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구원 - 부서진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난 희망에 관하여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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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날은 다시 단순해진다. 나는 머물기에 더 나은 곳을 찾는 일을 그만둔다. 바탕에 깔린 애도의 소음 위로, 돌과 흙의 침묵이 나를 달랜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런 일과로 채워지고, 이 속에서 우리는 자란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손이 갈라져도 우리는 계속 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밤에 잠이 든다.         p.103


언젠가 잎이 다 말라 버려서 줄기만 남은 식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냥 버리자니 마음에 걸려 작은 분에 삽목을 해둔 적이 있다. 누가 보면 왜 막대기 같은 걸 화분에 꽂아 두었냐고 할만큼 볼품 없는 상태여서 스스로도 확신이 없긴 했다. 하지만 몇 주 뒤에 그 작은 줄기 틈새로 초록빛깔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줄기가 올라오고 거짓말처럼 새 잎이 펼쳐졌다. 식물이 보여주는 생명력이란 이렇게 사람의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는 기적을 보여주곤 한다. 이번에 만난 이 책 또한 자연의 생명력이 주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이 야생 정원을 가꾸며 씨앗과 열매를 얻고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 치유 받았던 10년의 시간을 담아낸 책이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난방비를 대지 못할 정도의 가난밖에 없었고,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갖게 되지만, 출산을 석 달 앞둔 어느 날, 아이를 함께 기다려주었던 언니가 강에서 카약을 타다가 익사했다는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깊은 상실감은 몇 년째 이어졌고, 아들은 겨우 세 살에 제1형 당뇨를 진단받는다. 이는 아이가 평생 인슐린을 맞으며 섭식을 제어하고, 온갖 치명적인 합병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그야말로 슬픔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모든 불행을 이겨내고자 새집으로 이사를 가 아들과 함께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무엇을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씨앗과 묘목을 충분히 사올 수도 없었지만,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야생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황량한 땅에서 작은 초록 싹들이 땅을 뚫고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며 그들 가족을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 조금씩 데려간다. 




"왜 울어, 엄마?" 아들이 묻는다. 나는 죽은 식물과 버거운 기분을, 내 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 없음'의 이상한 형태를 설명하려고 한다. 아이는 우리가 기른 정원을 바라보면서 잠시 서 있는다.

"엄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해. 들어가자." 아들이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나는 아이를 따라간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자랄 것이다.             p.403


분홍바늘꽃은 항바이러스, 수렴 효과가 있어 감염된 상처나 종기에 발라 독을 뽑아낼 수 있다. 큰갈퀴덩굴은 백돔 치료에 썼고, 화장수로 만들어 피부를 맑게 하기도 한다. 가시자두나무는 기관지 감염, 불면증 치료에 쓰고, 로즈메리는 베개 밑에 두고 자면 꿈을 기억하고 악몽을 쫓아준다고 한다. 마녀, 달, 여성 주술사의 마법과 연된된 잔쑥은 체내외의 다양한 통증 치료에 쓰이고, 개양귀비는 고통으로부터의 휴식과 위안을 준다. 서양민들레는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예지몽을 꾸도록 돕거나 마녀 퇴치 효과가 있다고도 여겨졌다. 붉은토끼풀은 항암 치료제로 쓰였고, 숲과 음지 등 어둠에서 가장 잘 자라는 도그바이올렛을 지니면 악령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렇게 여러 들풀들의 쓰임새와 그 유래에 대해 마치 사전처럼 정리가 되어 있다. 물론 약초학 전문 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각각 들풀들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힘을 통해 실제로 섭취하는 것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면 과장일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잡초가 야생의 약초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삶은 늘 공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희망을 키워나간 이에게 구원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90가지 들풀의 쓰임새와 이미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아무 때고 다시 펼쳐서 정원을 거니는 듯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한줄기 희망이 필요한 당신에게, 야생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깊은 위안같은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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