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추상화 같은 무대장치가 스르르 위로 올라가자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타난 것 같았다. 세밀하게 그린 구상화. 가즈히코는 안개를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등진 은둔자도 아닌 것이다. 때로는 작업복을 입고 일할지도 모르는 가즈히코의 배경에 보이는 그림은 어딘지 칙칙한 색조였다. 비가 오는 날의 광경을 그린 것같이 탁하고 가라앉은 색조의 그림. 녹슨 철의 쇳내가 풍겨온다.            p.75~76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의 평범한 듯 그렇지 않은 연애 이야기를 그린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 너무 좋았기에, 이번 작품 역시 두근거리며 읽었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기가 막힌 직유와 비유를 들어가며 표현하는 묘사들과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로 인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이다. 이번 작품 역시 어떤 극적인 사건 진행도 없지만,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리듬감있는 묘사가 평범한 서사를 근사한 풍경화처럼 만들어주는 작품이었다. 


삼십대 중반의 게이코는 도쿄의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시절 잠깐 살았던 작은 마을 안치나이에서 우편배달부 일을 시작한다. 비정규직인데다 도쿄에서 받았던 월급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지만, 시골의 자연 속에서, 그날그날 끝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만족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잔잔한 일상이 계속되고, 우연히 알게 된 한 남자와 가까워진다. 작은 수력발전소를 관리하며 소리를 채집하는 취미를 가진 그와의 연애는 갑작스럽게 시작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삼십대의 연애라 그런지 쉽게 익숙해지고 편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설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한 모호함의 가운데서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서로 못 본 척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억눌러온 것이 둑이 무너진 듯 흘러 넘치며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가즈히코와의 관계는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왜 이어지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려고 하면 게이코는 늘 스위치를 켠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자기 집에서는 물론, 가즈히코네 집에서도 부엌에 서서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부엌칼을 쓰고 불을 쓰고 기름을 쓰는 것은 눈앞의 식자재에 커다란 변화를 주는 일이다. 식자재는 원래의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냄새를 풍긴다... 주말마다 만나는 관계를 그만둬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게이코의 바깥쪽에도 안쪽에도 있었다.              p.157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더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아마도 연애가 아닐까.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만큼이나, 되돌리고 싶은 실수와 후회되는 순간들과 어쩔 수 없이 구차해져야 했던 시간들을 쌓아 가면서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 속 게이코와 가즈히코와의 관계도 항상 즐겁고 설렐 수만은 없다. 과거를 묻는 게이코에게 가즈히코는 왜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을 일일이 전부 생각해내서 하나도 남김없이 말해야 하느냐고, 그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여서는 안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게이코는 지금 이 순간이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일도 다 알고 싶다고, 지금이라는 것은 경험과 기억 위에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삼십대가 되어서 만났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현실 속 우리의 연애처럼 말이다. 


마쓰이에 마사시가 포착해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슬픔과 기쁨과 아픔들이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상 속에 숨겨진 미묘한 감정들을 세심하게 포착해 오감을 깨우는 어른의 연애를 보여준다. 서사를 완성시켜주는 것은 구름의 움직임과 물의 흐름, 무성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흩날리는 눈, 그리고 푸른 하늘의 농도와 벌레 울음소리, 햇살의 강렬함이다. 덕분에 작가가 구축해낸 가상의 도시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극중 게이코가 가즈히코와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이 그가 모은 음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눈앞에 그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였다. 해달 무리가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조개를 깨는 음,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교회 종의 음, 땅울림을 내면서 분화하는 아이슬란드의 화산음 등... 다양한 소리들이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각의 리얼한 광경이 냄새와 습도, 기온과 바람, 진동까지 수반하면서 눈앞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체감되는 묘사였다.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짧은 분량임에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맞은 자부심 - 상실감, 수치심 그리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종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물질 경제뿐만 아니라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자부심 경제' 속에서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부심과 수치심은 언제나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뿌리는 더 넓은 사회적 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양한 자부심의 기반을 발견했다. 지역적 자부심, 직업윤리에 대한 자부심, 아웃사이더로서의 자부심, 회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인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p.28~29


이 책의 저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감정노동'을 최초로 개념화한 '감정사회학'의 선구자이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감정노동>이란 책에서 그는 감정이라는 개인적인 행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했었다. 이번에 그는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미국 정치를 뒤흔들었는지 탐구한다.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이 사라지고, 실제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상실감과 수치심이 정치인들이 캐내려는 '광석'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실감과 수치심을 정치적 서사로 이용한 결과는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하나의 주장이 강렬한 전류처럼 미국 우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겉보기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했고, 그 거짓을 한 가지 진실과 결합했다. 바로 '잃어버린 자부심'이라는 진실이었다. 덕분에 그는 지지자들과 강하게 결속했고 심지어 하나가 됐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도둑맞은 것'으로 바뀌면서 수치심도 차츰 비난으로 바뀌었다. 2019년 무렵 증오 범죄와 증오 발언이 급증했던 이유에 대해 대다수의 미국인이 "정치인들이 조장하거나 부추겼기 때문"이라며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고 답했다. 분노의 이면에 '정치를 움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부심과 수치심의 이야기 아래에 어떠한 보상도 애도도 받지 못한 끔찍한 상실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졌고 그 장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연처럼 겹친 상실 속에서 수치심은 자부심의 역설 속으로, 마치 문화적 분쇄기에 고기를 집어넣듯 밀어 넣어졌다. 강한 자부심의 문화와 개인주의 윤리가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에서 '성공하면 내 공, 실패해도 내 잘못'이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 그 고통스러운 결과는 수치심일 수밖에 없다. 지역 사회의 몰락은 개인의 수치심으로 전이되고 이는 다른 형태의 수치심까지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다. 수치심은 가장 자주 겪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p.333


저자는 애팔래치아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남성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 지역은 미국에서 백인 비율이 가장 높고 두 번째로 가난한 선거구에 속했는데, 중도적 정치의 중심지에서 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대표적인 보수 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저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대인 난민, 무슬림 이민자 출신 의사, 주지사, 시장, 사업가, 교사, 정원사, 예술가, 중범죄자, 마약 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과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위에서 아래까지, 좌에서 우까지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전 세계적인 우경화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정적인 기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감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 대해 '문화적,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경청의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는지,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어떻게 '도둑맞았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전환되는지, 자부심과 수치심은 사회와 정치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념'이 아니라 '감정'에 집중한 것도 흥미로웠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7년에 걸친 심층 취재의 결과 답게 새롭게 부상한 우파의 도덕과 정치 심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 ‘2024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뽑은 ‘2024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리고 했는데, 그만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는 것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와 우경화 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경제적 박탈감과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고 있는 요즘, 이념보다 빠르게 확산하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 명아루 : 폐가 괴물 사건 - 제1회 셜록 홈즈상 대상 수상작 THE 미스터리
배연우 지음, 불키드 그림 / 비룡소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루가 무섭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궁금했다.

"알지 못하니까 무서워해. 그리고 무언가를 신비롭다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다르게 말하면, 무언가를 알게 되면 더는 신비하지도 무섭지도 않아져. 그런데 너는 지금 무언가를 무서워하는 것이 무서워서, 알려고 하지 않고 있어."             p.46


오컬트와 호러를 좋아하는 서하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하준이는 단짝 친구이다. 점심시간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면 서하는 교실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모아 불 꺼진 교실에서 괴담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오늘의 괴담은 학교 뒷산에 있는 폐가에 대한 거였다. 학교를 둘러싼 담장 너머에 큼직한 언덕이 있었는데, 그 중간에 방 두 칸은 겨우 있을까 싶은 크기의 작은 폐가가 있었다. 학교 담장과 나무 사이로 언뜻 보면 귀신이 튀어나올 듯 음침한 곳이었다. 바로 그 폐가에 인간이 아닌 뭔가가 살고 있다는 거였다. 근처 중학교를 다니는 한 언니가 용기를 내 폐가에 가 보기로 했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좀비도 귀신도 거미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괴물이었다는데, 폐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학교 주변에 오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하가 말한 괴담을 비롯해 학교 연못의 물고기들이 다 죽는 일도 있었던 거다. 어느 날부턴가 학교 연못에서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나더니 물고기들이 죽어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연못에 파란 천이 덮여있는 상태인데, 이러다 연못을 아예 메워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참이다. 그러던 중 서하의 사물함에서 '인형'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저주를 막아 주는 인형으로 서하가 부적까지 넣어 만든 거였다. 범인을 찾기 위해 하준이는 옆반의 아루를 찾아 간다. 아루는 뭐든지 잘하고 모난 데 없이 똑똑한 모범생이었는데, 학교에서 '탐정'이라 불리고 있었다. 과연 아루는 범인을 찾고, 서하의 저주 인형을 찾을 수 있을까. 




"귀신을 믿지는 않아."

그 말에 서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런 와중에도 하준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장 서하와 몇 년을 함께 한 자신도 귀신이나 서하가 말하는 이야기를 전부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귀신이 없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알아. 귀신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귀신이나 괴물의 짓이 아니라고 밝힐 수 있는 일은 밝히고 싶어."             p.67


비룡소의 어린이를 위한 추리소설 시리즈 ‘더 미스터리', 그 첫 번째 책이다. 제1회 셜록 홈즈상 수상작인 <탐정 명아루>와 제2회 스토리킹 본심작 <행운음원>이 함께 출간되었다. 두 작품 중에 만나보게 된 것은 오컬트와 본격 미스터리를 결합한 <탐정 명아루>이다. 이 작품은 “괴이한 일이 탐정의 논리로 해결되는,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을 잘 살린 모범적인 작품.”이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으며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공계생인 작가는 일본 추리 소설가 아야츠지 유키토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본격 미스터리 붐을 꿈꾸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본격 미스터리 작품도 언젠가 써주시길 고대한다. 


이 작품에는 항상 탐정 수첩을 들고 다니며 관찰하고, 교내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해결하며 '탐정'이라 불리는 명아루를 비롯해 사건을 의뢰했다가 그를 도와주게 되어 결국 '조수'가 되는 하준이, 그리고 호러 소설들과 무섭게 생긴 인형, 부적 같은 것들을 사물함에 넣어 두고 다니는 괴담 마니아 서하까지 어린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등장 인물들이 등장한다. 학교 연못의 미스터리, 폐가의 괴물, 사라진 저주 인형... 등 수상 쩍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던 것이 초등학생때 였는데, 당시 미스터리 소설들을 정말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탐정 명아루의 모험은 그 시절 추리 소설을 사랑했던 나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오싹한 괴담, 불길한 징조들과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재미까지...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탐정과 조수가 콤비가 되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이다. 게다가 초등학생을 위한 본격 추리 동화가 '더 미스터리'라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매우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구름이여, 안식을 모르는 구름이여! 나는 철없던 시절부터 구름을 사랑했고 구름을 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 또한 한 점 구름처럼 살아가게 될 줄은, 어디서든 낯선 존재로서 시간과 영원 사이를 둥둥 떠다니며 방랑하게 될 줄은. 어린 시절부터 구름은 나의 사랑스러운 연인이자 누이였다.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린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 시절 구름에서 배운 것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p.21


거장들의 품격 있는 문장과 사유를 소개하는 열림원의 '열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빈센트 반 고흐의 <싱싱한 밀 이삭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모두의 행복>,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에 이어 이번에 나온 것은 헤르만 헤세의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이다. 에세이, 시, 소설, 편지 등 다양한 장르의 글과 사유의 흔적들을 찾아 모으고 엮은 것이 이 시리즈인데, 이번 책은 헤르만 헤세의 산문, 시, 단편 중 ‘구름’을 테마로 삼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사실 헤르만 헤세는 시도 때도 없이 변덕스럽게 변하는 구름의 다채로운 변주에서 많은 영감을 이끌어낸 작가로 유명하다. 초기 작품 <페터 카멘친트>를 여는 유명한 대목 "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어쩌면 헤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만년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와 성찰, 자연 묘사로 구름에 대해 표현하고 해석해 왔다. 이번 책은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모은 것이다. '열다'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열었던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도 헤세의 글을 모은 것이었기에,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요히 움직이고 많은 갈래로 나뉜 이 흐린 하늘이 내 마음의 반영인지, 아니면 내가 내 마음속 이미지를 단순히 이 하늘에서 읽고 있는 것뿐인지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하다! 어떤 날은 지구상의 누구도 공기와 구름의 분위기를, 색조와 향기, 습도의 변화를 나처럼 예민한 시인과 방랑자의 감각으로 정밀하고 섬세하고 충실하게 관찰하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다 오늘 같은 날이면,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실제로 보고 듣고 냄새 맡았는지, 아니면 내가 인지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외부로 향한 내 마음속의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p.91~92


어릴 때는 구름이 솜사탕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자라면서 비행기도 타고, 비행기 창문 너머로 구름을 보기도 하고, 과학 시간에 원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구름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고 꽤나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어딘가에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구름 조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기상 현상이 아주 많지만, 구름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것도 없을 것이다. 매일, 아무때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관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른 여름 하늘과 예쁜 뭉게구름을 보고 있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풍경 속으로 쓱 들어간 듯한 느낌도 든다.


구름은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저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구름은 공간에 실체감을 부여해 텅 비어 있는 하늘을 가득 채워준다. 헤르만 헤세는 구름을 보다 시적인 대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구름은 허공을 뚜렷이 가시화함으로써 공기의 움직임을 더 생생하게 인지하게 해'주고, '지상의 물질로서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물질도 볼 수 없는 저 높은 상공에서 여전히 지상의 물질적인 삶을 이어 간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이 세상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썼다. 구름에 대한 그의 애정이 페이지 곳곳에 묻어나서, 정말 오랜 시간 구름에 대해 사유하고, 관찰하고, 글을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구름의 움직임이 노래가 되고, 언어로 빚어져 시가 되고, 어느 순간 구름의 표정과 몸짓이 눈앞에 고스란히 보이는 듯한 느낌이 되는 그런 책이었다. 헤세의 책은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구름'에 관련된 글만 모아서 한 권이 되니 또 색다른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열다' 시리즈 다음 책에서는 또 어떤 작가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 -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초록빛 공감의 단어
우종영 지음, 조혜란 그림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물학적 방법은 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것입니다. 졸음이 오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면 봄, 꾀꼬리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계곡에 함박꽃이 피면 초여름, 모기가 극성을 떨고 몸이 끈적이면 여름, 찬바람이 불고 단풍이 들면 가을, 곤충들이 사라지고 따듯한 손길이 그리워지면 겨울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지구가 삐딱하게 돌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구가 똑바로 돈다면 어떻게 될지를.                p.143


식물은 광합성을 거쳐 산소를 생성하고, 동물은 이 산소를 사용해 호흡한다. 동시에 동물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식물은 다시 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는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해양 생물의 9퍼센트인 1550여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곧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올 거라고 과학자들은 전망한다. 세계는 지금 온난화로 인한 산불과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했던 날씨와 계절이 사라지고 삶이 위협받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류는 성장에만 몰두할 뿐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 곳을 없애는 것이 결국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책은 자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생태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생, 태, 감, 수, 성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수십 개의 단어들을 묶었고, 그것들을 통해 인간과 다른 생명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그 연결고리를 짚어본다. 감정 이입, 움벨트, 경쟁, 부엔 비비르, 백두대간, 미기후, 상호 의존성, 반려동물, 생태계, 비오톱, 기후 변화, 과학철학, 실수, 희망 등의 단어를 토대로 자연을 잊고 소비와 성장에만 몰두해온 사람들에게 숲의 목소리를 들려 준다. 저자인 수십 년간 나무를 돌보며 그 곁에서 배운 삶의 지혜를 이 책을 통해 들려준다. 30여 년의 시간, 전국 수만 그루의 나무들을 치료해온 나무의사이자 자연이 전하는 삶의 가르침을 담담하고 우직한 태도로 기록해온 작가로서 자연을 공부하며 그러모은 수십 개의 생태단어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을 일깨워준다.




내 몸에 타인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것은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생태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면 우선 우리가 사는 생태계 내에서의 상호 의존성과 연결망을 이해해야 합니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서로의 건강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순환은 생태계 내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며 생명체 간의 복잡한 교류를 통해 유지됩니다.              p.274


저자는 말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의 역습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찾으려면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가 사는 곳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태감수성도 피어날 거라고 말이다. 생태감수성을 올리려면 우선 일상에서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산책이나 캠핑, 텃밭 가꾸기처럼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거나 집 안에 작은 화분을 들이거나 화단을 만들어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을 직접 재배해보자. 식물들의 생태를 알아가다 보면 생태감수성이 쑥쑥 올라가며 식물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생태감수성이란 생태계가 환경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구의 생태계뿐 아니라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하지만 생태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생태계를 위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노력한다. 


나무는 공기를 정화하고 물을 가두며 흙을 움켜쥐고 모든 생명을 보듬는다. 따라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나무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이 책을 말한다. 그러나 나무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무는 불평하지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며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떠올랐다. 나무가 사랑하는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며 행복해하다, 더 이상 줄 게 없을 만큼 세월이 지난 뒤 자신의 나무 밑동울 내어 주며 쉴 수 있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의 참된 가치, 진정한 사랑과 베품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지만, 실제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무는 인간과 늘 공존해왔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왔다. 인류 문화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무와 숲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무지를 일깨워 왔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의 지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나무에게 지혜를 구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생태감수성을 일깨워 주고, 나무와 생물들에게도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