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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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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희비극을 아이러니로 풀어내는 작가 '위화'의 신작이다. 전작인 <허삼관 매혈기> <인생>에서 중국 소설에 대한 엄청난 재미를 주었던 작가이기에, 이번 신작도 궁금했었다. 사실 슬픈 내용을 감상적으로, 기쁜 내용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희극적인 내용을 근엄한 어조로 능청스럽게 표현하거나,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적인 내용을 다소 코믹하게 느껴질 정도의 대사로 써낸다. 그래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분명 내용만으로는 어처구니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장면인데도, 어딘지 웃을 수가 없어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위화가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의 희극적인 장면은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들이 역설적인 의미로 전달되는, 무겁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양페이가 사고로 죽고 나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7일 동안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양페이가 죽은 첫 째날, 그가 빈의관(화장터)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씻지도 않고 수의도 입지 않은 평상복차림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몸을 씻고, 수의로 할 만한 하얀 비단 잠옷을 입는다. 그러던 중 빈의관에서 독촉 전화가 온다. 아홉 시 반인데 뭘 하고 있느냐고, 화장을 원하는 게 맞냐고. 화장을 하고 싶으면 얼른 오라고.

 

이렇게 시작부터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처럼 진행된다. 화장터도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서 순서대로 기다렸다 진행되는 거라니, 그것도 당사자가 직접 번호표를 뽑고 가야하고 말이다. 양페이는 뭐 이런 일도 재촉을 하나 기분이 상했지만, 서둘러 준비를 하고 빈의관으로 향한다. 빈의관 화장 대기실에 도착하자 의자가 두 가지로 준비되어 있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대기자가 무척 많았지만, 다른 쪽 소파에는 성공한 명사들로 보이는 사람들 다섯 명뿐이다. 늦게 온 양페이는 번호표 순서 A3에서 A64로 밀려났고, 자신의 앞에 54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파에 앉은 귀빈 구역의 화제는 수의와 유골함이었다. 얼마나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걸로 했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 죽으면서까지 돈 자랑하는 사람들이라니. 빈의관은 이렇게 대놓고 빈부격차에 따라 화장이 진행된다. 대기실도 그렇고 가마도 그렇다. 국산품은 일반 대기자용, 수입가마는 귀빈 용이라 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순서가 줄어들지 앉아 물어보니, 시장님 시신 앞에서 고별식이 열리고 있어, 아침에 세 사람을 화장하고 가마가 멈춘 상태란다.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싶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권력에 의한 불평등이 너무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씁쓸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첫날은 양페이가 빈의관에서 겪게 되는 일과 그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양페이는 식당에서 전 부인인 리칭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발생한 화재 사고로 죽게 된 것이다. 이후 리칭을 만나게 된 이야기가 둘째 날이다. 리칭은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회사 여직원들이 질투하고, 수많은 남자 직원들이 그녀와 사귀고 싶어서 꽃이며 선물을 보냈던 여자였지만, 결국 양페이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이 2년의 결혼생활을 하고 나서 양페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이혼하기까지의 내용이 보여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살한 리칭과 그런 그녀의 기사를 읽다 사고로 죽은 양페이가 만나는 장면이다.

 

"이건 양페이 잠옷인데, 당신은 누구시죠?"

"내가 양페이예요."

그녀가 당혹해 하며 비틀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양페이 같지 않은데."

얼굴을 더듬어보니 왼쪽 눈이 광대뼈까지 튀어나오고 코는 코 옆에, 턱은 턱 아래에 있었다.

"얼굴 단장하는 걸 깜빡했어요."

내가 말하자 그녀가 두 손을 뻗어 바깥으로 떨어져 나온 눈동자를 조심조심 눈구멍에 밀어 넣고 옆으로 누운 코를 원래 위치로 옮긴 뒤 턱 아래로 늘어진 턱을 철컥, 하며 위로 밀었다.

그런 다음 한 발자국 물러나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제야 양페이 같네요."

"내가 바로 양페이예요. 당신은 리칭같이 생겼네요."

"내가 바로 리칭이에요."

우리는 동시에 미소 지었다. 익숙한 웃음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꽤 긴 대화를 이렇게 옮겨본 이유는, 이 대목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사실상 전체 작품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재로 인해서 왼쪽 눈이 광대뼈 쪽으로 밀려나고, 코며, 턱도 얼굴에서 자리 이동을 했다는 묘사가 첫 장면에서 있었는데, 그 끔찍한 몰골 때문에 리칭은 양페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서 엉망이 된 얼굴을 원래대로 만들고는, 서로에게 익숙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리칭은 양페이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으나, 결국 그 남자 때문에 자살을 했다. 이혼한 전 아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맞이하는 양페이의 성격, 그리고 이렇게 별거 아닌 상황에서도 가슴 한 구석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정의 결을 숨겨두는 작가 위화의 노련한 솜씨. 이후 셋 째날, 넷 째날 계속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주로 이런 식이다. 상황은 끔찍하고 비참하지만, 정작 작가의 어조에는 감정적인 부분이 배재 되어 있고, 대사는 우스운데 상황을 그려보면 슬픈, 아이러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셋째 날, 양페이는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슬렁거린다. 이승을 떠나기는 했으나,  매장될 무덤이 없고, 애도해줄 가족도 없는 그였기에 어차피 갈 곳도 없긴 했지만, 화장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아직 이승에서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7일은 사람이 죽고 나서 이승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삶의 풍경을 재구성해볼 수 있는 시공간이다. 이제 이야기는 양페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그가 자라온 시절에 대한 것으로 전개된다. 양페이의 생모는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친정으로 가고 있다, 기차 안 화장실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 리는 기차가 순식간에 탯줄을 잘라버리고, 양페이는 21살 젊은 선로전환공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 양진뱌오는 친부모가 양페이를 기차 바퀴에 치여 죽이려고 철길에 버렸다고 믿고, 그를 각별히 아낀다. 하지만 그 덕분에 겨우 이십 대였던 양진뱌오는 결혼은커녕 여자 친구도 사귈 수가 없었다. 딱 한번 결혼까지 얘기가 진행되었던 적이 있지만, 결국 그는 어린 양페이를 버릴 수가 없어 결혼을 포기하고 아들을 선택한다. 자신의 핏줄도 아닌 양페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다. 그저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 어떤 이해를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넷째 날, 다섯 째 날이 이어지면서 죽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 영아 시체를 의료 쓰레기로 취급하는 병원, 정부의 강제 철거 피해자들의 시위 등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 문제들이 치밀한 현실 묘사로 드러난다. 세상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들, 가진 자들에게 핍박 받던 사람들, 가족이 없어 죽고 난 뒤 상장도 스스로 달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여진다. 우중충하고 비참한 얘기라 어둡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지만, 위화는 독자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매 장면 공을 들인다. 경찰의 가혹 행위에 대해내 불알을 돌려달라며 항의하는 시위, 자살 소동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이상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 진품이 아닌 짝퉁 아이폰4S를 생일 선물로 받고 투신자살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 등은 씁쓸하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낙천 성이 이런 따뜻한 유머를 통해서 인간의 비극을 마치 희극처럼 그려내고 있다.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이 작품은 양페이가 겪는 7일의 시간을 통해 '생과 사'라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서러움과 슬픔, 억울함과 분노, 만남과 헤어짐, 부당함과 이기심, 이런 감정들은 모두 죽고 나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감정들이지 않나.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아이러니와 인생의 진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작품인 것 같다. 작가가 인물에 대해 너무 '아는 척'하거나, 감정에 취해 '연민의 시선' 으로 바라볼 때, 독자들은 오히려 감정 이입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위화처럼 담담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보여줄 때 오히려 페이지 마다 푹 젖어 있는 감정의 기폭에 따라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죽은 뒤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새삼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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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올 가을 가장 기다리고 있는 신작은 <일식>, <달>, <장송>의 3부작 이후 한동안 단편 창작에 집중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편 신작 <결괴>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추리소설이라니, 내용도 보기 전부터 너무 궁금했던 작품!!

 

<일식> 이후 무려 10년만의 대작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까지. 완전 기대된다. ^^

 

 

 

 

 

 

 

진정한 이야기 꾼. 성석제 작가님이 5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이다. 제목부터 빵 터졌다. <이 인간이 정말>이라니, 어쩜 이런 제목을 지으셨을까. 그냥 아무 조건없이 믿음이 가고, 기대가 되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한 분. ㅎㅎ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라는 출판사의 소개 문구가 정말 와닿는 작가님이다.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이자 『요리코를 위해』와 『또다시 붉은 악몽』를 잇는 ‘비극 삼부작’의 두번째 작품.

유괴라는 소재야 흔하지만, 그걸 노리즈키 린타로가 이야기로 만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드라마성 강한 그의 장기와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구성이 기대된다.

 

 

 

 

 

 

 

 

 

니콜키드만 주연, 제작으로 영화화될 예정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는 물론,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 각종 전문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킴벌리 맥크레이트의 데뷔이라고 한다. 대체 왜 이렇게 데뷔작을 멋들어지게 쓰는 걸까 궁금하다. ㅎ

 

미국 사립학교의 실태와 10대들의 세계가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고, 예기치못한 결말이 전개된다고 하니,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하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63편의 작품 중 43편이 1위를 차지한 경이로운 기록의 소유자이자 작가로서의 수입이 30억 달러를 훌쩍 넘는 괴물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신간이다.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로 강력 범죄에 맞서  네 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소문으로만 전해듣던, 제임스 패터슨의 작품이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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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뎀션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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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서 죽은 건데.

내가 무사히 죽도록 도왔는데.

넌 계속 살아 있었어.

내가 살 수 있도록 도왔으니까.

 

여기,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존 메이어 프레이. 열일곱이던 그는 열여섯 여자친구의 살해혐의로 기소되었고, 사형을 선고 받아 사형수동에서 10년을 보냈다. 살해된 엘리자베스와 그는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사귀어온 사이였다. 그녀의 집안 곳곳에 그의 지문이 있었고, 그녀의 몸에 그의 정액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범죄현장에서 그를 봤다는 목격자도 없었고. 현장 어디에서도 그의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에다 소년원도 두어 차례 들락거렸던 그의 이력이 혐오할 대상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적합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주지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딸이 살해당했으니 누군가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했고, 권력을 이용해서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배심원들로 배심원단을 꾸리는 게 가능했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그가 무고한지는 작품의 끝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지만, 어쨌든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스토리적인 재미를 위해 그가 '어떻게' 죽음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맞이했고, '어떤' 방법으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었던 건지에 대한 부분은 밝히지 않겠다. 이 부분은 직접 책을 읽으면서 그 재미를 느껴봐야 하니까 말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2퍼센트, 혹은 3퍼센트 정도는 잘못된 증거나 강압수사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경우라고 세계적인 연구결과가 밝히고 있다고 한다. 무고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이다. 만약 이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사형이 집행되고 난 뒤에는 무죄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형폐지론자들은 죄값을 목숨을 빼앗는 걸로 치르는 것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정의실현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이 있을 경우 사형이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것이고, 사형제도고 존속이 된다고 하더라도 강력범죄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므로, 굳이 국가의 이름으로 살인을 행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사형존치론자들은 억울한 사형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수사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이지 사형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살인자가 사형을 선고 받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갈수록 흉악한 범죄들이 많아졌고, 그들을 수감하느라 국민들의 세금이 쓰이는 것도 말이 안되고, 정의의 구현을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 유족들도 물론 알고 있다. 살인범이 죽는다고 해서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가 치뤄 지지 않고,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수 십 년간 매일, 매 시간, 죽은 가족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그들에겐 내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사형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증오하는 감정을 흘려 보내고, 슬픔과 회환, 안도의 감정과 함께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는 말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는 간다.

 

난 마커스빌 교도소가 문을 열 때부터 거기서 일해왔소. 평생 재소자들과 함께 살아온 셈이지. 30년 넘게 일하면서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을 대해봤고 그 인간들이 저지른 짓도 속속들이 알게 됐소. 난 형벌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형벌을 가하는 사회야말로 제대로 된 규범을 가진 사회라고 생각하니까.

 

, 한 가지 예외는 있소. 바로 사형제도. 규범을 가진 사회는 살인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는 말이오. 사형수동에서 몇 년을 보내고 나서야 그걸 이해하게 됐소. 어느 교도소를 가든, 수사상의 오류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이 있기 마련이오. 나뿐만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관리하는 사형수동에도 그런 무고한 사람들이 있소. 난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도 존폐에 관해서 논란이 일고는 한다. 작년에 사형제도 존속여부에 대해서 여론 조사를 했을 때. 찬성하는 쪽이 과반수를 훨씬 넘어섰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갈수록 흉악한 범죄들이 많아지자, 사람들 모두 보다 강력한 처벌로 재범 방지와 유사한 다른 사건을 막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가 사람을 죽일 권한은 없고, 사법부가 오판을 할 가능성도 있으며, 범죄자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의 법적 근거는 헌법에 기초한 것이고, 그 법적인 근거를 믿지 못한다면 애초에 사법부가 존재하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범죄자의 인권과 생명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게 아닐까. 우선 이 작품에서 작가의 입장은 사형제도폐지론자 쪽에 가깝다. 무고한 누명을 쓴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고, 피해자의 가족의 슬픔보다는 그들이 막무가내로 사형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기도 하고, 실제 죄의 유무보다는 국가적인 입장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습도 반영되어 있으니 말이다. 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법적 권한의 부당함도 맞는 말이고, 희생자 유족에게 적법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형제도가 무고한 국민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극적인 정의 실현으로 인해 이후 벌어질 각종 범죄들에 대한 예방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97년 이후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형대기수라는 명목으로 스무 명 가까이 수감 중인 걸로 알고 있고, 그들 흉악한 범죄자들을 위해 국민들의 세금이 매년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여름 추리소설 학교에서 염건령 교수님의 범죄학 강의를 들을 때,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수치는 아니지만 실제 사형수 한 명당 1년에 쓰이는 금액이 5.000만원인데 그에 비해 피해자 유가족에 대한 보상은 500만원 정도라고 하셨던 걸 기억한다. 사실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떠들면서, 정작 피해자의 보상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언론이든 경찰 측이든 배려가 그만큼 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무조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사형으로 판결이 나는 것도 아니고, 죄질에 따라서 합당하게 판결이 나는 것이므로, 사형제도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형제도 폐지 국가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과거에야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것도 아니었고,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도 있었고 하니 오판에 대한 우려도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 국내 검찰들의 수사 기반에서는 전혀 의미 없는 걱정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범죄자가 뉘우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혹시 모를 개과천선만을 기다리며 피해자가 받아야 할 상처와 고통, 그리고 사회적 혼란을 묵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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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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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손자가 고삐를 잡은 마상에 앉아서 이 힘든 여행이 훗날 손자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상상해보며 부디 사랑 받은 기억이 되기를 빌었다

 

요 며칠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더니, 월요일 아침부터 완전 넉 다운된 기분이다. 소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곤 하니 말이다. 마음 상태가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는 컨디션이다 보니, 잘못 말을 거는 누구에게든 본의 아니게 날카롭게 대꾸를 한다거나, 퉁명스럽게 반응을 보인다거나 하게 되고 말았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일들인데, 이런 소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내가 억지를 부리거나 트집을 잡은 건 아니므로, 상대방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바깥으로 화를 표출하다 보면 결국 내 속이 더 불편하고, 답답해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뾰족해진 나를 감싸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수수한 이야기 속에 번지는 유머와 따스함이 화난 내 표정까지 누그러들게 만들었다고 할까. '조금만 너그러워지면 결국 네 속이 편하지 않겠냐'고 웃는 얼굴의 박완서 선생님이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

 

2010년에 마지막으로 발표하셨던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었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돌아가신 지 이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박완서 선생님의 미발표 글을 볼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어쩌면 행운이다. 이 작품집은 2000년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쓰신 글의 모음으로, 짧은 단편들은 그 길이와 상관없이 깊이 있고, 따스하고, 예리하면서도 여유롭다. 특히나 글들 사이사이에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글의 맛을 더해주는데, 글과 그림이 더해져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가슴 뭉클하다. 구구절절 감상을 적기 보다는, 너무 예쁘고도 마음 아픈 단편 하나라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이 작품의 읽어보고 싶게 만들 것 같다. 짧은 단편이니 글의 맛과 그려지는 풍경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별안간 허방을 밟은 것처럼 비참의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평생 제 입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거늘 이제 와서 웬 지옥 불 같은 증오란 말인가. 하긴 저 영감이 무슨 잘못이람. 아들을 저따위로 키운 시어머니 탓을 하다가, 난 또 뭔가. 내가 저 영감을 저렇게 길들인 걸. 자신을 다독거렸다가, 그래봤댔자 남는 건 허망감 밖에 없다. 한바탕 허망감이 휩쓸고 지나가면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입술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빗장처럼 무겁게 닫힌다.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십여 년을 해로하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툭하면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뒤끝이 없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헤헤거리기도 잘하는 마누라였다. 그래 버릇해서 영감님은 한 번도 마누라가 왜 토라졌는지 그 근본 원인을 캐 들어간 적이 없다.

 

마나님의 토라짐도, 영감님의 서글픔도 그냥 다 이해가 될 것만 같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처럼도 보이고, 이 상황은 지금 우리 세대의 이야기에 대입시켜보아도 공감이 충분히 된다. 게다가 <마음이 그들먹했다. 허방을 밟은 것처럼.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이런 단어들, 표현들은 너무나도 정겨우면서도 감정의 결을 미세하게 포착하게 만들어준다. 마나님은 비싼 굴비를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귀한 것을 나누어 먹는 그 마음씀씀이를 바랐기에 서운했던 것이고, 영감님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다. '살을 어찌나 알뜰하게 발라먹었는지 머리와 꼬리를 잇는 등뼈의 가시가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라는 표현에선 피식 웃게 만들고 만다.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모르는 영감님이, 그나마 자신있었던 화해의 방법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마음이 싸해지고 먹먹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어린아이처럼 되고, 젊을 때 남편의 눈치만 보던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사소한 부부간의 투닥 거림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쓸쓸함으로 이어진다.

 

살다 보면 참 바쁜 일도 많고, 기분이 상하는 일도 많다. 왜 이렇게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고, 왜 이렇게 짜증나는 일 투성이고.. 그럴 때 한번 멈추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이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네 마음이 바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바쁜 것인지, 네 마음이 화가 나서 그런 마음의 형태대로 보이는 세상에 기분이 상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유를 가진다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생각대로 쉬운 것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좀 멀리 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을 한다. 뾰쪽한 내 마음을 감싸주는 따듯함이 페이지마다 그득해서 괜시리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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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한파가 몰아치는 해변가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벌거벗은 남자가 깨어난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는, 비어있는 BMW안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아 입고, 대니얼 헤이스라는 이름의 차량등록증을 발견한다. 우선 그는 그 차량등록증에 적힌 주소에 찾아보기로 한다. 그는 집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드라마 <캔디 걸스>의 베스트 각본상을 받은 대니얼 헤이스라는 작가이며, TV 속에 등장하는 유명 여배우 레이니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가 차량 전복 사고로 실종된 상태이고, 그녀의 죽음에 관한 추측 성 보도는 바로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해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경찰이 그를 쫓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나자, 그는 당황스럽다. 자신이 정말 아내 레이니를 죽였는지는 커녕, 대체 그들 부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라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데, 무작정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 사람이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진행이 된다. 대니얼 헤이스의 실체, 그러니까 기억을 잃은 채로 해변에서 깨어난 남자에 대한 정체를 밝히고 기억을 되찾는 것과 나머지는 죽은 아내에 대한 사건의 진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에 대한 추적의 스토리이다. 그리고 대니얼 헤이스라는 중신 인물 외에 그를 찾아 다니는 정체 불명의 여인과 베넷이라는 악당이 있고, 그를 쫓는 경찰이 있다. 이들 관계는 그야말로 얽히고 설킨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그물을 만들어, 스토리를 구축한다. 사실 '기억상실증'과 관련된 숱한 작품들이 기존에 있었기 때문에, 설정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특별할 만한 게 없다. 육체적인 충격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정신적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경우도 실제로 벌어지곤 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살인을 저질렀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그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진 그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하는 행동, 할 수 있는 태도가 결국 자기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기억상실'을 소재로 진행되는 스토리에서는 주인공이 잊어버리고 있는 과거에 대한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 된다. 그러니까, 현재보다는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할 키가 되고, 그것이 주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무래도 과거보다는 '현재'에 방점이 있다 하겠다. 작가는 인물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과거에 네가 뭘 어떻게 했든지, 지금 현재의 너 자신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네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과거에 네가 내린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스스로 자초한 일에 대해서 벌어지는 결과는 네 몫이야. 지금의 모습은 지난 날 네 선택의 산물이니까. 라고 말이다. 아니,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한테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만큼. 작가가 인물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고 그려낼수록 독자는 인물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다. 게다가 어른스러운(?) 우리의 대니얼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이 억울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바로 그 태도가, 이 작품을 여타의 작품과는 다른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넌 네가 되고자 선택한 사람이야. 네가 내린 결정에 따라 살 수 있다는 걸 확신해야 해.

 

경찰, 기자들을 포함해 네티즌들은, 아내가 살해된 경우 열에 아홉은 남편이 개입되어 있다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남편이 아내가 죽자 마자 어디론가 사라졌을 경우에, 그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니얼은 쫓기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열에 아홉이라면, 그럼 나머지 하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거냐고. 여기서 또 이 작품의 특별한 재미가 드러난다. 대니얼은 히트 드라마를 써낸, 그 작품으로 베스트 각본상까지 받은 드라마 작가이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쫓으면서, 혹은 추측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왜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르지? 살인사건의 원인이야 항상 '사랑' ''이다. 그는 레이니가 샀다는 보석을 기점으로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 보기 시작하고, 그를 쫓는 두 명의 남녀와 만나면서 스토리는 점점 그들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려준다. 대니얼은 그 과정에서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스토리를 상상해서 키보드로 단어를 타이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가 작가라는 설정은, 현재 대니얼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특별한 재미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작품에는 중간중간 드라마 대본 형식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그래서 극중극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 덕분에 이 작품이 조금 더 입체감 있게 느껴진다고 할까. 덕분에 대니얼과 레이니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실제 이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생명력을 발한다. 대본은 소설과 다르게,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지도같은 역할을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고, 행동을 묘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대본은 인물이 행동할 수 있게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지문은 심플하지만 구체적이어야 하고, 대사는 감정이 아니라 말을 내뱉어야 한다. 상당히 다른 표현방식이라는 말이다. 마커스 세이키가 확실히 영상화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이, 중간중간 보여지는 대본 형식의 장면 연출 또한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2의 데니스 루헤인으로 불리 우는 작가인데, 기존에 출간한 네 작품 모두 영화화 계약이 되면서 현재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신인 작가라고 한다. 국내에는 그의 데뷔작인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만 출간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 바로 이 작품은 최근에 밴 애플렉에게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밴 애플렉이 감독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 작품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도 기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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