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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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명. 애정의 입을 통해 처음 들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말이 지금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견은 한 종사관을 끌어내릴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그 단어를 입에 올렸다. 한때는 너무 어려 이해하지 못했던 단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박혔고, 시간이 흐르며 무슨 뜻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감춰진 진실. 피해자가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 부조리. 찢어내야 할 거짓과 오해의 장막. 누명. 날카로운 가시처럼 목구멍에 파고드는 이 두 글자는 아무리 침을 삼켜도 내려가지 않았다.               p.151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벽 근처에서 젊은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장신구로 달고 다니던 자신의 은장도에 찔려 죽었다. 신분패를 확인하니 오 판서 대감의 딸로 이제 열아홉밖에 되지 않은 여인이었다. 유교의 법도에 따라 여성 범죄자를 체포하거나 여성 피해자를 검시하는 역할은 남자가 할 수 없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한성부 포도청 소속 다모였다. 노비 신분인 열여섯 '설'은 포도청 다모로 종사관을 도와 사건 수사를 돕는다. 수사 과정 중에 피해자의 몸종이 도망쳐 인왕산으로 횃불을 든 관원들과 함께 설은 수색에 나서게 된다. 인왕산이라면 백호가 산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설에게 공포의 장소였다. 그리고 실제로 호랑이와 마주하게 된다. 


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개울 반대쪽에 한쪽 소매가 피로 물든 한 종사관이 서 있었고, 바로 몇 발짝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거다. 덩치가 사람만한 그 놈은 발이 솥뚜껑 같고 발톱은 날카로웠으며 가슴으로부터 깊은 으르렁 소리가 울렸다. 말은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져 몸부림치고 있었고, 그 뒤에 도망친 몸종이 웅크리고 있었다. 당장 호랑이를 겨눠야 했다. 설은 머뭇거리든 포졸 견을 대신해 망설임 없이 단번에 표적을 겨냥해 활을 쏜다.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호랑이의 몸통으로 날아가 퍽 꽂혔고, 놈이 내지른 포효에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고 일어나며 설을 허공에 던져버린다. 설은 그대로 정신을 잃게 되지만, 한 종사관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로 사건이 해결되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쌓여가는 증거가 가리키는 범인은 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과연 진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세 개의 획으로 이루어진 모음은 구분하기 쉬웠다. 가로선은 평평한 땅, 점은 하늘의 태양, 세로선은 똑바로 선 인간을 상징했다. 땅, 태양, 인간. 이 세 가지를 더한 것이 인생이라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거짓과 기만의 실로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그 실을 따라가 한 종사관의 근본에 이르면 나는 어떤 진실을 보게 될까? 그가 마음 한가운데 품고 있는 진실도 가장 흔한 살인 동기인 욕정, 탐욕, 복수심, 이 세 가지처럼 단순할까?              p.295


설은 호기심이 넘치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며,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가졌다. 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하지만 1800년 조선이라는 시대는 어린 여자 노비인 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무시와 면박을 당할 때마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나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고난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설’뿐만 아니라 세상에 노비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며 하인에게 글 읽는 법을 알려준 ‘오 소저’, 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고 기꺼이 손을 내미는 ‘우림’, 두렵다는 이유로 선행을 포기하지 말라며 남장을 한 채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는 ‘강씨 부인’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서사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왕이 승하한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소녀 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사라진 소녀들의 숲>으로 만났던 허주은 작가의 신작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에서 자란 작가가 15세기 초 조선을 배경으로 쓴 역사 미스터리라는 점으로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전작들처럼 이번 작품 역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작품이다. 이민진 <파친코>,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등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에서 먼저 호평을 받고 나서 국내로 소개되면서 허주은 작가의 작품들도 국내에 꽤 많이 소개가 되었다. 벌써 네 번째 작품이니 말이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 세종 대까지 존재했던 공녀 제도를 중심으로 가부장 시대 조선 여성들의 삶을 그렸고,  <붉은 궁>은 조선시대 영조 치하의 궁궐을 배경으로 의녀를 주인공으로 미스터리와 로맨스를 함께 보여주었다. <늑대 사이의 학>에서는 조선 시대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반정을 배경으로 불의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담았고, 이번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에선 1800년 정조 사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된 조선을 배경으로 여성 수사관 다모가 사건의 비밀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뛰어난 가독성으로 책을 읽는 내내 우리를 조선 후기의 시간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여섯 소녀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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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5 - 레 미제라블 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5
박성일 그림, 김난영 스토리 / 주니어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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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김영하 작가와 함께 세계 문학 작품 속으로 들어가 명작의 교훈과 가치를 느끼고 현재의 관점에서 명작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신개념 학습만화이다.


<셜록 홈즈의 모험>을 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오만과 편견>, <지킬 박사와 하이드/프랑켄슈타인>, <빨간 머리 앤>에 이어 이번에는 <레 미제라블>이다. 김영하 작가와 함께 엄선한 세계 문학 작품들이 계속 이어질 예정인데, 다음 이야기는 <15소년 표류기>라고 하니 또한 기대가 된다. 




사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총5권으로 나왔을 만큼 분량이 엄청난 걸로도 유명하다. 성인 독자가 완독하기에도 부담스러운 분량이라,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먼저 접하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성공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다.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는 청년 장 발장은 벌써 일주일째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였다. 그는 굶주리는 누나와 일곱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19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처음 그에게 선고된 것은 5년의 노역형이었지만, 네 번 탈옥하려다 실패해서 결국 형량이 19년이 된 것이다. 이후 출소했지만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혀 일할 곳도, 하룻밤 머물 곳도 찾기 힘든 상태였다. 그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준 미리엘 신부의 은그릇을 훔쳐 다시 잡히고 말지만, 신부는 그런 장 발장을 용서하고 은그릇을 자신이 준 선물이라고 말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앞으로 정직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어 달라는 신부 덕분에 장 발장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더 흐른 뒤, 사업가에서 시장이 된 장발장을 비롯해 배고픔과 학대 속에서 자란 코제트, 자식을 위해 이와 머리카락까지 판 여성 노동자 팡틴, 법 수호에 목숨을 걸고 장 발장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 경찰 자베르, 코제트와 사랑에 빠지는 청년 마리우스, 여관을 운영하는 악랄한 성격의 테나르디에 부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김영하 작가와 문학부 친구들이 가상 현실 시스템을 작동해 명작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컨셉으로 진행이 된다. 정직한과 조아라를 비롯해 작가 X를 찾아 미래에서 온 로봇 김영일, 나희재까지 이들 문학부는 <레 미제라블>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작품 속 캐릭터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면 페널티를 받게 되고,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 카드를 획득하면 프로그램이 종료되어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위대한 세계 문학 작품들을 만화로 풀어내어 부답없이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중간 중간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습 정보, 그리고 문학 작품과 작가에 대한 추가 정보도 수록되어 있고, 다 읽고 나면 마지막에 '김영하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를 통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작품 해설도 수록되어 있다. 작품의 이야기 배경이었던 프랑스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레 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이 주는 감동과 교훈에 대해서 김영하 작가의 해설을 읽다 보면 내용이 잘 정리되는 느낌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문학부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미리엘 주교 집 찾기, 알맞은 대사 넣기, 숨은그림찾기, 다른 그림 찾기 등 재미있는 놀이로 머리를 쉬게 해줄 수도 있다. 작품과 관련있는 내용으로 꾸며 더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세계 문학의 가치를 찾아내는 재미를 독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실물 가치 카드를 부록으로 받아볼 수 있으니, 수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세계 역사의 중요 사건인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되고, 빅토리 위고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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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빼앗는 사회 -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한국 사회 실패 탐구 보고서
안혜정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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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엇이 실패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의 기준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는 전제와 맥락이 생략되어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지, 어떤 시간적 프레임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나 경연 등에서는 실패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그 외의 맥락에서 우리가 실패라 여기는 많은 일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때로 상대적이며, 나중에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패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p.67~68


우리는 유독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이는 경쟁적 입시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획일화된 성공 경로를 따르며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패를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결과와 성공만 중시하며 실패를 부정하고 숨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패에서 배울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학교 안팎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것이다.  사실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실패연구소가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한 것은 일상 속 실패를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거였다. 실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포토보이스' 사진들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카이스트 학생은 어떤 실패를 경험할까? 부서진 실험 도구, 밤새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기계, 오류로 기괴한 결과물을 산출하는 프로그램 등 그저 보기만 해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포켓몬 초코빵에서 안 귀여운 스티커가 나왔다는 뽑기 실패 사진, 취업 면접을 망친 후 그날 입은 정장 사진, 밤새 연구하고 새벽녘 중천에 뜬 밝은 해, 오늘도 다이어트 실패라는 새벽에 뜯은 과자 봉지 사진까지 다양했다. 학생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실패라는 것의 개념과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실패에서 배운다'라는 말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닌 '배움'이다. 실패연구소의 경험이 보여주듯, 우리는 실패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슌 왕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듯 같은 횟수의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로부터 실질적인 성장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복된 실패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에서 진정으로 배우려면 먼저 그 일을 하는 목적과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과정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실패는 비로소 의미 있는 교훈이 된다.                 p.267~268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보다가 "그런데,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라는 말에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는 대목이 있다. 아무래도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패를 접하는 것이 일반론이니 말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인 기준, 예를 들어 성적,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가는 저마다의 목표와 가치, 그들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학생이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실패를 겪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는 실패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실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용인함으로써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각자의 실패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성찰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실패의 경험을 개인적 교훈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준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디폴트라면, 실패가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패하지 않기보다 크고 작은 실패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회복 탄력적 마인드셋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는 문제를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실패연구소가 어렵게 찾아낸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는 법'을 만나보자. 언젠가는 한국 사회도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배우는 분위기로 나아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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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분 한줌영어
강하영(제이미쌤)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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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는 몇 시간 몰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20분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거나, 학원을 수강하거나, 새로운 책을 구입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난 경험 다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만한 영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하루 20분, 쇼츠를 보며 부담 없이 영어회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총 30편의 쇼츠 영상을 두 단계로 나누어 60일 동안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유튜브 채널 <제이미쌤 한줌영어>를 통해 현지에서 바로 통하는 실전 영어 학습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회수 2000만 뷰, 완강률 100% 제이미쌤의 강의가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영어 회화책치고는 얇고 가벼운 편이라 의아했는데, 군더더기없이 꼭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어 오히려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는 책이었다.


INPUT 단계에서는 먼저 쇼츠 영상을 보고 생생한 현지 영어를 체험해보고, MP3 파일을 활용해 원어민 발음을 익힌다. 대화 혹 유용한 표현도 배워보고, 핵심 문법도 익힌 뒤에 OUTPUT 단계에서는 배운 내용을 직접 입으로 말하며 훈련하는 것이다. 빈칸을 채우며 단어와 구문을 익히고,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어민과 똑같이 말하기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키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인 '원 플러스 원'은 영어어일까? 영어 단어(one, plus)로 이루어져 있어서 영어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한국에서만 쓰는 콩클리시 표현이다. 영어로는 '하나 사고 하나를 무료로 받으세요'라는 의미로 buy one get one free라고 한다. 앞 글자를 따서 BOGO라고 하기도 한다. 스타벅스 1+1 쿠폰이 'BOGO쿠폰'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린스, 핸드폰, SNS 역시 콩글리시 표현이다. 영어로는 conditioner, cell phone 또는 mobile phone, social media라고 써야 한다. 


책에 수록된 모든 대화와 예문은 저자가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표현과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100% 현지에서 사용하는 리얼 영어 표현들인 것이다. 일상 영어, 여행 영어, 카페 영어, 식당 영어, 연애 영어로 구분해 우리가 자주 쓰지만 영어로 잘못 사용하는 표현과 해외여행 시 꼭 필요한 각종 심사 및 컴플레인 표현, 그리고 연애할 때 실수하기 쉬운 표현과 감정 표현까지 배워볼 수 있었다. 




해외에서, 혹은 외국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분명 머리로는 아는데 입이 안 떨어지는 경우 종종 겪어봤을 것이다. 단어와 문법을 알아도 말문이 막히는 것은 '아는 영어'와 '쓰는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암기가 아닌 진짜 회화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그래서 말하기 실력을 실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루 20분씩, 60일 동안 꾸준히 연습하면 머릿속 영어가 실제 대화로 이어지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루 20분이면 공부하기에 정말 부담 없는 분량이다. 쇼츠와 강의만 보면서 60일이면 실전 회화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회사 다니느라 바쁜 직장인들도, 학교 생활로 정신없는 학생들도 부담 없이 해볼 수 있다.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경우, 혹은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해외만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였던 이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자, 제이미쌤과 함께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리얼 실전 영어회화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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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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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럽 북쪽의 숲들을 갈아엎고, 그곳에 금속이 박힌 살덩어리들과 몇 년 뒤에 무고한 산책객들 코앞에서 폭발하게 될 포탄들을 살포했고,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볼품없는 지진계에 고작 12등급만을 주었던 메르칼리조차 창백하게 질릴 만한 황폐함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p.42


석공이었던 남편이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어머니는 아이가 조각가가 되어 미켈란젤로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라고 짓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전쟁으로 인해 죽게 되면서 미모는 열두 살 나이에 한 석수장이에게 맡겨진다. 동생을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공방을 팔아 돈이 마련되면 미모에게 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20년이나 걸린다. 낯선 나라에서 지내게 된 미모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조각가 알베르토 밑에서 도제로 일하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왜소증으로 태어나 난쟁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지만, 아버지에게 조각하는 법을 배워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는 이탈리아의 명문가인 오르시니 가문에 일을 하러 갔다가 평생의 운명이 될 소녀 비올라를 만나게 된다.


오르시니는 너무도 부유한 후작 가문이었고, 미모와 비올라는 같은 사회적 계층에 속하지 않아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비올라가 용기있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한 권씩 빼내어 미모에게 빌려 주었으며, 함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모의 꿈은 위대한 조각가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주정뱅이 밑에서 일하고, 짚 더미에서 잠을 자며, 돈이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비올라는 미모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 대단한 재능으로 아름다운 뭔가를 만드면 좋겠다고 말한다. 비올라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자에게는 책 한 권 볼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맹세한다. 그들은 거의 열네 살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자, 과연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 




「떠나자, 비올라. 난 이런 폭력에 신물이 나.」 

「떠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악의 폭력, 그건 관습이지. 나 같은 여자, 똑똑한 여자,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그런 여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습. 그런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그 유일한 비밀이라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더라. 내 오빠들, 그리고 감발레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건 바로 그거야.」              p.595


1951년 어느 날, 이탈리아의 사크라 수도원에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이송된다. 당시만 해도 사크라 수도원은 외딴곳에 있고 방문객 수가 무시해도 될 정도였기에 선택된 장소였다. 피에타상은 삼중으로 궤에 넣어졌는데, 제일 바깥 궤는 금속이고 안쪽 두 개는 목재였다. 그렇게 수도원은 비탈리아니의 작품을 안치한 뒤 지하 저장고의 문을 닫았고 이야기는 거기서 멈춘다. 이후로는 그 작품이 거기 있다는 소문이 돎에 따라서 점점 더 엄격해지는 일련의 보안 조치들이 생겨날 뿐이었다. 피에타 석상은 첨단 경보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하에 감금되어 접근이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그곳을 드나들 열쇠를 갖고 있는 건 수도원장뿐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그녀는 거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고 있죠. 그녀를 볼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야.' 대체 이 석상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면,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라. 이야기는 피에타를 조각한 석공 미모와 지적인 소녀 비올라와의 우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펴내는 소설마다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2024년 공쿠르상과 프낙 소설상을 수상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데뷔 이래 단 네 권의 소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 19개를 수상하며 현지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작가이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작품은 지적 장애를 앓는 사춘기 소년의 강렬한 첫사랑을 그려낸 <나의 여왕>이 국내에 먼저 소개된 적이 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이 작품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밀도 높은 서사로 꽉 채우고 있는데, 이렇게 두툼하면서도 페이지가 정말 술술 잘 넘어가는 작품이었다. 마치 고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캐릭터와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해서 눈앞에 쫙 영상으로 펼쳐지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드는 그런 이야기였다. 수도원 지하에 밀폐된 비밀스러운 사연부터 왜소증을 타고난 천재 석공예가 미모와 부자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의 자유를 향한 투쟁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흠잡을 데 없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파시즘이 득세하던 당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태생적 한계와 사회적 난관에도 꺾이지 않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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