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오딧세이 -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김태윤.장민영.황종욱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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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나의 식재료 안에는 요리법과 사용법뿐 아니라, 그 민족이 계승해 온 문화와 수많은 개인의 기억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식재료가 사라지면, 그 재료가 품고 있는 세계도 함께 소멸한다. 따라서 아워플래닛에서 시도하는 이러한 음식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오래된 세상을 향한 오마주기도 하다. 별이 사라진 후에도 그 빛은 시간을 타고 우주로 유영하듯, 내가 하는 음식 또한 꺼지지 않는 불빛을 향한 염원인 셈이다.               p.167


계절과 상관없이, 어디서 나는지와 관계없이, 온갖 식재료가 손쉽게 식탁에 오르는 시대다. 유례없는 풍요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복잡한 유통망을 거치며 식재료 본연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소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쓰였다. ‘로컬 오딧세이’는 시간과 망각에 맞서 지역 식문화의 지혜를 발굴하고, 식재료와 생산자, 소비자 사이의 끊어진 연결을 회복하려는 시도로서 지속이 가능한 미식을 연구한다. 요리사, 음식탐험가, 음식 문헌 전문 번역가인 세 저자는 기후 위기로 인한 은식 생태계의 다양성 파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지속이 가능한 미식을 연구하는 ‘아워플래닛(ourplanEAT)’을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로컬 오딧세이’는 특정 지역을 선정해 그곳의 식재료와 식문화를 심도 있게 취재하고, 이를 여섯 개의 요리로 이뤄진 디너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아워플래닛의 메인 행사다. 이들은 지리산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식재료와 식문화를 취재해 여섯 개의 요리로 이뤄진 디너로 재해석하는 행사를 3년 넘게 꾸준히 이어 왔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바다와 연안 지역을 무대로 펼쳐진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각 지역의 생산자를 만나고, 그들이 생산한 식재료를 탐구하며, 그것을 요리로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음식을 더 깊이 알고, 책임감 있게 소비하며, 의미 있는 소통을 회복해 가는 여정이다.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고 소비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끼를 먹더라도 그 재료를 내어 준 우리의 행성 지구와 지역의 생산자,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식문화까지 지켜 나갈 때 지속 가능한 미식의 여정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있는 책이라 더욱 의미있는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식감이라는 식감은 전부 그 냄비에 들어 있는 듯했다... 음식이 주는 위안이 무엇인지, 제철의 산지 재료를 챙겨 먹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체득하는 밤이었다. 그 짧은 평화 속에서 하루가 저물어 갔다. 부처님 말씀처럼 인생은 본디 고통이어서 쓰디쓰지만, 그 쓴맛을 달래 줄 사탕 같은 존재가 일상의 틈마다 숨어있다는 사실을 그날 밤 우리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으로 어른들은 신산한 삶의 순간을 위로하는구나 싶었다. 확실히 내 앞에 이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p.83~85


기장의 말똥성게와 말미잘, 속초의 홍게와 부새우, 태안의 칠게와 아말피 레몬, 제주의 멸치와 풋귤, 울릉도의 홍감자와 명이, 거문도의 뿔소라와 삼치 등 각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로컬 푸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성게는 해조류를 무차별적으로 먹어 바다 사막화를 일으키는 주범이기에, 죄책감 없이 마음껏 먹음으로써 바다를 지킬 수 있는 드문 식재료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 1위로 선정되기도 한 주먹물수배기, 일명 '감자떡'이라는 생선은 손질부터 극강의 난이도를 요하는 재료였지만 요리했을 때 탱탱한 질감과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고소한 풍미가 비범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구상에 존좨하는 산소의 많은 양이 갯벌에서 생성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산소는 식물 플랑크톤의 광합성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 1g의 갯벌 흙에는 수억 마리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존재한다고 하니 말이다. 


말미잘로 만든 대만식 전병, 스페인식 멸치 초절임, 다시마를 이용한 꽈배기, 홍게살과 초당옥수수로 만든 가스파초, 반건조 옥돔과 초피 잎으로 맛을 낸 쓰촨식 빙떡 등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들이 셰프들의 손에서 파인다이닝 급 요리로 재탄생했다. 재료를 통해 요리를 구상하는 과정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요리를 구상할 때 머릿속에 재료를 펼쳐 놓고, 식감과 색감, 향, 맛 등을 기준으로 일종의 다이어그램을 그린다고 하는데,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셰프의 창의력이 잘 어우러져 탄생한 음식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낯선 식재료로 만들어지는 근사한 요리와 익숙한 식재료로 빚어내는 색다른 요리, 그리고 지역의 식재료에서 발견하는 지속 가능성 포인트까지 음식에 대해 배우고, 환경을 향한 실천과 노력까지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총천연색의 빛깔을 간직한 우리 자연과 그 산물들의 사진도 가득 수록되어 있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서 오딧세우스가 마침내 고향 '이타카'에 닿았듯, 이 책을 통해 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 여정을 경험하고 각자 자신만의 이타카를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를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이 아름다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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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각본집
민규동.김동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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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로 만만치 않다. 허나, 투우의 완력에 밀리는 조각. 투우의 칼날이 점점 장비에게 가까워진다. 팽팽하게 맞서는 와중에 투우가 조각을 빤히 바라본다. 

투우: 머리도 셋고 주름도 지고. 벌써 이렇게 늙으면 어떡해?

투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타탓- 조각이 투우를 제압하고 칼을 빼앗아 던진다.               p.82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이나 채소가 색이 변질되고 형태가 망가지는 걸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던 것이 갈색 덩어리로 변해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무엇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인간이 자연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한 젊음이란 없으니까. 과일이 만들어질 때부터 방부제로 보존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파과>의 주인공은 60대 '노년 여성 킬러'이다. 손톱이라는 의미의 '조각'이라는 가명으로 45년간 킬러로 살았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현직킬러이다. 여전히 젊은 그 누구에게도 실력으로 밀리지 않았지만, 차츰 자신의 신체적 노화가 일상의 노력을 추월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참이다. 



원작 소설을 쓴 구병모 작가는 으깨진 과일.에서 소멸하는 육체에의 비유를 발견하고 이팔청춘이 지나가버린 늙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65세 할머니 킬러 조각은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친척 집에서 눈치밥을 먹으면서 자랐고, 집을 나와 주방일을 하던 시기에 자신을 덥치려는 미군을 방어하다 죽인 것이 그녀의 첫 살인이었다.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는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했던 남자 '류'에 의해서 전문 청부살인을 시작하게 되고, 그것이 그녀 삶의 전부가 된다.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살인이 아니었지만,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살인을 했고, 무려 6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여태껏 그 누구한테도 기대거나, 혹은 기대어보려고 마음을 먹거나 한 적 없이 자립적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온 강단있는 여성 캐릭터이다. 


사람의 영혼을 포함해서 자연히 삭아가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노후된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원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육체적인 소멸과 더불어 사회적인 시선에 저항하는 방식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킬러라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했고, 그것은 영화 버전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진다. 늙어서 약해져 가는 인간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전반적으로 느껴지기 대문이다. 




강선생: ... 내가, 그날 살려서 그런 거죠? 살려서는 안 될 

            사람을... 살려버린 거죠?

아무 말 못하는 조각. 자신을 살려서가 아니라, 그를 쳐다봐서 이렇게 된 걸 어찌 이해시키나.

강선생: 그래도... 후회 안 합니다. 치료해드린 거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p.184


이 작품은 꽤 오래 전에 출간되었었지만, 초판을 읽었고, 이후 두어번 개정판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읽었고, <파쇄>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프리퀄 작품도 읽었기에 계속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캐스팅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어쩐지 영상화된 버전이 원작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을 것 같아 영화는 보지 않았다. 대신에 각본집을 만나보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이 각본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또 다른 우주'라고 밝히고 있어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원작이 아니라 영화만 보았다고 하더라도, 각본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영화에는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원래 계획은 '늙은 요원이 마지막 임무를 끝내고 조용히 현역에서 물러나는 이야기'였는데, 실제 전개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하며 새로운 가족이 되는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말한다. 배우들이 만들어낸 생명력과 현장의 분위기 등이 예상치 못한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또한 영화라는 매체의 매력이기도 하니 말이다. 


겉표지, 속표지 모두 너무 아름다운 이 각본집에는 무삭제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함께 ‘투우의 그림일기’, 민규동 감독의 말, 원작 소설 《파과》의 구병모 작가가 쓴 추천의 글, 그리고 비하인드컷까지 수록되어 있다. 원작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들에게, 영화 버전을 만나 감동받은 이들에게 모두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 스틸컷을 담은 오리지널 필름 북마크도 받을 수 있고, 랜덤으로 출연 배우 및 민규동 감독의 친필사인이 들어가 있는 책을 받을 수 있으니 영화를 인상깊게 보았다면 각본집도 꼭 구매해야 할 것이다. 각본집을 통해 여러 사정에 의해 떨어져나간 무수한 장면의 조각을 떠올리고 퍼즐처럼 맞출 수 있을 테니 그것도 좋고, 원작 소설을 펼쳐놓고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재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설의 독백이 뜻밖의 장면에 대사로 변형되어 들어가기도 하고,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과거 장면의 편린이 다른 단락에 살아 있는 등 새로운 발견을 여러 차례하는 것만으로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될테니 말이다. 한국 문학의 독보적인 여성 서사가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졌을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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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 - 지구의 마지막 세대가 아니라 최초의 지속 가능한 세대가 되기 위해
해나 리치 지음, 연아람 옮김 / 부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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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 지구는 지속 가능했는데 인류가 환경을 파괴하면서 많은 것이 불균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수천 년 동안, 특히 농업 혁명 이후나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인류는 환경 측면에서 지속 가능했던 적이 없었다. 인간의 조상들은 수백 종의 대형 동물들이 멸종될 때까지 사냥했고, 나무, 폐작물, 숯을 태워 공기를 오염시켰으며, 연료와 경작지를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숲을 베어 없앴다.             p.41


많은 사람들이 환경 파괴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많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기후 변화를 비롯해 지구 환경 문제가 심각해 진 상황이다. 우리는 멸종으로 내몰리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된 것일까. 옥스퍼드대학교 마틴스쿨 수석 연구원이자 《아워 월드 인 데이터》의 부편집장인 해나 리치는 정반대의 관점을 취한다. 우리에게는 자연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로 되돌려놓는 첫 번째 세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는 첫 세대가 될 기회가 주어졌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기후, 에너지, 인구, 생태계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와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기후 위기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일곱 가지 주제(대기, 기후 변화, 삼림, 식량, 생물다양성, 플라스틱, 어류 남획)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우리가 기후 변화와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일들을 실행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환경 운동의 시작은 지구를 지킨다는 착각에 속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유기농 식품이 반드시 친환경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환경운동에서 재활용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영향력이 없으며, 도시의 발달로 숲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땅들이 삼림 파괴의 가장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환경위기와 관련된 책을 꽤 읽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나름 고민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이 꽤나 많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대에 비해 전 세계에서 농업에 사용되는 토지는 아주 작은 면적에 불과하다. 항공 촬영을 하면 과거 숲이 있던 곳에 다시 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야생 초원이 복구되고,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꿈처럼 들리고 지나치게 미래를 낙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이뤄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일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이런 미래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p.313


'인간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뜻하는 '인류세'라는 말을 최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교란하고 훼손시키면서 초래한 환경위기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올해 여름 열대야와 폭염이 지속되는 기후 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파괴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지구의 마지막 세대가 아니라 최초의 지속 가능한 세대가 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 알려준다. 대기오염의 심각성과 깨끗한 공기를 찾을 수 있는 진짜 방법에 대해서,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인류가 삼림을 파괴해온 역사를 짚어보고 삼림 파괴를 막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식량 문제에 대한 데이터도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식량의 절반이 사라지는 이유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과 차에 우리 식량이 나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 중 인간의 음식에 쓰이는 양은 절반도 안 되며, 나머지는 가축의 사료와 산업용 연료로 사용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80억에서 100억 명의 사람들에게 영양가 높은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생물다양성의 실태를 보여주고, 6차 대멸종을 막기 위해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플라스틱 소비 실태에서 해양 오염을 막는 방안을 강구하고, 어류 남획으로 인한 해양 파괴를 막기 위해 당장 해야 하는 실천 방법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가짜 환경 운동'을 구분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진짜 환경 운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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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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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들이 철석같이 믿는 것 혹은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그 착각을 바로잡아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데서 오는 어떤 달콤함.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는 달콤했다. 여자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항상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끈적끈적 아저씨가 그건 손해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것이 우리 여자들의 고질적인 실수였다고.                  - '끈적끈적 아저씨' 중에서, p.71


그들은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안 되는 곳에서 어린이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는다. 돈을 내면 동유럽, 아시아, 중앙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열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을 살 수 있었다. 남자 어른들을 위한 깜짝 파티는 강가의 오래된 공장 마을에서 밤중에 벌어진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몸서리치게 하고 혐오감에 이를 갈게 한 그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직접 그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한다. 자신들이 밤중에 깨끗한 이불을 덮고 깔끔한 침대에서 자는 동안 또래 혹은 더 어린 어린이 성노예들이 마을 외곽의 모텔에서 구역질 나는 행위를 견뎌야 했다는 데 분노했다. 그렇게 여고생들은 학교 구내식당에서 모여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끈적끈적 아저씨라는 나선형 장치를 설계한다. 그것은 파리를 잡는 거대한 끈끈이 테이프 같은 장치였다. 


야밤을 틈타 몰래, 은밀하게, 강가의 버려진 무인지대에서 그들은 거짓 소문으로 성매수자를 유인한다. 깜짝 파티가 열린다는 소문은 산불처럼 인터넷을 타고 번진다. 남자들은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한 명씩 찾아왔고, 최대한 멀찌감치 조심스럽게 차를 댔다. 모두 이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에 경험이 있었고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낯익은 얼굴들이 손님으로 등장해 여고생들은 망연자실해진다. 고등학교 선생님, 마을의 시의원, 누군가의 아버지와 삼촌, 사촌, 이웃들이 있었다. 그들이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남자 어른들이 성도착범이었던 것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여고생들의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다.  <끈적끈적 아저씨>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강력한 성범죄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가족도 있고 딸들도 있어요...'라는 한 남자의 간청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가족이 있는데 왜 딸같은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서 왜 도덕적으로 해야 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최악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변명과 구걸을 한다는 점이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여고생들이 그들을 직접 벌하는 서사는 분노와 공감을 동시에 불러 왔다. 




무관심한/제삼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기서 흥미진진한 대목은 뭔가 하면, 상상할 수 없고 일어날 법하지 않던 일이 놀라우리만치 짧은 기간 안에 상상할 수 있고 일어날 법한 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이라는 익숙하고 한계가 정해진 공간 안에서 매일, 매시간 맞닥뜨리다 보면 충격적이고 괴상했던 것이 그 짧은 기간 안에 평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괴물둥이' 중에서, p .312


이 책에는 표제작인 <제로섬>을 비롯해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고단한 여성의 삶과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이를 지켜보는 딸의 모습을 그린 <참새>, 부모와 자식 간의 올바른 애착 형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저 데려가세요, 공짜예요>, 뒤통수의 생긴 혹이 마치 사람처럼 성장해가면서 가족들로부터 점점 배제되어 가는 불안을 그린 <괴물둥이>, 여아 성매매 문제를 여고생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끈적끈적 아저씨>, 스토킹을 당하는 여성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는 <상사병>, 유산을 겪은 여성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그린 <한기> 등 강렬한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담겨 있다.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들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해준다.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들이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성매매, 스토킹 같은 범죄 행위 뿐만 아니라 임신과 출산, 유산, 육아 등 여성이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경험들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강렬한 이야기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초자연적인 분위기와 극도의 긴장감이 잘 버무려져서 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게 만들곤 한다.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공포와 폭력적인 세상이 휘두르는 공포를 꿰뚫는 이야기를 조이스 캐롤 오츠만큼 잘 쓰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극중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여성들의 실상이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약자로 하여금 사적 제제를 집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 이 작품 속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사회와 폭력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음울하지만, 강렬한 방식으로, 사악하지만 매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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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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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간이란, 【그냥 살 수 있다】라는 상태에 가까워지면 바로 그 이상을 원합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나, 삶의 의미나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싶어, 무언가에 열중하고 싶어. 아무튼 그냥 살 수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인간 이외의 종(種)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은 어떤 개체도 하지 않습니다. 삶을 수행하는 것과 목숨을 다하는 게 동의어인 종과 비교하면 전쟁이나 재해 등 웬만한 일이 아닌 한 생명의 위협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종은 정말 생각이 많아서, 더 힘든 것 같습니다.                 p.9~10


가전 회사에 근무하는 서른두 살 남성 쇼세이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몸무게와 체지방률 모두 인생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중성지방과 콜레스트롤, 요산 수치도 나빴다.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몸의 실루엣이 착실히 아저씨처럼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쇼세이는 맨션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중이다. 최근 생물의 생식 본능이나 성도태 등과 관련된 지식을 정리한 생물학 책들을 잔뜩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암컷 개체에 성적 흥분을 느끼지 않는 인간 수컷 개체로 일본이라는 생식지에 발생해 삼십 년 이상 살아왔다. 당혹스러웠던 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그때마다 언어와 사고로 나름대로 '온전함'을 지켜 왔다. 하지만 스스로 동성애 개체임을 인식하면서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진 것이다. 


화자 ‘나’의 눈에 비치는 인간이라는 종(種)은 복잡하고도 이상하다. 정체 불명의 화자는 인간에 대해 '유체', '성체'라고 지칭할 정도로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화자의 말을 따라 가다 보면 인간이 아닌 것임에는 분명한데, 정체를 쉽게 추측할 수는 없다. 그런 화자가 쇼세이라는 한 인간 개체에 대해 관찰하고, 판단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서사이다. 어떤 꿈도 야망도 없이 세상의 성장과 발전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 가고 있는 쇼세이라는 독신 남성의 매일 일상을 관찰하며, 자신이 두 번째로 담당하게 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쇼세이의 몸 안에서 느닷없이 떠들어 대는' 화자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흥미롭고, 그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따라가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그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쇼세이,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물론 의태는 식은 죽 먹기라 행복 수준을 공동체 감각에 맡긴 개체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개체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밥을 먹고 함께 일하며 공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쇼세이는 줄곧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절은 이제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잘 드러나겠죠. 흥미롭군요.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개체라도 어떤 【온전함】을 쌓아 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군요.                p.268~269


아사이 료가 최연소 나오키상을 수상하게 해준 작품 <누구>를 읽었을 때만 해도 이십대 초반의 작가가 딱 실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현실성있는 이야기를 매우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느낌 정도였는데,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확실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게 된 것 같다. '바른 욕망'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으로 바르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볼 때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정욕 正欲>에 이어 삼 년 반 만에 발표한 신작 <생식기>는 독자들 사이에 '다양성'을 주제로 격한 논쟁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제목인 '생식기 生殖記'는 생식의 기록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새롭게 만든 조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와 발음이 같지만, 한자어가 다르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는 아마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아주 특별한 화자가 등장한다. 현지 출간 당시 화자의 정체를 비롯해 주요 정보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에 담당 편집자가 난감했다고 하는데, 결과는 출간 삼 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성공이었다고 한다. 


'정상성'과 '다양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은 많이 있어 왔지만, 아사이 료는 그야말로 상식을 완전히 부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수많은 생명체를 담당하다 인간 담당으로 옮겨 온, 그리고 처음으로 ‘인간 수컷 개체’를 담당하게 된 ‘나’의 정체는 비교적 초반부에 밝혀지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그 파격적인 설정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남들과 비슷한지, 사회적으로 평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항상 주변 사람에 비춰 자신을 평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차별과 억압의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상'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모두 정상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이란 관념 자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정상적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이 정말로 당연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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