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평점 :
삶의 희비극을 아이러니로 풀어내는 작가 '위화'의 신작이다. 전작인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에서 중국 소설에 대한 엄청난 재미를 주었던 작가이기에, 이번 신작도 궁금했었다. 사실 슬픈 내용을 감상적으로, 기쁜 내용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희극적인 내용을 근엄한 어조로 능청스럽게 표현하거나,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적인 내용을 다소 코믹하게 느껴질 정도의 대사로 써낸다. 그래서 글을 읽고 있노라면 분명 내용만으로는 어처구니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장면인데도, 어딘지 웃을 수가 없어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위화가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의 희극적인 장면은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들이 역설적인 의미로 전달되는, 무겁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양페이가 사고로 죽고 나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7일 동안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양페이가 죽은 첫 째날, 그가 빈의관(화장터)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씻지도 않고 수의도 입지 않은 평상복차림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몸을 씻고, 수의로 할 만한 하얀 비단 잠옷을 입는다. 그러던 중 빈의관에서 독촉 전화가 온다. 아홉 시 반인데 뭘 하고 있느냐고, 화장을 원하는 게 맞냐고. 화장을 하고 싶으면 얼른 오라고.
이렇게 시작부터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처럼 진행된다. 화장터도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서 순서대로 기다렸다 진행되는 거라니, 그것도 당사자가 직접 번호표를 뽑고 가야하고 말이다. 양페이는 뭐 이런 일도 재촉을 하나 기분이 상했지만, 서둘러 준비를 하고 빈의관으로 향한다. 빈의관 화장 대기실에 도착하자 의자가 두 가지로 준비되어 있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대기자가 무척 많았지만, 다른 쪽 소파에는 성공한 명사들로 보이는 사람들 다섯 명뿐이다. 늦게 온 양페이는 번호표 순서 A3에서 A64로 밀려났고, 자신의 앞에 54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파에 앉은 귀빈 구역의 화제는 수의와 유골함이었다. 얼마나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걸로 했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 죽으면서까지 돈 자랑하는 사람들이라니. 빈의관은 이렇게 대놓고 빈부격차에 따라 화장이 진행된다. 대기실도 그렇고 가마도 그렇다. 국산품은 일반 대기자용, 수입가마는 귀빈 용이라 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순서가 줄어들지 앉아 물어보니, 시장님 시신 앞에서 고별식이 열리고 있어, 아침에 세 사람을 화장하고 가마가 멈춘 상태란다.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싶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권력에 의한 불평등이 너무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씁쓸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첫날은 양페이가 빈의관에서 겪게 되는 일과 그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양페이는 식당에서 전 부인인 리칭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발생한 화재 사고로 죽게 된 것이다. 이후 리칭을 만나게 된 이야기가 둘째 날이다. 리칭은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회사 여직원들이 질투하고, 수많은 남자 직원들이 그녀와 사귀고 싶어서 꽃이며 선물을 보냈던 여자였지만, 결국 양페이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이 2년의 결혼생활을 하고 나서 양페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이혼하기까지의 내용이 보여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살한 리칭과 그런 그녀의 기사를 읽다 사고로 죽은 양페이가 만나는 장면이다.
"이건 양페이 잠옷인데, 당신은 누구시죠?"
"내가 양페이예요."
그녀가 당혹해 하며 비틀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양페이 같지 않은데."
얼굴을 더듬어보니 왼쪽 눈이 광대뼈까지 튀어나오고 코는 코 옆에, 턱은 턱 아래에 있었다.
"얼굴 단장하는 걸 깜빡했어요."
내가 말하자 그녀가 두 손을 뻗어 바깥으로 떨어져 나온 눈동자를 조심조심 눈구멍에 밀어 넣고 옆으로 누운 코를 원래 위치로 옮긴 뒤 턱 아래로 늘어진 턱을 철컥, 하며 위로 밀었다.
그런 다음 한 발자국 물러나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이제야 양페이 같네요."
"내가 바로 양페이예요. 당신은 리칭같이 생겼네요."
"내가 바로 리칭이에요."
우리는 동시에 미소 지었다. 익숙한 웃음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꽤 긴 대화를 이렇게 옮겨본 이유는, 이 대목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사실상 전체 작품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재로 인해서 왼쪽 눈이 광대뼈 쪽으로 밀려나고, 코며, 턱도 얼굴에서 자리 이동을 했다는 묘사가 첫 장면에서 있었는데, 그 끔찍한 몰골 때문에 리칭은 양페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서 엉망이 된 얼굴을 원래대로 만들고는, 서로에게 익숙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리칭은 양페이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으나, 결국 그 남자 때문에 자살을 했다. 이혼한 전 아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맞이하는 양페이의 성격, 그리고 이렇게 별거 아닌 상황에서도 가슴 한 구석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정의 결을 숨겨두는 작가 위화의 노련한 솜씨. 이후 셋 째날, 넷 째날 계속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주로 이런 식이다. 상황은 끔찍하고 비참하지만, 정작 작가의 어조에는 감정적인 부분이 배재 되어 있고, 대사는 우스운데 상황을 그려보면 슬픈, 아이러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셋째 날, 양페이는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슬렁거린다. 이승을 떠나기는 했으나, 매장될 무덤이 없고, 애도해줄 가족도 없는 그였기에 어차피 갈 곳도 없긴 했지만, 화장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아직 이승에서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7일은 사람이 죽고 나서 이승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삶의 풍경을 재구성해볼 수 있는 시공간이다. 이제 이야기는 양페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그가 자라온 시절에 대한 것으로 전개된다. 양페이의 생모는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친정으로 가고 있다, 기차 안 화장실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 리는 기차가 순식간에 탯줄을 잘라버리고, 양페이는 21살 젊은 선로전환공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 양진뱌오는 친부모가 양페이를 기차 바퀴에 치여 죽이려고 철길에 버렸다고 믿고, 그를 각별히 아낀다. 하지만 그 덕분에 겨우 이십 대였던 양진뱌오는 결혼은커녕 여자 친구도 사귈 수가 없었다. 딱 한번 결혼까지 얘기가 진행되었던 적이 있지만, 결국 그는 어린 양페이를 버릴 수가 없어 결혼을 포기하고 아들을 선택한다. 자신의 핏줄도 아닌 양페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다. 그저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 어떤 이해를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넷째 날, 다섯 째 날이 이어지면서 죽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 영아 시체를 의료 쓰레기로 취급하는 병원, 정부의 강제 철거 피해자들의 시위 등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 문제들이 치밀한 현실 묘사로 드러난다. 세상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들, 가진 자들에게 핍박 받던 사람들, 가족이 없어 죽고 난 뒤 상장도 스스로 달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여진다. 우중충하고 비참한 얘기라 어둡지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지만, 위화는 독자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매 장면 공을 들인다. 경찰의 가혹 행위에 대해 ‘내 불알을 돌려달라’ 며 항의하는 시위, 자살 소동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이상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 진품이 아닌 짝퉁 아이폰4S를 생일 선물로 받고 투신자살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 등은 씁쓸하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작가의 낙천 성이 이런 따뜻한 유머를 통해서 인간의 비극을 마치 희극처럼 그려내고 있다.
"저곳에는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어.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어.... 저기 사람들은 전부 죽었고 평등해."
"저곳은 어떤 곳인가요?"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
이 작품은 양페이가 겪는 7일의 시간을 통해 '생과 사'라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서러움과 슬픔, 억울함과 분노, 만남과 헤어짐, 부당함과 이기심, 이런 감정들은 모두 죽고 나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감정들이지 않나.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아이러니와 인생의 진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작품인 것 같다. 작가가 인물에 대해 너무 '아는 척'하거나, 감정에 취해 '연민의 시선' 으로 바라볼 때, 독자들은 오히려 감정 이입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위화처럼 담담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보여줄 때 오히려 페이지 마다 푹 젖어 있는 감정의 기폭에 따라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죽은 뒤에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수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새삼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