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한파가 몰아치는 해변가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벌거벗은 남자가 깨어난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는, 비어있는 BMW안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찾아 입고, 대니얼 헤이스라는 이름의 차량등록증을 발견한다. 우선 그는 그 차량등록증에 적힌 주소에 찾아보기로 한다. 그는 집에 도착해서야 자신이 드라마 <캔디 걸스>의 베스트 각본상을 받은 대니얼 헤이스라는 작가이며, TV 속에 등장하는 유명 여배우 레이니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가 차량 전복 사고로 실종된 상태이고, 그녀의 죽음에 관한 추측 성 보도는 바로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해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경찰이 그를 쫓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나자, 그는 당황스럽다. 자신이 정말 아내 레이니를 죽였는지는 커녕, 대체 그들 부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라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는데, 무작정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 사람이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진행이 된다. 대니얼 헤이스의 실체, 그러니까 기억을 잃은 채로 해변에서 깨어난 남자에 대한 정체를 밝히고 기억을 되찾는 것과 나머지는 죽은 아내에 대한 사건의 진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에 대한 추적의 스토리이다. 그리고 대니얼 헤이스라는 중신 인물 외에 그를 찾아 다니는 정체 불명의 여인과 베넷이라는 악당이 있고, 그를 쫓는 경찰이 있다. 이들 관계는 그야말로 얽히고 설킨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그물을 만들어, 스토리를 구축한다. 사실 '기억상실증'과 관련된 숱한 작품들이 기존에 있었기 때문에, 설정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특별할 만한 게 없다. 육체적인 충격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정신적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경우도 실제로 벌어지곤 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살인을 저질렀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그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진 그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하는 행동, 할 수 있는 태도가 결국 자기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기억상실'을 소재로 진행되는 스토리에서는 주인공이 잊어버리고 있는 과거에 대한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 된다. 그러니까, 현재보다는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모든 사건을 해결할 키가 되고, 그것이 주요 스토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무래도 과거보다는 '현재'에 방점이 있다 하겠다. 작가는 인물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과거에 네가 뭘 어떻게 했든지, 지금 현재의 너 자신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네가 기억을 하든 못하든, 과거에 네가 내린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고, 스스로 자초한 일에 대해서 벌어지는 결과는 네 몫이야. 지금의 모습은 지난 날 네 선택의 산물이니까. 라고 말이다. 아니,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한테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만큼. 작가가 인물에게 연민을 가지지 않고 그려낼수록 독자는 인물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다. 게다가 어른스러운(?) 우리의 대니얼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이 억울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바로 그 태도가, 이 작품을 여타의 작품과는 다른 차별성을 만들어준다.

 

넌 네가 되고자 선택한 사람이야. 네가 내린 결정에 따라 살 수 있다는 걸 확신해야 해.

 

경찰, 기자들을 포함해 네티즌들은, 아내가 살해된 경우 열에 아홉은 남편이 개입되어 있다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남편이 아내가 죽자 마자 어디론가 사라졌을 경우에, 그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니얼은 쫓기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열에 아홉이라면, 그럼 나머지 하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거냐고. 여기서 또 이 작품의 특별한 재미가 드러난다. 대니얼은 히트 드라마를 써낸, 그 작품으로 베스트 각본상까지 받은 드라마 작가이다.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쫓으면서, 혹은 추측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 왜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르지? 살인사건의 원인이야 항상 '사랑' ''이다. 그는 레이니가 샀다는 보석을 기점으로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 보기 시작하고, 그를 쫓는 두 명의 남녀와 만나면서 스토리는 점점 그들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알려준다. 대니얼은 그 과정에서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스토리를 상상해서 키보드로 단어를 타이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가 작가라는 설정은, 현재 대니얼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특별한 재미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작품에는 중간중간 드라마 대본 형식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그래서 극중극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 덕분에 이 작품이 조금 더 입체감 있게 느껴진다고 할까. 덕분에 대니얼과 레이니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실제 이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생명력을 발한다. 대본은 소설과 다르게,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지도같은 역할을 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고, 행동을 묘사하는 게 소설이라면, 대본은 인물이 행동할 수 있게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지문은 심플하지만 구체적이어야 하고, 대사는 감정이 아니라 말을 내뱉어야 한다. 상당히 다른 표현방식이라는 말이다. 마커스 세이키가 확실히 영상화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이, 중간중간 보여지는 대본 형식의 장면 연출 또한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2의 데니스 루헤인으로 불리 우는 작가인데, 기존에 출간한 네 작품 모두 영화화 계약이 되면서 현재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신인 작가라고 한다. 국내에는 그의 데뷔작인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만 출간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 바로 이 작품은 최근에 밴 애플렉에게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밴 애플렉이 감독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기에, 이 작품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도 기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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