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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1~5 세트 - 전5권 - RETRO PAN
김혜린 지음 / 거북이북스(북소울) / 2023년 3월
평점 :
1983년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에 첫 연재를 시작한 <테르미도르>가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출간되었다. 김혜린 작가는 1983년에 데뷔작 <북해의 별>을 5년에 걸쳐 완간했고, 1988년 무협만화 <비천무>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테르미도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북해의 별>이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혁명의 이상을 그렸다면, <테르미도르>는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북이북스에서 RETRO PAN으로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불꽃의 메디아>와 김혜린 작가의 <북해의 별>을 복원해 출간했었다. 이번에 명작 복원 프로젝트 네 번째 작품으로 <테르미도르>가 새롭게 나왔다.
제목인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력 중의 열월을 의미하는데,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경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유제니와 알뤼느, 줄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789년 8월 남프랑스의 툴롱, 레몬 나무 숲이 온통 황금색인 태양의 계절이었다. 숲에는 플로비에 후작의 아들 줄르와 솔로뉴 백작의 딸 알뤼느가 함께 있다. 그때 마침 보스코 수도원에서 잡일을 도와주는 여자의 아들 유제니는 레몬 나무 숲에 레몬을 훔치러 왔다가 인부들에게 붙잡힌다. 줄르는 인부들에게 그를 용서해 주라고, 타일러서 보내라고 말하고, 알뤼느는 손수건을 건네지만 유제니는 그들의 호의를 외면하고 도망쳐 버린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파리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그 서막을 열었고, 그 불길이 폭풍노도처럼 지방으로 확산되어 가던 즈음이었다. 줄르는 귀족이었지만 파리에 가서 그들의 반란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다 같은 프랑스 민이라고 생각하는 줄르의 생각을 알뤼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툴롱에도 폭동이 시작되었고, 그 폭도들에 의해 알뤼느의 집이 불타고 부모까지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눈 앞에서 그 참상을 목격한 알뤼느는 폭도들의 두목인 엘이 보스코의 유제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가 혁명의 도시 파리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도 파리로 향하게 된다. 해를 넘기면서 혁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벌써 3년째 유제니를 수소문하고 있었지만 그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클럽에서 가수로 노래를 하며 유제니를 찾던 알뤼느는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과연 복수를 해낼 수 있을까.
사생아로 태어나 잡일을 하다가 혁명군의 주역이 된 유제니와 혁명 군중에게 부모를 살해 당해 복수를 꿈꾸는 알뤼느, 그리고 귀족이지만 혁명의 대의에 동참하게 되는 줄르를 중심으로 전쟁과 사랑,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혁명의 현실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김혜린 작가는 80년대에 나왔던 만화잡지를 통해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전설적인 존재이다. 90년대 전성기였던 한국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황미나, 신일숙, 김진 작가등과 함께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북해의 별>과 <테르미도르>뿐만 아니라 <비천무>, <불의 검> 등 만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인기 작품들이 모두 김혜린 작가의 손을 통해 탄생한 것들이니 말이다. 주로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깊은 여운을 남겨준다.
정말 오랜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김혜린 작가의 작품은 그 시절을 향한 향수를 불러옴과 동시에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작화에 새삼 감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란 결코 흔치 않다. 그 마법같은 순간을 이 작품을 통해 경험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