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모쌤의 라이브 영어회화 (특별 부록 한정판) - 맥락과 뉘앙스가 살아나는 진짜 영어 말하기 수업
빨간모자쌤 신용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요즘 가장 핫한 채널이 바로 <라이브 아카데미>가 아닐까 싶다. 흔한 자기소개 하나 없이 다짜고짜 영어만 가르치다 보니 구독자들이 알아서 '빨모쌤(빨간모자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구독자 150만 명의 두 채널을 통해 '인생 영어 선생님'으로 사랑받고 있는 빨모쌤의 첫 책이다. 눈으로 읽고, 머리속에서 맴돌기만 하는 영어가 아니라 제대로 말문이 트이는 진짜 영어 말하기 수업을 만날 수 있다. 




특히나 이번에 '복습을 위한 핸디 워크북'이 추가된 특별 부록 한정판이 나왔다. 워크북에는 빨모쌤이 직접 고른 171개의 예문을 한영 퀴즈 형식으로 담았고 본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모르고 지나친 알짜 표현 30' 문장도 다시 한 번 소개해준다. 본책에는 우리의 영어 회화가 늘지 않는 이유부터 시작해 바람직한 영어 공부를 위한 마인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빨모쌤이 엄선한 핵심 영어 표현 75개를 만날 수 있다. 모든 예문과 대화문을 소리 내어 따라 연습할 수 있도록 빨모쌤이 직접 녹음·제작한 음원 강의 영상도 QR코드로 수록했다. 




'빠르고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빨모쌤은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는 한 번만 하고, 말하는 연습을 백 번 하라는 거다. 영어를 배우는 시간에는 '직접 소리 내어 말하기'가 최소 9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꼭 책상 앞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도 좋고, 평소 눈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놓고 볼 때마다 한 번씩 말하기를 해보는 것도 좋다. 이 책 속 각각의 챕터에도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도록 10번 반복에 체크할 수 있는 항목이 있다. 음원 강의 영상에서도 빨모쌤은 여러번 반복해서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말하기 훈련을 시켜준다.




운동이든, 외국어 공부든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어떻게든 미루고 싶어 생각을 하기 전에,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매일의 습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학습법은 이미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오래 꾸준히 하지 않으면 어차피 소용없는 거 아닌가. 영어가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최적의 공부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래, 꾸준히 하지 않는 탓이니 말이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고, 늘 조금이라도 영어는 놓지 않고 하려는 편이라 그동안 정말 다양한 영어 공부 책을 만나왔다. 그럼에도 이 책에 수록된 표현과 회화들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 신기했다. 그만큼 현지인들이 실제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을 그 맥락과 뉘앙스를 고스란히 살려 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빨모쌤의 음원 강의 영상은 너무 리드미컬하고 듣기가 좋아 음악처럼 틀어놓고 들었다. 설명을 최소화해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되돌려 볼 필요없이 여러 번 반복해서 문장을 읽어 주니 자연스럽게 따라 읽게 되는 강의 영상이었다. 내 일상을 영어로 말하고 싶어지는 현실 밀착형 생활 영어가 궁금하다면, 혼자서 공부하면서도 영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꿀팁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과 좀 더 각별히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까 퀴퀴한 서점에서 한가한 오후를 보내거나 익숙한 제목이 적힌 책등을 몰래, 다정히 쓰다듬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책장을 넘기는 행위가 새 책에 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임을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글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책장에서 피어오르는 먼지와 목제 펄프 냄새를 읽는 행위다. 고급 양장본의 냄새일 수도 있고, 얇디얇은 종이와 흐릿한 흑백 인쇄의 냄새일 수도 있고, 담배 피우는 노인의 집에서 50년간 읽힌 적이 없는 책의 냄새일 수도 있다. 싸구려 스릴이나 치열한 학문, 문학적 무게감, 혹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냄새가 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껏 어느 책에서도 맡은 적 없는 냄새가 났다.             p.37


재뉴어리는 일곱 살 때 들판에 너무도 외롭게 서 있던, 너덜너덜한 푸른 문을 발견한다. 재뉴어리는 문 너머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도시, 너무 광대해서 절대 그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어딘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푸른 페인트에 손바닥을 대고 문을 밀자, 경첩이 신음하며 열린다. 뭔가 마법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당연히 문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외로운 들판에서 어디로도 이저지지 않는 문 옆에 앉아 있을 때 재뉴어리는 그 동안 읽어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이야기가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실화, 굳게 믿기만 한다면 기어들어 갈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재뉴어리는 수첩을 꺼내 연필로 이야기를 쓴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자, 세상에서 무언가가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국적인 향이 뒤섞인 바람이 불었고, 망설이다 다시 문을 열었더니 은빛 바다로 둘러싸인 높은 절벽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은 강렬했고, 돌아와서 어른들에게 말했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후 재뉴어리는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위한 여행을 꿈꾸게 되었지만 현실은 고고학 협회 회장인 로크 씨의 대저택에서 이런 저런 제약들로 둘러싸인 채 지내는 게 고작이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아빠는 로크 씨에게 고용되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물을 발굴하는 일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웠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로크 씨가 원하는 대로 교육 받고, 행동하며 상상력과 모험심은 묻어둔 채 지낸다. 그러다 열일곱 살 생일에 보물 상자에서 가죽으로 장정된 <일만 개의 문>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고, 묻어두었던 불가능한 꿈들이 다시 스물스물 피어나기 시작한다. 식료품점 아들이자 재뉴어리의 유일한 친구인 새뮤얼, 그리고 아빠가 말동무를 하라고 보내준 제인, 새뮤얼이 선물로 데려온 반려견 배드까지... 이들은 새로운 문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함께 하게 된다. 





"너의 이 문들은 닫혀 있어야 한다, 유감이지만."

'아니, 그렇지 않아.'

세상은 결코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닫히고 숨 막히고 안전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둔 저택과 같아야 한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여름비가 들이치고, 옷장은 마법의 통로가 되어야 하고, 다락에는 비밀 보물 상자가 있어야 한다. 로크 씨와 협회는 한 세기 동안 미친 듯이 저택 주위를 돌아다니며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막고 문을 잠갔다.

닫힌 문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p.504~505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아주 특별한 문을 통과해 뜻밖의 장소로 갈 수 있다는 마법 같은 상상 말이다. '나니아 연대기' 속 옷장 문도 좋고, 낡고 허름한 오두막의 문, 혹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문도 좋다. 그 문을 여는 순간, 지금의 현실이 아니라 시간을 뛰어 넘고, 장소를 넘나 들며 모험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여기와 저기, 우리와 그들, 평범과 마법이 나뉘는 분기점이 열리면서 두 세계 간에 교류가 일어나는 것이다. 


1901년의 재뉴어리와 그녀가 읽는 책 <일만 개의 문> 속 1866년에 태어난 애들레이드는 모두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는 여성들이다.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애들레이드는 당시 다른 여성들처럼 주어진 환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대신, 농장 건초지에 있는 낡은 오두막에서 문을 통해 나온 남자 줄리언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다. 재뉴어리의 모험에 동행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제인 역시 당시의 시대상에서 벗어나 여전사처럼 남성에게 맞서고 모험을 즐기는 멋진 여성이다. 재뉴어리 역시 사사건건 모험을 방해하며 현실에 순응하고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고고학 협회의 로크와 헤이브마이어라는 어른들에 맞서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찾아 나선다. 여성과 유색 인종이 전혀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던 시대적 배경과 그 속에서 모험을 즐기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로맨스와 어드벤처, 그리고 판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만들어 졌다. 앨릭스 E. 해로우는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월드판타지상에 최종 후보작에 올랐고, 아마존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판타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음 한 가운데에 랜턴처럼 밝기 빛나는 즐겁고 신비한 비밀을 품고 있다면, 매일의 일상을 견디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그게 바로 우리가 판타지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판타지의 고전이 될지도 모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 찢어진 티셔츠 한 벌만 가진 그녀는 어떻게 CEO가 되었을까
매들린 펜들턴 지음, 김미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있잖아, 매디." 그는 엄마와 아빠만이 사용했던 내 별명을 부르며 말했다. "너는 자식이 부모를 키우는 내가 아는 유일한 아이야."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부성애는 갖추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재정 능력은 전혀 없었던 아빠, 재정적으로 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었지만 그것을 정말로 해낼 인내심이 부족했던 엄마. 그 중간에 그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설픈 내가 있었다.               p.60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시작되는 이 책은 남자친구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저자의 남자친구였던 드루는 사업이 금전 문제에 부닥쳐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친구에게 사업을 매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매들린은 전날까지 아무런 조짐을 느끼지 못했다. 드루는 함께 미래를 계획했던 집 근처 협곡에서 자살했다. 금전적 스트레스에 압도되어 탈출구를 찾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날 매들린은 자본주의가 생사의 문제라는 끔찍한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다. 이 책은 ‘180만 팔로워를 거느린 틱톡의 슈퍼스타’이자 의류회사의 CEO인 매들린 펜들턴의 독특한 회고록이면서도 재테크 가이드이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라온 경험담을 솔직하게 담고 있는데, 그녀는 열네 살 때부터 취업허가를 받아 일을 구할 계획을 세웠고, 대학을 졸업한 스물두 살 때는 자신의 기술로 돈을 버는 직업을 얻고자 했다. 가난하게 자란 펑크족 소녀가 어떻게 돈을 벌고, 공동체주의적인 회사를 창업하고 운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읽히지만, 그 속에 현재의 경제 체제와 금융 시스템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담고 있어 대단히 흥미로웠다. 각 챕터마다 '자본주의 생존 기술'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신용을 쌓는 방법, 집을 빌리고, 일을 구하는 방법, 연봉을 협상하고, 자동차를 사는 방법, 재정적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빚을 상환하는 방법, 집을 사고 공정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법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팁들이 가득하다. 





세상의 돈이 흘러가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나는 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틀을 개발했다. 내가 깨달은 사실은 이렇다. 부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회사와 아파트 같은 건물을 소유하고, 나와 실장 같은 사람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대신하게 한다. 실장이 경제적으로 나보다 낫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불완전한 결정을 내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둘 다 같은 경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닥터마틴을 신고 그녀는 페라가모 펌프스를 신고서 말이다.              p.219~220


‘가족 같은’ 회사에 취직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도 하고, 임금 사기도 당하며, 자주 고장 나는 자동차 덕에 신용카드 빚은 늘어나고, 대도시에서의 생활비는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이건 비단 매들린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꿈꾸던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옮겨오고,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더 많은 돌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노력이 모든 걸 보상해주지는 않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니 말이다. 게다가 매들린은 리바이스에 인턴으로 취업하면서 정규직의 희망이 보이나 싶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일명 대침체를 맞이하는 바람에 원하는 일자리는 날아가고 대학 졸업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덕분에 친구와 200달러씩, 총 400달러를 투자해 터널비전이라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 또한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현재 매들린이 운영하는 회사인 터널비전은 CEO와 전 직원이 동일하게 주 4일, 27시간을 일하고 임금도 똑같이 받는다. 수익은 전 직원에게 자동차나 가구를 사주는 식으로 돌아가며, 유급휴가도 무제한이다. 그야말로 꿈의 직장처럼 보이는 이 곳은 매들린이 끊임없이 자본주의의 규칙을 공부하고, 배우고, 실천해오며 깨달은 것들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담을 인터넷 및 SNS로 나누면서 미국 젊은 층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현재 그녀는 180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틱톡의 슈퍼스타’이다. 오르지 않는 임금, 급증하는 주거비, 학자금 대출과 신용카드 빚으로 허덕이는 지금의 MZ세대들에게 이 책은 특히나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이 전례 없는 시대에 어떻게 재정을 관리해야 할지 궁금하다면,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 생존 기술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 24개 나라를 여행하며 관찰한 책과 사람들
모모 파밀리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록된 공간은 책이다. 공간이 기록된다는 건 그 안에 인물, 사건, 서사가 존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록되는 순간 공간은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러 복작거릴 관광지나 유적지에 늘 사람이 몰리는 까닭이다. 고전을 읽듯 역사 유적지에 가고, 신작 수필을 읽듯 근교 관광지로 나들이를 떠나기도 한다. 책장을 펼치듯 공간에 발을 들이고, 본문을 읽듯 공간을 누비며, 문장을 탐닉하듯 공간 하나하나를 훑는다.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공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독후감으로 옮겨 적는 일과 닮았다.          p.27


여기 130일 동안 유럽 24개국의 책장을 여행한 가족이 있다. 작가인 엄마와 삼성 반도체 연구원인 아빠, 그리고 5학년, 2학년이 된 두 아이까지 네 명은 10년에 걸쳐 기획한 여행을 기꺼이 실행에 옮겼다. 가족의 본질을 되새기며 패밀리의 라틴어 어원인 파밀리아를 애칭으로, 두 아이 이름의 '모'자를 붙여 '모모 파밀리아가 되었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글을 담고 있는 책들을 꽤 만나 왔지만, 이렇게 읽는 내내 부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그냥 유럽 24개국을 둘러본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서점과 책장들만 찾아 다닌 여정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뒤처지거나 돌아올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넘어 정말 큰맘 먹고 육아 휴직계를 낸 아빠도, 이렇게 꿈 같은 책장 여행을 기획한 작가 엄마도 너무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머릿속에 머나먼 꿈처럼 상상만 하는 그것을 발로 뛰고, 눈으로 담으며 현실로 만들어 내는 가족이라니....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지만,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것, 더 나아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장에 둘러싸여 있다고 책이 저절로 좋아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들 가족처럼 직접 각 나라의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 깊은 책장들을 방문하며 몸으로 체험하고, 익힌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부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다. 





소매치기는커녕 유럽엔 신사 숙녀 여러분만 사는지 모두들 상냥했고, 도움을 주려 했고, 아늑하기만 한 안전 가옥 그 자체였다. 역시 걱정은 미리 할 게 못 된다고 안심하던 끝에 불현듯 다시 생각해 보니 유럽이 안전한 게 아니었다. 책장 곁이라 안전한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 중에 고루하고 답답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나태하고 악한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지성과 감성은 심성도 말랑말랑하게 녹이는지, 책을 따라다니는 발걸음에 배타적인 시선은 없었다. 더욱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입장하는 외국인 부부에겐 책장 곁 누구나 절대적 관심과 배려를 보내왔다.              p.291~292


유럽 24개국에 있는 113개의 도서관과 서점이라는 목적지를 거치면서, 130일 동안 아이들은 책장 곁에서 주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과연 아이들은 책과 사랑에 빠졌을까? 이들 가족이 유럽 대장정의 첫 도시로 신중을 기해 고른 것은 케임브리지.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다는 트리니티대학, 그 근처에 있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가 진짜 목적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이자,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등 노벨 수상자들의 저서만 170권 이상 출간한 이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도시를 범람하며 책이 흐르는 런던의 풍경도 흥미로웠다. 셰익스피어와 조앤 롤링의 나라답게 지하철이나 공원 벤치에서도 독서 삼매경인 사람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하니, 책이 스며든 그들의 일상이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에든버러, 더블린, 파리, 몬테카를로,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뮌헨, 프라하, 부다페스트, 아테네, 제네바, 바르셀로나,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의 서점과 도서관들을 경험해본다. 


이들 가족이 곳곳에서 만난 책장과 서가 사진들이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고, 방문한 책장이 기록된 지도는 QR 코드로 삽입되어 있다. 누구라도 이 책과 함께 책장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주는 셈이다. 그리고 유럽 113개의 책장에서 자라난 두 아이들의 생각을 주제별로 엮은 '생각거리'라는 코너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린이들의 생각이야말로 순수하고, 꾸밈없는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책의 본질과 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럽인들의 책을 대하는 태도, 책이 일상이 된 풍경을 통해서도 느낀 바가 많다. 언젠가는 이 책에서 만난 유럽의 어느 책장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라며, 꿈 같은 책장 여행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는 나이에 걸맞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박이 너무 심하다. 나도 이런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그렇다. 별로 좋은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계속해서 되뇌려고 한다. 다른 사계를 찾으려고 다양한 생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술가들의 생을 읽고 알게 되며 가장 좋았던 점은 100명의 예술가가 있다면, 100가지의 예술가가 되는 방법, 100가지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나서 내가 너무 늦지 않았는지 나에게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거나 의심하기를 줄였다. 나도 나만의 인생의 길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p.103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달팽이 식당>, <책들의 부엌>...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표지 일러스트를 한 작가가 그렸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베스트셀러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반지수 작가의 처음 시작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반지수 일러스트레이터를 유명하게 만든 표지들은 다소 화려하고 구체적이며 색이 넘치고 여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깨알같이 디테일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라 이상하게 정감이 가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책을 통해서 표지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거였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지금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정작 그녀는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거의 독학으로 배워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거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공이 아닌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된 걸까. 반지수 작가는 예술 고등학교나 미술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미술학원도 다닌 적이 없으며,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12주짜리 취미 드로잉 수업을 듣고 지망생 시절 여섯 시간짜리 유화 수업을 들은 게 전부라고 한다. 물론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쩐지 예술 분야는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이들만 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정말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반지수 작가가 어떻게 전공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직업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이번에 나온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를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나는 성격과 기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력으로 후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모습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알게 되면, 어디까지가 나의 타고난 기질이고, 내가 노력해서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가 보인다. 그러면 바꾸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나의 경우는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 내 모습, 더딘 내 모습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들보다 느려도 남들 기준으로 타박하지 않고 '이게 나의 속도야.' 라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대신 노력으로 바꿔야 할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다.               p.282


반지수 작가가 첫 그림 의뢰를 받은 것이 11년 전이고, 그동안 월간지에 만화를 두 번 연재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배경 아티스트로 일했으며, 영화 포스터, 책 홍보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온라인 수업 플랫폼에서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도 해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고민에 대해서 이런저런 기록을 남겨왔는데, 2012년부터 202년까지 썼던 작업일지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이나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스물한 살 무렵부터 자신의 꿈을 글로 기록해왔고, 읽은 책, 본 영화, 그렸던 그림 등에 대해서 써왔다. 특히나 독학자로서의 고민과 생각에 대한 부분들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는데, 어떤 분야든지 혼자 힘으로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독학하면서 어려웠던 것들과 독학할 때 도움 됐던 경험들을 따로 정리했고, 그림으로 먹고 살기가 가능해지기까지의 시간들을 담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이 되어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비전공자인데 그림을 시작해도 되는 건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꿈을 좇아도 괜찮을 지.... 누구나 할법한 고민들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지만, 반지수 작가 역시 그림을 다시 그려도 될지 고민하고, 회의하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노력과 번아웃을 겪고, 자기 확신과 불신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수년의 시간을 견뎌 내왔다. 


비전공자가 아주 천천히 돌고 돌아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그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자리까지 우뚝 선다는 것은 정말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결코 쉽게 얻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우연한 기회가 만들어 준 유명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전공자들 혹은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가이드가 되어 주고,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 낼 수 있는 반짝거리는 자신만의 꿈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이다. 특히나 뒤늦게 꿈을 좇는 이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용기가 나서 절대 포기하지 않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