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재에 책을 보관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이다. 다시 읽을 것인가.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것인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은 명백하게 후자다.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졌다. 작품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이런 잔혹함을 감당하기엔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인간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자기 안에도 범죄의 싹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언제 자신도 범죄자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과 범죄자는 뭐가 다른가.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자동차 정비 공장에서 일하는 스물아홉의 신고는 현재 스물넷인 세이코와 동거 중이다. 같이 근무하는 이들이 질투할 정도로 귀여운 그녀에게 푹 빠져 행복감에 취해 살던 신고는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가서 웬 노숙자 같은 지저분한 영감이 밥을 먹고 있는 걸 보고 당황한다. 세이코는 곰을 닮은 그 남자를 아버지라 소개하지만, 분명 예전에 보여줬던 사진 속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가난하고 지저분한 낙오자 같아 보이는 그는 집에서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채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의 존재가 불편한 신고는 급기야 그의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뭔가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내보겠다 마음 먹는다. 그런데 남자는 점점 수상 쩍은 행동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고, 신고는 점점 더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한편, 한 소녀가 경찰서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어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소녀는 온몸에 상처가 많았고 오랜 기간 학대나 고문에 가까운 행위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상처가 몸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녀 마야가 학대, 감금을 받았던 곳은 선코트마치다 403호, 그곳에 있었던 남자 우메키 요시오와 여자 야쓰코를 피해 도망쳤다고 한다. 다음 날 경찰이 403호를 방문하자 집에서 나타난 여자 역시 폭행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였고, 우메키 요시오라는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집은 고다 야스유키라는 남자 이름으로 계약되어 있었는데, 그 역시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마야는 자신의 아빠인 고다 야스유키가 두 사람에게 살해되었다고 밝혔고, 아쓰코 역시 자신들이 그를 죽였다고 시인함으로써 사건은 상해에서 살인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리고 맨션의 욕실에서 나온 DNA는 무려 다섯 명, 더구나 그 중 네 명은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후 마야와 야쓰코의 취조에 의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너무도 놀라운 일들 투성이라,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내 심장을 당황스럽게 했으며, 그 잔혹하고 끔찍함에 머리까지 아파왔다. 딸이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이 언니를 죽이고, 서로가 서로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지옥도. 교묘한 말로 꾀어 재산과 정신을 빼앗아, 결국 직계가족끼리 서로 학대하고 폭행하고 죽이게 만들고는, 그 시체를 다지고 삶고 믹서로 걸쭉하게 갈아 흘려보내 존재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 버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도 되는 것일까. 소설 속 상황이라고만 치부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던 일이라고 하니, 어디 가서 토악질이라고 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뭐 이런 엿 같은 상황이 다 있나. 끔찍함과 서글픔을 넘어서 분노마저 생겼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고, 대체 왜 그런 짓을 당하고 있는 건지. 누군가 경찰에 신고만 했더라도 이렇게 막장에 이르게 되진 않았을까. 피해자들에게도 그 어떤 동정이나 연민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도망치려고 들지 않았던 그들의 나약함에 분통이 터졌기 때문이다.
우메키 요시오라는 사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도 한다.
우메키 요시오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
그 평온한 마치다 거리에도 나타났는데, 이 조용한 오이즈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도 바로 뒤쪽 주택에서 누군가가 감금되어 고문당해 살해되고 해체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우려가 늘 망령처럼 뇌리에 자리 잡고 있다.
혼다 테쓰야는 경찰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다. 우리가 흔히들 일본 경찰 소설의 대가하면 떠올리는 작가들, 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 곤노 빈, 다카무라 가오루가 있지만, 나는 거기에 혼다 테쓰야도 더한다. 특히나 혼다 테쓰야는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왔다. 대표적으로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와 지우 시리즈에서는 경찰이라는 전형적인 마초 조직에서 남자들과 겪어야 하는 여자 경찰들의 갈등과 그들만의 심리 묘사가 돋보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직접적인 사건 묘사는 상당히 센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 <짐승의 성>에서는 폭력, 고문, 살인, 상해, 납치, 감금 등 그야말로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 소설의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함부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나 임산부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는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게다가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에 실제로 있었던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하니 말이다. 2002년 3월, 일본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에서 17세의 소녀가 ‘마쓰나가 후토시’와 ‘오가타 준코’에 의해 1년 동안 어느 아파트에 감금되어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며 경찰을 찾아온다 그로 인해 서서히 드러난 진실은 그 아파트에서 무려 7명이 살해되었다는 것. 그것도 딸이 아버지를, 사위가 장모를 살해하고 해체하는 등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참극이 벌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은 그 엽기성 때문에 보도 제한 조치가 걸려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혼다 테쓰야는 소설을 통해서 이 잔악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범죄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범인이 범죄를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런 말을 했고, 왜 사람을 죽인 건지.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것. 어떤 행동에 대한 동기를 알아야 그를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동기 없는 범죄는 바로 그 이해할 수 없음으로 인해 엄청난 공포를 몰고 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해 영역을 넘어선 존재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니 말이다.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에서는 '누가' '어떻게'보다 더 중요한 '왜'의 영역이 빠져 있다. 사건의 범인도, 벌어졌던 참극도 극 초반에 모두 밝혀지지만, 우리가 페이지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알 수 없는 건 바로 범인의 동기이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라고. 당신 안에도 범죄의 싹이 있을 있다고. 범죄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고 말이다. 극중 우메키 요시오 같은 인물이 거리 어디에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오싹했다. 아, 정말 마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강심장인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당신이 상상도 못할 이런 세상도 존재한다는 걸 경험해보시길. 절대 직접 겪으면 안 되는 경험이니, 간접 체험을 통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