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in 상하이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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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장인 정신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맛있는 수프 냄새에 정신이 팔렸던 다리오는 순간 살기를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자 눈을 번뜩이는 남자와 눈이 맞았고, 그 손에 들린 네모난 칼에 제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 걸 알아챘다. 다리오가 주인이 만든 호러영화의 등장인물처럼 비명을 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이리하여 저녁 연회 시간, 다리오가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던 필립 크레이븐 감독의 눈앞에 요리장의 특별 요리가 거대한 은쟁반에 담겨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p.17

 

도쿄역 테러 소동이 일어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 뒤에 화려한 과거를 숨겨두고 있었던 간토생명의 가토 에리코는 결혼을 하면서 상하이로 이주했다. 이번에 전 직장의 동료였던 디저트를 사랑하는 열혈 유도소녀 유코와 모두가 의지하는 든든한 직원 가즈미가 휴가 일정에 맞춰 에리코의 초대로 중국에 왔다. 몇 년 동안 같은 직장, 같은 팀에서 일해온 그들은 이국에서의 재회와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중이다. 한편 호텔 청룡반점의 요리장인인 왕탕위안은 새로운 식재료와 메뉴 개발에 노력한 탓에 평판이 수직 상승하는 중이다. 그날도 일찌감치 나와 식재료를 점검하던 중이었는데, 처음 보는 커다란 도마뱀 같은 동물이 주방 바닥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그 동물은 영화감독 필립 크레이븐의 반려동물인 이구아나 다리오였다. 하지만 왕의 눈에는 희귀한 식재료일 뿐, 덕분에 다리오는 그날 저녁 식탁에 등장하는 특별 요리가 되고 만다.

 

신작을 촬영하기 위해 상하이를 찾은 필립은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으로 오열하고, 그로 인해 촬영 일정이 지연되어 좌우대칭의 묘한 얼굴을 지닌 풍수사 루창싱이 그를 돕기 위해 호텔을 찾는다. 사실 다리오의 몸속에는 세기의 보물 '박쥐'가 있었는데, 범죄 조직이 밀반입을 위해 이구아나를 이동 수단으로 쓴 거였다. 요리를 했던 왕이 그 특별한 보물을 발견하고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되찾기 위한 일당들도 그곳으로 하나둘 모여들게 된다. 한편, 새끼 때부터 동물원에서 자란 다른 판다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우연히 포획된 판다 강강은 자신이 살던 야생으로 돌아가고자 계획을 세운다. 인간들의 카메라 세계를 받으며 갇혀 지내는 삶이 너무도 스트레스에 허무했던 것이다. 탈주를 계획하고 있는 판다 강강과 그를 주시하고 있는 동물공원의 판다 주임 사육사 웨이잉더는 은근히 신경전을 하고 있는 중인데, 과연 강강은 무사히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밖으로 내려가자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원래 북적거리는 길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멀리서 전해지는 것은 분명히 비명과 환호성, 노성 같은 것이었다. '북적거림'의 범주를 넘어선 소음이 빌딩 숲 사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신이치로 일행만이 아니었는지, 통행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구경꾼들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달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는 건가?"                p.293

 

온다 리쿠표 패닉 코미디 '도미노' 시리즈 신작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중국의 대도시인 상하이로 무대를 옮겨 더 강력해지고 커진 스케일로 19년 만에 돌아왔다. <도미노>에서 도쿄역을 배경으로 스물 일곱명의 사람과 1마리의 동물을 등장시켰다면, 이번 <도미노 in 상하이>에서는 스물다섯 명의 사람과 동물 세 마리의 군상극이 펼쳐진다. 특히나 최근에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탈출해 도심을 누비고 다녔던 얼룩말 '세로'에 관한 뉴스가 있었기에, 판다 강강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특히 더 공감되고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간토생명의 직원들과 호러영화의 거장 필립 크레이븐 감독과 그의 반려 동물 등 전작에서 활약했던 캐릭터들도 함께 등장해 재미를 더해준다. 상하이의 호텔 ‘청룡반점’을 중심으로 세기의 보물과 미술품을 노리는 범죄조직, 그들을 쫓는 홍콩경찰 등이 얽히고설켜 대소동극을 펼친다. 인물들은 자신이 새로운 도미노의 한 조각이며, 이미 여러 줄들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그렇게 제각각의 사건들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한 도미노가 만들어 진다. 따로 전개되는 수십 가지의 사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겹쳐지면서 도미노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 구성은 작가의 치밀한 설정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은 소동들이 허리케인처럼 점점 커지면서 도시 곳곳을 폭탄처럼 터뜨리면서 휘몰아치는 온다 리쿠의 솜씨는 전작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게다가 아마도 작가 이름을 모른 채 읽었더라면 '온다 리쿠'를 떠올리게 되지는 않을 만한 작품이라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전혀 온다 리쿠스럽지 않은 작품이지만, 바로 그 온다 리쿠이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짜임새와 완숙미가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현실적인 존재, 유령이 등장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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