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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평점 :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손자가 고삐를 잡은 마상에 앉아서 이 힘든 여행이 훗날 손자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상상해보며 부디 사랑 받은 기억이 되기를 빌었다
요 며칠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더니, 월요일 아침부터 완전 넉 다운된 기분이다. 소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이면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곤 하니 말이다. 마음 상태가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는 컨디션이다 보니, 잘못 말을 거는 누구에게든 본의 아니게 날카롭게 대꾸를 한다거나, 퉁명스럽게 반응을 보인다거나 하게 되고 말았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일들인데, 이런 소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내가 억지를 부리거나 트집을 잡은 건 아니므로, 상대방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바깥으로 화를 표출하다 보면 결국 내 속이 더 불편하고, 답답해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뾰족해진 나를 감싸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수수한 이야기 속에 번지는 유머와 따스함이 화난 내 표정까지 누그러들게 만들었다고 할까. '조금만 너그러워지면 결국 네 속이 편하지 않겠냐'고 웃는 얼굴의 박완서 선생님이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고 할까.
2010년에 마지막으로 발표하셨던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었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돌아가신 지 이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박완서 선생님의 미발표 글을 볼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어쩌면 행운이다. 이 작품집은 2000년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 집에서 쓰신 글의 모음으로, 짧은 단편들은 그 길이와 상관없이 깊이 있고, 따스하고, 예리하면서도 여유롭다. 특히나 글들 사이사이에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글의 맛을 더해주는데, 글과 그림이 더해져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가슴 뭉클하다. 구구절절 감상을 적기 보다는, 너무 예쁘고도 마음 아픈 단편 하나라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이 작품의 읽어보고 싶게 만들 것 같다. 짧은 단편이니 글의 맛과 그려지는 풍경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별안간 허방을 밟은 것처럼 비참의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평생 제 입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거늘 이제 와서 웬 지옥 불 같은 증오란 말인가. 하긴 저 영감이 무슨 잘못이람. 아들을 저따위로 키운 시어머니 탓을 하다가, 난 또 뭔가. 내가 저 영감을 저렇게 길들인 걸. 자신을 다독거렸다가, 그래봤댔자 남는 건 허망감 밖에 없다. 한바탕 허망감이 휩쓸고 지나가면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입술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빗장처럼 무겁게 닫힌다.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십여 년을 해로하면서 어찌 좋은 날만 있었겠는가. 툭하면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뒤끝이 없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헤헤거리기도 잘하는 마누라였다. 그래 버릇해서 영감님은 한 번도 마누라가 왜 토라졌는지 그 근본 원인을 캐 들어간 적이 없다.
마나님의 토라짐도, 영감님의 서글픔도 그냥 다 이해가 될 것만 같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처럼도 보이고, 이 상황은 지금 우리 세대의 이야기에 대입시켜보아도 공감이 충분히 된다. 게다가 <마음이 그들먹했다. 허방을 밟은 것처럼. 뼈에는 숭숭 구멍이 뚫리고> 이런 단어들, 표현들은 너무나도 정겨우면서도 감정의 결을 미세하게 포착하게 만들어준다. 마나님은 비싼 굴비를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귀한 것을 나누어 먹는 그 마음씀씀이를 바랐기에 서운했던 것이고, 영감님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머를 잊지 않는다. '살을 어찌나 알뜰하게 발라먹었는지 머리와 꼬리를 잇는 등뼈의 가시가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라는 표현에선 피식 웃게 만들고 만다.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모르는 영감님이, 그나마 자신있었던 화해의 방법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대목에선 마음이 싸해지고 먹먹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어린아이처럼 되고, 젊을 때 남편의 눈치만 보던 아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사소한 부부간의 투닥 거림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쓸쓸함으로 이어진다.
살다 보면 참 바쁜 일도 많고, 기분이 상하는 일도 많다. 왜 이렇게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고, 왜 이렇게 짜증나는 일 투성이고.. 그럴 때 한번 멈추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이 작품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네 마음이 바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바쁜 것인지, 네 마음이 화가 나서 그런 마음의 형태대로 보이는 세상에 기분이 상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유를 가진다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생각대로 쉬운 것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좀 멀리 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을 한다. 뾰쪽한 내 마음을 감싸주는 따듯함이 페이지마다 그득해서 괜시리 가슴이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