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교유서가 시집 3
리산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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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 폐허가 된 성의 뜰에 도착해/굶기를 밥 먹듯 하는 사이비 귀족에게 재워달라고 부탁하는/루이 14세 시대의 유랑 배우들처럼//방문객들이 도착한다 계속해서 도착한다/앉을 곳을 이리저리 찾는다 계단에 앉는다/문 뒤에 앉은 사람들 때문에 현관문은 열기도 어렵다/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정원에 모여 음식을 만든다              - '겨울 샐러드' 중에서, p.33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소후에 시인의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연두색,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는 빨간색, 리사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는 핑크색인데, 표지 빛깔에 맞는 컬러로 그라데이션을 준 내지도 너무 예쁘다. 사실은 이 내지 때문에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를 앞으로 계속 모으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ㅋㅋ 


리산 시인은 아주 오래 전에 문학동네시인선으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라는 시집으로 만난 적이 있다. 눈 앞에 장소가 그려지는 듯한 서사성이 강한 시라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난 시집도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 스토리가 보이는 시들이라 참 좋았다. 이번에는 '교환독서'로 읽게 되었는데, 한 권의 시집을 함께 읽는 시간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유와 함축의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집은 교환독서로 읽기에 정말 훌륭한 텍스트가 아닌가 싶다. 시집을 읽고, 생각하고, 메모된 글을 읽고, 시를 다시 읽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도 느끼게 되고, 나와 다른 방식의 감상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폐허 위에 눈이 내리고, 환하게 불을 밝히며 지나가는 밤 기차를 타고, 허물어져가는 신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전나무가 길게 늘어선 숲, 꽃들은 눈처럼 향기롭게 떨어집니다, 발밑으로 길어지는 당신의 낭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건, 꿈꾸는 이상적인 울적한 하루가 전부여서, 마른 꽃들은 발밑으로 떨어지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허밍을 하는, 이 낡고 오래된 집에서도, 왜 꿈은 오래 꿈꾸던 꿈일 수가 없는지             - '산책에서 돌아오지 않기' 중에서, p.108


이 시집은 특히 '시인의 말'이 좋았다. '오래된 마음은 가라/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뛰어드네/다시/맨 처음으로'라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문구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리산 시인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다시 펼쳐 보았다. 역시나 시인의 말은 짧았다.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고 한다. 내 시의 대부분은 휴일에 씌어졌다.'였다. 2013년 5월에 나왔던 시집과 2025년 12월에 나온 시집을 함께 두 손에 들고 오고 가며 번갈아 읽었다. 비슷한 듯 다른 느낌, 시간의 밀도 만큼 다르게 읽히는 시들이 참 좋았다. '겨울 샐러드'라는 시도 즐겁게 읽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파티의 한 장면을 그린 시인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따뜻함으로/가득하게 아주 많이 철철 넘치게'라는 대목처럼 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상하게 따스한 느낌이 들어 겨울밤에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시였다. 


이번 시집에는 해설 대신 김숨 작가님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같은 소설을 쓰는 김숨 작가님의 글과 소설처럼 읽히는 시를 쓰는 리산 시인의 글이 너무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리산 시인의 산문을 읽어 보고 싶다. 리산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산문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언젠가 시의적절 시리즈에 한번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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