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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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란, 【그냥 살 수 있다】라는 상태에 가까워지면 바로 그 이상을 원합니다. 이대로 살아도 되나, 삶의 의미나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싶어, 무언가에 열중하고 싶어. 아무튼 그냥 살 수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인간 이외의 종(種)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은 어떤 개체도 하지 않습니다. 삶을 수행하는 것과 목숨을 다하는 게 동의어인 종과 비교하면 전쟁이나 재해 등 웬만한 일이 아닌 한 생명의 위협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종은 정말 생각이 많아서, 더 힘든 것 같습니다.                 p.9~10


가전 회사에 근무하는 서른두 살 남성 쇼세이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몸무게와 체지방률 모두 인생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중성지방과 콜레스트롤, 요산 수치도 나빴다.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몸의 실루엣이 착실히 아저씨처럼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쇼세이는 맨션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중이다. 최근 생물의 생식 본능이나 성도태 등과 관련된 지식을 정리한 생물학 책들을 잔뜩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암컷 개체에 성적 흥분을 느끼지 않는 인간 수컷 개체로 일본이라는 생식지에 발생해 삼십 년 이상 살아왔다. 당혹스러웠던 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그때마다 언어와 사고로 나름대로 '온전함'을 지켜 왔다. 하지만 스스로 동성애 개체임을 인식하면서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진 것이다. 


화자 ‘나’의 눈에 비치는 인간이라는 종(種)은 복잡하고도 이상하다. 정체 불명의 화자는 인간에 대해 '유체', '성체'라고 지칭할 정도로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화자의 말을 따라 가다 보면 인간이 아닌 것임에는 분명한데, 정체를 쉽게 추측할 수는 없다. 그런 화자가 쇼세이라는 한 인간 개체에 대해 관찰하고, 판단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서사이다. 어떤 꿈도 야망도 없이 세상의 성장과 발전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 가고 있는 쇼세이라는 독신 남성의 매일 일상을 관찰하며, 자신이 두 번째로 담당하게 된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쇼세이의 몸 안에서 느닷없이 떠들어 대는' 화자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흥미롭고, 그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따라가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그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쇼세이,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물론 의태는 식은 죽 먹기라 행복 수준을 공동체 감각에 맡긴 개체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개체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밥을 먹고 함께 일하며 공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쇼세이는 줄곧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절은 이제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잘 드러나겠죠. 흥미롭군요. 인간의 경우, 같은 종의 개체라도 어떤 【온전함】을 쌓아 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군요.                p.268~269


아사이 료가 최연소 나오키상을 수상하게 해준 작품 <누구>를 읽었을 때만 해도 이십대 초반의 작가가 딱 실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현실성있는 이야기를 매우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느낌 정도였는데,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확실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게 된 것 같다. '바른 욕망'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으로 바르지 않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볼 때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정욕 正欲>에 이어 삼 년 반 만에 발표한 신작 <생식기>는 독자들 사이에 '다양성'을 주제로 격한 논쟁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제목인 '생식기 生殖記'는 생식의 기록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새롭게 만든 조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와 발음이 같지만, 한자어가 다르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는 아마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아주 특별한 화자가 등장한다. 현지 출간 당시 화자의 정체를 비롯해 주요 정보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에 담당 편집자가 난감했다고 하는데, 결과는 출간 삼 개월 만에 1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성공이었다고 한다. 


'정상성'과 '다양성'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은 많이 있어 왔지만, 아사이 료는 그야말로 상식을 완전히 부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수많은 생명체를 담당하다 인간 담당으로 옮겨 온, 그리고 처음으로 ‘인간 수컷 개체’를 담당하게 된 ‘나’의 정체는 비교적 초반부에 밝혀지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그 파격적인 설정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남들과 비슷한지, 사회적으로 평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항상 주변 사람에 비춰 자신을 평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차별과 억압의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상'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모두 정상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이란 관념 자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정상적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이 정말로 당연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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