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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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대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거니?"

자,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말할 차례죠? 헥사에서 일한 처음 며칠 동안은 약간 정신이 나간 상태였거든요. 온정신이 다른 일에 쏠려 있었고 당시 동료들과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이 머리를 식혀주었어요. 또 우리 노동 환경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후여서 무감각해졌다고나 할까요? 무슨 헛소리냐 싶죠?            p.35


케일리는 전 연인에게 이용당하고 재정이 거의 파탄 난 상태였다. 근무하던 콜센터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헥사'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곳은 업무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케일리가 하는 일은 온라인 상에 올려지는 콘텐츠들을 점검해 삭제하는 일이었는데, 하루에 500개의 클립을 확인해야 했다. 어떤 소녀가 아주 무딘 주머니칼로 자기 팔을 쑤시는 실시간 방송을 봐야 했고, 어떤 남자가 자신의 독일셰퍼드를 발로 세게 차는 영상도 있었다. 두 아이가 서로를 노려보며 위험한 정도로 많은 양의 시나몬을 입에 욱여넣는 영상이며,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 영상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않는 이미지와 영상들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모두 좀비처럼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서 스스로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깊게 빠져들었다가 갑작스럽게 수만 가지의 역겨운 이미지 폭탄을 맞아 뇌의 신경회로가 거의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일을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책상에서 일어서면 곧장 스톱워치가 작동하는 열악한 노동 조건까지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 환경에 있었다. 하지만 케일리는 돈이 필요했고, 그곳에서 버텨내려고 한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그러한 업무 내용으로 인해 우울해하고, 편집증으로 인해 테이저건을 들고 잠자리에 들고, 슈퍼마켓에서 누군가 뒤에 서 있으면 움찔하는 등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고, 점차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는 케일리가 그곳을 나와서 ‘헥사’에게 하청을 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거대 플랫폼 회사를 고소하게 되면서 누군가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덕분에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라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극중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실의 그것과 교차되고, 중첩되면서 점점 더 진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이미지에 대한 장기적인 노출로 인한 2차 트라우마는 우울증과 불안, 강박적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스티틱 씨, 당신이 배포한 언론 보도 자료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가요?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들어맞는 말이었어요. 하지만 시흐리트와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리 중 누가 강박적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로서는 정말 시흐리트를 믿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화요일 오후에 부품 창고에서 왼쪽 선반에 휴대폰을 세워두는 것도 내버려둘 정도였으니까요.            p.159~160



매일 같이 소셜 미디어에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고, 수십 억명의 사람들이 그러한 게시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다크웹을 비롯해 각종 불법적인 사이트까지 더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고 말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아무나 이용 가능한 소셜 미디어에도 유해한 게시물들이 수시로 업로드 된다. 나 역시 거의 매일 스팸 댓글이나 쪽지 등을 차단, 신고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없어지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이 작품은 그렇게 소셜 미디어에 유해 게시물로 신고된 게시물들을 검토하고 삭제하는 일을 하는 콘텐츠 감수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소위 온라인 청소부인 이들은 전 세계에는 사람들이 신고한 게시물을 면밀히 검토해 ‘디지털 쓰레기’에 해당하는 경우 플랫폼에서 삭제한다. 하지만 선정적인 묘사, 혐오 표현, 강간, 자살 시도, 학대, 참수 장면… 등을 매일같이 화면으로 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온라인의 '유해 콘텐츠'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우울증과 편집증, 음모론에 점차 빠져들게 되는 그들의 일상은 결코 전과 같아질 수 없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소설은 우리가 외면하고, 모른 척 해왔던 소셜 미디어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을 통해 디지털 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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