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대한 생각은 항상 어느 선에서 멈춰버리는 것 같다. 뻗어나가는 생각을 막아버린다고 할까? 생각이 겉잡을 수 없이 전개되는 상황,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모님의 글을 읽고 댓글에다 나도 모르게 진한 감동을 표현한 적 있다. 생각해보니 한, 두분이 아니다. 이런... 혹시 이 글을 읽고 나인가?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네, 맞아요. 당신입니다! 잇츠 유! 약간 이야기가 새는 것 같은데 그 댓글에서 '읽히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학부시절이니 한참 전인데 마지막 학기에 한국문학의 이해던가 하는 교양수업을 수강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 수업에서 '문학'을 직접 대면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으로... 소설이 무엇인가,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제를 고민해 본 것이다. 학문이 빈곤하니 의견 역시 빈곤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교수님께서 던지신 질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설, 아니 문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부터인가?"
이 질문에 이어진 말씀이, 젊은 시절에 자가출판으로 시집을 낸 적이 있고 지인들과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수십년 전이니,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이럴 경우에도 이 작품은 문학으로서 기능하는 것인가?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실물로서 기능하는 작품이 있고, 작가와 독자가 생겼으니 그렇다, 문학이라고 하자. 그럼 조금 더 극단적으로, 원고를 출판하지 않은채로 서랍에 묵혀두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에도 이 작품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판'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제1독자인 작가 외 다른 독자가 없다.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보류하고, 이 '서랍 속 작품'이 다른 이에게 발견되어 읽히는 순간은 어떨까? 출판된 출간물이 아닌, 원고 상태로 말이다. 문학이 맞는가?
작가가 쓴 글의 제1독자를 작가 자신으로 하고, 제2의 독자가 나타나면 그때부터 글이 문학으로 기능할까? 일단 내 생각에 출판된 글은 원고상태를 벗어났으므로 문학으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고 상태의 글(독자가 생긴 글이 있고, 독자가 생기지 않은 글 두 가지의 형태)은 글쎄, 모르겠다.
글이 조금 복잡해졌다. 다시 예를 들어 보면, 작년에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이 발견되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비비안 마이어는 창고 유지비를 내지 못해서 필름을 팔아야 했는데, 만약 마이어의 필름이 창고에 계속 남아있었거나, 마이어 스스로 처분해버렸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사진을 본 사람은 작가밖에 없음) 작품인가?
-----여기서부터 음주 페이퍼입니다.... 취하는군요-----
마이어의 경우에는 어쨌든 그녀의 작품이 인화되어 책으로, 영화로 제작되면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예전에 제인 오스틴 페이퍼를 쓰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한국(혹은 조선 혹은 고려)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가 있었을 터인데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신사임당 제외) 왜 원고가 발견되지 않는거야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발견'되지 않은 원고나 필름의 경우 이것이 어떤 예술작품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면... 최근에 글이 잘 써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책이 재밌게 읽히질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좀 했더랬다. 리뷰에서도 왠만하면 사생활 혹은 개인적 소회를 밝히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물론 남몰래 다짐했다...) 뜬금 고백을 하는 이유는 어제 오늘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의견을 조금 밝혀보리라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제 페이퍼에도 나는 나를 위한 글을 쓴다고 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 상황은... 아아 내 글도 이렇게 평가될 가능성이 있는 거구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도 편애하며 (죄송합니다 시간상 모든 분의 글을 체크할 수가 없어서....) 글을 읽는 나인지라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로 댓글로는 칭찬을 많이 주시고(감사합니다) 말이다. 나 역시 좋은 얘기만 하고 싶다. 일단 서재활동이 취미이기도 하고, 내 생각에 멋진 글엔 나도 모르게 감탄과 좋아요를 누르게 되고 이건 좀 아닌데 싶은 글은 취향을 존중합니다...라는 입장으로 그냥 넘어간다.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인 나도, 작가인 그분도. (프로셨다면 죄송합니다...)
암튼 독서 취향의 세계는 넓고도 깊은 것이라 같은 글을 읽을 확률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고(인기작 등 특수상황 제외),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다른 생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며, 이 역시 콘텐츠적 다양성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콘텐츠적 다양성에 대해 조금 얘기를 해보자면 오늘 모님 페이퍼에서 타 사이트로 옮길까 생각했다는 글을 읽었다. B사이트는 모 포털 블로그(지금은 정리함)를 통해 '오늘의 책' 소개를 의뢰했으며 적립금을 약속했다. 그 사이트에 가입인 안 돼있던 나는 앗싸 땡큐 베리감사하는 기분으로 가입했고 적립금을 받았다. 자연히 그동안 작성한 리뷰를 올리면서 적립금도 탔다. 왜 그럴까? 유저 콘텐츠 때문이다. 작년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성인 기준 1인 독서량이 평균 9권 정도라고 한다. (정확하지 않음) 안 그래도 독서인구가 적다고들 하는데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후론 그 수가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독서인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중에서 리뷰어는 얼마나 될 것이며, 많은 블로그 중에서도 4대 서점(보통 알라딘, K, Y, I를 꼽는다)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유저 콘텐츠란 물론, 리뷰다. 알라딘에는 페이퍼가 있어서 상품정보 하단을 통해 다양한 종류, 형태를 시도하는 글이 떠서 좋지만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리뷰, 100자평 정도가 다인 것 같다. (물론 페이퍼 형태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상품 페이지에 노출되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B사이트의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그 사이트에 가입한 이유는 적립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글도 이미 써둔 거였고, 오늘의 책으로 소개된다니 우쭐해진 기분도 들었다. (자랑 아니라 솔직한 맘을 털어놓은 것이에요... 자랑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완전 나의 궁예지만 B사이트 입장을 생각해보면, 나라는 인력 하나로 콘텐츠가 적어도 30편 정도는 생긴 것이다. (리뷰를 몇 올렸는지 모르겠는데 기억에 상당히 많이 올린 듯) 나도 좋고 사이트도 좋고. 완전 꿩먹고 알먹고 아닌가 그런 생각이다.
알라딘 역시 마찬가지로, 나는 북플을 통해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정확히는 모 출판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북플이 나를 서재로 인도하였으며 다양한 분야 덕력이 상당하신 알라디너들께 감화되어 이 곳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의 경쟁을 불태우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북플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sns의 특징이 휴대폰 안에 어플로 자리하면서 금방 확인하고 지우고 하는, 단문들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140자 트위터가 대표적이고, 내가 꾸준히 활동하는 (눈팅) 타 커뮤니티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변화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플을 통해 별점을 매기고 짧은 감상을 남기시는 분들은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셈이며, 알라딘의 입장에선(이 역시 저의 궁예) 콘텐츠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음주페이퍼인데 잘 써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얘길 하냐면 정확히 내가 열심히 활동하게 된 계기를 밝히려는 거였는데, 아마 제인 오스틴 페이퍼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받아본 적이 없고 나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에 공감하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고 나 홀로 덕질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감격스러웠는데... (참고로 저는 북플로 몇번 글 쓰다 날린 이후론 PC 서재로만 작성합니다...) 거기에 그 다음달인가 제인에어 페이퍼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뉴비라서 내가 뽑힐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게 또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피드백 받으니 좋고(대체로 칭찬이라 더 좋음) 잘하면 적립금 받아서 덕질(책 모으기)할 수 있어서 좋고 꿩먹고 알먹고 베리굿베리굿... 그렇다면 과연 내 글은 당선작으로 뽑힐 가치가 있는 글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뉴비이고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에서 뽑아준 것 같다. (이때는 당선작이 어떤 시스템인지 알라딘 화제의 글이 어떻게 뽑히는지도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해서 졸작도 뽑혔다고 생각한다. 정말 잘 쓴 글은 글쎄 있나? 반쪼가리 자작 리뷰는 왜죠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를 수 없어요... 적립금 벌써 쇼팽 책 사고 다 썼지롱! 죄송해요 기분은 좋았어요.
1년도 채 활동하지 않았고, 어떤 커뮤니티이든 꾸준히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 알라딘 서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얘기해보면... 과거 리뷰들을 보지 않았고, 볼 여력도 없기에 현재 당선작 글들의 퀄리티와 비교하긴 어렵고(심지어 평소에 당선작 글들을 찾아 읽지도 않네요. 죄송합니다....) 현 당선작의 퀄이 정말로 떨어졌느냐 하는 건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타 사이트 당선작들과 비교해서 퀄이 차이가 나느냐 하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알라딘 당선작들은 분량과 글의 전개과정이 좀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공감과 댓글이 활발하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 관심있게 봤던 B사이트 당선작은 대체로 간결하다. Y는 가끔 확인하는데 거기 글들도 좋다. 쓰고 보니 관찰력이 엄청 부족하네... 보통 좋다~ 음 별로인가 하고 넘어가는 편이라... 사실 이런 비교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대한민국 현재 독서인구의 수가 얼마나 될 것이며, 각 인터넷 서점별로 활동하는 리뷰어도 상당 겹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아니다 싶은 글들은...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선정됐다고 보면 어떨까 한다. 나 역시 그 덕에 신나서 글 쓰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내 글들이 좋다는 건 아니고 어쩌면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퀄이 떨어지는 글들로 당선금을 받아서, 어떻게 보면 퀄리티 저하(?)에 동조한 셈이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대로 작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문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순간'으로 돌아와서...
나는 글을 쓴다. 그것도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그런데 그 리뷰를 블로그에 올린다. 그 글은 비공개가 아니라 공개이다. 글을 올리는 공간은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장소이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는 독자를 원하는 마음도 포함된다. 그렇다. 나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면 한다. 동시에 읽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모순이죠? 근데 제맘이 그래요...ㅋㅋㅋ) 내 글을 읽고 공감을 눌러주면 좋겠다. 동시에 눌러주지 않고 가버리면 좋겠다.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 때로는 무플이면 좋겠다. 칭찬이면 좋고 어떤 때는 악플이라도 달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등록하기' 버튼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내 부족한 의견을 '출판'한다. 하지만 내 글은 문학이 아니다. 일종의 작업, 생각의 결과물이고... 공들여 쓰기도 하고 피상적으로 어떤 의무감에 날려쓰기도 한다. 기록이다. 내가 이글을 읽었고, 이때 이런 생각을 했으니 미래의 나는 잘 보아라 흑역사다... 내가 아닌, 제2, 제3의 독자를 통해 그 글은 실체화된다. 이렇게 되면 내 글은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칭찬만 받고 싶다. 누가 내 글에 너 왜 이렇게 썼어 책임져 하면 조금 버텨보다가 글을 삭제하거나 비공으로 돌리고 싶다. 너 왜 그렇게 멘탈이 약하니 해도 어쩔 수 없다. 음주를 해서 솔직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술깨면 부끄러워서 페이퍼 지우고 모른체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절 발견하시면 모른 척 해주세요.
문학이든, 리뷰든, 페이퍼든 읽히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여기서 '읽힌다'는 것은 독자가 없는 글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글이 재미없어서, 혹은 논리적이지 못해서 잘 안 읽힌다는 뜻도 된다. 음... 모르겠다. 생각을 글로 쓰건, 그림으로 그리건, 음악으로 만들어 연주하거나 노래하건... 표현의 차이와 방법은 다를 수 있으나 모두에겐 자유가 있다. 개똥철학을 펼치든, 궤변을 늘어놓든 자기 생각을 밝힐 권리가 있다. 하지만 조금 살살 해줬으면 좋겠다. 모두 강철멘탈은 아니니까... 페이퍼 제대로 썼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래 책 읽고 글 쓰고 가끔 당선작으로 뽑혀서 책도 공짜로 사보고 그랬으면 좋겠다. 난 지금 기분이 좋다. 왜 음주 페이퍼를 쓰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