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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평점 :
도리노우라 사람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의 좁은 길을 일찍이 '망자길'이라고 불렀다. 바다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은 사람은 망자가 돼서 돌아온다. 망자는 망자길을 헤매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씐 망자는 망자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마을 안 골목으로 들어가서 다음 희생자를 찾는다. 그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망자였다. 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해서 살아 있는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다. 따라서 멋모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할 우려가 있었다. 죽, 씔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p.52
도쇼 아이는 여름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집에 머물곤 했다. 열 살 적 여름, 해질 무렵 가져온 책을 다 읽어 책을 빌리러 다녀오는 길에 꺼림칙한 일을 체험하게 된다. 주변이 점차 어스름해지고 있어 집에 빨리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인 '망자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검은 형체가 앞쪽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점차 다가오면서 으스스한 불안감이 쌓이더니 믿을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죽었지만 살아 있다..... 살아 있지만 죽었다... 그런 모순된 존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망자와 마주쳤을 때는 망자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모른 척 스쳐 지나가야 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과연 아이는 무사히 망자길을 지나갈 수 있을까.
안노 가즈히라는 고교 입시를 앞둔 중학교 3학년 가을, 존 딕슨 카의 작풍에 매료된다. 사실 가즈히라는 겁쟁이였는데, 골치 아프게도 불가능 범죄를 좋아했다.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은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 것이 많아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하지만 신간은커녕 헌책방에 가더라도 다달이 받는 용돈만으로는 부족해 더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을 읽는 남학생 다케루를 발견하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되어 그가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를 하게 된다. 그는 여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고, 집도 상당히 부유했던 데다, 할아버지가 남겨준 장서 중에 탐정소설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가즈히라는 다케루의 집을 드나들며 존 딕슨카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케루의 가문은 십삼 년 전에 있었던 머리 없는 살인 사건과 깊이 관련된 가문의 먼 친척에 해당되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그러다 머리 없는 여자 유령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즈히라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이윽고 깊은 숲에서 쑥 빠져나왔어. 할아버지 말로는 느닷없이 평평한 풀밭에 서 있었다나. 마치 또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것처럼...... 그리고 눈앞에 참으로 희한한 집이 있었어. 나무를 짜 맞춰서 만든 산막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양풍 가옥이었고 집 왼편 부분에는 2층까지 있었지. 그때 할아버지가 본 건 그 집의 측면이었어. 다만 그러한 집의 외관과는 다른 부분에서 아무래도 묘한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집 전체가 눈에 딱 들어온 순간, 이 집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나 봐. 하지만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는군. 왜 위화감을 느끼는지 이해하는데도, 뇌가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으스스함을 맛봤대. p.186
이 작품은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새로운 시리즈로 명탐정 도조 겐야를 비롯해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대학생 도쇼 아이가 도조 겐야의 '괴이 민속학 연구실(괴민연)'을 찾아 그의 제자에게 괴담을 들려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두 사람이 논리적인 해결을 위해 괴담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괴민연'은 아이가 다니는 대학교의 도서관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조 겐야는 탐정소설과 괴기환상 소설을 쓰는 작가이자, 전국을 돌며 민속 탐방을 하는 괴이담 수집가이며, 아마추어 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특강을 하는 강사인데, 장서 보관용으로 연구실을 만든 것이다. 도조 겐야 본인은 거의 연구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학원생인 덴큐가 주로 자리를 지켰다. 괴민연에 불길한 뭔가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아 이제는 아무도 발걸음을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아이는 외할머니를 통해 도조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괴민연에 와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괴담을 비롯해 부탁받은 괴담을 들려준다. 재미있는 것은 덴큐가 겁이 굉장히 많아 무서운 이야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걸 은근히 즐기면서 덴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괴담을 무서워하는 조수와 괴담을 들고 연구실을 찾아온 여대생, 두 사람이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기에 '안락 의자 탐정물'처럼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렇게 혼령이 되어 나타나는 망자, 머리 없는 여자, 어린이 연속 괴사 사건, 정기적으로 작게 줄어드는 산속의 집, 강령술로 소환되는 목을 조르는 귀신 등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거듭 읽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오싹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불길한 존재,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기이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미쓰다 신조 특유의 상황 묘사들이 극한의 공포와 오싹함을 불러온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매혹적인 마성의 세계 '미쓰다 월드'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