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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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굿맨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는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의 질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이 생각을 훨씬 더 멀리까지 확장해보자. 문제는 의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의식과 지식의 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주체가 갖는 완성도의 질-역대 가장문제적인 기준-에 대해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실제로 미치지 않은, 이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기껐해 봐야 조금 나은 혹은 잠재적인 미치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부정확한 얘기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문학 장르로서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범위에 대해, 나는 전혀 아는 게 없다. 그런 작품을 접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내가 조르주 바타유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는 아마 다들 짐작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르주 바타유의 그 짧은 이야기를 차마 버티지 못하고, 뒷부분에 실린 수전 손택의 해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과 김태용 작가의 해제 '부위의 책'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는 이 책은 '여타의 해설 없이, 그리고 자신의 글도 읽기 전에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글을 체험'하라는 말은 굉장히 어불성설 같지만, 이상하게도 바타유의 글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더 적합하게 느껴지긴 한다. '머리를 비우고 체험해야 하는' 글이라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열여섯 살이 된 소년이 시몬이라는 또래의 소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먼 친척 간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서로 알게 되고 사흘 후, 소년과 소녀가 별장에 단둘이 남게 되면서부터 서로에게 탐닉하게 시작하게 된다. 사춘기의 소년에게 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들의 행각은 어찌 보면 '더럽다'고 느껴질 만큼의 수위라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르가슴, 성욕, 성교, 수음, 음경, 엉덩이, 정액 등등... 나는 이렇게나 과도하게 성에 대한 것들을 묘사한 글을 본 적이 본 적이 없다.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기벽을 갖고 있는 시몬, 마치 이성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소년, 그들의 외설적인 모습들은 그렇게 백여 페이지 이상 이어진다.

 

이 작품은 문학, 미술, 철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전방위적 영역에서 파란만장한 지적 자취를 남기며 프랑스 68혁명 이후 현대 지성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조르주 바타유의 첫 문학적 시도이자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에로티슴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뚜렷한 결심 없이, 특히 자신이 개인적으로 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을 잠시만이라도 잊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상상에 의해 꾸며진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매우 음란한', 즉 엄청나게 파렴치한 근원적인 이미지, 폭발이나 착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그것을 견뎌낼 수 없는 의식이 그 위에 무한히 미끄러지는 바로 그런 이미지가 일치하는 정신의 어떤 심오한 지점에서,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사실, 내가 여기에 몇 자를 더 끄적인다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을 온전하게 '체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에로티슴의 거장이라 불리는 조르주 바타유의 자전적 첫 소설을 만났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수전 손택의 날카롭고도 통찰력 있는 글이 거의 바타유의 소설만큼의 비중으로 실려 있기에 그 글을 통해서 이 작품을 느껴보기로 한다. 아마도 수전 손택의 글과 김태용 작가의 글이 없었더라면,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은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 조르주 바타유, 그가 이 작품 이후 칠 년 후에 탈고한 장편소설<하늘의 푸른빛>은 또 어떤 충격을 안겨줄 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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