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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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이 까다로운 정치적 쟁점이었다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우리가 임금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주로 최저임금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임금 격차나 작업장의 안전성 등이 쟁점이다. 오늘날 임금노동이라는 개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많은 미국인이 이의를 제기했다.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에 따르면 임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p.96

 

마이클 샌델의 신작은 오래 전에 국내에 출간되었던 <민주주의의 불만>의 개정판이다. 표지만 갈아 입고 다시 나온 것은 아니고, 개정판 서문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내용이 추가되었으니 업그레이드 된 개정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던 1996년만 하더라도 냉전이 끝나고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어떠한가. 클린턴과 부시, 오바마와 트럼프 시대를 거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오며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우선, 특정한 시민적 이상과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자, 사유화되고 양극화된 정치적 지평을 넘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짚어 본다. 노예제도, 공공 영역에서의 여성 배제, 재산에 따른 투표권 결정, 기존의 사회 구성원이 이민자들에게 드러내는 적개심 등으로 점철돼 있었던 공화주의 전통에서 시작해, 미국의 정치 전통을 사례로 해석하고 설명한다. 공화국 초기의 경제 성장과 분배 정의에 대해, 시민적 덕목과 공공선에 대해, 그리고 시민의식과 경제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이야기한다. 임금노동을 둘러싼 논쟁, 노예제와 관련된 투쟁은 점점 복잡해졌으며, 자발주의적 자유노동관은 산업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주장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20세기가 시작됐을 때도 절차적 공화주의는 여전히 미완성 단계였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생산적 활동의 조직화를 추구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치 참여를 위한 권한의 부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등장했다. 시대에 따라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주로 자본가들의 정치적 지배력 행사를 막으면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자본주의의 경향성에 저항한다는 뜻이었다.        p.319

 

자유주의와 케인스혁명, 뉴딜정책, 인플레이션과 절차적 공화주의에 이르는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불편하게 공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십 년에 걸쳐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쇠퇴하고 경제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으로 대체가 된다. 이렇게 해서 시민의식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주의 차원의 개념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괴롭혔던 불만은 한층 더 예리해졌고, 사회적 결속력은 철저하게 무너졌으며 좌절감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6년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건은 미국 민주주의에 줄곧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십 년 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지만,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보게 해준다.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를 비롯한 덕목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작품에 비해 읽기 수월하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자가 다뤄왔던 다양한 주제들이 총집결된 책이기 때문에 한 번쯤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위기의 현재를 통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떠한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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