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 24개 나라를 여행하며 관찰한 책과 사람들
모모 파밀리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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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공간은 책이다. 공간이 기록된다는 건 그 안에 인물, 사건, 서사가 존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록되는 순간 공간은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러 복작거릴 관광지나 유적지에 늘 사람이 몰리는 까닭이다. 고전을 읽듯 역사 유적지에 가고, 신작 수필을 읽듯 근교 관광지로 나들이를 떠나기도 한다. 책장을 펼치듯 공간에 발을 들이고, 본문을 읽듯 공간을 누비며, 문장을 탐닉하듯 공간 하나하나를 훑는다.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공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독후감으로 옮겨 적는 일과 닮았다.          p.27


여기 130일 동안 유럽 24개국의 책장을 여행한 가족이 있다. 작가인 엄마와 삼성 반도체 연구원인 아빠, 그리고 5학년, 2학년이 된 두 아이까지 네 명은 10년에 걸쳐 기획한 여행을 기꺼이 실행에 옮겼다. 가족의 본질을 되새기며 패밀리의 라틴어 어원인 파밀리아를 애칭으로, 두 아이 이름의 '모'자를 붙여 '모모 파밀리아가 되었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글을 담고 있는 책들을 꽤 만나 왔지만, 이렇게 읽는 내내 부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그냥 유럽 24개국을 둘러본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서점과 책장들만 찾아 다닌 여정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뒤처지거나 돌아올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넘어 정말 큰맘 먹고 육아 휴직계를 낸 아빠도, 이렇게 꿈 같은 책장 여행을 기획한 작가 엄마도 너무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머릿속에 머나먼 꿈처럼 상상만 하는 그것을 발로 뛰고, 눈으로 담으며 현실로 만들어 내는 가족이라니....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지만,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것, 더 나아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장에 둘러싸여 있다고 책이 저절로 좋아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들 가족처럼 직접 각 나라의 역사, 문화적으로 의미 깊은 책장들을 방문하며 몸으로 체험하고, 익힌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부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다. 





소매치기는커녕 유럽엔 신사 숙녀 여러분만 사는지 모두들 상냥했고, 도움을 주려 했고, 아늑하기만 한 안전 가옥 그 자체였다. 역시 걱정은 미리 할 게 못 된다고 안심하던 끝에 불현듯 다시 생각해 보니 유럽이 안전한 게 아니었다. 책장 곁이라 안전한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 중에 고루하고 답답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나태하고 악한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지성과 감성은 심성도 말랑말랑하게 녹이는지, 책을 따라다니는 발걸음에 배타적인 시선은 없었다. 더욱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입장하는 외국인 부부에겐 책장 곁 누구나 절대적 관심과 배려를 보내왔다.              p.291~292


유럽 24개국에 있는 113개의 도서관과 서점이라는 목적지를 거치면서, 130일 동안 아이들은 책장 곁에서 주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과연 아이들은 책과 사랑에 빠졌을까? 이들 가족이 유럽 대장정의 첫 도시로 신중을 기해 고른 것은 케임브리지.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다는 트리니티대학, 그 근처에 있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가 진짜 목적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이자,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등 노벨 수상자들의 저서만 170권 이상 출간한 이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도시를 범람하며 책이 흐르는 런던의 풍경도 흥미로웠다. 셰익스피어와 조앤 롤링의 나라답게 지하철이나 공원 벤치에서도 독서 삼매경인 사람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하니, 책이 스며든 그들의 일상이 부럽기만 했다. 그렇게 에든버러, 더블린, 파리, 몬테카를로,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뮌헨, 프라하, 부다페스트, 아테네, 제네바, 바르셀로나,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의 서점과 도서관들을 경험해본다. 


이들 가족이 곳곳에서 만난 책장과 서가 사진들이 아주 많이 수록되어 있고, 방문한 책장이 기록된 지도는 QR 코드로 삽입되어 있다. 누구라도 이 책과 함께 책장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주는 셈이다. 그리고 유럽 113개의 책장에서 자라난 두 아이들의 생각을 주제별로 엮은 '생각거리'라는 코너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린이들의 생각이야말로 순수하고, 꾸밈없는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장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책의 본질과 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럽인들의 책을 대하는 태도, 책이 일상이 된 풍경을 통해서도 느낀 바가 많다. 언젠가는 이 책에서 만난 유럽의 어느 책장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라며, 꿈 같은 책장 여행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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