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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인류는 지구 육지의 표면을 3분의 1도 넘게 변화시켜 왔다. 우리는 다른 육상생물이 순환시키는 질소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질소를 순환시키며 지금까지 지구의 강 셋 가운데 둘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우리 종은 지금껏 살았던 어떤 대형 종보다도 100배나 더 많은 생물자원을 사용한다. 우리가 키우는 어마어마한 가축 떼를 포함시키면, 우리는 육상 척추 동물 생물자원을 98퍼센트도 넘게 차지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지구상에서 생태적으로 우세한 종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에는 답을 주지 않는다. 왜 우리일까? 무엇이 우리 종의 생태적 우세함을 설명해줄까? 우리가 성공한 비밀은 무엇일까? p.38
만약 인간 50명과 꼬리감는원숭이 50마리를 데리고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두 영장류 팀은 낙하산을 타고 중앙아프리카의 외딴 열대림에 도착한다. 그리고 2년 뒤에 생존자가 더 많은 팀이 이기는 것이다. 당연히 그 어떤 장비도, 물건도 허용되지 않는다. 생소한 밀림 환경에서 2년 동안 누가 더 살아남기에 유리할까. 객관적으로 판단하건데, 인간 팀이 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 종이 진화한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수렵채취인으로 살아남는 데에도 쓸모가 없다면, 대체 우리의 커다란 뇌는 무엇에 쓰자는 것일까. 우리 종이 이처럼 번영할 수 있었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실 인간은 몸집과 식성이 비슷한 다른 포유류에 비해 몸도 약하고, 느린데다, 힘도 없다. 독성 식물을 해독하는 능력도 없으며, 구별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엄청나게 큰 뇌에도 불구하고 선천적으로 영리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재의 인류는 생존에 성공하고, 지구상의 지배종이 된 것일까.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조지프 헨릭 교수는 그에 대한 의문에 대해 인류학과 생물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탐구한 결과를 이 책으로 보여준다. 그는 우리 종이 성공한 비밀이 우리 개개인이 지닌 마음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집단두뇌에 있다고 말한다. 집단두뇌는 우리의 문화적 본성과 사회적 본성의 통합에서 생겨나는데, 우리 종의 혁신이 지능보다 사회성에 더 의존한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많은 실험과 사례들을 통해 얻어낸 결론은 인간이 먹을 것과 쉴 곳을 찾아내는 본능적 능력에 의해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국지적 환경의 난관에 대해 '즉흥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개인적 역량에 의해 살아남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이른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문화적 진화의 선택 과정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구, 관행, 기법을 포함한 문화적 적응물의 묶음들을 조립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 문화적 적응물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왜 인간은 다른가’에 대한 답은, ‘우리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문화적 진화가 누적적이었고, 그런 다음 이 축적되고 있는 정보 덩어리와 그것의 문화적 산물 모두가, 불과 식량 공유 규범처럼, 인간의 유전적 진화에서 중심적인 추동력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이토록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다른 어떤 현생 동물도 이 길을 밟지 않았고, 이 길을 밟았던 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그랬듯 우리 종이 여러 번에 걸쳐 확장하던 어느 한 기간에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독특함을 이해하는 핵심은 그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있으며, 그 과정의 특정 산물인 언어, 협력, 도구 따위를 강조하는 데에 있지 않다. p.478~479
이 책은 <위어드>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조지프 헨릭 교수의 신작이다. 최재천 교수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를 잇는 책이라고 극찬했던 <위어드>는 ‘WEIRD’ 라는 5가지 키워드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진화론을 파헤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진 위어드라는 집단에 대한 설정도 인상적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신작도 기대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국내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먼저 소개되었고, 이번에 새로운 옷으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분량이 꽤 많은 편이기에, 튼튼한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내구성도 좋고, <위어드>와 시리즈처럼 같은 판형으로 출간되어 더 마음에 든다.
<호모 사피엔스>의 추천평은 정재승 교수가 썼는데, 이 책이 KAIST 융합인재학부의 필독서 중 하나라고 한다. 언젠가 방송에서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KAIST 융합인재학부는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인간, 사회, 우주, 생명, 테크놀로지, 예술 등 여섯 개 분야에서 100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여섯 학기 동안 진행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그 100권의 리스트 에서 학생들이 가장 즐기는 책 중 하나이며, 수업에서도 가장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저작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럴 만도 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과 인류학, 심리학과 뇌과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인류 문명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책이니 말이다. 물론 내용이 결코 쉽지 않으며, 분량 또한 수월하게 읽을 만하지는 않지만 책장에 두고두고 함께하며 시도 때도 없이 꺼내 읽어야 할 명저임에는 분명하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 생물학, 문화, 유전자, 역사가 서로 얽혀 있는 방식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오늘날 인간의 삶과 사회를 이해하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이 궁금하다면, 인간의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탐구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