부터 미국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게 된 과정까지 여성이자 아시아인, 학자, 아내, 엄마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수없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온 저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고인류학자는 수백만 년 전 인류의 화석화된 뼛조각과 유물을 통해 고인류가 남긴 흔적을 찾고 우리 조상의 삶을 추적하는 일을 한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에게는 1만 년 전의 인류도 너무나 요즘 사람이다. 수백만 년, 적어도 수만 년 전의 인류는 되어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되는 것이다. 작년 4월에 발행된 <사이언스>지의 표지 모델은 50세가 된 루시였다. 물론 여기서 루시는 50세가 아니라 330만 년 된 고인류 화석을 말한다. 화석 발견 50주년을 기념해 고인류 복원의 대가인 존 거치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모습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학계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루시도 조금씩 변해갔으니 말이다. 50년이 지나 과학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루시는 온몸의 털 사이로 크고 작은 근육을 드러내고, 두툼한 젖가슴 대신 탄탄한 가슴근육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불분명하게 묘사되엇다. 이는 수백만 년 전의 인류 조상이 남긴 화석을 보며 성별 고정관념을 덧씌우지 않는 성숙한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고고학, 인류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도 비교적 최근의 <루시>와 발견 당시의 <루시> 모습을 찾아 본 적이 있는데, 과학계의 생생한 현모습이자 진화 과정을 볼 수 있는 듯해서 아주 인상깊었던 대목이었다. 




먼저 습관의 힘을 빌렸다. 습관은 시간을 짜낼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무슨 일이든 머리를 거치면 일단 시간이 든다. 기억해서 생각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행동으로 직행하는 쪽이 훨씬 빠르다. 기억으로 할 일을 습관화해서 시간을 모으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생활, 똑같은 루틴으로 뇌와 시간을 아껴두면 좀 더 재미난 일 혹은 중요한 일에 두 자원을 쓸 수 있다. 습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몸을 길들이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뇌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매일의 일과를 기록한 끝에 내게 가장 적합한 루틴을 만들어냈다.            p.132


과학으로서의 고인류학에 매료되었다는 저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인간의 해골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해골을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해 통계학적인 추론 과정을 거치는 지점이 특히 좋아는데, 그 과정에서 해골을 향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사라지고 흥미로운 연구 과제만 남게 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극히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별일 아닌 것에도 자주 화들짝 놀라는 성격이라는 거다. 그러니 대학 시절 주검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게다가 인체해부학 실습을 들으며 주검과 함께하는 하루가 이어졌을 때는 단연코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고, 박사 학위 논문 연구를 위해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수천 점의 인골을 측정하러 매일 일골관에 드나들 때쯤이 되어서야 인골 따위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학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아 과학책이 아니라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대목들이 정말 많았다. 


저자는 이 책을 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라고 시작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일상 속 에피소드들과 생각들이 모두 학자로서의 필터를 통과해 보여진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진료 중에 몽고점을 몰라 걱정하는 의사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종분류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걷다가 자주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인류의 계통과 진화에 대해 생각한다. 우정과 사랑의 개념에 대해 사유하며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가져오고, 여성 연구자로서 고인류학이라는 과학을 하는 것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젠더와 고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그야말로 삶과 학문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고인류학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학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편견과 오해들을 걷어내면서 학자로서 개척해 온 길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친근한 책이다. 거대한 인류로부터 사소한 개인으로의 진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인류학자의 일상 관찰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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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응전 - 기계·인터넷·AI, 기술 혁명에 응답한 인간의 전략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5
모종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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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유용성이나 위험성을 논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과 자율성은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p.4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골목길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의 AI 사회 리포트이다. 산업혁명에서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기술에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AI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새로운 균형과 대응 전략을 제시해준다. 


인류는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세 차례의 중요한 기술 혁명을 경험했다. 기술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기술은 우리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기술 낙관론과 기술 비관론이라는 두 극단의 관점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왔다. 이 책은 19세기 미술공예 운동, 20세기 대항문화 운동, 현재의 크리에이터 문화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삶을 위협할지라도,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인간화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과 인간이 만들어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천천히 되짚어 본다. 1760년도부터 2020년까지 산업 혁명 기술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 기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보여줘서 좋았다. 1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 창작 도구와 공예 디자인 기술을 발전시킨 미술 공예 운동이 있었고, 2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용 디지털 도구와 오픈 소스 기술을 창출한 대응문화 운동이 있었다. 3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크리에이터, 커먼즈 문화가 AI 협력 창작과 분산형 거버넌스, 공유 경제 기술을 발전시켰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는 역사상 세 번째 기술 혁명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미래는 결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동일한 기술이라도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문화적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세 번째 응전을 완성할 때가 왔다.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 기술을 인간화하는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               p.316~317


이제 AI와 더불어 사는 삶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언젠가는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과 컴퓨터가 차지할 거라고 전망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AI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나자신을 이해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명징하게 바라봐야 한다.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이 산업 기술 속에서 인간성을 보여주고, 20세기 대항문화 운동이 기술의 양면성 속에서 다양한 대안을 찾아 기술의 인간화를 추구했듯이,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해 우리는 또 다시 문화적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기존에 있었던 세 번의 기술 혁명에 대한 문화 운동은 모두 기술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의미와 사용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즉 동일한 기술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회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언론·예술·교육 현장을 바꾸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여론과 소비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기계는 노동을 대신하고, 인터넷과 SNS는 정체성과 욕망을 관리하며,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조성·판단력마저 위협하고 있다. 모종린 교수는 두 번의 기술 혁명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세 번째 순환의 문턱에 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업 혁명, 인터넷 혁명, 그리고 오늘의 AI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세상을 압도하는 힘으로 등장했지만, 인간은 굴복하지 않고 이 기술들을 ‘인간화’하려는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왔다. 기술과 문화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기계의 시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창조적 대응이야말로 가장 시의적절한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점점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존 인간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가고 있다. 과거의 기술이 주로 인간의 물리적 능력을 확장하거나 대체했다면 AI의 발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주는 응전의 인문학을 통해 AI 시대를 살아갈 균형과 전략에 대해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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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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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사는 다른 자들. 아마 그들조차 그를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트리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와요와요인 모두 그가 섬을 떠난 걸 알고 있다. 단지 애써 그를 잊으려, 일부러 잊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트리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세계보다 더 큰 세계에 갇혀 침묵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 것 같았다. 어째서 내가 이런 형벌을 감당해야 하지?             p.55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와요와요 섬은 대륙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와요와요 섬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밀물과 썰물에 맞춰 바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었다. 섬은 크지 않았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아침 먹을 때 출발하면 점심 먹을 무렵이 조금 지나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였다. 섬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제사를 지낼 때는 바다를 향하고, 밥을 먹을 때와 사랑을 나눌 때는 바다를 등졌다. 카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곳에는 기이한 전통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태어나서 백팔십 번째 보름달이 들 때 돌아올 수 없는 항해를 떠나야 한다는 거였다. 스스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와요와요의 율법이었다. 지나친 풍요는 탐욕을 부르고, 탐욕은 와요와요의 신 ‘카방’을 진노케 하므로 한 가족마다 남자는 딱 한 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남으로 태어난 소년 아트리에는 그렇게 섬을 떠나 바다에 표류한지 일주일 만에 식수와 식량을 모두 잃는다. 물이 차오르는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든 아트리에는 낯선 섬에 좌초된다. 섬 주위로 바다 생물의 사체가 가득해 섬 전체가 바다에 뜬 거대한 감옥 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트리에는 집을 만들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혼자 있다는 적막함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 섬에는 말을 걸어줄 사람도, 그의 헤엄 기술을 칭찬해주는 사람도, 그와 싸우거나 잠수 대결을 벌일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 위에 또 그림을 그리고, 비에 젖어 지워지면 새 그림을 그리며 아트리에는 섬 곳곳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이야기는 와요와요라는 비문명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소년 아트리에와, 타이완의 문명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 ‘앨리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문자도 없는 비문명의 세계인 와요와요와 끝없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도시의 풍경이 대비를 이루며 그려지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쌓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짊어진 이들의 삶이 점점 모자이크처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복안인의 손에 있는 번데기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은하계 하나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막 탄생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가 석영이 박힌 듯 반짝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겹눈 속 수많은 홑눈이 바늘 끝보다 가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지켜볼 수만 있을 뿐,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내 유일한 존재 이유지." 복안인이 자기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p.374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대만의 국민작가 우밍이의 신작이다. <도둑맞은 자전거>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을 쫓으며 아버지의 과거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여정을 주요 서사로 두고 식민 시대의 역사와 전쟁 등 대만 100년사가 함께 펼쳐지는 묵직한 이야기였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태평양 한가운데에 뜬 거대한 쓰레기 섬을 모티프로 생태 위기를 우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산 제물과 여섯 번째 발가락, 인어다리증 태아, 곤충의 눈, 즉 ‘복안’을 가진 초월적 존재 등 신화와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종말이 가까워진 근미래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특유의 서정적이고 우아한 언어로 시처럼 쓰인 작품이라 신비롭고 아름다운 잔상이 여운처럼 남는 시간이었다. 


우밍이는 작가이자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한데,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에 초대형 석유 화학 단지를 건립하겠다는 타이완 정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결국 사업은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위성 사진으로 처음 확인된 ‘쓰레기 소용돌이’에 관한 기사를 접했고, 그것이 이 작품 <복안인>의 출발점이 된다. 극중 미스터리한 존재인 '복안인'은 곤충처럼 여러 겹의 눈을 가지고 수만 가지 풍광과 무수한 장면들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 작품 역시 하나의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들이 포개지고, 겹치며 만들어 지는 겹눈을 통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로 열려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통해 겹눈 속 수만 가지의 형형한 풍경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가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작품 속 쓰레기 섬은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복안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존재들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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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실종자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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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혼자 서 있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무게감이 갑자기 밀어닥쳤다. 마치 지옥으로 통하는 문을 연 것 같았다. 그녀는 팔꿈치를 조리대에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이런 일을 겪을 만큼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삶의 모든 고비마다 그녀는 좋은 엄마와 좋은 경찰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그 두 가지 역할이 서로 부딪혔다.             p.103


스물두 살의 여성이 늦은 시각에 하우스메이트에게 와달라는 문자를 보낸 뒤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CCTV에서 번화가에서 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제는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거다. 그녀는 그 골목으로 사라진 다음 다시 나오지 않았고, 골목의 끝은 문도, 접근 가능한 창문도 없는 아파트 벽면이었다. 목격자도, 단서도 없었다. 남은 것은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소셜 미디어 계정뿐. 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난 해에도 비슷한 실종 사건이 있었다. 그 여성 역시 CCTV에서 목격된 것이 마지막이었고, 현재까지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사건을 맡은 줄리아 경감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협박을 받는다. 그가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실종된 여자의 집에 거짓된 증거물을 몰래 놔두고, 그것을 토대로 가짜 범인을 살인 용의자로 체포하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라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줄리아는 생각한다. 자신은 부패한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줄리아의 딸 제너비브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딸을 위해 줄리아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말이다. 만약 줄리아가 남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딸의 비밀을 온세상에 폭로해 버릴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패 경찰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신념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이 철창 신세를 지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 또한 딸의 비밀을 은폐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될 거였다. 과연 줄리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딸을 무사히 지키고,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차근차근 서사를 쌓아 나가다 놀라운 반전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에 다가선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불법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금지된 선을 넘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선을 넘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주를 향해 손을 뻗어서 세이디를, 그녀를 죽인 살인자를, 루이스를 위한 해답을 찾고 마음을 치유해야만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 충동이 그녀를 관통했다. 루이스가 그녀에게 어떤 짓을 했든 간에, 그녀가 어떤 곤경에 빠져 있든 간에 이것이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윤리관이나 가족, 그녀 자신이 위태로워지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p.383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아들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한 열망이 만들어 내는 타임슬립 서사와 놀라운 반전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연쇄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딸을 지켜야 하는 형사,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 범인으로 몰린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시점으로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각자의 자식을 지켜내기 위한 세 부모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작가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범죄 스릴러로서의 서스펜스와 반전의 재미도 있는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정의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전작이 타임슬립이라는 SF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범죄 사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고,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만약 자식을 지키는 일이 내가 살아온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해야 하는 거라면? 내 자식이 범죄를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며 자식을 믿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자식의 치명적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증거를 조작해 가짜 범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란 존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 무슨 짓이라고 할 용의가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하며 서사를 쌓아 나가는 방식은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보다 촘촘하게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범인으로 몰린 아들을 의심하는 어머니와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시점은 일인칭과 이인칭 시점을 오가고,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실종된 여성의 서사는 그 동안 활동했던 소셜 미디어 계정의 게시물로 보여진다.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그 시점들을 바쁘게 쫓아가며 의심과 추측을 오간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몰입해서 읽게 된다. 정교한 플롯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반전까지 갖춘 스릴러로서의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진짜 장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곧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니, 영상화된 버전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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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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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은 구멍들로 가득했다. 정신이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무의미의 틈새들, 미세한 균열들. 그리고 일단 그 구멍으로 들어가면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삶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우연히 그 구멍을 마주한 것이다. 그것은 총의 형태로 나타났고, 그 총 안에 들어선 순간 거기서 빠져나오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평온했고, 완벽하게 미쳐 있었으며, 그 순간이 내게 제시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p.159


 대학 교수인 짐머는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일주일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을 비행기 추락 사고로 한꺼번에 잃는다. 서른여섯 살의 아내 헬렌과 일곱 살 토드, 네 살 마르코가 죽었을 때, 그도 그들과 함께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헬렌의 부모님이 사는 밀워키로 가던 길이었고, 평소 같았으면 가족이 다 함께 갔겠지만 헬렌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은 직후라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짐머는 학생들이 낸 리포트를 고쳐주고, 막 끝난 학기 성적을 내느라 함께 가지 못했다. 짐머가 가장 후회되는 건 그들에게 직항기를 타라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중간에 경비행기로 갈아타는 게 걱정스러웠던 그는 큰 비행기를 타게 했고, 결과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그는 끊임없이 자책했고,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를 술로 버틴다. 집에 틀어 박혀 몇 개월 동안 슬픔과 자기연민에 빠져 멍한 상태로 지낸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던 그를 붙잡았던 것은 우연히 보게 된 TV 덕분이었다. 헥터 만이라는 코미디언의 연기를 보고 6개월만에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가 누군지 전혀 몰랐고 어디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가 출연했던 옛날 영화 한 편의 클립이 그를 웃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음을, 자신 안에 계속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헥터 만이 예기치 않게 그의 삶으로 걸어들어온 뒤, 짐머는 그에 대한 책을 쓰는데 몰두하기 시작한다. 헥터는 1920년대에 단 1년간 활동하며 코미디 단편 열두 편을 남기고 돌연 사라진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짐머는 세계 곳곳의 영화 보관소와 아카이브를 뒤지며 그의 영화들을 찾아 보며 헥터의 영화에 대한 연구서 <헥터 만의 무성 세계>를 집필한다. 책 출간 후 그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모두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헥터가 살아 있으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나 그를 먼 곳으로 데려 가는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들을 이토록 암울하고 무자비한 입장에 처하게 만든 논리를 파악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모든 게 터무니없고, 무의미하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 답은 책 속에 있었다. 그 이유는 책 속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이어진 생각의 근원은 책 속에 있었다. 나는 앨머의 책상에 앉았다. 원고는 컴퓨터 왼쪽에 놓여 있었는데, 높이 쌓인 종이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고 있었다. 돌을 치우자 그 아래 글씨가 보였다.               p.404


폴 오스터의 초기작 <어둠 속의 남자>와 <환상의 책> 개정판이 ‘환상과 어둠’ 컬렉션으로 북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무려 2003년이라 이번에 번역 작업도 새롭게 다시 했다고 한다. 이십 여년 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게 되니,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나 이번 개정판에는 정기현, 김화진 소설가의 리뷰를 함께 수록했는데, 폴 오스터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게 되는 경우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튼튼한 양장본이지만 무겁지 않고, 표지 디자인도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해서 기존에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번 개정판으로 만나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에게 그 이후의 삶은 덤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는데, 그것이 폭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거대한 상실이든, 혹은 참고 견딜 만한 상실이든 간에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겪고 거기서 시간이 멈춘 듯 머무느냐, 혹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느냐의 차이다. 짐머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계기는 사소한 우연일수도, 정해진 운명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헥터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폴 오스터는 언젠가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스토리텔러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못 삽니다. 두 살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죠.' 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환상의 책'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인생이라는 환상, 삶이라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가능한 일들을 믿고 싶어 하며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읽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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