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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트럭을 몰고 시내를 지나는 동안 그들에게 기묘한 느낌이 엄습했다. 마치 유령처럼 초현실적인 빛으로 둘러싸인 산페르난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이 불타고 남은 잔해를 보는 것처럼, 부서지고 훼손된 익숙했던 건축물을 보는 것처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미리암이 계속해서 질문했다. “도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이런 일을 막지 않는 거지?” p.36
2014년 1월, 멕시코 산페르난도 지역을 장악한 마약 카르텔 세타스 일당이 카렌을 납치했다. 미리암 가족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을 비롯해 세타스의 모든 지시에 따랐지만, 카렌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는 탄원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던 미리암은 딸을 납치하는 데 연루된 놈들을 전부 찾아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2년, 아마추어 수사관으로서 두려움을 모르는 데다 집요했던 미리암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다. 4명은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고, 6명은 멕시코 해병대에 습격당해 죽었다. 그런데 영화나 소설도 아니고,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냐고?
그럼에도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논픽션이다. 어떻게 56세의 평범한 멕시코 여성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엄마가 딸을 납치한 범인들을 직접 추적하는 동안 국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멕시코와 미국 텍사스주를 잇는 국경 다리에서 미리암이 납치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플로리스트’를 뒤쫓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하고 야구 모자를 눌러 쓴 미리암은 38구경 권총을 장전한 채 범인 가운데 한 명을 쫓고 있었다. 사실 세타스는 지하경제를 장악할 목적으로 마약 밀수, 밀입국, 몸값을 노린 납치 등의 범죄를 자행하며 멕시코 10여 개 주에 폭력의 상흔을 남겼다. 미리암이 나서게 된 것도 딸인 카렌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실종자들의 가족을 위해 반드시 직접 복수하고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마음먹은 거였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이 촉발한 혼란에 제대로 맞서지도, 상황을 해결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정부가 손놓고 있는 동안, 힘없는 시민들만 유린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암은 절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만큼 슬픈 이야기가 넘쳐났다. 충격적인 사건조차 사회적으로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지경이었다. 일이 돌아가도록 하려면 절망에서 목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했다. 절망을 무기로 제도에 맞설 방법을 찾고, 슬픔 속에서도 수완을 발휘해야 했다... 미리암은 슬픔에 빠진 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을 그만두고 답을 구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투쟁을 정부에서 개입할 문제로 만듦으로써 무관심이라는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p.201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의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저자는 4년간 관련 인물들을 수백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사건 기록을 수집하고, 마약 카르텔의 계보를 되짚으며 미리암의 영웅적 삶과 폭력으로 얼룩진 멕시코의 현대사가 교차하는 “장대하고 치밀한 르포르타주”를 완성시켰다. 범인을 직접 추적하는 엄마의 일대기이자 마약 카르텔에 의해 멕시코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묘사한 범죄 르포르타주인 이 작품은 멕시코 사회의 여러 모순을 상징하는 초상화로 그려낸다. 힘없는 여성이, 피해자 가족이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 조직원과 스스로 맞서는 과정은 놀라웠고,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지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와 공권력은 뭘하고 있었던 건지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권력과 조직범죄의 오랜 유착관계를 파헤치고, 정부가 조직범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권력이 된 폭력 앞에서 끝내 굴하지 않은 용기는 비현실적이지만, 단순히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로 가는 전환점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리암은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더는 두려워할 필요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도망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시당하기 십상이지만 단체를 조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피해자 가족 단체의 회원수가 늘면 개인적 비극은 사회적 위기가 되고, 위기감을 키우는 것만이 정부의 행동을 촉구할 유일한 길이라고 강변했다. 그녀는 그렇게 불의에 맞섰고, 정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유도했고,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자, 웬만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한 엄마의 비범한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