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구원 - 부서진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난 희망에 관하여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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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날은 다시 단순해진다. 나는 머물기에 더 나은 곳을 찾는 일을 그만둔다. 바탕에 깔린 애도의 소음 위로, 돌과 흙의 침묵이 나를 달랜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런 일과로 채워지고, 이 속에서 우리는 자란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손이 갈라져도 우리는 계속 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밤에 잠이 든다.         p.103


언젠가 잎이 다 말라 버려서 줄기만 남은 식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냥 버리자니 마음에 걸려 작은 분에 삽목을 해둔 적이 있다. 누가 보면 왜 막대기 같은 걸 화분에 꽂아 두었냐고 할만큼 볼품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도 확신이 없긴 했다. 하지만 몇 주 뒤에 그 작은 줄기 틈새로 초록빛깔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줄기가 올라오고 거짓말처럼 새 잎이 펼쳐졌다. 식물이 보여주는 생명력이란 이렇게 사람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는 기적을 보여주곤 한다. 이번에 만난 이 책 또한 자연의 생명력이 주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야생 정원을 가꾸며 씨앗과 열매를 얻고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 치유 받았던 10년의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난방비를 대지 못할 정도의 가난밖에 없었고,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갖게 되지만, 출산을 석 달 앞둔 어느 날, 아이를 함께 기다려주었던 언니가 강에서 카약을 타다가 익사했다는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깊은 상실감은 몇 년째 이어졌고, 아들은 겨우 세 살에 제1형 당뇨를 진단받는다. 이는 아이가 평생 인슐린을 맞으며 섭식을 제어하고, 온갖 치명적인 합병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그야말로 슬픔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모든 불행을 이겨내고자 새집으로 이사를 가 아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무엇을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씨앗과 묘목을 충분히 사올 수도 없었지만,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야생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황량한 땅에서 작은 초록 싹들이 땅을 뚫고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그들 가족을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 조금씩 데려간다. 




"왜 울어, 엄마?" 아들이 묻는다. 나는 죽은 식물과 버거운 기분을, 내 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 없음'의 이상한 형태를 설명하려고 한다. 아이는 우리가 기른 정원을 바라보면서 잠시 서 있는다.

"엄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해. 들어가자." 아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나는 아이를 따라간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랄 것이다.             p.403


분홍바늘꽃은 항바이러스, 수렴 효과가 있어 감염된 상처나 종기에 발라 독을 뽑아낼 수 있다. 큰갈퀴덩굴은 백돔 치료에 썼고, 화장수로 만들어 피부를 맑게 하기도 한다. 가시자두나무는 기관지 감염, 불면증 치료에 쓰고, 로즈메리는 베개 밑에 두고 자면 꿈을 기억하고 악몽을 쫓아준다고 한다. 마녀, 달, 여성 주술사의 마법과 연된된 잔쑥은 체내외의 다양한 통증 치료에 쓰이고, 개양귀비는 고통으로부터의 휴식과 위안을 준다. 서양민들레는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예지몽을 꾸도록 돕거나 마녀 퇴치 효과가 있다고도 여겨졌다. 붉은토끼풀은 항암 치료제로 쓰였고, 숲과 음지 등 어둠에서 가장 잘 자라는 도그바이올렛을 지니면 악령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여러 들풀들의 쓰임새와 그 유래에 대해 마치 사전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물론 약초학 전문 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각각 들풀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통해 실제로 섭취하는 것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면 과장일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잡초가 야생의 약초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삶은 늘 공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희망을 키워나간 이에게 구원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90가지 들풀의 쓰임새와 이미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아무 때고 다시 펼쳐서 정원을 거니는 듯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한줄기 희망이 필요한 당신에게, 야생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깊은 위안같은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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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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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노우라 사람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의 좁은 길을 일찍이 '망자길'이라고 불렀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온다. 망자는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 망자는 망자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마을 안 골목으로 들어가서 다음 희생자를 찾는다.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망자였다. 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해서 살아 있는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다. 따라서 멋모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할 우려가 있었다. 죽, 씔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p.52


도쇼 아이는 여름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집에 머물곤 했다. 열 살 적 여름, 해질 무렵 가져온 책을 다 읽어 책을 빌리러 다녀오는 길에 꺼림칙한 일을 체험하게 된다. 주변이 점차 어스름해지고 있어 집에 빨리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인 '망자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검은 형체가 앞쪽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점차 다가오면서 으스스한 불안감이 쌓이더니 믿을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죽었지만 살아 있다..... 살아 있지만 죽었다... 그런 모순된 존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망자와 마주쳤을 때는 망자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모른 척 스쳐 지나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과연 아이는 무사히 망자길을 지나갈 수 있을까. 


안노 가즈히라는 고교 입시를 앞둔 중학교 3학년 가을, 존 딕슨 카의 작풍에 매료된다. 사실 가즈히라는 겁쟁이였는데, 골치 아프게도 불가능 범죄를 좋아했다.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은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 것이 많아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하지만 신간은커녕 헌책방에 가더라도 다달이 받는 용돈만으로는 부족해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을 읽는 남학생 다케루를 발견하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되어 그가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를 하게 된다. 그는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고, 집도 상당히 부유했던 데다, 할아버지가 남겨준 장서 중에 탐정소설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가즈히라는 다케루의 집을 드나들며 존 딕슨카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케루의 가문은 십삼 년 전에 있었던 머리 없는 살인 사건과 깊이 관련된 가문의 먼 친척에 해당되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러다 머리 없는 여자 유령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즈히라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이윽고 깊은 숲에서 쑥 빠져나왔어. 할아버지 말로는 느닷없이 평평한 풀밭에 서 있었다나. 마치 또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것처럼...... 그리고 눈앞에 참으로 희한한 집이 있었어. 나무를 짜 맞춰서 만든 산막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양풍 가옥이었고 집 왼편 부분에는 2층까지 있었지. 그때 할아버지가 본 건 그 집의 측면이었어. 다만 그러한 집의 외관과는 다른 부분에서 아무래도 묘한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집 전체가 눈에 딱 들어온 순간, 이 집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나 봐. 하지만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는군. 왜 위화감을 느끼는지 이해하는데도, 뇌가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으스스함을 맛봤대.               p.186


이 작품은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새로운 시리즈로 명탐정 도조 겐야를 비롯해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생 도쇼 아이가 도조 겐야의 '괴이 민속학 연구실(괴민연)'을 찾아 그의 제자에게 괴담을 들려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이 논리적인 해결을 위해 괴담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괴민연'은 아이가 다니는 대학교의 도서관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조 겐야는 탐정소설과 괴기환상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전국을 돌며 민속 탐방을 하는 괴이담 수집가이며, 아마추어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특강을 하는 강사인데, 장서 보관용으로 연구실을 만든 것이다. 도조 겐야 본인은 거의 연구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학원생인 덴큐가 주로 자리를 지켰다. 괴민연에 불길한 뭔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아 이제는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이는 외할머니를 통해 도조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괴민연에 와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괴담을 비롯해 부탁받은 괴담을 들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덴큐가 겁이 굉장히 많아 무서운 이야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걸 은근히 즐기면서 덴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괴담을 무서워하는 조수와 괴담을 들고 연구실을 찾아온 여대생,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기에 '안락 의자 탐정물'처럼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렇게 혼령이 되어 나타나는 망자, 머리 없는 여자, 어린이 연속 괴사 사건, 정기적으로 작게 줄어드는 산속의 집, 강령술로 소환되는 목을 조르는 귀신 등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거듭 읽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싹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불길한 존재,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미쓰다 신조 특유의 상황 묘사들이 극한의 공포와 오싹함을 불러온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매혹적인 마성의 세계 '미쓰다 월드'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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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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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이제 안 돌아와." TV피플이 같은 말투로 말했다.

"어째서?" 내가 물었다.

"어째서라니, 이미 틀렸으니까지." TV피플이 말했다. 호텔에서 쓰는 플라스틱 카드 키 같은 목소리였다. 평면적이고 억양 없는 목소리가, 가느다란 슬릿에서 칼날처럼 슥 들어온다. "이미 틀렸으니까 안 돌아와."

이미 틀렸으니까 안 돌아와, 라고 나는 머릿속에서 되풀이했다. 매우 평평하고 리얼리티가 없다. 문맥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원인이 결과의 꼬리를 물고 삼키려 했다.           - 'TV피플' 중에서, P.46~47


<TV피플>은 어느 일요일 해 질 녘, 갑자기 집에 나타난 기묘한 존재들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의 체구보다는 20, 30퍼센트 정도 작은 몸을 가진 그들은 노크도 하지 않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그저 슬며시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들고 왔는데, 그것을 연결해서 화면을 테스트하는 동안 내내 집에 있던 남자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들은 셋 다, 그곳에 남자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TV피플의 존재는 아내도, 회사 사람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TV피플들은 출근하는 도중에, 회사의 회의 시간에 계속 나타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텔레비전 화면 속에 나타났다가, 텔레비전 밖으로 나와서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TV피플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그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잠>에는 17일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여자가 등장한다. 치과의사인 남편과 초등학생인 아들은 그녀가 한잠도 못 잔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가족들이 잠든 밤에 술을 마시고, 과일을 먹고, 책을 읽는다. 긴 러시아 소설이 읽고 싶어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를 꺼내 든다. 조금도 졸리지 않았기에, 그녀는 한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날이 밝으면 다시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연속되는 각성이 2주째에 접어들자 불안해졌지만, 이상하게도 피부가 전에 비해 훨씬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있었으며, 몸에서도 터질 듯한 생명력이 넘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지만, 점차 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 던 것이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는 소파에 앉아 <안나 카레니나>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으며 새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내용을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억하지 못했다. 등장인물도, 장면도, 대부분 기억에 없었다. 완전히 다른 책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신기하네, 나는 생각했다. 읽었을 때는 제법 감동했을 텐데 결국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거기 있었을 감정의 떨림이며 흥분의 기억은 어느새 전부 술술 떨어져 말끔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시절, 내가 책을 읽으면서 소비했던 막대한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 '잠' 중에서, p.175~176


이 책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베스트 단편으로 손꼽은 <TV피플>과 <잠>을 포함해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몸집이 작고 파란색 옷을 입은 세 명의 TV피플이 나타나 텔레비전을 두고 말없이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TV피플>, 아이가 있는 일곱 살 연상의 유부녀와 만나고 있는 스무 살 남자의 이상한 오후를 담은 <비행기>, 소설가인 '나'가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해 듣는 그 시절의 이야기인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 두 자매가 한 남자를 죽이게 되는 과정을 그린 <가노 크레타>, 결혼을 앞둔 한 커플의 꿈에 얽힌 이야기 <좀비>, 그리고 십칠 일째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한 여성의 일상을 담고 있는 <잠>이다. 


살다 보면 뭔가 잘못됐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다. 머릿속이 지독히 혼란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은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6편의 작품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9년~1990년에 발표한 단편들이다. '질감이 제법 서늘하지만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온기의 예감이 담겨 있는 소설집'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은 혼란과 상실을 헤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비록 그 방향이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멀어지더라도, 등 뒤에서 문이 영원히 닫혀버린 기분이 들더라도 말이다. 일상 속 풍경이 일그러지고 앞뒤가 뒤바뀌면서 현실과 환상의 균형이 흔들리는 바로 그 순간의 감각을 느껴보자. '마치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뒤돌아 앉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색다른 독서 체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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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자 - 사피엔스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예지의 과학
토머스 서든도프 외 지음, 조은영 옮김 / 디플롯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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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은 사실상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경험하고,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어도 미래를 상상한다.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꿈꿀 때마다, 다가올 저녁 데이트 생각에 설렐 때마다, 시험 결과를 곱씹을 때마다 끊임없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이동한다. 인간은 정신의 시간여행자이기에 외치가 그랬듯 미래를 자신이 계획한 대로 설계하며 기회와 위험을 사전에 대비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예지력은 어쩌면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p.14


동물들도 사람처럼 서로 만나면 인사를 한다. 포옹을 하거나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헤어질 때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없다. 인간은 '각자의 길이 내일 다시 교차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격차는 바로 예지력, 즉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정신은 사실상 일종의 타임머신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경험하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예측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멘탈 타임머신' 능력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사피엔스가 지구의 정복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멘탈 타임머신' 능력이 인간 진화의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는 개념을 제안한다.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물리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은 꽤 읽어 왔지만,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 뇌과학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적 시간여행이라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처음이라 굉장히 놀라웠고,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왜 그 동안은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감탄하면서 읽었다. 인간의 멘탈 타임머신은 사실상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이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복잡하고 강력한 장치이다. 우리는 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할 수도 있고, 창의력을 발휘해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난 1만 년 동안 우리 행성은 홀로세라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간의 활동이 이런 평형상태를 뒤흔들어 마침내 인류세를 불러왔다. 우리는 기후변화, 대기의 에어로졸 축적, 해양 산성화, 대량 멸종까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 앞에 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예컨대 동물과 식물, 비와 계절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좀 더 지속 가능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급속히 변화할 것이다. 광범위한 탄소 방출, 산림 파괴, 플라스틱 오염처럼 해롭다고 알려진 활동을 대폭 줄이지 않았을 때 세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           p.300


샌드위치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도 돌아가는 인간의 뇌는 사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장치이다. 이 장치는 수십 억 개의 뉴런이 모여 어지러운 네트워크와 회로를 조직한다. 뇌와 정신의 관계는 오랫동안 모든 철학적 문제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것으로 손꼽혀왔다. 게다가 이제 뇌는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간상의 현재 위치와 상관없이, 작업을 처리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예측을 생성하는 것이다. 뇌는 그렇게 현재를 살기 위해 계속해서 다음을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예측은 지각과 동작의 협응에 관여할 뿐 아니라 내일과 그 이후를 시뮬레이션하는 놀라운 뇌의 능력을 분명히 보여준다. 오직 인간만이 과거와 현재 너머의 내일을 설계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가장 뜨거운 주제인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그에 대한 아주 훌륭한 대답이 되어줄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기회와 위협을 준비하게 하는 예지력은 종종 실패하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주의와 결합해 끊임없이 자연을 개발하고 파헤쳤으며, 그로 인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삼림 파괴, 플라스틱 오염 등 자연의 평형상태를 뒤흔들게 되었다. 인간의 예지력이 도리어 인류세의 재앙을 앞당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인간의 그러한 능력에 달려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예지력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어, 더 잘 사용하게 된다면, 지금 지구에 닥친 위기와 역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인간이 지닌 가상의 타임머신이라는 개념은 과학이 얼마나 매혹적인 학문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인간의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덜 탐구된 능력'에 관한 빛나는 통찰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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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내복야코 맞춤법 절대 안 틀리는 책 2 빨간내복야코 국어 2
빨간내복야코 원작, 박종은 글, 이영아 그림,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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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캐릭터와 중독성 높은 노래로 108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빨간내복야코의 어린이 맞춤법 교양 툰 <빨간내복야코 맞춤법 절대 안 틀리는 책> 두 번째 책이 나왔다. 1권에서 ‘붙이다 vs 부치다’, ‘역할 vs 역활’, ‘있다가 vs 이따가’처럼 어린이들이 직접 뽑은 헷갈리는 맞춤법 60가지를 담았었다면, 2권에서는 사자성어와 관용구 속 맞춤법은 물론,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 맞춤법까지 살펴본다. 누적 조회수 500만 뷰를 자랑하는 야코의 노래와 QR 코드, 그리고 맞춤법 활동지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성대모사 vs 성대묘사, 풍비박산 vs 풍비박살, 호박이 넝쿨째 vs 호박이 덩쿨째, 무릅쓰다 vs 무릎쓰다, 안절부절못하다 vs 안절부절하다 등 누구나 가끔 헷갈릴 수 있는 맞춤법 사례들과 계산은 결제인지 결재인지, 등장할 때는 출현인지 출연인지, 그리고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흔한 다르다 vs 틀리다, 머지않아 vs 멀지 않아, 한번과 한 번, 못하다와 못 하다, 큰 형과 큰형 등등 일상 속에서 자주 접하는 표현들과 초등 교과서 속 필수 맞춤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생활 밀착형 실전 맞춤법들이라서 바로 활용해 볼 수 있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이번 2권에서는 전작에 비해 한층 성장한 모습의 사동이가 등장한다. 받아쓰기 백점을 받아온 것으로 시작해, 형들에게 맞춤법 대결을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한다. 맞춤법 대결은 무려 18라운드까지 진행되는데, 과연 사동이가 형들을 이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잘생긴 데다 정의감까지 폭발하는 형이 등장해서 사동이를 도와주는데, 그 형의 정체는 바로 '미래에서 온 사동이'였던 것! 늘 갑자기 나타나서 도와주는 멋진 형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동이는 미래의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맞춤법 흑역사를 지우기 위해 나타난 미래의 사동이는 자신의 목표를 완수해낼 수 있을까. 




맞춤법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장난기 넘치는 야코, 일명 맞춤법 파괴범인 야코의 친척 동생 사동이, 잔소리로 랩을 구사하는 어머니, 야코와 사동이의 친구들이 등장해서 티키타카 카톡 대화, 맞춤법 대결, 코믹한 일상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학습 만화로 되어 있어 아이들이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야코의 노래를 듣고 직접 따라 써 보거나 틀린 노랫말을 고쳐 써 보기도 하고, 쪽지 시험 코너를 통해서 배운 내용을 바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맞춤법은 모든 글쓰기의 밑바탕이기에 국어 학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자주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로 다르게 쓰이기 때문에 실수하기가 쉽다. 이제 곧 방학인데, 아이와 함께 신나고 재미있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맞춤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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