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
뤼후이 지음, 김소희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동화 같은 이야기로 건네는 위로는 확실히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삶에 크게 일격을 당하고 나면, 우습게 보았던 문장들이 막막하고 어두운 밤에 희미한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한다.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야기 하나가 흐르는 피를 잠시 멎게 해줄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페이지에 써 있는 문구에 가슴이 쿵 했다. 그건 바로 <믿어도 좋다. 세상은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평범하지만 힘 있는 두 문장이었다. 사실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출간되는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대부분 사랑과 희망, 꿈 등 긍정적인 메세지라서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 뻔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책을 읽기도 전에 어느 정도 마음에 방어막을 치고 시작했는데, 믿어도 좋다는 이 문구 하나에 뭔가 봉인 해제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숫자 8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구성부터 뭔가 행운을 상징하는 것 같은 저자의 이야기는 뻔한 것 같으면서도 식상하지 않았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공감대를 만들어 주었다. 가족과 친구, 연인간의 사랑과 나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낯선 이들과의 관계, 우리가 삶에서 겪게 되는 역경과 실수 등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실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어 중국의 그것이기도 하지만,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의 그것처럼 고스란히 읽히고 이해되고 공감이 되고 있었다.

 

삶에서 놓치고 사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행동에 실린 호의와 진심을 우리는 돌아선 후에야 알게 되기도 한다.

삶이 나를 못난이 취급하며 마구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만난 모든 것들이 못생긴 개구리처럼 보일 때, 비극으로 생각하는 대신 입을 한번 맞춰보자. 개구리가 왕자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그녀가 만났던 할머니 세 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파리에서 만난 이웃 할머니는 일흔을 훌쩍 넘긴 분이었는데, 가까운 가족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쓸쓸함이나 슬픔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방안 구석구석 새로운 꽃들이 있고, 찻잎과 커피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시를 읽으며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매력적이고 우아한 할머니. 두 번째는 소문난 대갓집의 친척 할머니인데, 고풍스럽고 단정했던 그 분은 가세가 기울어서도 기품과 품위를 잃지 않는 분이었다. 세 번째는 동네에 살던 가난한 할머니인데, 자녀들에게 버림받은 후 작은 집에 혼자 사시는 분이었다.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사시는 분이었지만,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으셨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결 그 자체에,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걸려있는 분이었다. 저자는 시시각각 할머니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하고는 한다고 했다. 운명과 처지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가 품위 있는 삶을 살아냈던 세 할머니의 일화가 감동적이었다. 항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내 삶을 돌볼 시간도, 힘도 없다고 투정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스트 뤼후이의 최신작이다. 발표하는 책마다 1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100만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왜 젊은 세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인 지 알 것도 같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글감을 찾는다고 하는데, 덕분에 뜬구름 잡는 위로가 아니라 현실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있는 글을 통해서 진심을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샌가 정말 그녀의 말처럼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세상이 혹독하게만 보여도, 유독 운명이 나한테만 가혹한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세상이 몰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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