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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평점 :
우리나라는 나이에 걸맞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강박이 너무 심하다. 나도 이런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도 그렇다. 별로 좋은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계속해서 되뇌려고 한다. 다른 사계를 찾으려고 다양한 생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예술가들의 생을 읽고 알게 되며 가장 좋았던 점은 100명의 예술가가 있다면, 100가지의 예술가가 되는 방법, 100가지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고 나서 내가 너무 늦지 않았는지 나에게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거나 의심하기를 줄였다. 나도 나만의 인생의 길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p.103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달팽이 식당>, <책들의 부엌>...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표지 일러스트를 한 작가가 그렸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베스트셀러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반지수 작가의 처음 시작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반지수 일러스트레이터를 유명하게 만든 표지들은 다소 화려하고 구체적이며 색이 넘치고 여백이 거의 없는 편이다. 깨알같이 디테일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라 이상하게 정감이 가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책을 통해서 표지 그림을 만날 수 있는 거였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지금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정작 그녀는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거의 독학으로 배워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거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공이 아닌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된 걸까. 반지수 작가는 예술 고등학교나 미술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미술학원도 다닌 적이 없으며,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12주짜리 취미 드로잉 수업을 듣고 지망생 시절 여섯 시간짜리 유화 수업을 들은 게 전부라고 한다. 물론 전공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쩐지 예술 분야는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이들만 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정말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반지수 작가가 어떻게 전공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직업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이번에 나온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를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나는 성격과 기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력으로 후천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모습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알게 되면, 어디까지가 나의 타고난 기질이고, 내가 노력해서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가 보인다. 그러면 바꾸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나의 경우는 생각이 왔다갔다 하는 내 모습, 더딘 내 모습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들보다 느려도 남들 기준으로 타박하지 않고 '이게 나의 속도야.' 라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대신 노력으로 바꿔야 할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다. p.282
반지수 작가가 첫 그림 의뢰를 받은 것이 11년 전이고, 그동안 월간지에 만화를 두 번 연재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배경 아티스트로 일했으며, 영화 포스터, 책 홍보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온라인 수업 플랫폼에서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도 해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의 고민에 대해서 이런저런 기록을 남겨왔는데, 2012년부터 202년까지 썼던 작업일지들을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이나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스물한 살 무렵부터 자신의 꿈을 글로 기록해왔고, 읽은 책, 본 영화, 그렸던 그림 등에 대해서 써왔다. 특히나 독학자로서의 고민과 생각에 대한 부분들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는데, 어떤 분야든지 혼자 힘으로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독학하면서 어려웠던 것들과 독학할 때 도움 됐던 경험들을 따로 정리했고, 그림으로 먹고 살기가 가능해지기까지의 시간들을 담아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이 되어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비전공자인데 그림을 시작해도 되는 건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꿈을 좇아도 괜찮을 지.... 누구나 할법한 고민들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금은 너무도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지만, 반지수 작가 역시 그림을 다시 그려도 될지 고민하고, 회의하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노력과 번아웃을 겪고, 자기 확신과 불신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수년의 시간을 견뎌 내왔다.
비전공자가 아주 천천히 돌고 돌아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그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자리까지 우뚝 선다는 것은 정말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결코 쉽게 얻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우연한 기회가 만들어 준 유명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전공자들 혹은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가이드가 되어 주고,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 낼 수 있는 반짝거리는 자신만의 꿈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이다. 특히나 뒤늦게 꿈을 좇는 이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욱 용기가 나서 절대 포기하지 않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