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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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옴진리교 사건 이후 20.. 극단적 종교 단체 '교단 X'를 통해 절대 악을 그려내는 또 다른 픽션이 등장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피해자들의 일상을 통해서 서서히 지옥에 접근했다면..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악의 심연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그리고 종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단 안은 픽션 같았다. 과도하게 집중해서 모아진 정신의 집합이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처럼. 컬트 종교의 내부는 대개 픽션과 비슷할지 모른다. 나라자키가 고등학생쯤이었을 것이다. 여러 대의 지하철 차량에서 독가스 사린이 동시에 뿌려지는 경악할 만한 테러리즘이 일어났다. 범인은 컬트 종교 집단이었다. 숨어 있던 픽션이 일상 속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돌발적인 픽션 앞에 일상은 무력했다. 그리고 언제나 눅눅하고 흐리멍덩하다. 일상은 픽션을 해체하고, 사형을 선고하고, 모든 걸 평균으로 돌려놓는다.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그리고 또다시 대비할 것이다. 다음 픽션을 말이다.

나라자키는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는 고바야시에게 행방불명 된 연인을 찾아 달라고 한다. 자살을 예고하고 갑자기 사라진 여자, 다치바나 료코. 고바야시에 의하면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고.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이름 없는 종교 단체와 더불어 뭔가 기묘한 부분들을 느꼈고, 이상한 예감이 드니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그 여자한테는 뭔가 있다고. 거기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를 걱정하는 고바야시에게 나라자키는 이런 말을 던진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지?"

나라자키는 고바야시한테서 받은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다치바나 료코가 소속되어 있다는 종교 단체를 직접 방문한다. 주위에서는 종교 단체로 보고 있지만 사실 정식 단체 이름도 없고, 종교 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도 않으며, 신자라는 개념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이 그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그렇게 수상한 종교 단체의 내부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게 된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옴진리교 처럼 극단적 종교 단체인 교단 X가 계획하고 있는 사상 최대의 테러리즘에 대해 알게 된다.

그의 말을 들으며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빈곤 박멸을 원하는 젊고 선량한 몽상가. 하지만 그것을 꿈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든 적도 있었다. 사람이 죽어간다. 굶어서 죽고, 대국들에게 조종당해 총탄을 맞고 죽어간다. 그것을 멈추게 하려는 노력이 꿈같은 이야기가 돼버린 세상.

그는 원래 작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이야기를 창조하는 걸 그만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창조하기로 했어.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어. 내가 노리는 건 근원적인 뿌리야. 세상을 바꾸겠어."

<쓰리>, <왕국>, <미궁>의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신작은 오랜만이었다. 그가 데뷔 10년을 앞두고 발표한 그의 열한 번째 작품 <미궁> 이후로 거의 삼 년여 만에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는 기존의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숨겨진 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교단 X'의 신자들이 오로지 성적 탐닉으로만 비참한 자신의 존재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야기는 극도로 적나라하고, 선의의 기쁨도, 동정의 가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고통의 비명 속에서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교주 사와타리가 신을 원망하며 모든 것이 파멸하기를 바라 그만큼 우울하고 묵직하기도 하다. 인간의 결함을 파고들어 그 영혼마저 지배하는 절대악. 그 속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그 바닥을 살펴보는 나카무라 후리노리의 글은 어느 순간 선과 악의 경계선을 지우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지금 시대에 국가는 추상적인 의미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이용하기 위해서 국가 개념을 사용할 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만나왔던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추리 소설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철학적인 메세지를 던져주어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두께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지만, 언제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느껴지는 여운이 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뭐랄까, 나카무라 후미노리 소설 인생의 종합판이라고나할까. 그 동안 그가 고민해온 악과 운명에 대한 탐구가 그 끝에 이른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는 일본의 정치 상황을 교단 X에 투영시켜 동시대를 뒤흔드는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도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자의 선이나,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인간의 선.. 그것들이 얽히고 무수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비극을 저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관객으로, 그저 그 현상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짜 비극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나라의 어딘 가에서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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