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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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사키에서 느낀 예감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것만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본능이 충고하는 것이리라. 넨네 갱에서의 예감이 '불쾌함'이었다면 구지암 앞에서 느낀 것은 '꺼림칙함'이었다. 혐오와 두려움의 차이......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넨네 갱에서는 너무나도 탐정소설 같은 사건에 휘말렸다면 고가사키에서는 아무래도 괴기소설과 분간이 안될 어떤 현상과 맞닥뜨릴 것 같은 느낌이다. 말도 안 돼...... 근거라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영문 모를 자신의 예감과 단자와의 살짝 거슬리는 언동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p.45~46

 

미쓰다 신조가 선보이는 방랑하는 청년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검은 얼굴의 여우>가 2016년에 나왔었으니, 상당히 오랜 만에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세 번째 작품인 <붉은 옷의 어둠>까지 출간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태평양전쟁 직후라는 역사적 배경 위에 미쓰다 신조의 장기인 호러미스터리적 요소와 추리를 섞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미쓰다 신조는 작가가 됐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무대가 탄광과 등대였다고 한다. 그리고 ‘도조 겐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모토로이 하야타’를 탄생시켰다고 하니, 이 시리즈도 도조 겐야 시리즈 만큼이나 길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에서, 시계 초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밤에 읽으면 몰입도가 배가 된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에 시작하기 딱 좋은 작품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패전 후 혼란기의 일본, 청운의 꿈을 품고 만주 건국대학에 들어갔지만 조국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학교를 나온다. 이후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일거리를 찾아 다니며 입에 풀칠을 하다 그마저도 그만두고 방랑여행을 떠난 결과, 노동자의 밑바닥이라고 불리는 탄광부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부흥에 기여하고 싶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탄광에서 일하며 마물인지 귀신인지 모를 ‘검은 얼굴의 여우’가 신출귀몰하는 가운데, 괴이한 사건을 겪었던 것이 <검은 얼굴의 여우>였다. 이어지는 두 번째 시리즈 <하얀 마물의 탑>에서는 바닷가 마을의 등대지기가 되어 민간신앙 속 하얀 마물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사실 진정한 공포가 찾아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이상하잖아. 숲속에 서 있는 하얀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상했으나 그와는 다른 이유로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그것이 지독한 위화감을 지녔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해. 그게 뭔지, 그 핵심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그것을 보는 건 무리였다. 시야 끝에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었는데 똑바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완전히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눈을 피하는 순간 그것이 등대로 다가오지 않을까...... 해서.          p.251

 

예리하고 가늘고 긴 기암이 뾰족뾰족 솟아 있는 바다, 어깨를 맞대고 선 바위 사이를 소용돌이치는 거친 파도와 뿌연 안개까지 등대가 세워진 장소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일하는 등대지기는 편견이 많은 직업이다. 모토로이 하야타는 탄광에서 일할 때 땅 밑으로 내려가는 공포에 한없이 시달렸었다. 이번에는 새로 부임하게 된 부임지를 찾아 가던 중 흔들리는 고깃배 위에서 슬쩍 보이는 고가사키 등대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가능하다면 저 곶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든 것이다. 게다가 등대 회랑에 희끄무레한 게 눈에 들어왔다. 하얀 사람 그림자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등대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않았고, 결국 빽빽하게 치솟은 나무로 가득한 숲 속을 홀로 지나가게 되고, 외따로 있는 하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곳에서 여관 주인이 싸준 도시락을 꺼내는데, 뚜껑 위에 '만약 길을 잃더라도 하얀 집에는 가지 말라는, 거기서 묵으면 안된다'는 종잇조각이 발견된다. 과연 하야타는 무사히 등대까지 갈 수 있을까.

 

전작인 <검은 얼굴의 여우>에서는 탄광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불길한 존재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그렸었다면, 이번 작품 <하얀 마물의 탑>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두려움과 무시무시한 공포, 그리고 2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수수께끼를 그리고 있다.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공포란 아무 의미 없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구제할 수 없는 절망, 불합리할 정도의 우월감, 끝을 모를 악의, 압도적인 광기, 소름 돋는 증오,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살의'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동기가 있어 출발한 공포라 더욱 섬뜩하다. 오싹하고 기분 나쁜 기운 자체는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실 그 악의 기원을 따지고 보면 극도로 현실적인 배경에서 시작한 거라 그만큼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공포감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이지만,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내용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각각 별개의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이 선보이는 수준 높은 공포 속으로 들어가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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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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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는 자문했다. 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여기서는 아무도 날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나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이제 삶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하지만 어떻게? 쥘 씨는 풀타임으로 일할 종업원을 둘 형편이 못 되었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거나 라비고트소스로 졸인 송아지 머리 요리를 서빙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p.119

 

<오르부아르>, <화재의 색>에 이어 '오르부아르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우리 슬픔의 겨울>이 나왔다. 사실 55세의 나이에 늦깎이 소설가가 된 피에르 르메트르는 추리 소설로 작품을 시작했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도 추리 소설이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이다. 소설의 모든 요소들이 전부 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는 그의 추리 소설들은 꽤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었고, 3부작의 주인공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도 매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피에르 르메트르는 처음으로 추리 장르를 벗어나 쓴 작품 <오르부아르>로 공쿠르 상을 받았다.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 수상 이후 더 이상 추리 소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대신 프랑스 현대사를 배경으로 깊이 있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1차 세계대전을 겪은 두 젊은이의 사기극을 그린 <오르부아르>, 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어수선한 시대에 펼쳐지는 한 여인의 무자비한 복수극 <화재의 색>에 이어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살다 보면 아주 복잡한 일들이 순식간에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이따금 일어난다. 멀쩡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다거나,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결국 모든 것을 바꾸게 된다거나, 하나의 결정으로 인해 단 몇 초 사이에 누군가의 삶의 방향이 달라져 버리곤 한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장 많이 바꾸어 놓는 것이 전쟁이라는 환경일 것이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상황을 연출하면서 거대 권력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21세기의 발자크라는 평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서사 자체가 흥미로워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기 때문에,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나 같으면 다 총으로 갈겨 버릴 거야, 그냥......」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도 누구에게 총질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이상한 밤, 파리에서의 도주, 이 눈먼 사람 같은 차들, 저 고집스레 닫힌 대문, 그리고 앞으로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 모든 것에 지쳐 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말싸움할 기력도 없었다.          p.351

 

이번 작품의 주인공 루이즈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었던 <오르부아르>에 어린 소녀로 등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사인 루이즈는 10대 소녀였을 때부터 쥘 씨가 주인이자 주방장인 레스토랑에서 토요일마다 서빙 일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가게의 단골인 의사선생으로부터 당황스러운 부탁을 받게 된다. 그는 20년 전부터 토요일마다 똑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루이즈와는 인사 외에 몇 마디 이상을 나누는 법이 없었다. 루이즈의 벗은 모습을 딱 한 번만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것은 하지 않겠다고. 루이즈는 너무 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날 서빙하는 내내 그 이상한 제안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에는 어리벙벙했다가 곧 화가 치밀었지만, 그에게 만 프랑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제시했고 함께 호텔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 노인은 그녀의 벗은 몸을 보고는 권총을 꺼내 들어 자신의 머리에 대고 쏜다. 루이즈는 넋이 나가 벌거벗은 채로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이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단골손님으로부터 기묘한 부탁을 받은 루이즈 외에도 헌병대원 페르낭, 군인인 라브리엘과 라울, 변장과 사기술의 대가 데지레 등 다양한 인물들이 2차 세계 대전의 한복판을 누비며 각자의 삶을 살아 간다. 루이즈는 엄마가 죽고 나서부터 혼자였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약혼자와 파혼했으며, 되는대로 아무 남자와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다 손님의 이상한 제안에서 시작된 사건 이후 경찰과 학교 동료들로부터 창녀 취급을 받기도 하는 등 여러 일을 겪으며 자신의 삶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노선에서 근무하는 군인이었던 가브리엘과 라울은 독일군의 공격에 전선이 무너지며 탈영병 신세가 되고, 헌병대원 페르낭은 같이 피란을 가자는 아내의 말을 뿌리치고 혼자 파리에 남게 되면서 엄청난 비밀이 담긴 가방을 얻게 된다. 인물들은 각자 다른 상황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피란길에 오르는데, 전쟁으로 인한 피란길의 디테일한 묘사가 사실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일 텐데, 실제 전시에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각색한 에피소드들이라 더욱 실감나게 전쟁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를 그리는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이 되는 작품을 작년에 발표했다. 그 작품도 국내에서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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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1~5 세트 - 전5권 - RETRO PAN
김혜린 지음 / 거북이북스(북소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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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에 첫 연재를 시작한 <테르미도르>가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출간되었다. 김혜린 작가는 1983년에 데뷔작 <북해의 별>을 5년에 걸쳐 완간했고, 1988년 무협만화 <비천무>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테르미도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북해의 별>이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혁명의 이상을 그렸다면, <테르미도르>는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북이북스에서 RETRO PAN으로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불꽃의 메디아>와 김혜린 작가의 <북해의 별>을 복원해 출간했었다. 이번에 명작 복원 프로젝트 네 번째 작품으로 <테르미도르>가 새롭게 나왔다.

 

 

제목인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력 중의 열월을 의미하는데,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경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유제니와 알뤼느, 줄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789년 8월 남프랑스의 툴롱, 레몬 나무 숲이 온통 황금색인 태양의 계절이었다. 숲에는 플로비에 후작의 아들 줄르와 솔로뉴 백작의 딸 알뤼느가 함께 있다. 그때 마침 보스코 수도원에서 잡일을 도와주는 여자의 아들 유제니는 레몬 나무 숲에 레몬을 훔치러 왔다가 인부들에게 붙잡힌다. 줄르는 인부들에게 그를 용서해 주라고, 타일러서 보내라고 말하고, 알뤼느는 손수건을 건네지만 유제니는 그들의 호의를 외면하고 도망쳐 버린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그 서막을 열었고, 그 불길이 폭풍노도처럼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던 즈음이었다. 줄르는 귀족이었지만 파리에 가서 그들의 반란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다 같은 프랑스 민이라고 생각하는 줄르의 생각을 알뤼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툴롱에도 폭동이 시작되었고, 그 폭도들에 의해 알뤼느의 집이 불타고 부모까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눈 앞에서 그 참상을 목격한 알뤼느는 폭도들의 두목인 엘이 보스코의 유제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가 혁명의 도시 파리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도 파리로 향하게 된다. 해를 넘기면서 혁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벌써 3년째 유제니를 수소문하고 있었지만 그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클럽에서 가수로 노래를 하며 유제니를 찾던 알뤼느는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복수를 해낼 수 있을까.

 

사생아로 태어나 잡일을 하다가 혁명군의 주역이 된 유제니와 혁명 군중에게 부모를 살해 당해 복수를 꿈꾸는 알뤼느, 그리고 귀족이지만 혁명의 대의에 동참하게 되는 줄르를 중심으로 전쟁과 사랑,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혁명의 현실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김혜린 작가는 80년대에 나왔던 만화잡지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전설적인 존재이다. 90년대 전성기였던 한국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황미나, 신일숙, 김진 작가등과 함께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북해의 별>과 <테르미도르>뿐만 아니라 <비천무>, <불의 검> 등 만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인기 작품들이 모두 김혜린 작가의 손을 통해 탄생한 것들이니 말이다. 주로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정말 오랜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김혜린 작가의 작품은 그 시절을 향한 향수를 불러옴과 동시에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작화에 새삼 감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란 결코 흔치 않다. 그 마법같은 순간을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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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빵 대백과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 / 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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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빵 사랑은 매우 유별났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이 제과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빵을 찾아서 먹고 다녔다. 서울의 유명한 빵집들은 물론, 가끔 지방에 내려가면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들을 꼭 먹어보곤 했다. 당연히 해외여행을 가서도 나의 빵지순례는 계속되었다.

 

해외에서 먹었던 다양한 디저트들과 베이커리, 케잌류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편의점에서 팔던 빵이었다. 숙소인 호텔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편의점에 아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빵들의 맛이 웬만한 베이커리 못지 않았던 거다. 게다가 가격도 얼마나 저렴하던지, 우리 돈으로 천원 정도했던 커다란 곡물 빵이 너무 담백하고 고소해서 여행 기간 내내 아침에 먹었던 기억이 난다. 호텔에서 조식을 배불리 먹고 나와서 또 편의점에 들러 빵을 샀는데, 그럼에도 먹을 때마다 맛있어서 감탄했다. 어쩜 이 나라는 편의점 빵 마저 맛있단 말이냐. 싶어서 굉장히 부럽기도 했던 경험이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일본 현지 빵들이 총정리되어 있는 백과사전 혹은 바이블이다. 일본 현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빵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 158개 빵집 또는 빵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264종의 빵들이 모두 소개되어 있다.

 

한 고장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 즐겨운 '소울 빵'이 일본 전국 각지에도 존재한다. 두툼한 빵 사이에 휘핑크림을 채운 나가노의 우유빵, 평평하고 둥근 카스텔라 반죽 위에 반원형 빵이 올라간 고치의 모자빵, 작은 식빵에 우유맛 크림을 도톰하게 올린 후쿠시마의 크림박스, 모양도 속 재료도 다른 전국 각지의 샐러드빵, 양배추와 감자칩이 가득 들어간 가나가와의 감자칩빵, 그 외에도 졸린 눈을 한 기린 캐릭터와 함께 40년 넘게 사랑받는 키다리빵,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시마네의 장미빵 등등 정말 많은 종류의 빵들을 만날 수 있다.

 

 

소울 빵에 이어서는 지역에 따라 맛과 모양이 전혀 달라지는 빵들을 소개한다. 크림, 초코, 카스텔라, 양갱 등으로 나눠 다양한 빵들을 소개해준다. 중간에 햄버거 자판기와 토스트 자판기, 학교 매정 빵도 만날 수 있어 재미를 더해주었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 우유 패키지의 모양도 흥미로웠다. 빵 안에 다시마가 숨어 있는 도야마현의 다시마빵, 빵 속에 달걀말이가 통으로 드어간 교토의 다시마키 샌드위치, 된장의 풍미를 살려 식사로도 사랑 받는 된장빵 등 이색적인 종류도 있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되면 먹어보려고 한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사랑받는 동네 빵집들도 만나볼 수 있다. 쌀기름으로 튀긴 빵에 특제 고운팥앙금이 들어간 기름빵으로 유명한 후쿠시마의 기요카와제과제빵점, 튀김 전문점 특유의 진짜배기 맛을 느낄 수 있는 도쿄의 조시야,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달걀빵을 만날 수 있는 군마의 아시아제빵소 등 가보고 싶은 곳이 여럿 있었다.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모닝 메뉴들도 따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나 역시 후쿠오카에서 토스트와 커피 등으로 구성된 모닝 메뉴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반가웠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책에 소개된 빵을 지역, 가게, 제조업체별로 정리한 리스트가 수록되어 있어 찾아보기 편리하게 해두었다.

 

 

홍콩의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비롯해서, 괌에서 먹었던 단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끝장나게 달콤했던 시나몬 롤,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은은한 단맛이 인상적이었던 슈크림빵, 오사카에서 먹었던 고소한 풍미에 결이 살아있던 초코크로와상, 교토에서 먹었던 심플한 외관에 비해 너무 맛있었던 카루네, 대만에서 먹었던 엄청난 크기의 치즈카스테라 등등... 해외 여행을 가서 맛집을 찾아 다니는 거야 다들 하는 거지만, 나는 항상 빼놓지 않고 빵 투어를 다니곤 한다. 나처럼 일부러 빵을 찾아 다닐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각 지역의 대표 빵들을 모조리 만날 수 있는 책이니 말이다.

 

앞으로 일본 여행을 갈 때는 이 책을 꼭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나 현지의 빵 정보가 가득한 책은 아마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빵지순례를 위한 최고의 가이드이자 일본의 빵들을 총집합시킨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 이제 이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일본의 어떤 지역으로 가느냐인데, 이 빵도, 저 빵도 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게 문제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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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르 플랜츠 B.plants - 괴근식물부터 아가베, 박쥐란까지 희귀식물에 대한 모든 것
주부의벗사 엮음, 김슬기 옮김, 고바야시 히로시 외 감수 / 북폴리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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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근식물의 바이블’로 불리는 《비자르 플랜츠(B.plants)》의 첫 공식 한국어판이 나왔다. 괴근식물이란 이름에서 오는 어감부터 뭔가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보통 몸통과 줄기, 뿌리가 한덩어리를 이루어 동그랗게 팽창된 형태를 한 다육식물을 말한다. 덩어리 괴, 뿌리 근자를 쓰는데, 이렇게 진화한 희귀식물들을 가리켜 ‘비자르(bizarre) 플랜츠’란 명칭이 탄생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고온건조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괴근 내부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다. 기묘한 모습으로 희소성이 높고 모양이 독특해 최근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식물의 종류이다.

 

 

이 책은 식물 애호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의 인기 원예 전문지로, 무려 155개의 희귀 품종을 다루고 있다. 희귀식물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괴근식물, 아가베, 박쥐란, 파키포디움을 중심으로 기초 상식부터 물주기, 온도, 생장 사이클, 루팅 등 재배 방법은 물론, 업계 전문가들의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볼거리와 정보를 폭넓게 담았다.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놀라운 식물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책이었다. 모양이 너무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아서 결코 일반적인 의미로 아름답다고 하기 힘든 식물들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매혹적인 느낌이라 희귀식물의 세계는 정말 기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반려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 졌지만, 사실 식물을 돌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햇빛을 많이 보게 해주고, 물만 잘 주면 살겠지 싶겠지만 식물마다 필요한 환경이 달라서 제대로 키워내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제대로 키워내기 시작했다면 점점 더 식물들이 늘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딱 관심이 가는 것이 바로 특별한 나만의 식물이 아닐까 싶다. 평범하지 않은, 더 다양한 식물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어질테니 말이다.

 

예전에는 공기정화식물로 대표되는 관엽식물과 행잉식물들이 사랑을 받았다면, 최근 트렌드로 ‘힙하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주로 수입되는 ‘괴근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식물 도서들에 비해 관련 정보가 아직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이 괴근식물의 바이블로서 아주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이 책이 괴근식물의 바이블로 통하는 이유는 1950년대부터 일본에서 수입 희귀식물들의 유통과 재배 연구를 본격적으로 선도한 고바야시 히로시 국제다육식물협회 회장이 감수를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엮은 주부의벗사 출판사의 편집팀이 직접 발로 뛰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진귀한 사진들을 취합한 동시에 실험을 통해 가설 검증을 거친 정확한 정보들만을 엄선해 정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어판은 괴근식물 콜렉터인 번역가를 섭외하고, 희귀 아프리카 식물숍 고어플랜트서울 대표와의 감수 작업을 통해 원서의 명성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이름도 어렵고, 모습도 낯선 희귀식물들이지만, 식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괴근식물을 한 번 키워볼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독특한 분위기와 강인한 생명력이 내뿜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아우라가 반려식물을 찾는 이들을 사로잡을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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