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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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의 삶. 그 이후의 삶.

클라라 이전의 모든 것은 생기 없고, 텅 비고, 임시방편처럼 여겨졌다. 클라라 이후는 나를 전율시키고 겁먹게 했다. 방울뱀들의 골짜기 너머 물바다의 신기루처럼.

나 클라라예요. 그 한마디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었으며, 그녀를 떠올리고 싶을 때마다 돌아갈 수 있던 단 한 가지였다. 기민하고 따스하며 신랄하고 위험한 그녀를.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이 한마디에서 퍼져 나왔다.            p.13


크리스마스 이브, 홀로 참석한 파티에서 나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트리 뒤편의 창가에 서 있다. 그때 누군가 한 손을 불쑥 내밀고 말한다. "나 클라라예요."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사실처럼 퍼뜩 내뱉은 그 말 한마디로 인해 그날 밤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 테라스로 가 뉴욕의 밤 풍경을 보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녀에 대해 더 알고, 더 듣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후 나는 매일 밤 클라라를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는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만난 날부터 딱 여드레 밤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추측해보고, 지난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상대를 향한 갈망과 희열에 이르기까지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며 마음속을 휘젓는 시기이니 말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더없이 섬세한 문장으로 그 순간의 감정들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그려내고 있다. 한쪽이 다가서려 하면 다른 한쪽이 한 걸음 물러서는, 좀처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진척이 느린,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온갖 생각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롱리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서로 사랑에 빠졌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불처럼 타올라 첫 눈에 반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말이다. 메시지를 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상대가 하지도 않은 행동을 미리 짐작하고 걱정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내내 말이다. 




나는 클라라와 함께했던 모든 것들이, 맨 첫 번째 밤부터 마지막 밤까지, 심술과 자존심으로, 또 그 사이에는, 상당량의 두려움과 경고로 지배되었던 한편, 가장 중요해야 마땅했던 그 하나의 단어는 말없이 남아 있으리라는 선고를 받은 단어였다가는 이윽고 그것 역시도 단단하고, 빙하 같고, 또 바위같이 되어버렸던 일을 생각했다.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다가는, 밤에다가는, 공원의 동상에다가는, 내 베개에다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클라라,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놓쳐버렸기 때문에,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p.683



클라라를 만나고 다음 날, 나는 하루 종일 그녀 생각을 한다. 눈 속에서 헤어진 일부터 코트를 입었다가 입지 않은 일, 악수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배웅해 준 일, 그녀가 빌렸던 우산을 수위에게 건네준 일,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던 일... 나는 완전히 넋을 잃은 채 온종일을 보낸다.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보고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담요처럼 덮은 눈을 보며 걷는다. 나는 그 산책이 절대 끝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새 눈 내리는 뉴욕의 밤거리를 걷는 두 남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특별히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전혀 지루할 새가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세상에 독자인 내가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 남자가 되었다가 그를 안달 나게 만든 여자가 되었다가 그렇게 두 사람과 함께 여드레 밤을 보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파인드 미>, <하버드 스퀘어>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안드레 애치먼의 신작이다. 그 동안 만나왔던 작품들에 비해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인데, 768페이지 내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내면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탐구하는 소설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레임과 불안한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해 서로 사랑에 빠졌으나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두 사람의 아주 특별한 연애소설로 완성시켰다. 특유의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인해 이들과 함께 하는 여덟 번의 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 감정을 그려내고 있어 공감하고,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도 이렇게 뛰어난 몰입감을 안겨준다는 것이 안드레 애치먼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사랑을 원해요,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나는 로맨스를 원해요. 나는 반짝임을 원해요. 나는 우리 삶에 마법을 원해요."(p.189) 당신도 그렇다면, 이 황홀하고 우아한 연애소설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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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너에게 - 나를 깨닫는 일기 쓰기의 힘
고가 후미타케 지음, 나라노 그림, 권영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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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냐. 의논할 사람이 없거나 누구랑 의논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 자신과 의논하면 돼."

"스스로랑요?"

"그래, 예를 들어 네가 학교 문제로 고민한다고 치자. 그런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가만히 말을 걸어 줘. '무슨 일 있어? 내가 들어 줄까?' 하고 말이야."

...."자신한테 말을 걸다니, 어떻게요?"

"글을 쓰는 거야...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거란다."                  p.50


문어도리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며, 말솜씨도 없다. 긴장하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삶은 문어'라고 불리고, 중학교에 올라온 뒤로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지금 문어도리에게는 이 시간이 영원이나 다름없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내리지 못하고 버스의 종점인 '바닷속 시민 공원'까지 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라게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땡땡이 치고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이 창피했던 문어도리에게 소라게 아저씨는 내일도 내일모레도 학교에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문어도리를 자신의 껍데기 안으로 초대해, 혼자를 즐기는 방법과 어른의 쓸쓸함에 대해 알려 준다.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으로 글쓰기를 제안하는 소라게 아저씨는,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거라고, '또 하나의 나'를 만날 때까지 딱 열흘만 일기를 써 보라고 제안한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좋아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 표현력을 늘리는 방법, 메모하는 습관과 자신만의 주제 발굴하기, 고민을 둘로 나눠 사고하기, 일인칭을 삼인칭으로 바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등 하나씩 글쓰기를 배워가며 문어도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글쓰기와 말하기의 차이점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생각하는 것과 사고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준다. 같은 경험도 생각나는 대로 글로 옮긴 것과 좀 더 정리해서, 사고하면서 쓴 글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사고를 해야 한다고, 사고하는 건 답을 찾으려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상황에 맞춰 각각 다른 얼굴로 살아가게 돼. 딱히 연기하는 건 아니고, 원래 그런 거야."

"벤치에 있던 어른들도요?"

"그래. 회사에 있는 나, 일로 만난 사람과 있는 나, 부모인 나, 남편인 나, 아내인 나. 여러 모습이 있어. 그렇게 살다가 가끔씩 이렇게 공원을 찾아. 사람들한테서 벗어나 혼자만의 장소에서 아무것도 아닌, 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자신을 되찾는 거지. 네가 이 공원에 온 것도 같은 이유 아니었을까?"               p.100


학창 시절에는 모두 글쓰기를 숙제로 먼저 접하게 된다. 일기도, 독서 감상문도 모두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은 글쓰기가 매우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작품 속 문어도리 역시 일기 정도는 써 본 적이 있지만, 하나도 재미없었고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먼저 한다. 매일 일기를 쓰느니 차라리 글짓기가 낫겠다고 말이다. 매일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일기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매일 똑같은 내용을 쓰게 된다는 문어도리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누구나 날마다 무슨 생각이든 하면서 살아간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자신한테 질문을 이거 가다 보면 사고가 점점 깊어지고, 일기에 날마다 다른 내용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글쓰기를 통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갖는 다는 것, 노트를 펼치면 나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학업에 시달리는 학생에게도, 일상이 지친 직장인들에게도 든든한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문어도리가 소라게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씩 글쓰기에 대해 배워가고, 그 중간 중간 문어도리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문어도리의 일기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따라서 읽어가는 과정도 매우 흥미로웠다. 바닷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화방식으로 진행되는 글이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삽화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페이스북,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빠르게 변해가는 SNS 세계가 너무도 익숙할 것이다. 유행만 빠르게 따라가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깊이 사고할 수 있는 경우가 없게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단단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외톨이였던 문어도리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히지만, 훌륭한 글쓰기 책이기도 하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고가 후미타케가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위로가 되어준다.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혼자가 될 용기'를 얻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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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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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외증조모에게 삭막한 시멘트 건물을 밀고 작은 온실을 짓자고 조르기도 했다. 하지만 외증조모는 늘 온화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별채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라는 아리송한 핑계를 대면서. "그곳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안에 누군가 살고 있는데 건물을 부술 수는 없지 않니?"

이 정도면 내가 별채에 가지는 공포심에 어느 정도의 설명이 됐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나에게 늘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p.17


우박이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치던 10월의 어느 새벽, 외증조모는 50년을 넘게 살아온 적산가옥의 별채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다.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었던 외증조모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새벽, 홀로 별채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의아했고, 꼭 소리를 들으려는 듯처럼 바닥에 한쪽 귀를 댄 자세였던 것도 기이했다. 이후로 적산가옥은 방치되었고, 운주는 10년 만에 그곳에 도착한다. 외증조모의 유언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지는 붉은 담장의 적산가옥과 비밀로 가득한 별채로 돌아온 운주는 그곳에서 수십 년을, 수 세대를 거슬러 존재할 망령과 조우한다. 가엽고 끔찍한 망령은 별채에 감춰진 비밀로 운주를 이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는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우리를 피와 비명이 깃든 그 집으로 데려간다. 


1930년대에 지어진 적산가옥의 첫 주인은 가네모토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무역상이었다. 그는 지주와 농민들에게 빼앗은 땅으로 곡식을 수출해 어마어마한 부를 이루었다. 그가 손을 대는 사업은 크든 작든 모두 성공했고, 발을 빼는 분야는 귀신같이 악재가 생기곤 했다. 덕분에 그에게 조언을 구하려는 풋내기 사업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했다. 간호사였던 외증조모는 그 집에 간호사로 들어가 살며, 몸이 허약해 집에만 있던 도련님을 보살피게 된다. 소년은 주의가 산만하고 성격이 포악해 몸에 상처를 자주 만들고, 작은 동물들을 해부해 바닥에 늘어놓고는 했다. 외증조모가 실제로 겪었던 과거의 경험들은 운주에게 현실의 악몽이 되어 돌아온다. 운주는 꿈 속에서 외증조모가 되어 적산가옥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을 지켜보게 되고, 소년의 유령은 현실에 나타나 백일몽의 나날을 보내게 만든다. 하지만 운주는 당장 짐을 싸서 저주받은 집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망상에 사로잡혀 별채로 계속 향하게 된다. 




유타카는 무척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런 뒤 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일은 없어. 나도 아머지도 곧 죽을 거거든."

소년이 내게 바짝 얼굴을 붙여 왔다. 손목을 붙잡고, 귓가에 짓궂은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나는 그때 그가 한 말을 얼마가 지나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죽일 거야."               p.95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인간이었던 흡혈인과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이 기계에 대항하는 사투를 보여주었던 정보라 작가의 <밤이 오면 우리는>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단요 작가의 <케이크 손>,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이희영 작가의 <페이스>였다. 이번 작품은 <스노볼 드라이브>, <만조를 기다리며>, <입속 지느러미> 등의 작품을 발표해 온 조예은 작가의 <적산가옥의 유령>이다. 언제나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서사를 보여주었던 작가이기에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호러라는 장르적 요소를 매우 섬세하게 풀어내며 조예은표 새로운 호러 소설을 만들어냈다. 


피처럼 붉은 벨벳 소파와 꾸불꾸불한 내장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잉어 한 마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본채와 차갑고 어두운 별채, 그리고 나무가 빽빽한 정원까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숨과 기억을 주고받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적산가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끊임없이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작품이었다. "오직 호러만이 죽은 자가 죽은 입으로 자신의 소리를 낸다."고 말하는 조예은 작가는 요즘 같은 계절에 읽기 딱 좋은, 정말 무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유독 길고 덥다는 이번 여름을 함께 하기에 너무 좋은 작품이다. 죽은 자들이 가지는 그 지독함과 애달픔으로 빚어낸,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서늘하지만 온기를 품고 있는 이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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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비극 - 그리스 극장의 위대한 이야기와 인물들
다니엘레 아리스타르코 지음, 사라 노트 그림, 김희정 옮김 / 북스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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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찾던 범인이었다. 수사관과 범인이 동일 인물이었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하인은 왕좌에 오른 나를 보고서 두려운 마음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왕을 살해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국왕 살해는 내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가 아니었다. 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모든 일은 내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벌어졌다.              - 소포클레스, '오디이푸스왕' 중에서, p.82


사랑하는 두 사람 앞에 죽음의 신이 나타나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상태를 설득해서 대신 죽게 만들 수 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두 사람 중에 사랑하는 감정이 죽음에의 두려움보다 앞서 선뜻 내가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그런 마음을 받아들여 나 대신 죽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에우리피데스의 초기 비극인 <알케스티스>의 내용이다. 주인공인 아드메토스 대신 아내인 알케스티스가 남편 대신 죽겠다고 자처했고, 남편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살아 남는다. 알케스티스는 죽어서 저승으로 떠나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찾아내 다시 이승으로 데려온다. 죽음에서 되살아나 소생한 알케스티스는 다시 돌아온 삶이 행복할지 실망스러울 지 알 수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만으로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낀다. 




기원전 5세기에 찬란히 꽃피었던 그리스 비극은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공연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유명한 사람은 아이스킬로,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들의 작품은 33편에 불과하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고뇌와 성찰,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탐구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 책에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 8편과 사티로스극(익살극) 1편, 그리고 고대 희극 작가 중 유일하게 완전한 작품이 전해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원전을 간추려 수록했고, 주인공들을 삽화로 그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그리스 비극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비극은 사랑하는 남편 아드메토스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 소리를 포기한 젊은 여인 알케스티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신비롭고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어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그 감정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서 아무도 진실을 의심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줄 수 있을까?                -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중에서,  p.149~151


세상의 끝, 마지막 경계 아래에 심연으로 떨어지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다. 허공을 향해 솟아 있는 바위 꼭대기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 제우스의 뜻에 굴복할 생각도, 잘못을 빌거나 충성을 맹세할 마음도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 왕은 나라에 전염병이 퍼지고, 사람들이 죽어 이승의 집이 비어 가고 저승은 흐느낌과 비탄으로 가득 차니 그것이 어떤 범죄에 대한 형벌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신이 무슨 이유에서 징벌을 내리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찾아내려던 범인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바로 자신이었으니,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그리스 최고 극작가들이 선사하는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전쟁과 죽음, 사랑과 배신, 살인과 희생 등 인간사의 온갖 감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기에 피 맺힌 복수극과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 등 자극적이고도 웅장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프로메테우스, 헤르메스, 제우스, 오이디푸스, 헤라클레스, 안티고네 등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그리스 비극을 실제로 읽거나 본적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원전 자체는 워낙 분량이 방대해 선뜻 읽어 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분량 자체는 압축했지만 원작의 대사와 표현을 고스란히 살려서 특유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해 좋았다. 게다가 그리스 비극은 여전히 각종 문학 및 영상 작품의 원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책 한 권으로 그 원형을 만나볼 수 있으니 너무 실용적이고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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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풍쌤의 과학 풍딱지 1 전기 : 의문의 친구, 일렉풍 - 초등 과학사냥 학습만화 장풍쌤의 과학 풍딱지 1
양선모 그림, 강주현 글, 장성규(장풍) 감수 / 메가스터디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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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스터디, 엠베스트의 대표 과학 강사 장풍 선생님의 첫 학습 만화가 나왔다. 20년간 교육 현장에서 중등 과학과 고등 과학을 가르쳐 온 노하우를 정말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 아이들이 놀이처럼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장풍쌤이 수업을 할 때 날리는 시그니처, '풍딱지'로 과학에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고 모험을 떠나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테마는 '전기'이다. 




자, 시리즈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장풍쌤의 풍마니(장풍 마니아)들이다. 딱지 대장이지만 과학 무식자인 정상, 호기심 넘치는 과학 탐험가 나연, 음식 앞에서 용감해지는 별, 이렇게 세 명의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을 주축으로 정상의 동생인 1학년 하이, 나연의 이모이자 책방을 운영하는 단비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어느 날 정상이는 바닥에 떨어진 오각형의 딱지를 발견하고, 딱지 대장답게 바닥에 멋지게 내려친다. 소리 마저 굉장했는데, 그 후로 '풍'이라고 하는 의문의 생명체가 나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풍은 게임기 배터리를 먹어 화면이 안 나오게 만들고, 온 동네에 정전이 되게 만들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과연 풍의 정체는 무엇일까. 




풍이를 따라간 하이를 찾기 위해 정상이와 친구들은 장풍쌤과 함께 뒤를 쫓기 시작한다. 풍이 전기를 흡수하고 점점 몸집이 커지면서, 풍이 지나간 주변이 모두 정전이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풍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세계의 민간 설화나 전설에 대해 연구해온 단비 덕분인데, 풍에 관련된 전설을 책에서 읽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 그 정체가 풍별에서 온 일렉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상이가 딱지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일렉풍을 풍별과 연결하는 스퀴스였고, 다시 일렉풍을 그곳으로 보내는 것도 그 스퀴스로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몸집이 엄청나게 커진 일렉풍을 어떻게 풍별로 보내느냐인데, 급기야 마을에 화재가 일어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 과연 이들은 무사히 풍을 있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초, 중등 교과 연계된 스토리를 따라 가면서 자연스럽게 기초 과학의 원리와 개념을 배울 수 있는 학습 동화로서 <장풍쌤의 과학 풍딱지>가 유일무이하게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다른 학습만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풍쌤만의 생생한 강의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QR 코드만 찍으면 학습 만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장풍쌤의 강의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 선행 강의를 비롯해, 5개의 장마다 각각 강의를 제공하고 있어 주요 개념들을 익힐 수 있다. 메가스터디 과학 강사 장풍쌤의 명성을 책만 구입하면 무료로 만나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그 외에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추가적인 과학 정보나 실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정리한 ‘너만바 과학 노트’, 본문 속 과학 내용을 다시 한 번 복습할 수 있는 ‘속전속결 QUIZ’ 등 다양한 코너에서 어린이들이 과학을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특별 부록으로 '스폐셜 딱지'를 제공하고 있어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 딱지와 1권에 등장한 풍 캐릭터의 성격과 능력치가 새겨진 풍딱지까지 만날 수 있으니,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생활과 아주 밀접하고 친근한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풍쌤의 초등과학 학습만화! 지금 바로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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