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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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그 여덟 번째 이야기이다. 특히나 이 작품은 넬레 노이하우스가 시한부 선고를 이겨내고 2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게다가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두 권으로 출간되는 만큼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며, 이야기 역시 가장 큰 스케일과 재미를 주고 있다.

보덴슈타인은 실망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 세상이 거짓말과 허위로 가득했다. 전에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정말 지쳤다. 집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 뒤로 헤롤트 부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일상과 비극의 틈새는 얼마나 좁은지! 만일 그의 예감이 적중해서 불탄 시신이 클라우스 헤롤트로 밝혀진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듯했다. 거기다 그의 아내가 받을 배신감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지난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일상의 기억 위에 거짓의 그림자가 여생 동안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숲들로 둘러싸인 타우누스 언덕에 위치한 루퍼츠하인 마을, 인근의 숲속 캠핑장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한다. 불탄 캠핑카 안에서 불타버린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그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시한부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할머니가 살해 당하고, 그녀를 최근에 만났던 마을의 신부까지 살해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건은 42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보덴슈타인의 과거와 연결되고,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사실 보덴슈타인은 연말쯤 1년간 휴직을 할 생각이었다. 정의를 믿고, 규칙과 가치를 믿고, 선과 악을 믿었던 그였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신물이 나 엄청난 무력감이 경찰직에 대한 거북함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덴슈타인과 함께 수사를 해왔던 피아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하며 갑자기 혼자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이번이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사건이자, 진한 동료애의 마지막 합작품이 될 거라는 생각에 울고 싶은 심정 마저 들었던 그녀는, 사건의 방향이 보덴슈타인의 과거로 향하자 점점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사건 관련 인물들은 전부 그와 아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각자를 둘러싼 소문이나 비밀까지 알고 있는 사이였기에, 객관적으로 사건 맥락을 꿰뚫어보기도 어려워 보였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그들에게 점점 휘둘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언가 나쁜 기운이 거미줄처럼 마을 위에 펼쳐진 듯했다. 모든 비극이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온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불신과 불안이 독처럼 스며들었다. 소문이 돌고 추측이 난무했다. 살인자가 이방인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곧 그들 중 하나,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이 마을은 폭발 직전의 적대적인 분위기로 확 바뀌었다. 작은 불꽃 하나만 있어도 금방 폭발해버릴 듯했다.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덴슈타인은 세월이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불쾌한 상황들을 연이어 떠올리게 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거다. 선천적으로 외톨이였던 그는 패거리 안에서 편한 적이 없었고, 그들 중 몇몇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집단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소심한 시도는 늘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고, 겨우 그런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5학년 때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시리즈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과거가 전면적으로 드러난 이번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더욱 비밀스럽고,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아과 보덴슈타인이 사건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42년 전의 과거가 점점 수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보덴슈타인의 나이가 쉰넷이니까, 당시는 열한 살, 아니 거의 열두 살이 다 돼 갈 즈음이었을 거다. 현재 사건의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는 실종된 소년은 그와 아는 사이였던 정도가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였다.

보덴슈타인은 형사 생활을 해나갈수록 초창기에 품었던 이상주의를 조금씩 잃어갔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세상에 더 많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젠 그 믿음조차 흔들리고 있다. 정말 좋은 사람이 더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 단지 자신과 자신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은 것을 기뻐할 뿐,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뭔가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무언의 침묵과 마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공포 앞에서 그들이 연쇄 살인을 멈추기 위해선, 42년 전 그날 숲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밝혀내야만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그들 각각이 어떻게든 관계를 가지고 있어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연결되는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에 대해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보덴슈타인이라는 인물의 숨겨두었던 내면에 접근하는 이야기라 타우누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흥미진진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자고로 미스터리는 두꺼워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기에, 두툼한 두 권짜리 분량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진실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로 보이는 것조차 빈틈이 있을 경우, 또는 맥락을 도외시할 경우 전체 그림을 왜곡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전체 그림을 봐야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덴슈타인은 절대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없다는 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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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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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작가라는 설정은 언제나 흥미롭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처럼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쓴 글대로 타인의 운명을 바뀐다면?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유령작가들의 치열한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미은 씨. 잘 들어요. 내가 하나만 얘기할게요."

"......... 말씀하세요."

"사람이 너무 착하면 좋은 소설가 되기 힘들어요. 소설이란 게 뭐예요? 이야기란 게 뭐예요? 다 주인공에게 일이 터지고 문제가 생기고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고, 그걸 해결하고 그러는 게 이야기의 본질이잖아요."

.............."핵심은, 이야기란 결국 주인공에게 문제가 일어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데, 작가가 너무 착하면 주인공에게 문제를 만들어내기가 무지무지 어렵거든요. 그죠?"

 

시영은 정식으로 데뷔한 소설가이다. 하지만 현재는 남의 작품 대신 써주기, 자서전 집필 등 자신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글쓰기로 겨우 먹고 사는 중이다. 그는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인스턴트 식품보다 못한 음식을 만드는 가짜 요리사. 군대처럼 까라면 까고, 회사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하청업자, 그러니 자신은 그저 가짜라고 말이다. 회사 대표의 이름으로 나온, 시영이 쓴 작품은 현재 인기 웹소설 플랫폼에서 조회수 2회를 기록하며 화제지만, 그건 그의 작품이 아니다. 마감 조금 늦었다고 고료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고스트라이터 신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소설을 쓰고 싶지만, 당장은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돈으로 시간을 벌고, 번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데, 돈을 벌려고 유령작가 짓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작품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을 찾아온다. 2년전 마약 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오른 뒤 몰락한 배우 차유나였다. 그녀는 시영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감독과의 미팅 내용을 상상해서 소설로 써달라고. 감독이 그녀를 자기 작품에 출연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내용으로 그녀의 미래를 그려달라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그 글을 읽고 나면, 그대로 이루어 질거라고 말한다. 그는 이게 무슨 황당한 이야긴가 싶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고 고료를 선입금해준다는 소리에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그렇게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고 차유나에 대한 동영상들을 찾아본 뒤, 그녀의 미래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얼마 뒤 차유나는 정말 그가 쓴 대로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그는 거액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정작 자신의 두 번째 소설은 전혀 써지질 않는다.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오진수라는 인물은 그에게 말한다. "고스트로 사는 동안 넌, 너 자신의 글을 쓸 수 없어" 라고. 시영은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고스트라이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미래를 써줄 자신의 고스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그의 능력을 눈치 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손 강태한에게 납치되고 만다.

대한민국 소설가 중에 총구를 마주했던 사람이 있을까? 총 맞을 뻔한 적이 누가 있을까?

어제는 내게 총구를 겨눈 놈에게 달려들었고, 몇 대 맞긴 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래, 살아남았으면 살아남은 것에 대해 쓰면 된다. 작가에게 특별한 경험이란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써라.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써라.

나는 썼다.

잠을 깨우던 인쇄 거리의 기계 소리와 오토바이 시동 소리는 이제 내게 노동요가 되었다.

 

당신은 내가 쓰는 대로 살게 된다는 플롯이 미스터리의 시작이지만, 그 속에 작가로서 창작자의 고통도 들어가 있고,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권력욕 속에 현실 비판적인 배경도 녹아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흘러간다. 카카오페이지 선연재 때도 엄청난 화제였던 걸로 아는데, 출간되고 나서는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유명인의 뒤에서 그 사람의 이름으로 자서전이나 연설문 등을 대신 써주는 유령 작가라는 소재는 기존에 영화나 소설 등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소설을 써서 타인의 운명을 설계하는 유령작가라는 소재는 기존에 없었기에 이 작품의 시작점은 매우 기발하고, 흥미롭다. 고스르라이팅의 조건은 대상에 애정이나 분노를 가지고 써나간다면, 이다. 그 말인즉, 고스트라이터가 쓰는 글로 인해 누군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분노의 감정으로 누군가를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의 진짜 갈등과 클라이막스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스토리가 매우 군더더기없이 그려지고 있고, 단순하면서도 드라마틱해서 바로 영상화시켜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체 10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장마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들의 명언들로 오프닝을 열고 있어 '작가'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 글 쓰는 사람이다. 글쓰기를 계획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책을 요약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것도 글쓰기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도 모두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E. L. 독터로

극중 오진수가 이야기에 대해 정의를 하는 대목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고로 스토리는 재밌어도 안 되고 웃겨도 안 된다고. 무조건 궁금해야 된다고. 자고로 뭐든 이야기는 궁금해야 하는 거라고. 사람들이 안 보면 되는데도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대로 이야기는 궁금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궁금함이 최우선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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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4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너무 착하면 책에 좋은 소리만 합니다. 책에도 문제가 있는데, 독자가 너무 착하면 그런 생각을 밝히기가 어려워합니다.

피오나 2017-04-24 21:16   좋아요 1 | URL
ㅋㅋㅋ 맞습니다. 너무 불만만 늘어놔도 문제겠지만, 반대로 좋은 말만 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니까요
 
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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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런 악의 없이, 너무도 사소하고 평범하게, 모든 드라마의 전형적인 시작처럼. 처음에는 다들 주목하지 않았지만 일찍이 수상한 조짐들이 있었다. 물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비밀도 마찬가지이고. 이 작품은 작은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삶에 대해 묻는다. 과연 당신의 삶은 어떠했냐고.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일이 있어요. 반장님도 아시다시피 저 역시 자신감을 잃고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살아왔어요. 나는 왜 이리 외로울까? 나는 왜 사람들과 쉽게 교감하지 못할까? 나는 왜 내 자신을 믿지 못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자신에게 묻곤 했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아마도 해답이 내가 결코 찾아낼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우린 자주 자신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늘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결국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고 봐요.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이죠."

퇴직형사 리처드 린빌은 어느 날 한밤중에 유리창이 깨지는 듯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에 신고했어야 마땅한 상황이었지만, 강력계 수사 반장을 지낸 체면 때문에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41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는 3년 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그 역시 다음 달이면 일흔 살이 되는 고령이지만 금연과 절주를 지속해 아직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 게다가 항상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아직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고, 위험한 사태에 대비해 권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침입자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고, 3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은 진척이 없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이 된 케이트가 런던경찰국에 긴 휴가를 내고 스캘비로 내려와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시킨다. 그녀와 아버지 사이가 워낙 각별했기에 아직 그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는 조나스 크레인은 아내와 수 년 동안 인공수정을 여덟 번쯤 시도했으나 포기하고 현재는 아이를 입양해서 살고 있다. 하지만 클리닉에 다니느라 빌린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고, 집을 살 때 빌린 융자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다, 아이를 위해 아내도 일을 그만둔 상태라 경제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파국이 임박한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다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받고 의사의 권유로 가족들과 일주일간의 휴가를 떠나기로 한다. 동료로부터 완전히 외따로 떨어진 지역에 있는 농장을 빌려 잠시나마 세상과 절연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노트북컴퓨터와 휴대폰도 놔두고, 그야말로 아무와도 연락할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여행 직전 지난 5년간 한번도 연락 없었던 아들 새미의 생모인 테리가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며, 남자친구인 닐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농장에 가서도 그들이 느닷없이 농장에 나타날까봐 신경이 곤두서있던 조나스의 예감은.. 그대로 실현되고 만다.

"설령 물었더라도 진실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반장님은 제인이 보여주고 싶어 했던 모습만 본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케이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샤를로테 링크의 소설은 거의 모든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이야기들은 매범 범죄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건과 수사라는 플롯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속에 관계된 여러 인물들의 삶과 심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아버지를 신에 버금갈 만큼 완벽한 인격체라고 믿고 살아 왔던 딸의 철석같은 믿음에 균열이 가고, 죽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하고, 한 남자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여인도 등장한다. 탁월한 상황 판단력과 뛰어난 직감과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형사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동료들로부터 언제나 배척당해야 했던 케이트는 알코올중독과 싸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를 극복한 케일럽 반장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는 케이트를 동료 경찰의 딸 그 이상은 아니었다.

리처드 린빌의 사건을 수사하는 케일럽 형사와 케이트의 독자적인 수사, 그리고 휴가를 떠난 조나스가 겪게 되는 입양한 아들의 생모와 그녀의 남자친구에 의해 겪게 되는 상황이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처럼 흘러가다 어느 순간 교집합을 이루면서 증폭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실수, 하지만 두려움에 시작된 작은 거짓말, 가족에 대한 애정에 기인한 복수... 사실 따지고 보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 아니었기에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로 명백하게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법한 인간적인 동기들이니 말이다. 비록 그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 그것이 결국 몇 사람을 죽이고, 몇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하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되지만.. 사실 그것은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평범하고, 그보다 더 부족하고 허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사소한 이기심으로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다름 아닌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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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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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옴진리교 사건 이후 20.. 극단적 종교 단체 '교단 X'를 통해 절대 악을 그려내는 또 다른 픽션이 등장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피해자들의 일상을 통해서 서서히 지옥에 접근했다면..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악의 심연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그리고 종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단 안은 픽션 같았다. 과도하게 집중해서 모아진 정신의 집합이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처럼. 컬트 종교의 내부는 대개 픽션과 비슷할지 모른다. 나라자키가 고등학생쯤이었을 것이다. 여러 대의 지하철 차량에서 독가스 사린이 동시에 뿌려지는 경악할 만한 테러리즘이 일어났다. 범인은 컬트 종교 집단이었다. 숨어 있던 픽션이 일상 속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돌발적인 픽션 앞에 일상은 무력했다. 그리고 언제나 눅눅하고 흐리멍덩하다. 일상은 픽션을 해체하고, 사형을 선고하고, 모든 걸 평균으로 돌려놓는다.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그리고 또다시 대비할 것이다. 다음 픽션을 말이다.

나라자키는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고바야시에게 행방불명 된 연인을 찾아 달라고 한다. 자살을 예고하고 갑자기 사라진 여자, 다치바나 료코. 고바야시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이름 없는 종교 단체와 더불어 뭔가 기묘한 부분들을 느꼈고, 이상한 예감이 드니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그 여자한테는 뭔가 있다고. 거기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를 걱정하는 고바야시에게 나라자키는 이런 말을 던진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지?"

나라자키는 고바야시한테서 받은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다치바나 료코가 소속되어 있다는 종교 단체를 직접 방문한다. 주위에서는 종교 단체로 보고 있지만 사실 정식 단체 이름도 없고, 종교 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도 않으며, 신자라는 개념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이 그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수상한 종교 단체의 내부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게 된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옴진리교 처럼 극단적 종교 단체인 교단 X가 계획하고 있는 사상 최대의 테러리즘에 대해 알게 된다.

그의 말을 들으며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빈곤 박멸을 원하는 젊고 선량한 몽상가. 하지만 그것을 꿈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다. 사람이 죽어간다. 굶어서 죽고, 대국들에게 조종당해 총탄을 맞고 죽어간다. 그것을 멈추게 하려는 노력이 꿈같은 이야기가 돼버린 세상.

그는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이야기를 창조하는 걸 그만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창조하기로 했어.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어. 내가 노리는 건 근원적인 뿌리야. 세상을 바꾸겠어."

<쓰리>, <왕국>, <미궁>의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신작은 오랜만이었다. 그가 데뷔 10년을 앞두고 발표한 그의 열한 번째 작품 <미궁> 이후로 거의 삼 년여 만에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기존의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숨겨진 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교단 X'의 신자들이 오로지 성적 탐닉으로만 비참한 자신의 존재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야기는 극도로 적나라하고, 선의의 기쁨도, 동정의 가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고통의 비명 속에서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교주 사와타리가 신을 원망하며 모든 것이 파멸하기를 바라 그만큼 우울하고 묵직하기도 하다. 인간의 결함을 파고들어 그 영혼마저 지배하는 절대악. 그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그 바닥을 살펴보는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글은 어느 순간 선과 악의 경계선을 지우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지금 시대에 국가는 추상적인 의미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이용하기 위해서 국가 개념을 사용할 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만나왔던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추리 소설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져주어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두께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만, 언제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느껴지는 여운이 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뭐랄까, 나카무라 후미노리 소설 인생의 종합판이라고나할까. 그 동안 그가 고민해온 악과 운명에 대한 탐구가 그 끝에 이른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는 일본의 정치 상황을 교단 X에 투영시켜 동시대를 뒤흔드는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도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자의 선이나,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선.. 그것들이 얽히고 무수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비극을 저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관객으로, 그저 그 현상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짜 비극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나라의 어딘 가에서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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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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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굿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의 질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이 생각을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해보자. 문제는 의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의식과 지식의 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주체가 갖는 완성도의 질-역대 가장문제적인 기준-에 대해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실제로 미치지 않은, 이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기껐해 봐야 조금 나은 혹은 잠재적인 미치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부정확한 얘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문학 장르로서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범위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게 없다. 그런 작품을 접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내가 조르주 바타유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는 아마 다들 짐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르주 바타유의 그 짧은 이야기를 차마 버티지 못하고, 뒷부분에 실린 수전 손택의 해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과 김태용 작가의 해제 '부위의 책'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는 이 책은 '여타의 해설 없이, 그리고 자신의 글도 읽기 전에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글을 체험'하라는 말은 굉장히 어불성설 같지만, 이상하게도 바타유의 글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더 적합하게 느껴지긴 한다.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하는' 글이라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열여섯 살이 된 소년이 시몬이라는 또래의 소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먼 친척 간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서로 알게 되고 사흘 후, 소년과 소녀가 별장에 단둘이 남게 되면서부터 서로에게 탐닉하게 시작하게 된다. 사춘기의 소년에게 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들의 행각은 어찌 보면 '더럽다'고 느껴질 만큼의 수위라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르가슴, 성욕, 성교, 수음, 음경, 엉덩이, 정액 등등... 나는 이렇게나 과도하게 성에 대한 것들을 묘사한 글을 본 적이 본 적이 없다.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기벽을 갖고 있는 시몬, 마치 이성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소년, 그들의 외설적인 모습들은 그렇게 백여 페이지 이상 이어진다.

 

이 작품은 문학, 미술, 철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전방위적 영역에서 파란만장한 지적 자취를 남기며 프랑스 68혁명 이후 현대 지성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조르주 바타유의 첫 문학적 시도이자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에로티슴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뚜렷한 결심 없이, 특히 자신이 개인적으로 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을 잠시만이라도 잊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상상에 의해 꾸며진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매우 음란한', 즉 엄청나게 파렴치한 근원적인 이미지, 폭발이나 착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그것을 견뎌낼 수 없는 의식이 그 위에 무한히 미끄러지는 바로 그런 이미지가 일치하는 정신의 어떤 심오한 지점에서,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내가 여기에 몇 자를 더 끄적인다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을 온전하게 '체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에로티슴의 거장이라 불리는 조르주 바타유의 자전적 첫 소설을 만났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수전 손택의 날카롭고도 통찰력 있는 글이 거의 바타유의 소설만큼의 비중으로 실려 있기에 그 글을 통해서 이 작품을 느껴보기로 한다. 아마도 수전 손택의 글과 김태용 작가의 글이 없었더라면,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은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조르주 바타유, 그가 이 작품 이후 칠 년 후에 탈고한 장편소설<하늘의 푸른빛>은 또 어떤 충격을 안겨줄 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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