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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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다시 창을 연다. 콧속 얼얼하게 만드는 찬 기운. 그래 이거였다. 나는 성탄절 전후의 공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냄새이기도 하고 기분이기도 했다. 잔뜩 웅크린 사람들에게 일말의 기대, 그래도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인 기대를 갖게 만드는 그즈음의 공기는 반짝반짝한 것. 그리하여 느리게 와 서둘러 사라지는 겨울 한낮도 움직일 줄 모르는 시커먼 겨울치 한밤도 흥겨움과 정겨움으로 가득 채웠다. 만져질 듯 선하다.                p.29


유희경 시인의 필사 에세이 <천천히 와> 그리고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함께 출간되어 '고요한 밤의 필사단'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올해 만났던 책 중에서 만듦새가 가장 예쁜 책이다. 사철제본에 표지를 아주 두툼하게 만들고 창문을 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미지와 내지 곳곳에 수록된 일러스트도 감각적이고, 종이를 묶은 실컬러까지 색상을 맞춰 얼마나 마음을 담아 만들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은 시인이 직접 써 내려간 에세이 25편과, 시인의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는 필사 공간을 더했다. 읽고, 쓰고, 그 속에서 사유하고 머무르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아주 특별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인이 직접 고른 필사용 문장들과 시인의 어머니가 직접 쓴 손글씨가 더해져 더욱 분위기있는 책이 되었다. 필사용 글들만 모아놓은 필사집과는 달리 책을 읽다가 멈춰 문장을 따라 쓰고, 곱씹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에 단순한 따라 쓰기가 아닌 정서적 필사의 경험을 만들어 준다. 




4시부터는 도리 없이 월요일에 가까운 일요일이다. 적어도 오늘 기분은 그렇다. 이때의 낙담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독서를 계획해두었다. 어젯밤까지 절반쯤 읽은 책을 오늘 마저 읽을 계획이다. 근사한 계획이다. 나는 읽는 기쁨보다, 읽고 있다는 기쁨을 더욱 만끽하면서 드물게 충만한 기분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가득 채울 수 있는 요일은 일요일뿐이다. 일요일은 그 태생처럼, 보완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일요일에는 신도 잠든다. 5시가 되면, 나는 월요일을 준비한다. 스스로에게 체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p.227~228


유희경 시인은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을 9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의 서점은 다른 가게 2층에 세들어 있기 때문에 문이 없다. 문이 없다 보니 도처가 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는 여는 문이고 안녕히 계세요 하는 것은 닫는 문이라고.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는 맞음과 배웅 또한 문이다. 문앞에 서서 정중하게 노크를 하면, 안에서 기척이 들린다. 밖이 안이 되고 안은 밖을 의식하는, 마음이 두근거리는 그런 게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에는 서점을 운영하는 일상에 대한 글도 수록되어 있어 더 흥미롭게 읽었다. 이상한 것은 분면 산문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들이 시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단어와 문장이, 사유와 은유가, 그리고 행간의 여백들이 모두 시같은 산문집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왜 이 책을 일반적인 산문집이 아니라 필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었는지 알 것도 같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끄적여 보고 싶다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은 각별한 우정을 나누어온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친구의 말’을 덧붙이며 한 권의 책이 다른 한 권에게 마음을 건네는 구조로 만들어져 더욱 특별하다. 


일반적인 필사집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했던 경험이 있거나, 책을 읽을 때 여백에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쓰면서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인생의 좋은 날을, 이제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기다려 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마음을 쓰는 일이고, 천천히, 느리게, 다가오는 것을 믿어야 하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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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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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동 관찰이라는 취미의 핵심이 바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물론 파동관찰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파도를 바라보는 것에서도 충분히 낙을 찾을 수 있다. 최고의 명상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의 파동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다. 세상의 파동스러운 성질은 워낙 미묘한지라 많은 사람이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가지만, 워낙 근본적이기에 일단 알아차리고 나면 어디에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p.119


<날마다 구름 한 점>,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로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를 안내해주었던 구름감상협회 회장 개빈 프레터피니가 이번에는 파도관찰자가 되어 돌아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어느 날, 대서양의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물의 움직임으로 시선이 따라갔다고 한다. 합쳐졌다 갈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물의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보다 의문이 생긴 것이다. 파도는 왜 생기지? 어디서 오는 거야? 왜 저렇게 물을 튀겨? 그렇게 구름 관찰은 자연스럽게 파도 관찰로 이어졌다. 수평선 위의 바다와 수평선 아래의 바다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파도에 대해 탐구하던 그는 파도의 정체가 파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 속 파동에 대해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심장 박동과 뇌파와 같은 몸속의 파동부터 우리 귀에 들리는 각종 소리를 전달하는 음향파, 전자기파와 마이크로파 등 정보화 시대의 기반이 되는 파동과 경기장의 파도타기와 꼬리를 무는 교통체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파동에 대해 집요하게 연구한다. 작은 과학적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우리의 삶과 세상 전체를 살펴보는 놀라운 모험이 된 것이다. 그는 파동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수많은 현장을 찾고, 전문가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리고 문학작품과 악기, 과학 이론 등 세기를 넘나들고 장르를 불문해 파동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책의 후반부에는 ‘파도관찰자를 위한 A-Z 가이드’도 추가했으니, 그야말로 파도와 파동에 관한 백과사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파도타기 응원은 매질을 통한 에너지의 이동이 아니라, 매질이 에너지를 사용해 어떤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현상이므로 '진짜' 파동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는 파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진정한 파동으로 칠 이유가 충분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식으로 유쾌하고, 위트있게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질서 정연하게 일렁이던 수면이, 이내 공기를 머금은 물, 물을 머금은 공기가 뒤섞인 혼돈의 소용돌이로 변한다. 질서에서 혼돈으로의 추락이 이토록 우아하게 끊임없이 펼쳐지는 광경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선형 파동이 비선형 파동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하면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그 말만으로는 이 장관을 담아내지 못한다. 파도의 부서짐은 곧 파도의 죽음이다. 아니, 물로서의 수명을 다하는 순간이고, 그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파도는 충격파가 됨으로써 그 마지막 생명의 힘을 공기와 해변에 바친다.               p.251


바다에 여행을 갔을 때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쏴아쏴아 소리가 바다의 지휘에 맞춰 단조롭게, 때로는 거칠게, 잔잔하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부서지고, 부딪혀 깨지는 소리의 합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파도가 만들어 낸 두 줄의 규칙적인 하얀 선이 바다의 윤곽을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오직 각각의 파도 소리만 서로를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온갖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영국의 남쪽 끝 콘월 바닷가에서 세 살배기 딸과 놀던 개빈 프레터피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파도의 생성 원리가 궁금해진다. 평소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구름감상협회'를 만들어 세계 각지에서 5만 명의 회원들이 모여들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파도에 '진심'이다. 


이 책은 생생한 시각 자료와 파도(파동) 관찰자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삶 곳곳을 비추는 과학 이야기 우리의 관심사를 확대한다. 내용 자체는 굉장히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버무려 쉽게 풀어내고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진과 그래프 등 100여 가지 시각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저자는 파도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결국 하와이에 가서 서핑 배우기에 도전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그가 '연구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오아후섬에 도착해 겪게 되는 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바다에 나가 서퍼들을 보고, 실제로 전문가에게 서핑을 배우는 과정을 보며 정말 못말리는 열정이다 싶었다. 어떤 장르든 이렇게 사랑한다면 그 애정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가 부럽기도 했다. 자, 무더운 여름, 시원한 바다에서 이 책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가라앉는 파도의 움직임 속에서 삶의 굴곡과 순환을 떠올리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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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매일 긍정 생각 -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명사들의 문장 필사
루이스 헤이 지음, 김문주 옮김 / 니들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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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he key to happiness is realizing that

it's not what happens to you that matters,

it's how you choose to respond.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기로 했는가가

중요하다고 깨닫는 것이 행복으로 통하는 비결이다.           p.38


다양한 종류의 필사 책을 만나봤지만, 그중 가장 두툼하고 묵직한 필사 책이다. ‘자기 치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헤이는 그 동안 여러 유명 인사의 책을 출간하면서 영적 치유와 마음챙김, 자기 관리의 중요성과 실천 방법 등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왔다. 이번에 나온 책은 루이스 헤이를 비롯해 26명의 명사들의 명언을 한데 모은 것이다. 영어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튼튼한 양장본에 사이즈도 큼직해 필사할 수 있는 공간도 넓다. 반복해서 문장 필사를 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생각을 메모하기도 좋다. 




명사들의 문장을 쓰면서 함께 영어 표현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계획대로 해나가기란 쉽지 않은데, 필사집을 통해 좋은 문장을 동시에 배울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고심해서 고른 문장들을 꾹꾹 손으로, 마음으로, 눈으로 담다 보니 너무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빤히 아는 낱말인데 소리 내어 말하거나 손으로 쓸 때 새삼 낯설게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는데 막상 말이나 글로 사용하려니 어색하다면 듣고 보기는 했어도 입이나 손과 같이 몸을 써 사용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문장을 눈으로 읽고, 그 문장으로 입으로 소리 내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좋다. 읽고 쓰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Don't start tackling tomorrow's problems until tomorrow.

You don't have tomorrow's strength yet.

You simply have enough for today. We don't need to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내일의 골칫거리는 내일로 미뤄두자. 내일 필요한 능력을 미리 갖출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저 오늘을 위해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필요는 없다.               p.380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딱딱한 펜의 느낌, 글을 써 내려갈 때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잉크냄새... 손글씨를 쓰는 일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부담없이, 누구나,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필사 열풍이 시작된 이유 또한 매일같이 바쁘게 달려 가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자기 자신을 챙길 기력도 없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 오롯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사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다 필사를 하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는 등의 필사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보고 있자면, 지금이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지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천국도, 지옥도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들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마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면서 살기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고단하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말은 뇌의 착각을 이용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현실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긍정적인 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심어져 생명력을 얻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그 내용과 똑같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다. 이러한 말의 힘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지금부터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매일매일 이 책의 아무 장이나 펼쳐서 한 쌍의 긍정적인 생각을 만나보자. 아침마다 하루 10분, 당신의 표정이 훨씬 더 밝아지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하게 될테니 말이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명사들의 문장 필사를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내고 긍정적인 생각을 나에게 선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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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조깅 혁명 - 혈당·비만·노화를 한 번에 잡는 최강의 운동법
다나카 히로아키 지음, 김연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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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특별히 배워야 잘 달릴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달리기 기술은 선수나 일반인이나 비슷하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뀔 것 같을 때, 전철이나 버스를 놓칠 것 같을 때 등 급할 때는 누구나 황급히 뛰어간다. 달리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매우 긴 시간 훈련해온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인과 엘리트 러너를 놓고 비교해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p.31


운동을 단 한번도 좋아하거나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꽤 긴 시간 요가를 다니기도 했고, 거금을 들여 PT를 받기도 했었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 되어 버렸고, 지금은 운동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하루 만보 걷기 정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상 속에서 뭔가를 하는 것도 전부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 뭘 해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럴 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슬로 조깅'이다. 


슬로 조깅은 웃으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달리는 '힘들지 않은 운동'이다. 그래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으며, 지방 연소에 매우 효과적이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무척 좋은 운동이다. 이 책은 슬로 조깅 창안자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의 47년간의 연구 성과와 실천 사례를 집대성해서 담고 있다. 슬로 조깅의 기초 이론부터 실전 수업, 운동생리학, 마라톤을 위한 트레이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달리기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준다. '싱글벙글 페이스'라는 명칭부터 재미있는데, 이것은 젖산이 몸에 쌓이기 시작하는 속도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슬로 조깅은 바로 이 '싱글벙글 페이스'로 달리는 거라 초보자라도 바로 도전할 수 있다. 게다가 느린 속도로 달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치료와 심장 재활에도 추천하는 달리기 방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동안 달리기라고 하면 힘든 운동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슬로 조깅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이제는 미뤄두었던 달리기를 실천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러닝을 하면 혈액량이 증가하여 피부로 보내는 혈액량이 많아지고, 그 결과 몸의 냉각 기능이 향상된다. 따라서 같은 속도로 달릴 경우, 러닝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체온이 덜 올라가게 된다. 더 나아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눈 딱 감고 러닝을 하면, 1~2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신체가 그 환경에 적응하여 몸 밖으로 배출되는 땀의 양이 늘어나므로 열사병에 걸릴 위험이 낮아진다. 이런 신체 적응 현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p.251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초보자가 선뜻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확실히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걷기와 달리기의 차이점부터 시작해 각각의 에너지 소비량을 비교하고, 주관적 운동 강도와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의 변화 등 구체적인 수치와 운동생리학적 근거를 토대로 슬로 조깅의 장점에 대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근력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근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하는 점도 슬로조깅에 대한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슬로 조깅 실전 수업 장에서는 나에게 맞는 페이스 찾는 법, 싱글벙글 페이스의 기준, 달릴 때 뒤꿈치 작지와 앞꿈치 착지의 비교, 착지 주법 익히기, 달릴 때 주의 사항, 호흡법과 달리는 장소, 그리고 복장과 러닝화에 대한 것까지 단계별로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 주기 때문에 내일 당장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달리기 대유행 시대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러닝을 해서 살을 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 달리기의 실력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고민이 되는 지점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달리기에 관한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전혀 힘들지 않을뿐더러 걸을 때보다 칼로리를 2배로 소모해 효율적으로 살을 뺄 수도 있다면 말이다. 특히나 초보자도 최소 3개월만 훈련하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슬로 조깅'에 대해 47년간 연구하며 운동생리학의 관전에서 과학적으로 효과를 입증했고, 스스로도 슬로 조깅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건강에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러닝을 해보고 싶지만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 스트레스 없이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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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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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때 모든 것은 변했다. 소년 시절은 내 주위에서 폐허가 되었다. 양친들은 나를 어떠한 난처한 심정을 품고 바라다보았다. 누나들은 나에게 아주 낯설게 되었다. 하나의 꿈에서 깨어남은 익숙했던 감정과 기쁨을 변조시키고 빛을 바래게 했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유혹하지 않았고, 세상은 내 주위에서 고물을 파는 것처럼 김빠졌고, 매력이 없었고, 책은 종잇조각이었고, 음악은 소음이었다. 가을 나무 주위에는 나뭇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않는다. 나무 위에 비가 내리고, 햇볕과 서리가 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내부에는 하나의 생명이 서서히 좁은 곳으로, 안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다.                p.116~117


에밀 싱클레어라는 한 청춘의 고독하고 힘든 내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는 <데미안>은 세상 모든 청춘들을 대변하며 긴 시간 사랑을 받아왔다. 출간 후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국내에도 굉장히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있다. 나 역시 다른 버전으로 여러 번 읽었던 작품인데, 이번에 만난 <데미안>은 조금 특별하다. 바로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기념해 전혜린이 번역한 판본을 되살린 복원본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문학소녀라면 누구나 전혜린을 동경했을 것이다. 아무나 쉽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던 시절, 독일로 유학을 갔던 천재 작가였고,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 그리고 때 이른 죽음으로 '전혜린 신화'로 남게 된 존재였으니 말이다. 나도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좋아했던 문학소녀였다. 그래서 학창시절 교실 한구석에 펼쳐 세운 교과서 안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전혜린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라는 책을 정말 여러번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독일 유학이후 대학교수로 생활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자서전적 에세이라는 점에 매혹되어 읽기 시작했는데, 분위기와 감성, 문장에 매혹되어 그 시절의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책이다. 그러니 이번에 만나는 <데미안>은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개정판에는 전혜린이 쓴 헤세 작가론과 <데미안> 작품론 등 두 편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더 깊이있는 독서의 시간이 되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나는 여러 번 그 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그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새에 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내 그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나를 이해했고 나로 하여금 해석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 것일까? 그리고 ─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 아프락사스란 무엇일까?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일도 없었고 읽은 일도 없었다.              p.158


누구나 유년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평화와 안전의 냄새가 풍기는 집을 벗어나 어른이 되어 가는 순간, 그러니까 어린 시절이 끝나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통과의례처럼 다가오게 마련이다. 누구나 데미안처럼 엄청난 혼란에 빠져 온갖 격정과 감정의 분출들로 괴로워하던 시기를 거쳐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물론 어른이 되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싱클레어가 그랬듯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 모든 과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데미안>과 어른이 되어 만난 <데미안>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싱클레어에게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선악의 진실에 대해 가르쳐준 데미안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하에 누렸던 안전한 생활을 벗어나 자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을 만나 성장하게 되는 싱클레어도 뭔가 공감되고, 이해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인물들로 바뀌어 있었으니 말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모두 불만이던 10대를 지나,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20대를 지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처참한지, 얼마나 불공평한지 인지하기 시작하는 30대를 거쳐, 삶의 서글픔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40대가 되고 나면 그제서야 보이는 게 있다.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들을 제대로 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등등 어제의 나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의 나는 깨닫게 된다. 이번에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도 역시나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날기를 포기하고 사회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걷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데미안>이라는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일 테고 말이다. 독일어 원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으로 만나는, 가장 문학적 감성으로 충만한 <데미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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