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응전 - 기계·인터넷·AI, 기술 혁명에 응답한 인간의 전략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5
모종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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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유용성이나 위험성을 논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과 자율성은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p.4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골목길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의 AI 사회 리포트이다. 산업혁명에서 AI 혁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기술에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AI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새로운 균형과 대응 전략을 제시해준다. 


인류는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세 차례의 중요한 기술 혁명을 경험했다. 기술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기술은 우리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기술 낙관론과 기술 비관론이라는 두 극단의 관점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는 '문화'라는 무기로 맞서왔다. 이 책은 19세기 미술공예 운동, 20세기 대항문화 운동, 현재의 크리에이터 문화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삶을 위협할지라도,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인간화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술과 인간이 만들어온 '도전과 응전'의 순환사를 천천히 되짚어 본다. 1760년도부터 2020년까지 산업 혁명 기술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 기술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보여줘서 좋았다. 1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 창작 도구와 공예 디자인 기술을 발전시킨 미술 공예 운동이 있었고, 2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개인용 디지털 도구와 오픈 소스 기술을 창출한 대응문화 운동이 있었다. 3차 산업 혁명에 대응해 크리에이터, 커먼즈 문화가 AI 협력 창작과 분산형 거버넌스, 공유 경제 기술을 발전시켰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는 역사상 세 번째 기술 혁명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미래는 결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동일한 기술이라도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문화적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세 번째 응전을 완성할 때가 왔다.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 기술을 인간화하는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               p.316~317


이제 AI와 더불어 사는 삶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언젠가는 인간의 일자리를 로봇과 컴퓨터가 차지할 거라고 전망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AI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전문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설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이야말로 나자신을 이해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명징하게 바라봐야 한다.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이 산업 기술 속에서 인간성을 보여주고, 20세기 대항문화 운동이 기술의 양면성 속에서 다양한 대안을 찾아 기술의 인간화를 추구했듯이,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에 대해 우리는 또 다시 문화적 응전을 준비해야 한다. 기존에 있었던 세 번의 기술 혁명에 대한 문화 운동은 모두 기술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의미와 사용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즉 동일한 기술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회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언론·예술·교육 현장을 바꾸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여론과 소비를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지금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기계는 노동을 대신하고, 인터넷과 SNS는 정체성과 욕망을 관리하며, 인공지능은 인간의 창조성·판단력마저 위협하고 있다. 모종린 교수는 두 번의 기술 혁명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세 번째 순환의 문턱에 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업 혁명, 인터넷 혁명, 그리고 오늘의 AI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은 세상을 압도하는 힘으로 등장했지만, 인간은 굴복하지 않고 이 기술들을 ‘인간화’하려는 문화적 응전을 통해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왔다. 기술과 문화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기계의 시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창조적 대응이야말로 가장 시의적절한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Chat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점점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존 인간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가고 있다. 과거의 기술이 주로 인간의 물리적 능력을 확장하거나 대체했다면 AI의 발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을 위협에서 가능성으로 바꾸어 주는 응전의 인문학을 통해 AI 시대를 살아갈 균형과 전략에 대해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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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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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세계에 사는 다른 자들. 아마 그들조차 그를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트리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와요와요인 모두 그가 섬을 떠난 걸 알고 있다. 단지 애써 그를 잊으려, 일부러 잊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트리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세계보다 더 큰 세계에 갇혀 침묵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 것 같았다. 어째서 내가 이런 형벌을 감당해야 하지?             p.55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와요와요 섬은 대륙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와요와요 섬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밀물과 썰물에 맞춰 바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었다. 섬은 크지 않았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아침 먹을 때 출발하면 점심 먹을 무렵이 조금 지나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였다. 섬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제사를 지낼 때는 바다를 향하고, 밥을 먹을 때와 사랑을 나눌 때는 바다를 등졌다. 카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곳에는 기이한 전통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태어나서 백팔십 번째 보름달이 들 때 돌아올 수 없는 항해를 떠나야 한다는 거였다. 스스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 다시 섬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와요와요의 율법이었다. 지나친 풍요는 탐욕을 부르고, 탐욕은 와요와요의 신 ‘카방’을 진노케 하므로 한 가족마다 남자는 딱 한 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남으로 태어난 소년 아트리에는 그렇게 섬을 떠나 바다에 표류한지 일주일 만에 식수와 식량을 모두 잃는다. 물이 차오르는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든 아트리에는 낯선 섬에 좌초된다. 섬 주위로 바다 생물의 사체가 가득해 섬 전체가 바다에 뜬 거대한 감옥 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트리에는 집을 만들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혼자 있다는 적막함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 섬에는 말을 걸어줄 사람도, 그의 헤엄 기술을 칭찬해주는 사람도, 그와 싸우거나 잠수 대결을 벌일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보고 생각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 위에 또 그림을 그리고, 비에 젖어 지워지면 새 그림을 그리며 아트리에는 섬 곳곳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이야기는 와요와요라는 비문명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소년 아트리에와, 타이완의 문명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 ‘앨리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문자도 없는 비문명의 세계인 와요와요와 끝없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도시의 풍경이 대비를 이루며 그려지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쌓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짊어진 이들의 삶이 점점 모자이크처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복안인의 손에 있는 번데기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은하계 하나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막 탄생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가 석영이 박힌 듯 반짝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로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겹눈 속 수많은 홑눈이 바늘 끝보다 가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지켜볼 수만 있을 뿐,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내 유일한 존재 이유지." 복안인이 자기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p.374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대만의 국민작가 우밍이의 신작이다. <도둑맞은 자전거>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사라진 자전거의 행방을 쫓으며 아버지의 과거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여정을 주요 서사로 두고 식민 시대의 역사와 전쟁 등 대만 100년사가 함께 펼쳐지는 묵직한 이야기였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태평양 한가운데에 뜬 거대한 쓰레기 섬을 모티프로 생태 위기를 우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산 제물과 여섯 번째 발가락, 인어다리증 태아, 곤충의 눈, 즉 ‘복안’을 가진 초월적 존재 등 신화와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종말이 가까워진 근미래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특유의 서정적이고 우아한 언어로 시처럼 쓰인 작품이라 신비롭고 아름다운 잔상이 여운처럼 남는 시간이었다. 


우밍이는 작가이자 환경운동가로도 유명한데,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의 주요 서식지에 초대형 석유 화학 단지를 건립하겠다는 타이완 정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결국 사업은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위성 사진으로 처음 확인된 ‘쓰레기 소용돌이’에 관한 기사를 접했고, 그것이 이 작품 <복안인>의 출발점이 된다. 극중 미스터리한 존재인 '복안인'은 곤충처럼 여러 겹의 눈을 가지고 수만 가지 풍광과 무수한 장면들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 작품 역시 하나의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들이 포개지고, 겹치며 만들어 지는 겹눈을 통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말로 열려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통해 겹눈 속 수만 가지의 형형한 풍경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가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작품 속 쓰레기 섬은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복안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존재들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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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실종자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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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줄리아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혼자 서 있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무게감이 갑자기 밀어닥쳤다. 마치 지옥으로 통하는 문을 연 것 같았다. 그녀는 팔꿈치를 조리대에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이런 일을 겪을 만큼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삶의 모든 고비마다 그녀는 좋은 엄마와 좋은 경찰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오늘은 그 두 가지 역할이 서로 부딪혔다.             p.103


스물두 살의 여성이 늦은 시각에 하우스메이트에게 와달라는 문자를 보낸 뒤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CCTV에서 번화가에서 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제는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거다. 그녀는 그 골목으로 사라진 다음 다시 나오지 않았고, 골목의 끝은 문도, 접근 가능한 창문도 없는 아파트 벽면이었다. 목격자도, 단서도 없었다. 남은 것은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소셜 미디어 계정뿐. 대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난 해에도 비슷한 실종 사건이 있었다. 그 여성 역시 CCTV에서 목격된 것이 마지막이었고, 현재까지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사건을 맡은 줄리아 경감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협박을 받는다. 그가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실종된 여자의 집에 거짓된 증거물을 몰래 놔두고, 그것을 토대로 가짜 범인을 살인 용의자로 체포하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라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줄리아는 생각한다. 자신은 부패한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줄리아의 딸 제너비브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딸을 위해 줄리아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말이다. 만약 줄리아가 남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딸의 비밀을 온세상에 폭로해 버릴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패 경찰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신념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딸이 철창 신세를 지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 또한 딸의 비밀을 은폐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리게 될 거였다. 과연 줄리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딸을 무사히 지키고,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차근차근 서사를 쌓아 나가다 놀라운 반전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에 다가선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불법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금지된 선을 넘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선을 넘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주를 향해 손을 뻗어서 세이디를, 그녀를 죽인 살인자를, 루이스를 위한 해답을 찾고 마음을 치유해야만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 충동이 그녀를 관통했다. 루이스가 그녀에게 어떤 짓을 했든 간에, 그녀가 어떤 곤경에 빠져 있든 간에 이것이 그녀의 직업이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윤리관이나 가족, 그녀 자신이 위태로워지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p.383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아들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한 열망이 만들어 내는 타임슬립 서사와 놀라운 반전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연쇄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딸을 지켜야 하는 형사,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 범인으로 몰린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시점으로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각자의 자식을 지켜내기 위한 세 부모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작가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범죄 스릴러로서의 서스펜스와 반전의 재미도 있는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정의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전작이 타임슬립이라는 SF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최신 기술을 활용한 범죄 사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고,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만약 자식을 지키는 일이 내가 살아온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해야 하는 거라면? 내 자식이 범죄를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며 자식을 믿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자식의 치명적인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증거를 조작해 가짜 범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란 존재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 무슨 짓이라고 할 용의가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하며 서사를 쌓아 나가는 방식은 많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보다 촘촘하게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범인으로 몰린 아들을 의심하는 어머니와 사라진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시점은 일인칭과 이인칭 시점을 오가고,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실종된 여성의 서사는 그 동안 활동했던 소셜 미디어 계정의 게시물로 보여진다.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그 시점들을 바쁘게 쫓아가며 의심과 추측을 오간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몰입해서 읽게 된다. 정교한 플롯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반전까지 갖춘 스릴러로서의 장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진짜 장점은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곧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니, 영상화된 버전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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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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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은 구멍들로 가득했다. 정신이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무의미의 틈새들, 미세한 균열들. 그리고 일단 그 구멍으로 들어가면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삶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우연히 그 구멍을 마주한 것이다. 그것은 총의 형태로 나타났고, 그 총 안에 들어선 순간 거기서 빠져나오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나는 완벽하게 평온했고, 완벽하게 미쳐 있었으며, 그 순간이 내게 제시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p.159


 대학 교수인 짐머는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일주일 앞두고, 아내와 두 아들을 비행기 추락 사고로 한꺼번에 잃는다. 서른여섯 살의 아내 헬렌과 일곱 살 토드, 네 살 마르코가 죽었을 때, 그도 그들과 함께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헬렌의 부모님이 사는 밀워키로 가던 길이었고, 평소 같았으면 가족이 다 함께 갔겠지만 헬렌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은 직후라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짐머는 학생들이 낸 리포트를 고쳐주고, 막 끝난 학기 성적을 내느라 함께 가지 못했다. 짐머가 가장 후회되는 건 그들에게 직항기를 타라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중간에 경비행기로 갈아타는 게 걱정스러웠던 그는 큰 비행기를 타게 했고, 결과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그는 끊임없이 자책했고,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를 술로 버틴다. 집에 틀어 박혀 몇 개월 동안 슬픔과 자기연민에 빠져 멍한 상태로 지낸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던 그를 붙잡았던 것은 우연히 보게 된 TV 덕분이었다. 헥터 만이라는 코미디언의 연기를 보고 6개월만에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가 누군지 전혀 몰랐고 어디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가 출연했던 옛날 영화 한 편의 클립이 그를 웃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음을, 자신 안에 계속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헥터 만이 예기치 않게 그의 삶으로 걸어들어온 뒤, 짐머는 그에 대한 책을 쓰는데 몰두하기 시작한다. 헥터는 1920년대에 단 1년간 활동하며 코미디 단편 열두 편을 남기고 돌연 사라진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짐머는 세계 곳곳의 영화 보관소와 아카이브를 뒤지며 그의 영화들을 찾아 보며 헥터의 영화에 대한 연구서 <헥터 만의 무성 세계>를 집필한다. 책 출간 후 그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모두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헥터가 살아 있으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나 그를 먼 곳으로 데려 가는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그들을 이토록 암울하고 무자비한 입장에 처하게 만든 논리를 파악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모든 게 터무니없고, 무의미하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 답은 책 속에 있었다. 그 이유는 책 속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으로 이어진 생각의 근원은 책 속에 있었다. 나는 앨머의 책상에 앉았다. 원고는 컴퓨터 왼쪽에 놓여 있었는데, 높이 쌓인 종이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고 있었다. 돌을 치우자 그 아래 글씨가 보였다.               p.404


폴 오스터의 초기작 <어둠 속의 남자>와 <환상의 책> 개정판이 ‘환상과 어둠’ 컬렉션으로 북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무려 2003년이라 이번에 번역 작업도 새롭게 다시 했다고 한다. 이십 여년 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게 되니,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나 이번 개정판에는 정기현, 김화진 소설가의 리뷰를 함께 수록했는데, 폴 오스터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게 되는 경우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튼튼한 양장본이지만 무겁지 않고, 표지 디자인도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해서 기존에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번 개정판으로 만나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에게 그 이후의 삶은 덤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는데, 그것이 폭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거대한 상실이든, 혹은 참고 견딜 만한 상실이든 간에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겪고 거기서 시간이 멈춘 듯 머무느냐, 혹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느냐의 차이다. 짐머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계기는 사소한 우연일수도, 정해진 운명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헥터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폴 오스터는 언젠가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스토리텔러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못 삽니다. 두 살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죠.' 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환상의 책'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인생이라는 환상, 삶이라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가능한 일들을 믿고 싶어 하며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읽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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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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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왜 이런 오래되고 피곤한 길들을 기어이 되짚고 있는 걸까? 왜 이 해묵은 상처들을 강박적으로 헤집어서 다시 피를 흘리는 걸까? 종종 나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경멸이라면 아무리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나는 미리엄의 원고를 보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금이 간 벽을 바라보며, 과거의 잔재들, 절대 고칠 수 없는 망가진 것들을 긁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유령들을 물리쳐줄 나의 작은 이야기.             p.73


은퇴한 문학평론가 오거스트 브릴은 또 한 차례의 불면증으로 또 한 번의 새하얀 밤을 힘들게 지나는 중이다. 그는 현재 마흔일곱 살의 딸 미리엄과 스물세 살의 손녀 카티아와 함께 살고 있다. 아내는 작년에 죽었고, 자신은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거의 절단할 뻔했는데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딸 미리엄은 이혼 후 지난 5년 동안 홀로 잠들고 있고, 손녀 카티야는 이라크 전쟁으로 연인을 잃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조각난 가슴을 안고 홀로 잠드는 세 사람은 각자의 고통에 갇혀 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살고 있는 집 전체가 비탄에 빠진 듯하다. 


브릴은 매일 밤 어둠 속에 잠 못 든 채 누워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언 브릭'이라는 남자다. 그는 깊이 3미터 정도되는 당속 깊은 구덩이 속에서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구덩이에 떨어진 기억도 없다. 그는 아내가 있고, 지난 7년 동안 직업 마술사로 일하며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서 공연해왔다. 그런데 어쩌다 군복 차림으로 구덩이 바닥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는 평생 군대에 복무한 기억도, 전쟁에서 싸운 기억도 없다. 그가 눈뜬 세상은 내전으로 분열된 가상의 미국이다. 미국은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내전은 벌써 4년 차였고, 전쟁에서 싸우는 군인들은 자원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끌려오게 되는 거였다. 이야기 속 오언의 임무는 암살자가 되는 거였다. 바로 전쟁을 만들어낸 '이야기꾼'을 암살하는 거였다. 이 전쟁을 만들었고, 앞으로 벌어지려는 일이 모두 그의 머릿속에 있으니까, 그를 제거하면 전쟁이 멈출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자가 죽고 나서 전쟁이 끝나고 나면, 나머지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인 그들 모두가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오언은 고민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을 창조한 인물을 죽여야만 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그 인물이 아닌 척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을 이야기 안에 넣음으로써,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현실이 아닌 것, 나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허구가 된다. 어느 쪽이든 효과는 더 만족스럽고, 나의 기분과도 더 조화를 이루게 된다. 어두운, 그러니까 얘들아, 나를 둘러싼 흑요석처럼 새까만 이 밤처럼 어두운 기분과 말이다.             p.149


결혼 생활의 종말, 아내를 잃은 후의 외로움, 거의 죽을 뻔했던 사고, 그리고 딸과 손녀가 겪고 있는 고독과 상실이 브릭을 매일 밤 잠 못들게 한다. 그가 불면의 밤 속에서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인 오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야기를 만든 자를 죽어야 전쟁이 끝나지만, 그가 죽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 속에 갇힌 자와 그것을 창조한 자의 삶이 교차로 진행되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허구의 이야기가 상실을 견디게 하고,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점차 느끼게 해준다. 가상의 이야기 속으로 도피해야만 버틸 수 있는 삶이란 분명 슬프지만, 그렇게라도 견딜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폴 오스터의 초기작 <어둠 속의 남자>와 <환상의 책> 개정판이 ‘환상과 어둠’ 컬렉션으로 북다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무려 2008년이라 이번에 번역 작업도 새롭게 다시 하고, 정기현, 김화진 소설가의 리뷰를 함께 수록했다. 튼튼한 양장본이지만 무겁지 않고, 표지 디자인도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해서 기존에 읽어 보지 않았다면 이번 개정판으로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사실 최근에 폴 오스터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읽었기에, 그의 초기작을 다시 읽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와 현재, 허구와 환상을 넘나들며 인물의 삶을 견고하게 그려나가는 방식과 상실과 기억에 관한 그의 아름다운 사유를 좋아하는데, 이제 다시는 신간을 볼 수 없다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작품들을 다 읽었는데, 매번 한번도 같은 스타일을 복기 하지 않는,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 새 한 해가 흘렀고, 시간은 속절없이 계속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개정판 두 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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