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시즈닝의 예술
제임스 스트로브리지 지음, 정연주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릇하게 잘 구운 스테이크에 흩뿌린 햇빛에 반짝이는 흰색 소금 플레이크. 버터 향을 풍기는 으깬 감자에 가미한 실크처럼 고운 훈제 해염. 손끝에서 우아하게 떨어져 그릴에 구운 아스파라거스에 올라앉은 무작위한 형태의 완벽한 가니시. 한 꼬집 넣을 때마다 식재료의 맛은 달라지고 우리가 먹는 방식도 변화한다. 나는 소금이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기를 바란다.         p.7


최근에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너무 예쁜 소금 세트였는데, 함초, 블루베리, 복분자 천일염이 각각 보라, 핑크, 베이지 컬러로 맛보기도 전에 눈이 즐거웠다. 요즘에는 소금도 이렇게 예쁘게 나오는구나 싶었다가 생각해보니, 언젠가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가 소금이 종류별로 플레이팅 되어 나왔던 게 기억이 났다. 좋은 고기의 맛도 중요하지만, 어떤 소금을 찍느냐에 따라서 그 풍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소금은 요리를 완성할 수도, 망칠 수도 있다. 그 어떤 다른 재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풍미를 변화시키거나 맛을 향상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셰프이자 TV 진행자, 포토그래퍼인 제임스 스트로브릿지가 소금에 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는 이 책이 '내 모든 소금 마법 주문 모음집'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손만 만나면 소금은 요리의 연금술이 되어준다고 말이다. 수년간 소금을 깊이 탐구해 온 셰프로서 소금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소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나에게 있어서 레몬 소금절임이란 마치 병에 담긴 햇살과 같다. 복합적인 풍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해산물 요리에서 바비큐 치킨, 맛있는 타불리와 멋진 리소토에 이르기까지 내 요리를 많이 향상시켜 준다. 내 레몬 소금절임 레시피는 훈제 해염과 장미 꽃잎, 카디멈을 가미해서 정원 안개 속을 떠도는 자욱한 바비큐 연기와 향기로운 향신료, 활짝 핀 꽃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p.92


모든 소금은 해수를 이용해서 바로 생산하거나 수백만 년간 엄청난 지각 압력으로 지하에서 압축 및 건조된, 오랫동안 잊힌 바다에서 형성된 암염 퇴적물에서 만들어 낸다. 소금은 생산하는 방식에 따라 천일염, 자염, 암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암염'이라는 것이 히말라야 핑크 소금처럼 지하에서 덩어리로 채취한 다음 분쇄해서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 책은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방법부터 시작해 소금의 역사와 다양한 맛과 풍미, 다양한 종류와 소금 간을 하는 방법과 계량법 등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준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 소금 공예 기술'이라는 세 번째 파트였다. 건식 염지, 습식 염지, 젖산 발효, 소금판, 소금 크러스트 구이, 가향 소금, 훈제 소금, 베이킹 등 소금을 재해석해 새로운 소금을 만들고, 다양한 조리 방법을 통해 요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레시피까지 담겨 있다.


소고기 육포 만드는 법에 갓 갈아낸 커피를 섞는다거나, 브런치를 완성시키는 달걀 노른자 염지하는 법, 요리에 복합적인 풍미를 더해주는 레몬 소금절임 만드는 법, 너무 간단하지만 훌륭한 당근 피클인 골든 크라우트,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는 토마토 마늘 샐러드 등 새로운 레시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인 제임스 스트로브릿지는 자칭 소금광이다. 콘월 남동부의 해안 근처에 살기로 결정한 것 또한 바다에서 나오는 소금이라는 가장 중요한 식재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깨끗한 바닷물을 퍼다 몇 시간이고 끓여 직접 소금을 만들어 보고, 집 주변 소금 장인이 어디 사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할 정도로 소금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나트륨 수치가 낮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소금이 점점 식단에서 제외되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정제하지 않은 형태의 천일염이 함유한 미네랄은 맛과 풍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정제된 식탁용 소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소금에 대한 오해를 풀고,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위해 소금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자, 소금이 주방에서 펼치는 마법의 세계를 경험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부재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흔적과 유해를 낱낱이 그러모아 그 형상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당신의 형상과 지형도가 불완전한 미완성에 그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이 생의 광휘와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기억하고자 했다. 당신의 인생에는 오로지 비극만 있었던 것이 아님을 얘기하고자 했다... 나는 당신이 가진 그 빛과 어둠, 모두를 보고자 한다. 당신의 빛을 집어삼킨 그 어둠의 실체를 밝음의 세계 위에 꺼내놓고 싶다.          p.50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자살했다. 어머니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와 헤어진 후 가족들에게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딸에게 온갖 독설과 폭언을, 아들에게는 애인과 있었던 일을 암시하는 성적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가시기 전 약 한 달간은 더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나서,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 미스터리 소설이었다면 어머니가 어떤 남자를 만났는지, 그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 스토리가 곧 이어질 것만 같은 서두이지만, 이것은 누군가에게 현실이었다. 


그렇게 한 여성이 살았던 67년의 생애가 가능한 한 빠르게 지상에서 치워버려야 할 부끄러운 죽음으로 치워졌고, 그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가족들은 이후로도 몇 년간 제대로 애도할 수조차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고인의 딸이자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에 대해 말해야 한다’라는 사명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사는 동안 무엇을 갈망했을까, 무엇을 꿈꾸었을까, 밤에는 어디로 영혼이 떠돌았을까. 어머니의 모든 열정, 정념, 수치, 슬픔, 분노, 혐오, 기쁨, 환희 들.... 당신이 살다 간 흔적, 당신이 세상을 사랑한 흔적, 당신이 나를 사랑한 흔적.... 그렇게 저자는 그 흔적을 따라 걷기로 한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무모하고 담대하게 만들었을까. 지상에서 사라진 한 인간의 생애에 어둠의 장막을 거둬내어 진실의 빛을 비추는 일은 '쓰기'를 통해서 시작된다. 





일상이 비루하고 남루할지언정 그것을 살아낸 내 일상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는 일. 그 일상의 비천한 조각들이 모여 현재를 통과한 나는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아침의 나는 오후와 저녁의 나를 통과해 밤의 내가 된다. 밤새 거친 땅을 떠돌던 영혼은 다른 존재로 태어나 아침의 빛을 맞이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은 파동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이 세계와 에너지를 교환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이 세계와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p.190



경제적으로 파산한 노후를 맞이해 학원 건물을 청소하게 된 노년기 여성으로, 외로운 열정의 대상이었던 아들과 급격히 멀어진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육십 대에 접어들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결혼'이 자신의 불행의 시작점이라 늘 말해왔던 어머니는 자연과 가까워지며, 그곳에서 남자를 만났다. 멀리서 함께 걷는 것을 보았을 뿐이지만, 딸로서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어머니에게도 삶의 기쁨이나 몰입이 될 만한 어떤 사건이 생겼다는 데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짐짓 모른 체 어머니와의 대화 중에 다른 남자에 대해 언급했을 때 어머니는 불같이 화내면서 집안의 수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외도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겪게 될 수모와 낙인이 공포였던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욕망을 없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 새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넘어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로 확대되고 있었다. 또한 모성과 욕망에 대해, 그리고 글쓰기가 어떻게 애도와 자기 해방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었다. 슬픔과 막막함에서 시작해 기어코 다시 삶을 써 내려가는 글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말들'이 트라우마와 상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죽음을 애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내가 부재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흔적과 유해를 낱낱이 그러모아 그 형상을 복원하는 일이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산산조각이 나 버린 삶의 파편들을 글쓰기를 통해 이리저리 맞춰보고, 이어 붙이면서 어머니의 삶을 복원하고,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쓰인 에세이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과 사유는 웬만한 인문학서 못지 않게 묵직하고 깊이가 있어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읽었다. 타인의 삶과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자살과 광기, 그리고 욕망에 대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책을 통해 글쓰기가 가진 힘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금기가 된 죽음이 어떻게 언어화될 수 있는지, 부서진 마음이 어떻게 글쓰기로 치유될 수 있는지.. 이 먹먹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끈질김, 정확하고 치밀한 사무 관리, 전문적인 법률 지식, 교섭 능력. 채권 회수는 일반적으로 은행원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이 평균 이상으로 요구되는 가혹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그런 지저분한 일을 사카모토는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담담히 해냄으로써 스스로와 균형을 맞춰왔다. 거친 교섭이 이어지면 마지막 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으레 말이 없어졌다. 쾌활한 사람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온후하고 다정한 사람이 감정 없는 톱니바퀴로 변모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p.57


은행에서 근무하는 이기는 대출 고객을 방문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다 동료인 사카모토를 만난다. 두 사람은 입사 동기로 이기는 일반 융자 담당, 사카모토는 회수 담당이었다. 사카모토는 이기에게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너 나한테 빚진 거다?"라는 묘한 소리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나고, 몇 시간 뒤 시체로 발견된다. 게다가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는데... 이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3천만 엔이라는 거액의 돈을 횡령했다니.. 자신이 알던 사카모토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인은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사로 요요기 공원 옆에 있는 차 안에서 쓰러져 있는 채 발견되었다. 벌에 쏘인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아마도 벌 알레르기였던 것 같다고 한다. 


그의 업무를 인계받은 이기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던 사카모토는 컴퓨터에 스케줄 프로그램에 꼼꼼히 하루 단위로 일정이 기록했다. 스케줄의 면담 기록 중 여러 장의 메모가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스케줄이 있었으며, 담당했던 회사의 계좌 잔고 추이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차 사카모토의 죽음이 알레르기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인 타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살해당할 동기가 될 만한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었는데, 이거라면 그 동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기는 동료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이미 한차례 좌천되어 온 지점이었지만, 이러다가는 은행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말까지 듣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진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죽었다니 무슨 소리야."

그 눈을 직시했다. 깊은 눈동자다. 뭐가 있지? 분노, 당혹, 두려움, 긍지 그리고 혼란......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직감에 나는 동요했다.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을 사고가 경로에서 벗어난다. 이 사건에서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니시나의 시선이 쏘아보는 가운데 맹렬한 기세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가설을 다시 세운다. 손에서 빠져나간 진실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친다.                p.365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비롯해서,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직장인들의 통쾌한 반란과 도전을 탄탄한 구성과 생생한 캐릭터로 그려냈었던 이케이도 준의 데뷔작이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하다 퇴사한 뒤 이 소설로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케이도 준의 출발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자,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을 선언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본격적인 기업소설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살인사건을 풀어 나가는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선사하고 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케이도 준은 자신이 근무했던 은행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도산과 그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모티프로 했음을 밝히면서 “쓰고 싶어서 썼다기보다는 기필코 써야만 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뉴스에 숱하게 보도되는 사건의 그 이면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존에 만났던 그의 작품들이 기본적인 구도는 영세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맞서 싸우는 식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은행과 기업이 얽힌 음모, 은행 안의 복잡한 파벌 싸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의도 불사하는 비열한 상사... 등 현실감 넘치는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케이도 준의 여느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가독성이 뛰어나다.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진짜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 - 매일 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잠과 꿈에 관한 거의 모든 과학
라훌 잔디얼 지음, 조주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꿈이 펼치는 마법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꿈을 꿀 때 우리는 육체를 초월한다. 어느 순간, 더는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눈을 감고 있지만 앞을 볼 수 있으며, 몸은 가만히 있지만 꿈속에서 걷고, 달리고, 운전하며 심지어는 날 수도 있다. 또한 입은 다물고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살아 있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현재에 존재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미래로 떠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곳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다... 매일 밤 펼쳐지는 경이로움, 그것이 바로 꿈이다.           p.12~13


누구나 매일 밤 자면서 꿈을 꾼다. 그것은 악몽이 될 수도 있고, 다가올 일에 대한 예지몽이 될 수도 있으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가고 싶었던 곳을 가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꿈을 꾸는 것일까? 그리고 그 꿈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신경외과 전문의인 저자가 꿈을 꾸는 동안 인간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대체 꿈이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에 과학적인 대답을 들려준다.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와 그 사이 존재하는 수조 개의 연결로 이루어진 우리의 뇌가 꿈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그 원리를 알고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잠재력이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나는 우리가 꿈을 꾸기 위해 진화했다고 믿는다.'라는 저자의 말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꿈은 비일관적이고, 무작위적이고, 초현실적일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꿈에도 규칙이 있고, 한계가 있으며, 실제로 불안한 감정을 치료해주거나 영감과 창의성과 연결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꿈이 가진 진화적 이점과 가치에 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그 외에도 자각몽과 악몽, 야한 꿈의 기원, 꿈을 조작하는 방법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꿈을 해석하려면 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기억해야 한다. 살펴본 것처럼, 꿈은 매일 밤 일어나는 뇌의 활성화와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로, 고도로 감정적이고 시각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감정과 시각적 연결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들이다. 따라서 꿈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나는 꿈을 이해하기 위해 꿈의 감정적, 시각적 측면, 즉 꿈의 핵심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2단계 접근법을 고안해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꿈에서 경험하는 시각적, 감정적 경험이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도의 강도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p.275


악몽에 시달리던 55세 남성이 있었다. 그는 어른이 된 후에도 종종 악몽을 꾼 적이 있었지만, 최근에 악몽을 꾸는 빈도가 너무 잦아 걱정이 된다고 병원을 찾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는 참전 용사인 그가 악몽을 꾸는 것이 PTSD의 증상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가 꾸는 악몽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동물들'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가 자주 꾸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가 조현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꿈과 깨어났을 때의 환각, 그리고 망상이 섞인다는 그의 증상이 조현병의 증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꿈을 꾸는 동안 같은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의 얼굴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행히 정신 질환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뇌와 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꿈이 깨어 있는 삶, 즉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꿈을 꾸면서 보내면서도 왜 꿈을 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인간이 인생의 3분의 1을 꿈을 꾸며 보낸다고 하니 말이다.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꿈을 꾼다. 꿈은 인간의 의지가 아닌 뇌가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던 꿈이 하는 일들이었다. 꿈은 상상력으로 창의성을 발현시켜주고,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에게 닥칠 신체적·정신적 위험에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면 꿈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작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데 대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거니?"

자,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말할 차례죠? 헥사에서 일한 처음 며칠 동안은 약간 정신이 나간 상태였거든요. 온정신이 다른 일에 쏠려 있었고 당시 동료들과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이 머리를 식혀주었어요. 또 우리 노동 환경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후여서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무슨 헛소리냐 싶죠?            p.35


케일리는 전 연인에게 이용당하고 재정이 거의 파탄 난 상태였다. 근무하던 콜센터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헥사'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곳은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케일리가 하는 일은 온라인 상에 올려지는 콘텐츠들을 점검해 삭제하는 일이었는데, 하루에 500개의 클립을 확인해야 했다. 어떤 소녀가 아주 무딘 주머니칼로 자기 팔을 쑤시는 실시간 방송을 봐야 했고, 어떤 남자가 자신의 독일셰퍼드를 발로 세게 차는 영상도 있었다. 두 아이가 서로를 노려보며 위험한 정도로 많은 양의 시나몬을 입에 욱여넣는 영상이며,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 영상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않는 이미지와 영상들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모두 좀비처럼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서 스스로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깊게 빠져들었다가 갑작스럽게 수만 가지의 역겨운 이미지 폭탄을 맞아 뇌의 신경회로가 거의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일을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책상에서 일어서면 곧장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까지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 환경에 있었다. 하지만 케일리는 돈이 필요했고, 그곳에서 버텨내려고 한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그러한 업무 내용으로 인해 우울해하고, 편집증으로 인해 테이저건을 들고 잠자리에 들고,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움찔하는 등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고, 점차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는 케일리가 그곳을 나와서 ‘헥사’에게 하청을 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고소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덕분에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라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극중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의 그것과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점점 더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이미지에 대한 장기적인 노출로 인한 2차 트라우마는 우울증과 불안, 강박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스티틱 씨, 당신이 배포한 언론 보도 자료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가요?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들어맞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시흐리트와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리 중 누가 강박적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로서는 정말 시흐리트를 믿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화요일 오후에 부품 창고에서 왼쪽 선반에 휴대폰을 세워두는 것도 내버려둘 정도였으니까요.            p.159~160



매일 같이 소셜 미디어에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고,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그러한 게시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다크웹을 비롯해 각종 불법적인 사이트까지 더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고 말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아무나 이용 가능한 소셜 미디어에도 유해한 게시물들이 수시로 업로드 된다. 나 역시 거의 매일 스팸 댓글이나 쪽지 등을 차단, 신고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없어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이 작품은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 유해 게시물로 신고된 게시물들을 검토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는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소위 온라인 청소부인 이들은 전 세계에는 사람들이 신고한 게시물을 면밀히 검토해 ‘디지털 쓰레기’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에서 삭제한다. 하지만 선정적인 묘사, 혐오 표현, 강간, 자살 시도, 학대, 참수 장면… 등을 매일같이 화면으로 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온라인의 '유해 콘텐츠'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우울증과 편집증, 음모론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그들의 일상은 결코 전과 같아질 수 없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소설은 우리가 외면하고, 모른 척 해왔던 소셜 미디어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