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크림소다
누카가 미오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평점 :
절판


 

초록색도 빨간색도 아닌 하얀색 크림소다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와카나 씨는 자기가 읽던 문고본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유리컵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테이블의 나뭇결 위에 떨어졌다. 아이스크림을 맨 처음에 컵에 넣고, 그 위에 아무 시럽도 안 들어간 투명한 소다수를 부으면 아이스크림에서 거품이 나면서 하얀색 크림소다가 되는 건가 보다. 아래에서 위로 꾸불꾸불 올라오는 형태인 유리컵.  그 윤곽을 따라서 투명함과 순백 사이의 그러데이션이 완성된다.      p.54

 

크림소다는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를 말한다.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초록색 메론소다, 파란색 크림소다 음료를 먹어 봤는데, 선명한 색감의 음료 위에 아이스크림과 체리가 올려져 있는 비주얼이 너무 예쁘면서도 뭔가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았던 음료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은 예상 외로 먹을 만했고, 상큼함과 부드러움의 조합이 재미있었다.

 

이 책의 제목에 '크림소다'가 들어가는데, 표지 전체 이미지에서도 하늘을 향해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가는 소다수 같은 물방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의 냄새와 차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청춘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 합격해 도쿄로 상경한 도모치카는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달에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 한 달 동안 전혀 돈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와카나 선배가 선뜻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면서 두 사람은 친해진다. 도모치카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싫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성숙한 어른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가 어머니에게 의지하기 싫다는 마음을 먹게 된 데는 가정 환경도 영향이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거든. 인간이 무엇을 중요시할지, 무엇에서 가치를 발견할지, 반대로 무엇을 포기할지. 그런 것은 타인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때로는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될 때도 있고. 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결국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어."
가족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텐데. 막상 가족이 사라지니까 그림을 전혀 못 그리게 되었던 거야.           p.316~317

 

도모치카와 와카나 모두 부모님이 재혼을 해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사람이 완전히 달랐다. 도모치카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아버지와 누나가 생겼는데, 누나는 대놓고 도모치카와 새엄마에게 적의를 표했고, 결국 빨리 독립해서 집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도모치카는 의붓누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었다. 반면 와카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생겼다. 워낙 모범생인 와카나였기에 겉으로는 새로운 가족들과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마음이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결국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게 된다.

 

이 작품은 미술대학을 배경으로 각자의 상황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탄산수나 소다수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셔벗을 올려 먹는 음료인 크림소다가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극중 주인공과 친한 선배인 와카나가 자주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큼한 소다수와 아이스크림의 단맛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의외로 잘 어울리는 재미있는 조합이다. 작가는 눈앞에서 탄산 기포가 탁 터지는 것 같은 크림소다의 청량감과 움직임을 청춘의 모습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작품의 주요 캐릭터 두 사람은 모두 부모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하지만 한 사람은 새로운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또 한 사람은 가족들과 연락을 아예 끊고 살고 있다. 작가는 '가족의 형태에 정답은 없으므로 어느 쪽이 옳다고 하는 결론은 굳이 내리지 않고 여백으로 남겼'다고 말한다. 가정 폭력이라던가 극적인 이유가 없어도 가족 관계는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은 요즘처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연애 소설과 성장 소설을 적절히 섞어 예술가의 삶과 청춘들의 고뇌를 싱그럽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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