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 단순한 삶이 불러온 극적인 변화
에리카 라인 지음, 이미숙 옮김 / 갤리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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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앞에서 망설여질 때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자. 명확하게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 유용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어떤 선택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없고 좋은 선택, 더 좋은 선택, 그리고 가장 좋은 선택이 있는 경우에 특히 쓸 만하다... 당신의 가치관을 고려한다면 이 가운데 한 가지는 분명히 당신에게 가장 적합할 것이다. 더 좋은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깊숙이 간직한 자신의 가치와 꼭 맞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겉으로 보기에 매력적인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쌓일 것이다.    p.59~60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림, SNS계정에 쌓이는 쪽지들, 집안 곳곳 쌓여 있는 책들, 각종 물건으로 꽉 차 있는 수납 공간들.. 매일 같이 꼭 해야 할 일들, 챙겨야 할 것들이 있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정신 없이 보내다 보면 어느 새 하루가 다 버리는 게 다반사이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나의 하루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의 삶은 점점 복잡해지고, 빨라지고 우리는 그만큼 '미니멀 라이프'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로만 채워진 집에서 잘 정리 정돈된 인간관계와 여유 있는 라이프를 즐기는 것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 같은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에리카 라인 역시 과거에 누구보다 복잡하고 정신 없는 인생에 끌려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인 일들에 완전히 지쳤을 무렵 미니멀리즘을 만났고,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은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 책에서 한 가지 기준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가장 중요한 것에 에너지를 쏟고, 덜 중요한 것은 그냥 지워버려라.'라고 말이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서 무조건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원하는 삶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시간을 가지고 있다."
1년이 넘도록 곱씹고 있는 문장이다.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한 덕분에 나는 대부분의 상황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온전히 내 것이다... 늘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면, 자신에게 이미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믿어 보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믿음을 접으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확장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03~204

 

보통 미니멀 라이프라 하면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물리적 잡동사니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 뿐만 아니라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정신적 잡동사니와 눈에 뛰진 않지만 행복과 안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적 잡동사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나만의 기준을 찾게 된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때, 그러니까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고수할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핵심 가치를 선택한다. 그러한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가족, 집, 일, 인간관계, 건강 등 삶의 영역마다 각각의 가치를 떠올려 가치 나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집에서, 인간관계에서, 업무에서 잡동사니를 걷어낼 수 있게 되고 진짜 중요한 것을 위한 자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정리와 수납, 물건 버리기 등에 대한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일과 시간에 대해서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물리적 환경을 정비하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되고, 돈과 시간과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결국은 중요하지 않을 물건을 사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 중요한 것만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기만 한데 말이다. 그 동안 쓸데없는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단순함의 힘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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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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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베스를 살려주신다면 평생 그분을 사랑하고 따르겠어."
조가 메그 못지않게 진심 어린 표정으로 대꾸했다.
"차라리 심장이 없었으면 좋겠어, 너무너무 아파."
메그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삶이 이렇게 힘든 거라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르겠어."
그녀의 동생이 힘없이 덧붙였다.    p.387

 

<작은 아씨들>이야 이미 여러 판본으로 읽었고,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온 이 버전이 가장 아름다운 버전인 것 같다. 1868년 초판본과 같은 표지이고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 속 ‘조의 책’을 그대로 재현한 오리지널 커버 특별판이다. 영화 속 ‘조’의 꿈이 이뤄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표지라서 고전이 150년의 시간을 건너 현재의 독자들에게 읽히듯, 영화의 그것과 현실을 연결시켜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금박으로 반짝이는 표지도 예쁘고, 영화 스틸컷이 무려 33컷이나 수록되어 있어 976페이지라는 엄청난 페이지를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다가 초판 한정으로 무비 포토카드도 5장 별도로 수록되어 있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더욱 특별한 소장판이 될 것 같다. 작가가 한 권으로 생각하여 작업했던 1부와 2부를 합친 완역판이라 묵직한 페이지를 자랑하는데, 그에 비해 가격은 상당히 착하게 나왔다. 그러니 더더욱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작은 아씨들>은 1868년 처음 발표된 이래, 수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되며 오래도록 사랑 받고 있는 작품이다. 올해 개봉했던 그레타 거윅 감독의 버전이 무려 여덟 번째 스크린 각색작이니 말이다.

 

 

"당신이 가난해서 다행인걸요. 난 부자 남편은 감당 못 해요!"
조는 딱 잘라 말하고 나서 다시 부드럽게 덧붙였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난 오랫동안 겪어봐서 가난이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한 한걸요. 그리고 스스로를 늙었다고 말하지도 말아요. 마흔은 인생의 황금기예요. 당신이 일흔 살이었대도 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p.950

 

자매들에겐 의지가 되는 큰언니이자 엄마에겐 믿음직한 큰딸인 메그,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경으로 자매들 중 가장 개성이 강한 작가 지망생 조, 몸은 허약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넓은 셋째딸 베스, 그리고 아름답고 귀여운 용모에 다소 엉뚱한 면도 가지고 있는 사랑스런 막내 에이미. 마치 가문의 사랑스런 네 자매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재미를 안겨 준다.

 

 

배우가 되고 싶은 메그 역에 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조 역에 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베스 역에 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에이미 역에 플로렌스 퓨, 그리고 이웃집 소년 로리 역의 티모시 샬라메와 마치 고모 역의 메릴 스트립까지...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또한 캐릭터와 하나가 되어 영화 버전 중에서도 가장 호평을 받지 않았나 싶다. 메그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 대신에 사랑하는 이와의 가정을 선택하고, 조는 여성들이 쓰는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편집장과 사사건건 맞서야 했고, 베스는 피아노를 잘 치지만 몸이 약해 건강에 문제가 있고, 에이미는 파리에서 미술을 배우며 꿈을 좇는다. 성격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각자의 꿈도 다르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어릴 때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도 여전히 따뜻하고, 뭉클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영화 <작은 아씨들>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혹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물론 이미 읽었고, 다른 판본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책은 정말 너무 예뻐서 소장용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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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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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이라는, 각각의 가짜 현실은 NSC 전함 선원들을 망쳐놓는다. 그 가짜 현실을 토대로 쌓인 믿음이, 그 모래성과도 같은 믿음이 선원들이 진짜 현실에서 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아득한 시간을 목격한 선원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어쩌면 영영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겁먹었다. 또한, 아득한 공간을 목격한 선원들은 대체로 의기소침한 상태로 돌아왔다. 우주의 광대함에 주눅이 들고 만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친들 우주에 견주어 보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p.219~220

 

일가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사망자는 세 명, 실종된 여성이 한 명, 용의자는 해군우주사령부 소속 대원 패트릭 머설트로 공식적인 기록 상으로는 전투 중에 실종된 것으로 되어있는 인물이었다. 사회로부터 공식적인 연을 끊고 살아가던 선원이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을 수사하게 된 FBI는 '시간 여행 관련 범죄'를 전담하는 NCIS(해군범죄수사국) 특별수사관인 새넌 모스에게 연락한다. 용의자가 미래를 조사하던 전함의 선원으로, 당시 그가 탔던 전함 자체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스는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미래 세계로 간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면 현재 수사가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역사가 되었을 테고, 운이 좋다면 머설트네 가족을 살해한 범인도 잡혔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 여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래 세계에 도착해서 모든 질문의 답이 적힌 서류를 건네받고 오는 걸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극비리에 운영되고 있는 해군우주사령부는 '아득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을 탐험하고 있었다. NCIS 수사관이 여행하는 미래 세계는 '인정되지 않는 미래 궤적'이라 명명되어 IFT라 불린다. '인정되지 않는'이라 함은 그들이 목격하는 미래 세계란 현재 조건에 기인하는 가능세계로, 사실상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 여행자들이 도착하는 미래 세계는 여행자가 존재할 때만 존재하는, 여행자가 현재 세계로 돌아갈 경우 ‘사라지는’ 세계이다. 양자역학의 다중우주 해석론을 토대로 구축되어 있는 이 작품의 세계관은 대단히 매혹적인 서사를 만들어낸다. 시간 여행자가 겪게 되는 미래 세계가 다시 돌아가면 존재하지 않을 세계라고 해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마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모든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은 우리 자신이 실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네. 자신이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그렇게 믿지. 우리가 보는 모든 것,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고 말하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진짜라고 떠들어대는 걱야. 하지만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야. 우리는 그저 환상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뿐이야.     p.446

 

수사관들이 19년을 건너뛰려면 양자거품 속을 석 달간 여행하게 된다. 각각의 웜홀은 별개의 미래 세계로 향하는 다중우주로 이어지는 터널이었고, 그 중 하나의 웜홈을 항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동안, 현재의 현실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 동안 미래 세계를 일곱 차례나 여행해 온 모스의 몸은 계속해서 나이를 먹었기에, 실제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생물학적인 나이는 어머니와 몇 년 차이 나지 않았다. 겉으로만 봐서는 어머니의 딸이 아니라 여동생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다. 미래 세계에서 보낸 세월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때문에 IFT 여행은 몸에 무리를 주었고, 모스는 지난번 여행을 다녀와서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소중한 관계까지 잃고 말았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SF 장르의 작품은 많지만, 이 작품은 대단히 특별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인공인 여성 수사관 캐릭터를 유능하지만 다리 절단 장애를 가진 인물로 설정하고 있어,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작가인 톰 스웨터리치는 장애인 전용 도서관에서 12년 간 일하면서 그들의 삶과 애환을 겪어온 이력이 있다. 덕분에 섀넌 모스라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며, 수사관으로서, 시간 여행자로서, 그리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시간 여행자로서 겪게 되는 실질적인 고민들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적들과 맞서 싸워 무고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수사관으로서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섀넌 모스라는 캐릭터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시간 여행과 다중 우주에 관한 아이러니를 눈부신 통찰로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살인 사건 수사라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시작해서 SF 장르를 다소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의 벽도 없애 주었고, 그것이 세계 종말로 연결되는 묵직한 SF 장르로 이어지고 있어 하드 SF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기대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읽었던 '시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작품 중에 단연코 손꼽히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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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 오직 ‘나’다운 답들이 쌓여 있는 곳, 그 유일한 공간을 찾아서
앤디 퍼디컴 지음, 안진환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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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그 무엇에도 방해받거나 정신이 팔리지 않은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앉아 있어 보았는가? TV,음악, 책, 잡지, 음식, 술, 전화, 컴퓨터, 친구, 가족이 옆에 없는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고민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명상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해봤을 가능성이 없다. 왜냐하면 대개는, 하다 못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조차 우리는 여전히 사고의 흐름에 빠져 들기 때문이다.    p.42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 그저 마음을 쉬게 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느껴본 적이 없다.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보면서도 눈으로는 무언가를 응시해도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일이나 상상, 몇 분 혹은 몇 시간 후에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삶에 익숙한 내게 이 책은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영미권 명상분야 최고권위자로 인정받는 파란 눈의 스님 앤디 퍼디컴은 인생의 모든 해답이 나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 즉 명상법을 배우려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마음 수행 3단계(명상에 접근하기, 명상 연습, 명상과 삶과 통합)를 제시하면서 하루 10분, 나를 “알아차리는 명상 기법”을 활용해 어떻게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명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히말라야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요가 수행자부터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쉽고 간단하게 현대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명상은 하나의 과정이다. 매일 잠깐씩 앉아 명상을 한다고 해서 즉시 마음을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오래된 악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때로 '번뜩이는' 자각의 순간, 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순간 같은 것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과정은 통상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빠지던 구덩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더 일찍, 조금씩 더 명료하게 보인다. 그런 과정을 밟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던 수많은 습관적인 반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p.146~147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챙김'이라는 단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챙김'이란 주의를 집중해 오직 현재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챙김은 끝없이 생각하고, 감정에 사로잡히고, 뭔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며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이 살아가는 방식과는 완전히 대치선 상에 놓여있는 단어인 셈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이 거의 모든 명상 기법의 핵심 요소라는 점이 나로 하여금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특히나 이 책에는 실제로 명상 연습을 해볼 수 있도록 열 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신체 감각 중 하나에 부드럽게 집중하기, 유쾌한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에 집중하기, 몸에 대한 의식적 관찰 등등 가볍게 단 몇 분만 시간을 들여도 해볼 수 있는 명상 연습이라 흥미로웠다.

 

명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보다 더 쉽게 시작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빌 게이츠와 정말 천재적인 책이라고 말한 엠마 왓슨의 추천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마지막으로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질식할 것 같다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내 주변에서 펼쳐지는 진짜 삶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이 자신을 찾게 해주는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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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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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은 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속 좁고 이기적이고 지갑에서 만원도 꺼내기 싫어하는 좀팽이인데 그릇이 큰 사람들을 좇아가며 좋은 사람 흉내를 내려니 숨이 가빴다. 그래도 함께 가고 싶어 열심히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모였는데 피곤하게 규칙이 무슨 필요람. 채찍은 악당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p.72

 

을지로의 으슥한 인쇄소 골목이 힙스터들의 성지로 변했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빛바랜 건물. 인쇄용지를 한가득 싣고 아슬아슬 질주하는 삼륜차.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거리. 낙후된 인쇄골목에서 '힙플레이스'로 완벽히 변신한 그곳엔 점심, 저녁 시간이면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로 득실거리는 장소가 되었다. 을지로 골목에 자리 잡은 가게들을 보면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 혹은 빈티지한 느낌을 그대로 살리거나, 복고 감성으로 충만한 곳들이 많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간판 없이 가게를 차리는 경우도 많아서, 지도 앱을 이용하더라도 가게를 눈앞에 두고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을지로 인쇄 골목에 위치한 와인 바, 십분의일도 역시 그렇다.

 

독특한 컨셉으로 무장한 가게가 넘쳐나는 을지로에서도 와인 바 십분의 일은 조금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사장이 열 명이라는 것. 10명이 모여 월급의 10%씩 내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와인 바의 업무 일지이자, 평범했던 회사원이 퇴사 후에 가게를 준비하고, 오픈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드라마 같은 에세이이다. 저자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피디로 일하며 살인 적인 스케줄에 시달려 남몰래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벌에 쏘이는 바람에 밤 9시에 조기(?) 퇴근을 하며 이렇게 일하느니 차라리 병원에 드러눕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교통사고가 나고 만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결국 사표를 내게 되는데, 퇴사 후에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들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와인 바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십분의일이라는 공간도 공동 작업으로 탄생했다. 의견이 안 맞아 다툴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같이 웃고 떠들고, 참 재밌었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오픈하고 보니 이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 나 혼자였다. 가상의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카톡방 안에서는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떠들고 있었지만, 진짜 십분의일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한사람뿐이었다. 혼자 불을 켜고 오픈 준비를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식을 만들고 혼자 밥을 먹고... 어느새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됐다.     p.248

 

십분의일은 '청년아로파'라는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남태평양의 아누타 섬에 살고 있는 한 부족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그걸 감명 깊게 보고 만들었던 모임이었다. 부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 협동, 공생 등을 모두 아우른 단어가 바로 '아로파'였던 것이다. "우리 아누타 섬처럼 다 같이 버는데 수익은 똑같이 나누는 마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마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돈에 구 결국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농담처럼 시작한 일이 가게 창업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형태로 구현되고 말았다. 이 책은 술자리에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공동체를 만들자는 거창한 비전이 있었던 작은 모임이 어쩌다 보니 을지로에서 핫한 와인 바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임대 계약도 순조롭지 않았고, 돈이 없어 인테리어도 반셀프로 하고, 무작정 덤빈 탓에 고생도 숱하게 했지만, 결국 근사한 와인 바가 탄생했다. 무슨 일이든 '혼자'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함께'여서 가능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다르게 내고, 다 함께 벌어, 똑같이 나눈다'는 참신한 방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흥미롭고, '월급 받는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풀어낸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부분들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로망일 것이다. 난 회사원 체질이 아니라며 회사를 때려 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는 것 말이다. 오늘도 퇴사를 고민하는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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