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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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이 까다로운 정치적 쟁점이었다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리가 임금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주로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임금 격차나 작업장의 안전성 등이 쟁점이다. 오늘날 임금노동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많은 미국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p.96

 

마이클 샌델의 신작은 오래 전에 국내에 출간되었던 <민주주의의 불만>의 개정판이다. 표지만 갈아 입고 다시 나온 것은 아니고, 개정판 서문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내용이 추가되었으니 업그레이드 된 개정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던 1996년만 하더라도 냉전이 끝나고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어떠한가.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를 거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오며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특정한 시민적 이상과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자, 사유화되고 양극화된 정치적 지평을 넘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짚어 본다. 노예제도, 공공 영역에서의 여성 배제, 재산에 따른 투표권 결정, 기존의 사회 구성원이 이민자들에게 드러내는 적개심 등으로 점철돼 있었던 공화주의 전통에서 시작해, 미국의 정치 전통을 사례로 해석하고 설명한다. 공화국 초기의 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에 대해, 시민적 덕목과 공공선에 대해, 그리고 시민의식과 경제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이야기한다. 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쟁, 노예제와 관련된 투쟁은 점점 복잡해졌으며,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산업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주장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20세기가 시작됐을 때도 절차적 공화주의는 여전히 미완성 단계였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생산적 활동의 조직화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치 참여를 위한 권한의 부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등장했다. 시대에 따라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주로 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력 행사를 막으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p.319

 

자유주의와 케인스혁명, 뉴딜정책, 인플레이션과 절차적 공화주의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십 년에 걸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가 된다. 이렇게 해서 시민의식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주의 차원의 개념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6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십 년 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지만,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보게 해준다.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를 비롯한 덕목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작품에 비해 읽기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가 다뤄왔던 다양한 주제들이 총집결된 책이기 때문에 한 번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위기의 현재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떠한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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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인간
테드 휴즈 지음, 크리스 몰드 그림, 조호근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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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집보다 더 커다란 무쇠인간이 절벽 꼭대기에 서 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무쇠인간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등장했다. 무쇠인간은 절벽 위에서 처음 보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돌풍에 등이 밀려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계속 부딪치며 굴러 떨어지다 보니, 무쇠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무쇠 팔이 떨어지고, 무쇠 귀가 떨어지고, 커다란 머리가 떨어지며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주인공이 첫 등장하자마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다니..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초반부터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68년에 발표된 영국 계관 시인 테드 휴즈의 고전 명작이다. 크리스 몰드의 일러스트로 새롭게 탄생한 작품으로 2020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최종 후보작이 되었다. 50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지만, 크리스 몰드의 일러스트 덕분인지 전혀 시간의 갭을 느낄 수 없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무쇠 인간이 보통 SF 작품에서 묘사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로봇이라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림이 보여주는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일러스트 없이 출간되었던 원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몸을 되찾은 무쇠인간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쇠인간의 모습만 보고 무턱대고 겁을 먹고는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무쇠인간이 기계들을 전부 가져가버리자 커다란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대책을 세운다. 어린 소년 호가스의 재치로 무쇠인간은 함정에 빠지게 되고, 흙으로 가득 찬 구덩이를 보며 호가스는 문득 미안함을 느낀다.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무쇠인간이 스스로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게 되자, 호가스는 미안한 마음에 무쇠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고철을 주겠다고 그를 고철들을 모아둔 곳으로 안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쇠인간과 인간들 앞에 우주에서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용이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우주박쥐천사용은 사람들을 위협했고, 세상 사람들은 괴물에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무쇠인간이 사람들을 도와 우주 괴물을 상대하게 되는데, 그는 괴물을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무쇠인간이 처음 출현해, 부서졌다가 다시 재탄생하고, 인간세상에 와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다, 우주 괴물과 맞서 싸우며 결국 인간과 공존하게 되는 다섯 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원작이 시인이 쓴 동화라서 소리 내어 읽기 좋은 문장들이고, 운율에 맞추어진 시어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무조건 배척부터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이질적인 존재가 공동체에서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함께 살아가게 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메세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는 수십 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크리스 몰드가 만들어낸 무쇠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봇의 모습과 다른 듯 하면서도 어딘가 친근함을 준다. 처음에는 낯선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에 익숙해지게 되는 마력이 있다. 세대를 뛰어 넘어 사랑 받는 고전 명작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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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크림소다
누카가 미오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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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도 빨간색도 아닌 하얀색 크림소다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와카나 씨는 자기가 읽던 문고본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테이블의 나뭇결 위에 떨어졌다. 아이스크림을 맨 처음에 컵에 넣고, 그 위에 아무 시럽도 안 들어간 투명한 소다수를 부으면 아이스크림에서 거품이 나면서 하얀색 크림소다가 되는 건가 보다. 아래에서 위로 꾸불꾸불 올라오는 형태인 유리컵.  그 윤곽을 따라서 투명함과 순백 사이의 그러데이션이 완성된다.      p.54

 

크림소다는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를 말한다.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초록색 메론소다, 파란색 크림소다 음료를 먹어 봤는데, 선명한 색감의 음료 위에 아이스크림과 체리가 올려져 있는 비주얼이 너무 예쁘면서도 뭔가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았던 음료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은 예상 외로 먹을 만했고, 상큼함과 부드러움의 조합이 재미있었다.

 

이 책의 제목에 '크림소다'가 들어가는데, 표지 전체 이미지에서도 하늘을 향해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가는 소다수 같은 물방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의 냄새와 차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청춘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합격해 도쿄로 상경한 도모치카는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달에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 한 달 동안 전혀 돈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와카나 선배가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친해진다. 도모치카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싫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성숙한 어른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어머니에게 의지하기 싫다는 마음을 먹게 된 데는 가정 환경도 영향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거든. 인간이 무엇을 중요시할지, 무엇에서 가치를 발견할지, 반대로 무엇을 포기할지. 그런 것은 타인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때로는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될 때도 있고. 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어."
가족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텐데. 막상 가족이 사라지니까 그림을 전혀 못 그리게 되었던 거야.           p.316~317

 

도모치카와 와카나 모두 부모님이 재혼을 해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사람이 완전히 달랐다. 도모치카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아버지와 누나가 생겼는데, 누나는 대놓고 도모치카와 새엄마에게 적의를 표했고, 결국 빨리 독립해서 집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도모치카는 의붓누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었다. 반면 와카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생겼다. 워낙 모범생인 와카나였기에 겉으로는 새로운 가족들과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이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결국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게 된다.

 

이 작품은 미술대학을 배경으로 각자의 상황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인 크림소다가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극중 주인공과 친한 선배인 와카나가 자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큼한 소다수와 아이스크림의 단맛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잘 어울리는 재미있는 조합이다. 작가는 눈앞에서 탄산 기포가 탁 터지는 것 같은 크림소다의 청량감과 움직임을 청춘의 모습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작품의 주요 캐릭터 두 사람은 모두 부모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한 사람은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또 한 사람은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고 있다. 작가는 '가족의 형태에 정답은 없으므로 어느 쪽이 옳다고 하는 결론은 굳이 내리지 않고 여백으로 남겼'다고 말한다. 가정 폭력이라던가 극적인 이유가 없어도 가족 관계는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은 요즘처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연애 소설과 성장 소설을 적절히 섞어 예술가의 삶과 청춘들의 고뇌를 싱그럽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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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in 상하이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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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장인 정신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맛있는 수프 냄새에 정신이 팔렸던 다리오는 순간 살기를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자 눈을 번뜩이는 남자와 눈이 맞았고, 그 손에 들린 네모난 칼에 제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 걸 알아챘다. 다리오가 주인이 만든 호러영화의 등장인물처럼 비명을 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이리하여 저녁 연회 시간, 다리오가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던 필립 크레이븐 감독의 눈앞에 요리장의 특별 요리가 거대한 은쟁반에 담겨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p.17

 

도쿄역 테러 소동이 일어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 뒤에 화려한 과거를 숨겨두고 있었던 간토생명의 가토 에리코는 결혼을 하면서 상하이로 이주했다. 이번에 전 직장의 동료였던 디저트를 사랑하는 열혈 유도소녀 유코와 모두가 의지하는 든든한 직원 가즈미가 휴가 일정에 맞춰 에리코의 초대로 중국에 왔다. 몇 년 동안 같은 직장, 같은 팀에서 일해온 그들은 이국에서의 재회와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중이다. 한편 호텔 청룡반점의 요리장인인 왕탕위안은 새로운 식재료와 메뉴 개발에 노력한 탓에 평판이 수직 상승하는 중이다. 그날도 일찌감치 나와 식재료를 점검하던 중이었는데, 처음 보는 커다란 도마뱀 같은 동물이 주방 바닥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그 동물은 영화감독 필립 크레이븐의 반려동물인 이구아나 다리오였다. 하지만 왕의 눈에는 희귀한 식재료일 뿐, 덕분에 다리오는 그날 저녁 식탁에 등장하는 특별 요리가 되고 만다.

 

신작을 촬영하기 위해 상하이를 찾은 필립은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으로 오열하고, 그로 인해 촬영 일정이 지연되어 좌우대칭의 묘한 얼굴을 지닌 풍수사 루창싱이 그를 돕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사실 다리오의 몸속에는 세기의 보물 '박쥐'가 있었는데, 범죄 조직이 밀반입을 위해 이구아나를 이동 수단으로 쓴 거였다. 요리를 했던 왕이 그 특별한 보물을 발견하고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되찾기 위한 일당들도 그곳으로 하나둘 모여들게 된다. 한편, 새끼 때부터 동물원에서 자란 다른 판다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우연히 포획된 판다 강강은 자신이 살던 야생으로 돌아가고자 계획을 세운다. 인간들의 카메라 세계를 받으며 갇혀 지내는 삶이 너무도 스트레스에 허무했던 것이다. 탈주를 계획하고 있는 판다 강강과 그를 주시하고 있는 동물공원의 판다 주임 사육사 웨이잉더는 은근히 신경전을 하고 있는 중인데, 과연 강강은 무사히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밖으로 내려가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원래 북적거리는 길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멀리서 전해지는 것은 분명히 비명과 환호성, 노성 같은 것이었다. '북적거림'의 범주를 넘어선 소음이 빌딩 숲 사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신이치로 일행만이 아니었는지, 통행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구경꾼들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달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                p.293

 

온다 리쿠표 패닉 코미디 '도미노' 시리즈 신작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중국의 대도시인 상하이로 무대를 옮겨 더 강력해지고 커진 스케일로 19년 만에 돌아왔다. <도미노>에서 도쿄역을 배경으로 스물 일곱명의 사람과 1마리의 동물을 등장시켰다면, 이번 <도미노 in 상하이>에서는 스물다섯 명의 사람과 동물 세 마리의 군상극이 펼쳐진다. 특히나 최근에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탈출해 도심을 누비고 다녔던 얼룩말 '세로'에 관한 뉴스가 있었기에, 판다 강강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특히 더 공감되고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간토생명의 직원들과 호러영화의 거장 필립 크레이븐 감독과 그의 반려 동물 등 전작에서 활약했던 캐릭터들도 함께 등장해 재미를 더해준다. 상하이의 호텔 ‘청룡반점’을 중심으로 세기의 보물과 미술품을 노리는 범죄조직, 그들을 쫓는 홍콩경찰 등이 얽히고설켜 대소동극을 펼친다. 인물들은 자신이 새로운 도미노의 한 조각이며, 이미 여러 줄들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그렇게 제각각의 사건들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한 도미노가 만들어 진다. 따로 전개되는 수십 가지의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겹쳐지면서 도미노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 구성은 작가의 치밀한 설정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은 소동들이 허리케인처럼 점점 커지면서 도시 곳곳을 폭탄처럼 터뜨리면서 휘몰아치는 온다 리쿠의 솜씨는 전작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게다가 아마도 작가 이름을 모른 채 읽었더라면 '온다 리쿠'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을 만한 작품이라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혀 온다 리쿠스럽지 않은 작품이지만, 바로 그 온다 리쿠이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짜임새와 완숙미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현실적인 존재, 유령이 등장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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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의 비밀과외 - 무조건 통하는 전교 1등의 합격 루틴
소린TV(안소린) 지음 / 다산에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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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에서 주인공 셜록이 애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억술이 있다. 드라마에서 셜록은 자신의 상상 속 공간인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 잊고 있던 지식을 선명히 떠올리며 되살린다. 이는 고대 로마에서 법전 등을 외우기 위해 사용했던 암기법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을 익숙한 장소와 연합시키는 부호화를 통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쓰이는 포스트잇을 활용하여 여러분도 쉽게 기억의 궁전을 만들 수 있다.           p.142

 

누적 조회수 3500만, 유튜브 소린 TV로 16만 수험생들의 공부 멘토가 된 저자가 수험 생활을 하며 터득한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총정리했다. 저자는 입시 당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스텍에 동시 합격해 각종 교육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자신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또 공부할 의지는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는 학생들과 실력이 있음에도 입시 전략이 부족해 포기하려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천재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저자의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게임에만 푹 빠져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기에, 학원에 갈 수 있는 형편은 안 되었고, 결국 맨땅에 헤딩하듯 직접 부딪히며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학군과 부모의 경제적인 지원, 값비싼 사교육 없이도 충분히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한 초효율 공부 비책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시행 착오와 실패, 좌절을 거치면서 치열하게 현실과 부딪히며 쌓아온 결과이기에 아주 현실적이고, 상세하며, 지금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공부의 기술이다.

 

 

 

우리는 습관처럼 공부를 미룬다. 머리로는 '공부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 '공부는 유튜브 30분만 더 보고 하자'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30분이 1시간이 되고, 1시간이 2시간이 되어 어느 순간 시계를 보니 벌써 잘 시간이 다 되었다... 이 지긋지긋한 미루기 습관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미루는 습관만 극복해도 공부 시간이 2배는 늘 텐데 말이다.             p.314

 

이 책에는 학습 능률이 오르는 5:3:2 법칙,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퀘스트 공부법, 올바른 공부의 4단계, 공부 효율을 높이는 플래너 작성법, 문제 풀이의 기술, 스토리텔링 암기법, 포스트잇 암기법, 시험지 분석의 5단계, 3년 공부 로드맵, 과목별 입시 전략의 기술 등 막연한 조언이나 누구나 알고 있는 공부법이 아니라 실제 성적 향상과 대입 경과를 만들어낸 공부 전략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 3교시 영어, 4교시 한국사, 5교시 사회,과학 탐구로 과목별 카테고리를 구분해 핵심 전략을 제시해주고 있어 어떤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노하우를 만날 수 있다. 편집 구성도 너무 훌륭한데, 직접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 가면서 표시한 것처럼 한 눈에 카테고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기도 너무 좋다.

 

사실 입시는 장기간의 고독하고 외로운 레이스다. 게다가 '누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가'보다 '누가 공부와 입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활용하는가'가 승부를 가르는 레이스라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무작정 우직하게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올바른 공부법을 터득하고,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만 지치지 않고 수험 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다. 이는 공부에 지치지 않는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수험 생활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공부 멘토를 만나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동기부여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줄 이 책을 만나 보자. 더 이상 공부가 막막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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