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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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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못살겠다고 말하는 계나는 스스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롭고 말이다. 3년이 조금 넘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출퇴근 때문에 매일 울면서 다녔다.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는 길은 일명 '지옥철'이니 말이다. 그녀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너희들은 무슨 죄를 지었니?> 그녀가 다니던 회사 또한 그냥 대기업 다 떨어지고 아무 데나 넣어서 된 회사란다. 친구들이 다들 자격증도 없이 어떻게 금융회사에 취직했냐고 물을 만큼의 취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가 아니라 다른 데 붙었더라도 아무 데나 갔을 거라고. 물론 그랬다면 또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한국에서는 더 이상 비전도 없고, 지긋지긋한 이 생활 하루라도 더 하고 싶지 않아서 외국으로 가서 살겠다는 계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지만, 또 어느 정도는 속없는 젊은이의 허황된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는 회사가 재미있을 리 만무하고, 회사에 정을 주지 않고 뚱하니 앉아만 있으니 그 생활에 무슨 미래를 꿈꾸겠으며, 외국으로 나간다고 한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어가 출중한 것도 아닌데 지금의 생활과 달라진 들 얼마나 달라지겠냔 말이다. 하지만 계나가 대단한 것 하나는 누구나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그 허황된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겼다는 것이다. 불평불만 투덜대며,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은 널렸지만, 그렇다고 진짜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나가서 살겠다는 용감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녀는 그렇게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면서 호주로 떠난다.

재인이 뻐기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목소리 큰 게 통해. 돈 없고 빽 없는 애들은 악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라고 하더라. , 정말 그런 거야? 돈 있고 빽 있고 막 떼쓰고 그러면 안 되는 것도 되고 막 그러는 거야. 여기서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계나는 어찌어찌 어학원을 수료하고 회계학 대학원에 입학해 호주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 두고 왔던 남자 친구 지명에게 청혼에 가까운 고백을 받는다. 그 순간 지명은 <마치 자기를 구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하며 빌딩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사람 같았다> 내가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은 너 하나 뿐이라며, 당장 한국에 돌아오지 않더라도 평생 기다리겠다는 고백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다른 사람과는 좀 달라 보이던 계나도 그런 고백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만큼 동요한다. 고백을 듣는 내내 가슴이 진정이 안 되게 두근두근 뛰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 달 동안의 방학을 지명과 한국에서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녀가 호주에 간 사이 지명은 기자 시험에 합격하고, 집을 나와 아파트를 구해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신혼 부부라도 된 것처럼 함께 지낸다.

"조금만 돈이 있으면 한국처럼 살기 좋은 곳이 없어. 내가 평생 너 편하게 살게 해 줄게."

한국에서 살더라도 그냥 전업주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계나는 그 두 달 동안 이 회사 저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많이 냈지만 어지간한 회사는 다 서류에서 떨어진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그녀는 고민한다. 돈 걱정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그냥 이대로 지명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에서 살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것들 말이다. 결국 그녀는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명과 다시 헤어지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불확실한 미래의 호주행을 선택한다. 단지 행복해지고 싶어서. 처음 그녀가 호주로 떠날 때는 많은 것들을 한국에 버리고, 혹은 그냥 놓아두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외국으로 가는 것에 대해 약간 반신반의했다. 한국에서 별 볼일 없던 사람이 호주로 간다고 갑자기 뭔가 달라지겠어? 한국에서 행복하지 않은데, 호주에서는 과연 행복할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두 번째 호주로 떠날 때는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고, 또 어떤 사람에게 행복은 하루하루 순간의 즐거움이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면서 하루를 버텨낸다. 자신의 행복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계나의 선택을 지지한다. 아마도 그녀는 호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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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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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뉴어크의 여름, 첫 번째 폴리오는 가난한 이탈리아인 동네에서 발병했다. 폴리오는 뚜렷한 원인 없이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 병으로, 어른들 역시 감염될 수도 있는 전염병이다. 호흡기 근육 마비로 죽음에 이르거나, 마비를 일으켜 걷는 데 문제가 생기게 하는 병이다. 아직 가정용 냉방장치가 출현하기 전이라 저지대인 뉴어크의 여름 날씨는 푹푹 찌는 지옥 같은 더위와 싸워야 했다. 전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 병이 전염성이 아주 높아 감염된 사람 가까이 있기만 해도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도시의 감염자수가 꾸준히 늘어가자 동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공장소에 가는 것을 금지시키곤 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아이들 중의 일부는 놀이터에서 게임에 게임을 거듭하며 강렬한 더위 속을 뛰어 다녔다. 그 해 여름, 놀이터의 감독은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극소수의 청년이었던 버키 캔터였다.

그는 물어보고 싶었다. 하느님에게는 양심이 없나요? 하느님의 책임은 어디 있지요? 또는, 하느님은 한계를 모르시나요? 그러나 그는 이렇게 물었다. "놀이터를 닫아야 할까요?"

"감독은 자네야. 닫아야 하나?" 닥터 스타인버그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주만에서 미국 태평양 함대가 일본의 기습 폭격으로 박살이 났을 때, 버키는 스무 살,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몸이 튼튼한 남자들은 모두 일본이나 독일과 싸우기 위해 훈련을 받으러 갔고, 그 역시 참전을 위해 징병 사무소에 갔지만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하는 형편없는 시력 때문에 그는 어디서도 합격할 수 없었다. 전쟁과 징병 때문에 학교에 남자 체육 교사 자리가 아주 많았고, 그는 챈슬러 애비뉴 학교의 자리를 점 찍어 두었다가 여름 놀이터 감독으로 계약했다. 그의 목표는 챈슬러 옆에 문을 연 웨퀘이크 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공부 만이 아니라 운동을 통한 스포츠맨 정신과 놀이터에서의 경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도록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키는 작지만 몸이 다부지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버키는 전쟁터에 나갈 수 없어 낙담했지만, 또래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돌본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폴리오에 감염되어 몸이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게 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동요하기 시작하자 그도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침 인디언 힐의 캠프에 교사로 가 있던 그의 여자친구 마샤가 여름 나머지 기간에 물놀이 감독을 할 자리가 비었다며 그에게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인디언 힐에 오라고 그를 설득한다. 유행병 한 가운데서, 그 모든 아이들하고 그렇게나 더운 도시에 있지 말라며, 여기 오면 폴리오를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감 때문에 뉴어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때에는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없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피했을 텐데, 그는 반대로 기회가 왔는데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모하거나 미련해 보일 정도의 책임감이라니, 어찌 보면 쓸데없어 보일 정도의 죄책감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충동적으로 마샤에게 떠나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격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뉴어크에는 하룻밤 새에 새 환자가 일흔아홉 명이나 생기고, 위케이크에서만 서른 명, 놀이터에서의 아이들도 입원하고, 죽고.. 결국 시장이 놀이터마저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는 놀이터가 문을 열고 있는 한은 그곳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자책한다. 자신이 유일했던 자신의 의무를 버리고 떠나와 아이들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던 그는 신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노를 표출한다. 하느님이 애초에 왜 폴리오를 만든 건지, 대체 그걸로 뭘 증명하려던 건지, 지상의 우리에게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건지 말이다.

버키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그에게 나쁜 시력을 물려준 아버지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돈을 훔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이 년을 복역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없는 대신,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지침을 얻으며 자랐다. 그의 삶은 애초에 시작부터 불운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폴리오 유행병이 돌았던 것도 그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이니 책임감 여부를 따질 수 없는 게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버키는 할아버지를 통해 정직함과 용기와 희생이라는 이상을 배웠고, 그것은 폴리오 사태 이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의 삶을 바꾸어 버리고 만다.

필립 로스는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책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우쭐대는 행위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인화한 네메시스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섬뜩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두어 달 동안 겪은 메르스 사태도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네메시스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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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왕의 말을 훔친 아이
이반 레필라 지음, 정창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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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밖에서는 공전을 계속하던 해가 서서히 산맥 뒤로 자취를 감춘다. 동시에 우물 속에서 창백한 얼굴과 눈과 이를 드러내게 하던 빛의 커튼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형은 울퉁불퉁한 흙벽에 계단을 만드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손가락을 바지춤에 걸고서 대낮의 끄트머리로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수수께끼의 답을 찾듯 어떤 생각에 집중한다. 서서히 어둠이 깔린다.

숲 한복판에 깊이가 7미터 정도 되는 우물, 사방이 축축한 흙과 뿌리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벽, 우물 바닥의 시커먼 물 웅덩이, 그 속에 어린 두 형제가 갇혀 있다. 물도, 식량도 없고, 구조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 형은 축축한 벽을 손으로 파헤쳐 계단 모양의 디딤판을 만들어보지만 번번히 허물어진다. 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양팔로 무릎을 감싸 상처 부위에 입 바람을 불며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아무래도 불가능해. 하지만 꼭 빠져나가고 말 거야."

엄마의 가방 속에는 빵 덩어리 하나와 말린 토마토 몇 개, 무화과 몇 개, 치즈 한 조각이 들어 있다. 하지만 형은 엄마 거엔 손대지 말라며 우물 안에서 먹을 것들을 구해 동생에게 건넨다. 손으로 짓누른 개미와 퍼런 달팽이, 이름도 모르는 조그맣고 누런 벌레, 보드라운 뿌리, 깨알만 한 유충을. 그렇게 우물 속에서 여러 날이 흘러간다. 형은 틈만 나면 운동을 한다. 팔 굽혀 펴기, 앉았다 일어나기, 윗몸 일으키기..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동생은 계속 꿈속을 헤매며 배고픔에 지쳐간다. 비가 내리지 않아 나흘째 물 한 방울 구하지 못하자, 탈수 증상까지 생기며 오줌까지 말라붙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는 상상을, 꿈을 꾸며 갈증과 굶주림에 죽어간다. 그 즈음 폭풍우가 몰아쳐 그들을 살리지만, 폭우는 이틀이나 퍼부어 우물은 습지로 변해버린다. 습기에 노출된 옷이 썩고, 동생은 고온에 혼수상태에 빠지고, 형은 그럼 동생에게 몸을 비벼주고, 안아준다. 

동생은 아무 때나 묻는다.

"우리가 왜 여기 있지?"

"세상이 이런 거야?"

"우리가 진짜 어린애야?"

형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게 동생은 차츰 죽어가고, 형은 죽어가는 동생의 목숨을 지키고 있다. 죽음의 놀이에 홀린 아이들처럼. 그런데 대체 이들은 왜 이 우물 안에 갇히게 된 걸까. 왜 우물 바깥에 있는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찾지 않는 걸까. 이들은 과연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될까. 누군가 이들을 구해내 줄까. 그때까지 이들이 우물 속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

여러 날이 지나고 동생의 몸에서 열이 빠져나가고, 기침도, 가래도 멎어 총기가 되살아나고, 기력도 회복이 되지만 고열이 남긴 후유증이 심각하다.

"여기가 어디야" 동생은 주위를 둘러본다.

그 모습이 흡사 어린애를 먹어 치운, 수천 년의 광기에 점염된 어른 같다.

형은 동생에게 분노와 평정, 의지에 대해 가르친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분노가 필요하고 그걸 표출시키기 위해선 사흘을 견뎌야 한다고. 그리하여 죽임의 날에는 민첩하고 잔혹하고, 정정당당하게 해치워야 한다고.

중반 이후에 밝혀지는 그들이 우물에 갇히게 된 이유는 충격적이지만, 작품의 후반 동생을 살리기 위한 형의 계획이 시작되면서 보여지는 결말은 더 놀랍도록 섬뜩하다. 에스파냐의사무엘 베케트로 불리는이반 레필라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은유와 상징을 통해 묵직한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어 마치 우화처럼 읽힌다. 훈족의 왕인 아틸라에 관해 창작된 작품들은 그 동안도 다소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직접적인 내용보다는 은유로 스토리에 녹여내어 쉽지만, 어렵게도 느껴진다. 고난을 통해 어린 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과 그들의 형제애가 보여지다가도, 사회적 약자에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에 대한 복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가볍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만 막판에 벌어지는 상황은 꽤나 충격적이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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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필요 없다
베른하르트 아이히너 지음, 송소민 옮김 / 책뜨락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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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캐딜락. 천천히 우아하게. 하얀 옷을 입은 노부인이 조심스럽게 승객을 모시고 간다. 검은색이 아닌 흰색. 죽음이 아닌 삶. 블룸은 색다르고 싶었다. 경쟁자 장의사들과 차별화되기를 원했다. 하얀 장의차는 완전히 도발이었다. 블룸의 동료 장의사들의 눈에는 죽음과 어울리지 않았다. 애도는 예전부터 항상 검은색이었다.

블룸은 자신의 양부모가 죽던 날, 배에서 운명처럼 만난 남자 마르크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 지 8, 이제는 두 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루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여자이지만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남편 마르크는 경찰이다. 2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마르크의 아버지 칼 또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할아버지이자 그들의 든든한 가족이다. <분노, 갈등, 슬픔 이런 것은 전혀 없다. 행복하기만 하다. 고통도 없고, 성가시게 구는 고객도 없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말을 잘 듣는다. 블룸에겐 걱정거리가 전혀 없다. 기분 좋은 하루다> 블룸과 마르크는 서로에게 항상 곁에 있어주고,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에게 여전히 설레는 멋진 부부이기도 하다. 물론 요즘 마르크에게 고민과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블룸은 알지만, 그들은 각자 서로의 일을 집안으로 가져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경찰이 하는 일과 장의사가 하는 일이란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닐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 날,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의 일터로 가는 마르크의 모습을 보며 손짓으로 인사하던 그 순간 쾅 하는 굉음이 난다. 커다란 SUV 차량이 순식간에 마르크를 치고 쏜살같이 떠나버린다. <사고. 아스팔트 위에 망가진 오토바이. 축 늘어진 육체. 육체는 바닥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없다. 거기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엄청난 굉음을 냈던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갑작스런 사고로 마르크가 그녀의 눈 앞에서 세상을 떠나 버린다.

덱스터 시리즈. 마르크는 그 시리즈를 좋아했다. 밤새 작업실에 앉아 시리즈를 보면서 법의학자가 자신의 여가를 이용해 어떻게 사적인 심판을 하는지를 지켜보았다.....현실이 결코 드라마처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르크가 대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없었다. 웃기지 마. 블룸은 말하며 그의 옆 소파에 앉았다. 덫에 걸려든 악당을 보살피는 경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악을 처단하는 경찰, 모든 게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이야기였다. 복수의 동화, 비현실적인 구성, 시간 죽이기였다.

이제 그 무엇으로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저 마르크의 추억에만 빠져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그의 소지품을 정리하다 구술용 녹음기를 발견한다. 무심코 녹음기를 작동시키자 마르카가 낯선 여성과 대화하는 녹음이 재생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겪은 여자와 나눈 20건의 대화 녹음. 말도 안 되는 범죄가 벌어졌고 그것을 홀로 수사하며 그녀를 도우려고 했던 마르크. 세 사람의 납치, 강간, 감금. 수 년 내내 이어진 공포. 그 녹음 파일들을 들으면서 블룸은 자신의 마음을 갉아 먹던 고통과 그에 대한 그리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어쩐지 모르게 마르크가 다시 살아난 것만 같기도 하고, 마르크와 무언가를 공유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블룸은 녹음 속 여자를 찾아 마르크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그녀, 둔야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르크가 죽은 것이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덱스터 시리즈를 좋아하던 남편 마르크가 그녀에게 함께 보자고 말을 할 때마다 그를 비웃었던 그녀가 이제는 사람을 납치하고, 토막 내고 있다. 마치 연쇄 살인범 시리즈에 나오는 것처럼. 게다가 그녀에겐 장의차와 장례식장, 냉동고와 시체 처리실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는 조건이다. 둔야가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한 분노는 남편 마르크를 죽게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블룸은 둔야가 묘사한 다섯 명의 남자, 사진사, 사제, 사냥꾼, 요리사, 어릿광대를 차례로 찾아 지체 없이 그들에게 복수를 한다. 얼음처럼 차갑게, 이보다 더 단호할 수는 없도록. 복수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정석처럼 말이다. 평범한 여인의 몸으로, 이렇게나 무자비하게, 건장한 남자들을 살해할 수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한 방향을 향해 군더더기 없이 달려가는 플롯은 매우 간결한 만큼 임팩트가 강하다. 블룸이 어떻게 장의사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가 처음부터 보여지지 말고, 좀 나중에 나왔더라면 이야기가 주는 충격이 더하지 않았을까 살짝 아쉽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나 심플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복수극은 본 적이 없다. 복수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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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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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괜찮았어?"

"생각보다. 당신은?"

"나도."

그렇구나. 서로 괜찮았다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나.

남편과의 마지막 밤,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남자라 직장생활 편했다고 추억하는 여자.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시작부터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설정으로 이 작품은 시작한다. 혼인서약을 하고 부부가 되어 일년이나 함께 살며 같이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민낯을 보여주며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그저 직업이 될 수 있다니. 이 무슨 해괴망칙한 시스템이란 말인가. 그렇게 주인공 정인지는 남편과의 생활을 종료하고 트렁크를 가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올해 스물아홉으로 결혼정보회사의 VIP 전담부서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다. 웨딩라이프(W&L) VIP 전담부서 NM(new marriage) 는 와이프팀과 허즈번드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지는 와이프팀 FW(field wife)로 현장근무를 하고 있다.

물론 인주 또한 처음 W&L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는 기간제 배우자라는 것이 체계적으로 변형된 성매매 아닌가 싶었다. 단어만 다르지 4대 보험을 적용 받는 고액 연봉 접대부와 뭐가 다른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스카우터는 이것이 접대부 렌탈이 아니라고, 회원은 섹스리스도 있고, 그저 조금 다른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일 뿐이라고. 회원들은 각자 필요한 조건으로 기간제 배우자를 선택하고, 일생을 건 결혼이 아니기에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오직 사랑만 배재 되었을 뿐, 실제 결혼 생활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마치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고르듯이 배우자를 골라서 함께 사는, 너무도 삭막한 삶. 대신 부부싸움이나 이혼, 아이, 육아 등의 과정이 전혀 필요 없으니 그만큼 피곤하지 않고, 담백한 삶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저를 스카우트하는 거예요?"

"화류계 기질 없이 예쁘잖아요."

한번쯤 결혼해보고 싶은 여자. 그녀는 내가 그 범주에 속한다고 했다. 이제는 배우자도 임대하는 세상이 됐구나. 고액의 연회비와 혼인성사자금을 지불하는 NM 회원들에게, 이런 아내는 어떠신가요? 하고 내미는 기호품이 된 기분이었다. 몰랐고, 끝까지 몰라도 됐을,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그런 세계가, 내 손을 그렇게 잡았다.

인지는 네 번째 결혼을 막 끝냈고, 전 남편으로부터 재결합 신청을 받아 다섯 번째 결혼을 시작한다. 별다른 일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다섯 번째 결혼을 지나,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결혼을 하면서 트렁크를 들고 다니는 삶을 계속해서 이어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시정의 부탁으로 잠깐 만났던 엄태성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 것이다. 그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단칼에 그를 거절하고 모진 말도 해봤지만, 그는 인지에 대해 거의 집착에 가까운 호기심을 품고 거의 스토킹에 가까운 행동을 하다 결국 남편과 함께 사는 집까지 찾아오기에 이른다. NM보안팀이 보낸 구조대가 그를 제압해 데려가서 격리시켜버린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납치되어 기도원에 감금되어 학대 받던 그를 풀어주지만, 그는 그녀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지나 내 집 마련과 인관 과계가 더해진 5포 세대, 그리고 최근에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아니 사는 게 결혼을 생각할 여력이 없는, 비혼주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김려령의 이번 신작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떠밀리듯 결혼을 결심하게 되기도 하고, 적절한 사람이 없는 경우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 예전 세대에 비해, 하기 싫으면 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요즘 세대가 더 자유로운 건지는 글쎄 단언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주인공 인지도 엄마로부터 남자친구를 거절 당하지 않고, 학창 시절 친했던 친구의 자살이란 것도 겪지 않았더라면, 그렇다면 평범한 이삼 십대처럼 일반적인 결혼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이혼 후 각각 기간제 계약결혼으로 배우자를 찾으면서도 친구처럼 지내는 정원과 서연, 젊은 오빠에게 빠진 사랑지상주의자 할머니, 특별한 직업 없이 취미 활동만 하며 소개팅 했던 인지를 스토킹하는 태성, 인지를 몰래 사랑하고 있는 동성애자 친구 시정... 각자가 선택한 삶의 모습은 이리도 다르다. 그런데도 모두 획일적으로 같은 모습의 사랑을 해야 하고, 비슷한 모습의 결혼을 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너무도 슬프다는 생각도 든다. 김려령 작가가 이번에 선택한 것은 너무도 파격적인 소재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우리네 삶과 사랑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보편성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인지가 트렁크를 다시 싸게 될 일이 또 생길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음 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어디론가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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