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사랑학 수업 - 사랑의 시작과 끝에서 불안한 당신에게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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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들은 그라인더로 커피콩을 가는 것보다 더 빨리 여러분의 자존감을 분쇄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남자들은 관계의 모든 위기가 여러분의 결함 때문에 생겨났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할 무렵이면 여러분의 자존감은 이미 엉망이 돼버려서 관계를 끝낼 때는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신기 전에 왕자님의 무도회 너머를 볼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p.108

 

하버드대학교에서 3년간 진행되며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사랑에 대한 12개의 강의를 담고 있는 책으로, 국내에는 2012년에 출간되었었고 이번에 새로운 옷을 입고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마리 루티 교수는 브라운대학교, 파리7대학교, 하버드대학교를 거치며 문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전방위로 섭렵해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를 연구하며 사랑과 성역할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의해왔다.

 

많은 연애지침서에서 남녀가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 성공하려면 남자의 심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저자는 시작부터 선언한다. 남자의 심리란 없으며, 남자를 유혹하는 불변의 테크닉이란 없다고 말이다. 수많은 연애지침서를 사서 읽어 보았지만, 실제 연애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남녀가 서로 다른 별에 산다는 말이 지긋지긋하다면, 연애라는 게임에 지쳐 있다면, 그럴싸한 기교만 알려주는 연애 지침에 작별을 고하는 이 강의가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실패는 사랑의 반대가 아닙니다. 동전의 이면일 뿐이죠. 동전을 던질 때 우리는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더 끔찍한 건 누군가 뒷면만 있는 가짜 동전을 무더기로 시장에 풀어놨다는 사실이죠. 이런 동전을 만나면 우리의 승률은 제로입니다. 언제나 동전의 뒷면만 나올 테니까요. 그것이 가짜 동전인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더 성공적인 사랑도 있고 덜 성공적인 사랑도 있지만 인생을 진정으로 바꾸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결코 가짜일 수 없습니다.    p.230~231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온갖 통념들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는 줄다리기와 같아서 '밀당'을 잘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줄다리기는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는 행위이므로, 경계를 풀지 않고서는 사랑에 빠질수 없다고. 남녀 행동의 열쇠는 진화생물학에 있다며, 남녀가 다르게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남녀에 대해 닳고닳은 구식 통념을 과학적인 사실로 둔갑시킨 거라며 인간의 사랑은 동물의 교미와 다르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화성 남자-금성 여자’ 모델로 대표되는, 사랑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에 반기를 드는 것이 대단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또 첫눈에 반한 사랑은 믿을 수 없다는 말에, 누군가에게 즉시 끌린다는 것은 관계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노력할수록 관계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애써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을 죽이느니 사랑을 잃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친절하고 사려 깊지만, 냉철할 정도로 분명하게 사랑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연애를 잘하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스킬이 있는 것 같고, 숱한 사례를 관통하는 공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애의 공식 따위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며, 밀당 게임 따위는 집어치우고 모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상처 받을 수도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이다. 연애가 잘못되는 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용기 내어 다가가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 말라. 나를 원하지 않는 상대를 쫓아다니지 마라. 완벽한 상대는 그만 찾아라. 지나간 잘못을 일일이 후회하지 마라. 등등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을 잘해내기 위한 조언'들은 당신을 사랑 앞에서 과감하고, 용감하고, 대담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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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이충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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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이란 부사는 쓰지 마. 인간은 되풀이할 수밖에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참아줘.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게 인간이야. 너무 많은 약속도 하지 마. 그럼 서로 외로워져. 지킬 수가 없거든. 내 것이란 말은 곧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고. 사람들이 "더 나쁠 수도 있었어"라고 말하면 지금 상황이 아주 안 좋다는 얘기야. "다치지 않을 거야"라고 하면 다친다는 거고.    p.58~59

 

내가 그의 글을 처음 만났던 것은 아주 오래 전, <페이퍼>라는 잡지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의 글에 매혹되어 매달 <페이퍼>라는 잡지를 사서 읽기 시작했고, 그가 글을 기고했던 <보그> 등의 패션 잡지들을 스크랩했고, 그가 초대 편집장을 맡게 된 <GQ KOREA>까지 챙겨 보았다. 하지만 그 잡지는 하필 남성 잡지였고, 그는 기자가 아니라 편집장이라서 머리글 외에 다른 기사들까지 직접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몇 권 챙겨보다가 결국 남성 잡지까지 사서 보는 건 무리다 싶어서 포기하고 말았었는데.. 그게 벌써 18년 전이라니.. 새삼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그가 <GQ KOREA> 편집장으로 있던 18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써온 에디터스 레터스를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그의 글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서 책으로 만나게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사실 잡지를 보면서 서두에 실리는 편집장의 머릿글을 유심히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특별하다. 그는 데이터스 레터를 두세 번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백만 번 들었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윌리엄 포크너 식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두세 번 읽어도 어렵다면 네 번 읽어. 한국말을 삼십 년을 했는데 그게 어렵다고? 구두를 삼십 년 닦아봐. 나중에는 부위 별로 맛도 구별할 수 있을걸?" 사실 그렇다. 그의 글은 가끔은 암호처럼 난해하게 느껴지고, 한없이 솔직해서 당황스럽게 만들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고, 현란한 수사법에 매혹 당하게 만들어 설레 이게 한다. 그는 '사용 가능한 최대치의 단어들을 끌어내어 언어로 존재하는 대부분의 감정을' 글로 쓰는 사람이니 말이다.

 

 

문장은 마침표에 의해 의미가 달라진다. 느낌표는 움직임의 동기를 표현한다. 단어가 의미를 잃으면 말의 힘이 사라지지만, 단어에 뜻이 더해지면 의미가 강화된다. 의미가 늘어나면 쓰임도 늘어날 것이다. 언어를 사랑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로맨스 중 하나이다. 한 사람이 지금 속한 세상에서 모든 뉘앙스를 배우는 사랑인 동시에 넓은 범위의 비상이랄까.    p.263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되었던 인터뷰 모음집 <해를 등지고 놀다> 부터 지금은 절판된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에세이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슬픔의 냄새> 등을 모두 읽었고, 소장하고 있으니 나는 그의 글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독자이다. 그나마 최신작이 2008년에 출간되었던 쇼핑에 관한 에세이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이고, 개정판으로 출간된 다시 엄마에 관한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가 2013년이었으니.. 이번에 나온 신간은 정말 정말 오랜만에 출간된 그의 책이다. 그것도 무려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서 살아남은 글이니, 그 시간과 밀도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오래 전에 쓰여진 글도 여전히 감각적이고, 세련되고, 동시대적으로 읽힌다는 사실이다.

 

평생 '독특하다'와 '어려 보인다'라는 두 마디만 듣고 살았던 남자, 잡지의 서두를 장식하는 에디터스 레터를 쓰며 '예민한 지각과 세밀한 묘사의 문학적 글쓰기보다 일본 단가처럼 축약된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남자, 가끔은 자의식 과잉에 마마보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세상 만사 달변한 철학자 같기도 한 남자. 그의 글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다면, 조금 낯설게도, 어렵게도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글을 쓴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그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감성과 문장, 그리고 호기심으로 장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패션, 건축, 문학, 사회, 미술, 음악, 사람 등 전 방위적인 부분을 예민하고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어 더 흥미롭다. '일곱 방향에서 빛을 뿜는 문장, 두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미궁의 낱말, 단어마다 매달린 보이지 않는 각주, 결코 쉽게 읽히지 않고, 머릿속을 빽빽하게 만들어 주는 밀도 높은 문장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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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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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아주 이상하고 심각한 상황이기 마련이므로 어떤 연유였는지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엄격하고 적절한 형이상학적 조사가 이뤄져야만 한다. 어쩌면 내 동생의 죽음을 조사함으로써 내 삶에 다시 활기가 생길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알아낸 사실들을 양부모에게 알리면 그들의 삶도 안정되고 강해질지 모른다. 나는 내 생각이 합리적이고 의미 있다고 느꼈다. 나는 더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태도라고 혼잣말을 했다.    p.13

 

헬렌은 어느 날, 남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스물아홉인 남동생은 헬렌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였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두 집안에서 따로따로 입양되었고, 그들의 양부모는 부유한 편이지만 지나칠 정도로 절약에 집착하는 구두쇠였다. 헬렌은 뉴욕에서 방과 후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며 악착같이 사는 동안 집에는 수년간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뉴욕을 떠나 어린 시절의 집으로 향한다. 동생의 자살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고, 동생의 삶이 있던 그곳에 여기저기 단서와 실마리가 감춰져 있을 테니 말이다.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아주 이상하고 심각한 상황이기 마련이고, 가족 입장에서 그러한 죽음이 일어난 사정과 배경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가족은 뭔가 이상하다. 몇 년 만에 만난 양부모는 딸의 등장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황한 눈치였으며, 헬렌은 그런 반응에 조금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양부모와의 서먹한 관계에도 굴하지 않고 헬렌은 동생의 삶을 추적하고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동생을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동생의 방에서 잠을 자며, 그녀가 알게 되는 진실의 끝은 무엇일까.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훨씬 수월해지는 법. 나는 그런 방식을 좋아했다. 단순성을 좋아했다. 빈틈없고 끝없는 단순성!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 나는 동생이 세운 자살 계획의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진 열 장을 더 살펴보았다. 모든 사진 속에서 녀석은 오만상을 찌푸리거나 흐리멍덩한 표정이었다. 내 동생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폭력을 쓴 적이 한 번도 없고, 늘 유순해 보였다. 반면, 나는 폭력적이고 분노로 가득 찼으며, 매일매일 평온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p.96~97

 

대단히 이상하지만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일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화자의 시선이 불안정하거나, 믿을 수 없을 경우 독자 입장에서 따라가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동생의 죽음을 겪게 된 서른두 살 헬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5년을 떠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녀와 양부모의 관계도 이상하고, 헬렌이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게 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좀처럼 화자의 시선이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직장의 규율을 어기고, 실수를 연발하고, 아무 데서나 토하고, 분노를 못 참으며 불안한 말과 행동을 하던 사람에게 감정 이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이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숱하게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나는 늘 상대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윤리적 행위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경쟁심이 충만했다. 나는 늘 극도의 질투를 경험했으며, 그것은 평온을 파괴하는 질투였다', '원래 나는 늘 뒤에 있는 걸 좋아했고, 내 삶의 영화에서 엑스트라이길 바랐지만, 장례식에서 그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으면 적어도 나를 쳐다보는 이들에게 이 심연이 내뿜는 불가사의한 기운이 전달될 것 같았다' 등등..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된 문장들을 그러 모아도 헬렌이라는 한 인물의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구체적인 것, 틀림없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주 행복했고, 줄곧 그래왔다고 말하고 있지만 양어머니는 유년기 내내 넌 왜 행복하지 않느냐고, 어째서 그토록 자신을 혐오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폭력적이고 분노로 가득 찼으며, 매일매일 평온을 위협하는 존재였다고 말하지만, 평정심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평온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사과할 때도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미안해요'라고 말을 하는 것도 좀처럼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파악하기 어려운 캐릭터는 처음이라, 그다지 두툼한 두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바로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이자, 이야기에 밀도를 높여주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작가인 패티 유미 코트렐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그녀 역시 극중 인물들처럼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중서부로 입양되었고, 함께 양부모에게 입양된 생물학적으로 관련이 없는 남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장 지쳐 있던 시기였지만, 그녀는 교사로 일하며 짬짬이 글을 썼고,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스스로는 이 소설이 자신의 회고록은 아니며, 대단히 사적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독립출판물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며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는 걸까. 삶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소설이었다. 매우 독창적이고 색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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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 - 자꾸 미루는 버릇을 이기는 7단계 훈련법
스티브 스콧 지음, 신예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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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여러분의 할 일들을 언제나 방해한다는 생각이 든 적 있나요?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이런저런 문제들 탓에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란 생각도 듭니다. 재정적인 문제를 겨우 막아 내고 나면 인간관계 문제가 삐걱거리고, 삶이 좀 안정됐나 싶을 때 어김없이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극심한 번아웃 상태에 빠집니다. 이런 상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무기력감을 동반합니다. 순식간에 방전되고 마는 것이죠.    p.28

 

누구나 당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거나, 시간을 질질 끄는 행동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거나, 언제나 막판에 가서야 급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사실 미루는 버릇은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루는 버릇이 지속적으로 계속될 경우 삶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게으름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미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스콧은 작심삼일의 악순환을 단칼에 끊기 위해선 ‘결심’이 아니라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습관에 관한 수많은 연구와 실험 결과를 공유하며,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킨 ‘습관 전문가’인 그가 제시하는 7단계 훈련법은 이렇다. 

 

1단계_ 일단 크고 작은 할 일들을 모두 적어 펼쳐 본다.
2단계_ 25-5 법칙에 맞춰 가장 중요한 딱 다섯 가지 일만 뽑는다.
3단계_ 3개월씩 스마트 목표를 세운다.
4단계_ 미루기 싫다면, 정중히 거절한다.
5단계_ 주간 계획표를 만들고 수시로 점검해 한 몸이 된다.
6단계_ 매일 실천하는 열네 가지 습관으로 게으름이 파고들 틈을 메운다.
7단계_ 미루는 버릇을 완전히 고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단계별 계획을 완수한다.

 

 

지금껏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이 일을 미루는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붙여야 하므로, 그 일을 계속 미루고 즉각적인 만족감으로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겨운 업무를 시작하는 게 버거울 때가 많다면, 이 상황을 얼른 해결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작은 습관이 효과를 거두는 이유는 동기 부여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p.204~205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있다.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지키든, 혹은 계획도 없이 막 살든, 또는 늘 목표만 세우고 실패하든 간에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시점에, 더 이상은 앞으로의 습관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 아닐까. 올해 안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와 현재 몰두하는 일이 뭐가 있는지 모두 적어 보고, 앞으로의 1년 계획을 세워 보자. 이제 겨우 열두 달 중에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니, 아직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훨씬 많다. 목표를 세웠다면, 우선 단기 계획에서 출발해야 한다. 3개월의 목표는, 다시 주간 계획표로 만들고, 매일 실천하는 습관을 들이는 거다. 게으름이 파고들 틈이 없도록 만드는 견고한 시스템의 중추는 바로 '습관'이다. 특별한 동기 없이도, 거창한 노력 없이도 꾸준히 지속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니 말이다. 매일의 습관이 쌓여 패턴화될 때, 자신을 변화시키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올해에는 '나중에 해야지'로 시작되는 작심삼일에서 탈피해서 미루는 버릇을 완전히 없애 보자. 책 구매 시 초판 한정으로 90일 습관 플래너도 받을 수 있으니 '제때 하는 습관'을 익히고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작은 플래너에는 책 속의 내용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고, 각 단계별로 직접 연습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의 실전편인 셈이다. 그리고 주간계획표 란이 공란으로 비워져 있고, 작성 예시까지 나와있어 지금이라도 바로 책을 읽은 내용을 토대로 연습해볼 수 있다. '나중에 해야지' 하고서 진짜 했던 적이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는 '결심' 말고 '습관'을 해야 할 때다. 이 책을 통해 게으름 피우는 습관과는 완전히 결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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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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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심사숙고해서 계획을 세우고 모든 과정을 신중히 따져 보지만, 인생은 그저 내키는 대로 눈사태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어지러운 운명의 밑바닥으로 우리를 내동댕이친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지하게 다시 하던 일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처럼 보이는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지휘봉과 악보, 악보 받침대를 손에 들고 우아하게 무대에 오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다.    p.122

 

여섯 살 파비오는 학교에 간 첫날, 정확히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알게 된다. 세상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이 아이들에게는 기껏해야 서너 명밖에 없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는 열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비오는 아이들이 알고 있는 숨바꼭질이나 사방치기, 깃발 잡기 등의 놀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아이들은 파비오가 말하는 잉어 낚시나 꿩에 대해서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파비오는 그 동안 열 명이나 되는 할아버지들과 함께 사냥이나 낚시 등을 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파비오에게 학교생활은 정말로 아주 멀고 불가사의한 우주에 온 듯 낯설기만 했고, 반 친구들은 꼬마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파비오의 외할아버지에게는 결혼은 고사하고 여자와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노총각 형제들이 많았다. 이런 대가족에서 태어난 아이가 딱 한 명이었기에, 파비오는 그들 모두의 손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월요일은 알도 할아버지와 낚시, 화요일은 아토스 할아버지와 사냥, 수요일은 아델모 할아버지와 아이스크림 먹기, 목요일은 아마리스 할아버지와 새 찾으러 가기 등으로 누가 파비오와 놀아줄지 정해놓았을 정도로 할아버지들은 하나뿐인 손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알도 삼촌이 학교에서 쓸모 없는 것만 가리킨다며 교실로 쳐들어와 닭장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간 날, 파비오는 만치니 집안 남자들에게 걸린 저주에 대해 알게 된다. 바로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이다. 집안의 괴짜 할아버지들은 모두 그 저주에 걸렸으니, 그들의 유일한 손자인 파비오 역시 저주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과연 남들과 너무도 다른 파비오가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건 나도,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지만 우리가 과거에 한 일은 알고 있다. 매일매일 우리가 해온 일,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이야기는 이런 짧고 바보 같은 발걸음을 거대한 것으로 전환시켜주는 마법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어디로 가는지 분명치 않지만 일단은 나아간다. 이 마법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p.432~433

 

이 작품은 2018년 이탈리아 비아레조상 수상작으로 열 명의 괴짜 할아버지가 있는 특이한 대가족에서 자란 소년 파비오가 여섯 살을 맞아 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열세 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토스카나주의 작은 해안 지방인 베르실리아를 배경으로, 이탈리아 바닷가의 정취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의 이야기는 가족 드라마로, 성장 소설로, 그리고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힌다. 항상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할아버지들 마음에 남아 있는 전쟁의 비극과, 말수 없는 아버지가 폭풍처럼 쏟아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간직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로맨스들은 80년대의 추억과 시대의 아픔들을 뭉클하게 보여주고 있다. 천하무적 괴짜 대가족 속에서 좌충우돌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을 순수한 소년의 목소리로 들려주어 더욱 파란만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덟 살이 된 파비오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하는 진짜 수영을 할 줄 몰라, 아빠에게 배우는 장면이 있다. 물에 닿으면 끝없이 깊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 아무것도 없는데 발로 버둥거리며 디딜 곳을 찾고 가라앉으며 바닷물을 들이마시는 느낌은 끔찍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떠올라 숨이 쉬어진다. 파비오의 발 아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고,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와 있고 몸은 발버둥치며 떠 있고, 그제야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치게 자신을 붙잡고 있는 삶이 보였다. 아마도 어린 소년이 험난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파비오는 깨닫는다. '아무도 당신의 물고기를 잡아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헤엄치고 마구잡이로 헤엄쳐도 결국은 당신에게로 온다.'라고. 그리고 차츰 알게 된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기 그지없고 미치광이들처럼 보이더라도, 우리 가족은 멋지고 놀라운 것들이 넘치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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