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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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표지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영중인 사람의 물 밑 그림자인데, 언뜻 봤을 땐 어깨와 배 부분이 동그랗게 뚫린 ‘옷’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다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라는 카피라니 표지 그림도 뭔가 나무늘보 같고.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내용인가 보다 했다. 2015년을 며칠 앞두고서 '휴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흡입력, 가벼운 내용이지만 독서 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 이렇게 삼박자가 히트작의 요건이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는 독서가 보는 독서가 된다, 이런 말인데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작가가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독서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를 듣는 소설들이 그러한데, 궁극적으로 독자 수를 늘리는 데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읽다보면 빠져들기 마련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려는 욕망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볍다고 평가되는 소설들도 너무 후려쳐서는 안 된다 생각하지만 별점을 매기는 시간이 오면 언제나 고민이다. 소설이 속하는 장르 내에서 상대평가를 할 것인지, 리뷰 전체를 보아 평가를 할 것인지... 결국 그 때 그 때 내 마음대로지만, 어쨌든 대체로 별 넷은 읽을 만 하다(혹은 소장할 만하다)는 뜻이고 별 셋은 그보다는 약간 못하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게 별 셋(3.5/5.0)을 준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해보자면, 이사카 고타로는 『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 등으로 유명한 작가라는데 나는 잘 모른다. 미스터리 작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남은 날은 전부 휴가』의 이야기들은 약간의 추리가 가미된, 대체로 휴머니즘적인 분위기이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어른의 성가신 오지랖」, 「불길한 횡재」,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이렇게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려 있고 옴니버스 구성이다.


표제작인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오카다와 미조구치의 등장을 알린다. 첫 시작은 이렇다.


"사실은 바람을 피웠습니다."

식탁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말했다. '벚나무를 꺾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소년만큼이나 시원스러웠다. "상대는 같은 회사 사무직 여성, 스물아홉 살의 미혼입니다."

 (중략)

"그거." 나는 김이 새서 뺨을 긁는다. "바람피운 게 무슨 비밀이야. 누구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됐는데." 가족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 살기에 이 집은 너무 넓었다. 집값에 비해 방이 많다는 점이 역효과를 낳은 꼴이다. 그래서 팔기로 했다. 이사 준비가 끝나고 업자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돌자 "어차피 오늘로 하야사카 집안은 해체니까 그 전에 한 명씩 비밀이나 폭로할까" 하는 말을 꺼낸 것은 어머니였다.


이렇게 하야사카 가족의 해체를 알리는 순간에 휴대폰이 울렸는데, ‘친구 해요’라는 익명의 문자 알림이었다. 교통사고 사기단으로 활약하던 오카다가 탈퇴를 원하자 ‘이 문자에 긍정적 답장이 오면 너는 자유’라고 미조구치가 걸었던 조건이었다. 하야사카들은 가족이 해체하는 마당에 친구나 사귀자며 이 답장에 오케이 하고 오카다는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선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간다. 골 때리죠? 단편들은 계속 이런 식이다. 잠깐이라도 이름이 나온 인물들은 다른 이야기에서 언급되거나 출연하며 조금씩 반전을 풀어놓는다.


남을 협박해서 이윤을 챙기는 공갈단도 그 나름대로 따뜻한 마음을 베푼다는 것일까? 오카다도 미조구치도, 프로 사기꾼답게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그럴 듯한 상황 설정에 공을 들인다. 이 과정이 꽤 재미있다. 오카다의 어린 시절, 미조구치의 젊은 시절 그리고 하야사카 가족과의 계속되는 우정까지 읽어 내리노라면 나도 마음대로 “내일부터 전부 휴가!”라고 외치고 싶다. 다시 표지 얘기로 돌아와서, 소설을 다 읽고 표지를 보니 마냥 귀엽고 나도 저 물에 뛰어들어 유유자적 헤엄이나 치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자, 오카다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한다. “꿈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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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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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라트의 이 소설은 출간 전 '7인의 작가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그 때도 느낀 거지만 진짜 골 때린다. 순화된 표현을 찾아봤지만 이 표현이 딱 맞는 것이,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먼저 주인공 야콥은 심리 치료사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아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석 달 전 이혼했는데(그는 부부 상담도 한다) 상담소도 잘 안 되어 집세도 못 낼 지경이다. 가족 소개를 해볼까. 유명 심리학자였던, 돌아가신 아버지와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사랑을 주는 어머니, 실력있는 투자가이자 바람둥이 남동생까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어머니와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전 부인 엘렌은 천 억대 자산가이다. 소개 글만 봐도 갑갑하지 않은가? 이들은 하나같이 야콥 야코비를 압박하는 사람들로, 신랄한 혀를 가질 수 밖에 없었겠구나 수긍하게 만든다. 사건은 어느 밤, 전 부인이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사실 이유는 다른 것 같지만, 지금의 결혼생활을 위해 상담이 필요하다는 엘렌이다. 그녀와 투닥거리던 야콥은 전 부인의 현 남편(권투선수, 페더급)의 방문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전, 총알 주먹에 코를 맞아 기절한다.


구급차에서 깨어난 후, 진료를 위해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야콥에게 40대 후반의 남성이 말을 건넨다. 서커스 어릿광대로 일하는 그의 이름은 아벨 바우만. 그는 심장 주변이 따끔거린다며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느낀다는데 마침 야콥 야코비가 심리 치료사이지 않은가! 어차피 빈털터리인 야콥은 마지막 환자일지도 모를 그와 상담을 시작한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다 우연히 다시 코를 얻어맞은 야콥은 병실에서 깨어나고, 동생과 어머니가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벌인다.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다인실이 아니라 독실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벨은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데 심지어 회진도 돌았다고 한다. 상황 파악이 끝나기도 전, 경찰관이 아벨을 타인 사칭 혐의로 연행하고,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야콥도 동행한다. 알고 보니 아벨은 상습범이란다. 유치장에서 알아낸 바로는 의사, 건축가, 판사, 검사, 폭파 전문가, 은행 직원, 핵물리학자, 소방대원, 선장, 기장 등의 행세를 했다는데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담당 환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야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혹시 당신이 신이라도 되나요?」라고 묻고 아벨은 그렇다고 한다. 자기가 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아벨의 가족을 만나러 함께 뮌헨으로 향하는 야콥. 아벨에겐 아들도 있단다! 전 부인의 이름은 무려 마리아! 그녀의 남편은 목수 요셉! 심지어 신앙심도 아주 깊다고 한다. 골 때리죠? 다행히도 아들의 이름은 크리스티안, 수도원에 들어간 수사라 한다. 이미 가족들에겐 자신이 신이라고 커밍아웃한 아벨. 그는 정말 ‘신’일까? 아니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타인의 주장을 믿기 위해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야콥도 그러했고, 요셉과 마리아도 그러했다. 아벨은 적정한 수준에서 증명하려 애쓰나,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소설의 세계관에서는 신의 힘이 사그러드는 이유가 사람들의 믿음이 줄어서라고 했다. 아벨도 그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신이 있다면 전쟁, 고문과 같은 잔인한 ‘현실’을 모른 체 할 리 없다. 그런 말에 나름의 변명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눈속임이 아닌 기적을 불러 보시지? 라는 말에도 신으로서의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쯤 되면 독자들마저도 어리둥절하다. 이 사람이 정말 신인지, 아니면 달변의 사기꾼인지.


아벨이 사기꾼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해보면, 그의 논리에는 오류가 있다.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신’으로서 아벨은 마치 유희를 하듯, 미시적 역사에 한 발 걸치고 있었다. 카지노 등지에서 돈을 따는 것만으로, 혹은 잔에 물을 채우는 등의 눈속임으로는 그가 ‘신’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과학이라는 도구가 있지 않은가!) 또 이야기는 야콥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현재 그는 심신이 꽤 미약해진 상태다. 코뼈가 내려앉은 이후 계속 같은 부위를 맞아 쓰러지는 데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동생은 날랐고, 엄마는 자신을 믿지 않고, 왜인지 기댈 만한 친구도 없다. 전 부인은 묘하게 나를 스토킹하고 있고 상담소도 없는 내게 유일한 환자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직업: 광대, 사는 곳: 외곽 트레일러)이다. 과연 야콥이 제 정신으로 이 모든 일을 겪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벨의 말이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이 신임을 증명한다고 이른바 ‘기적’을 일으킨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믿을까? 독일이나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재림 예수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을 사기꾼이라 부른다. 또 종교적 광신에 대한 예는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으니 부작용이 너무 크다. 과학적으로 그의 존재와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매달리는 사람, 그를 사기꾼이라 고소할 단체들, 이를 취재하는 미디어들. 성경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은 제자 토마스가 이런 말을 듣는다.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 종교적 믿음과 현실적 회의 사이는 이렇게나 멀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의심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재미있어 다음 장을 넘기기에 바쁠 뿐이다. 어쩌면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를 만나 인생을 다시 살게 된 야콥이야말로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은 게 아닐까.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긴 하지만, 그 안에서 풀어내는 유머와 휴머니즘, 적절한 종교문제 마무리까지 나무랄 데 없는 소설이다. 그나저나 오늘 밤에는 자기 전에 기도나 한 번 해야겠다. 곧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신과 다이렉트로 얘기나 좀 나눠야지.


* 야콥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출간된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에서는 ‘악마’의 방문을 받는다. 본격 신계 전문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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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2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웃으면 안되는데;;
하면서 읽었어요,
재미있었어요, 에이바님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5-12-22 14:40   좋아요 1 | URL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서니데이 2015-12-2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바님, 편안하고 좋은, 화요일 밤 되세요.^^

에이바 2015-12-24 13:53   좋아요 1 | URL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네요. 서니데이님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좋은 분들과 행복한 한 해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

후애(厚愛) 2015-12-23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한 오후 되시고, 저녁 맛 있게 드세요.^^

에이바 2015-12-24 13:54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이렇게 빨리 2016년이 올 줄은...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요. 편안하고 행복했던 한 해가 되셨길 바랍니다. ^^

AgalmA 2015-12-2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보고 궁금하던 차 였는데, 표지랑 내용이 너무 잘 어울려욧ㅎㅎ! 아, 골 때려ㅋㅋ

에이바 2015-12-24 20:47   좋아요 1 | URL
읽으면 더 그래요 ㅎㅎ 악마가 찾아온 신간은 한 술 더 뜰 것 같아요 ㅋㅋㅋ
 
피아노의 역사 - 피아노가 사랑한 음악, 피아노를 사랑한 음악가
스튜어트 아이자코프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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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에서 꼭 들려봐야 할 곳은 악기 박물관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이 건물 계단을 올라 입장료를 지불하고, 짐을 맡기고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관람객은 헤드폰을 하나씩 받는데 원하는 악기 앞에 서면 연주가 흘러나온다. 그곳에서 생애 처음으로 하프시코드(쳄발로)를 봤다. 클라비코드와 장식용 기린 피아노도 보았다. 눈이 많이 나린 날이었고, 그날따라 무거웠던 마음을 날려버린 건 하프시코드의 선율이었다. 악기에 그려진 화려한 장식과 음악에 취한 나머지, 건반악기 층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 현악기, 타악기 전시관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부터 피아노는 가구가 되었다. 이사철이 되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악기가 아닌 가구 말이다. 생각날 때쯤 뚱땅거리는, 조율하지 않아 ‘도’는 만날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가구. 몇 년 만에 악보를 꺼냈더니 연습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소음들이다. 듣는 귀는 천상계에 있건만, 들리는 소리는 지구 내핵... 조용히 악기를 덮고 책을 폈다. 제목은 『피아노의 역사』이지만 원제를 보면 『피아노의 자연사』 혹은 『피아노 박물지』로 번역할 수 있다. 다 읽고 나니 ‘피아노 박물지’라는 제목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들을 찾아 듣고 생긴 관심으로 클래식 관련 서적을 독파하는 중이다.


책소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재즈’에 대한 지분이 상당하다. 저자가 미국인이기도 하지만 음악사에서 이 장르가 끼친 영향이 지대하고, 위대한 연주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첫 번째 피아니스트가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실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어째서 피터슨인가. 1장의 제목 〈전통의 집대성〉에 어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피터슨은 정통 클래식 음악을 배웠고, 그 토대 위에 재즈를 받아들여 판테온에 올랐다. 그가 사사한 드 마키는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스테판 토만을 사사했다. 따지고 보면 피터슨은 리스트의 계보에 있는 셈이다.


(...) 선생님은 또한 피아노 ‘스타일’의 참된 의미는 나만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가르쳐주셨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음전stop', 즉 음질을 변화시키는 기계적 장치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재즈 오르간 연주자들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들이 선택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오르간을 대중화한 거장 지미 스미스와 똑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동일한 음전들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정한 자기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듣는 이가 연주자를 똑바로 식별해낼 수 있는 소리를 빚어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므로 오스카 피터슨은 제자들이 자기 연주 방식을, 아니 그 누구의 방식도 따라하게 놔두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빌 에번스와 같은 유형의 코드 보이싱[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안배해 연주하는 방식]을 사용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소리치셨다. “그건 네 것이 아니잖아!” 피아노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터치, 타임, 톤, 테크닉, 테이스트가 그 요소들인데 모두 ‘T’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이므로 그는 이를 ‘5T'라고 불렀다. 당연히 그는 그 모두를 갖췄다.


-나의 스승 오스카 피터슨, 마이크 롱고, 1장 (24)


책의 전반부에서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발달사를 다룬다.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발전했으며 음악사에서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가. 롤랑 마뉘엘이 얘기한 '피아노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현한 악기'라는 설명이 어울린다. 이어지는 내용은 피아노계 최초의 슈퍼스타인 모차르트,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음악가들의 연주 여행이다. 저자는 조금은 망설이면서도 음악가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4원소에 대응하는 '흥분가, 연금술사, 리듬주의자, 선율주의자'인데 조금은 위험한 분류일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인다.


'불'에 해당하는 흥분가들에는 베토벤, 로큰롤의 제리 리 루이스, 재즈의 세실 테일러가 있다. '물'에 해당하는 선율주의자들에는 슈베르트, 바흐, 조지 셰어링. '공기'인 연금술사에는 빌 에번스, 드뷔시, 셀로니어스 멍크. '흙(땅)'에는 패츠 도미노, 아르투로 오파릴, 프로코피예프와 같은 리듬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류에 이어지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선율이 심장에 호소한다면 리듬은 심장을 제외한 신체 근육조직 전부에 불을 지른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이 네 요소는 서로 맞물려 있다.'


건반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함에 있어 선율을 중시할 것이냐, 타악성을 중시할 것이냐에 따라 작곡가의 스타일이 바뀐다. 다음은 각 장에서 유심히 봤던 음악가이다. '흥분가들'의 베토벤과 리스트,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제리 리 루이스, 얼 하인즈. '연금술사'는 드뷔시에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고 메시앙, 쇤베르크, 스크랴빈을 다룬다. 드뷔시가 초기 재즈 피아노에 끼친 영향도 다루고 재즈의 제왕 듀크 엘링턴도 등장한다.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대한 설명도 있다. 글을 쓰다가 깨달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다음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출처 및 크게보기, 만든 이의 설명)


'리듬주의자들'은 전체 장이 재즈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그, 릴, 더블, 탭댄스, 래그타임 이러한 춤꾼들로부터 시작된 음악에서 재즈에 스윙, 살사에 스파이스, 미니멀리즘에 트랜스까지의 계보가 소개된다. 거슈윈이 등장하고, 아트 테이텀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이 장을 읽으면서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흑백 친선 야구시합」이 떠올랐다. 조금 뜬금없지만 그 대목을 소개해본다.


그곳에는 유색인종들만 있었다. 밝은 색조의 붉고 푸른 새틴 드레스를 입고 그물 스타킹을 신고 보드라운 장갑을 끼고 와인색 모자를 쓴 여자들, 번들거리는 턱시도를 입은 남자들. 음악이 쿵쿵거리며 밖으로, 위로, 아래로, 댄스장 위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롱 존슨과 캐버너와 지프 밀러와 피트 브라운, 모두가 케이크워크* 박자에 맞추어 광낸 신발을 신고 크게 웃으며 위아래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를 절뚝이는 빅 포와 그의 애인, 캐서린도. 다른 모든 잔디 깎는 사람과 나룻배꾼과 수위와 가정부가, 다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케이크워크: 미국 남부의 흑인 놀이에서 발달하여 나온 춤. 또는 그런 2박자의 춤곡.

-『레이 브래드버리』(현대문학) , (131)


'선율주의자'에서는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 쇼팽이 등장한다. 쇼팽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다. "신사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길. 천재의 등장입니다." 피아노 연주 방식을 영원히 바꾼 천재, 오붓한 환경에서 건반 위에서 속삭이는 연주를 하고 에라르보다 플레옐 피아노를 선호했으며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박자 감각... 또 에리크 사티, 모리스 라벨이 언급된다. 11장은 미국을 비롯한 각 나라별 음악의 색깔들, 12장은 러시아 학파에 대한 설명이다. 앙드레 지드가 『쇼팽 노트』에서 언급한 안톤 루빈시테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호로비츠, 라흐마니노프, 리흐테르, 아슈케나지, 프로코피예프 등 익숙한 이름들이다. 12장에서 등장하는 한스 폰 뵐로는 프란츠 리스트의 사위인데 아내가 친구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 이혼한 연주자이다. 그의 미국 연주회들이 인기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14장 〈세계로 통하는 길〉은 루빈스타인, 호프만, 코르토 등 폴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출신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경연대회(콩쿠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80년 쇼팽 콩쿠르의 포고렐리치 관련,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쇄신 등 논란거리도 짚고 있다. 15장 〈첨단의 연주자들〉에서는 글렌 굴드를 소개하며, 마지막 장에서는 극동 아시아에 피어오르는 클래식 시장 열기를 소개한다. 야마하가 뵈젠도르퍼를 인수했다는 걸 알았다. 〈첨부 노트〉에는 못 다한 이야기들을 실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왠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반도 못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1장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즐겁게 읽었다. 이 또한 공부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책으로, 분량은 시대와 대륙, 연주자별로 고르게 배분되어 있으며 피아노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머레이 페라이어(머리 퍼라이아)의 글로 마무리할까 한다.


(...) 이상적으로는 머리로 듣는 소리를 곧바로 손끝으로 옮겨내야 한다. 그러나 소리를 내려면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단지 빠르게 연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의 저음 또는 한 토막의 대위 선율을 빚어내기 위해서이다. 나는 하나의 악구를 연주하려면 예를 들어 호른이나 오보에 소리를 듣고 피아노로 그와 같은 효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인 다음, 그 소리를 피아노로 재창조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소리의 뉘앙스를 더 풍부하게 귀에 담아둘수록, 피아니스트가 이해하고 빚어내야 할 음의 빛깔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더 잘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급증이 날 수도 있다.


피아노 연주는 정말이지 환상의 예술이다. 색깔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색깔에 대한 환상이라는 편이 낫겠다. 악기가 훌륭할수록 더 많은 가능성이 주어진다.


-피아노 소리 만들기, 머리 퍼라이아, 6장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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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1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분량이 꽤 있어서 매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면 읽을까 말까 고민합니다.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이라면 읽어볼 만한데. ㅎㅎㅎ

에이바 2015-12-16 18:21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빌려봤었는데 결국 샀어요. 읽을수록 마음에 드는... ㅋㅋㅋ 재즈 좋아하시면 더 즐겁게 읽으실 것 같아요. 사진도 적잖이 실려 있고요.

cyrus 2015-12-16 18:22   좋아요 0 | URL
클래식 음악보다 재즈 음악의 비중이 더 많은가 보군요. 에이바님이 알려주신 정보, 참고하겠습니다. ^^

에이바 2015-12-16 18:26   좋아요 0 | URL
클래식과 재즈 둘 다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클래식 위주를 원해서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한데 재즈가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결국 제가 재즈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비로그인 2015-12-1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야겠네요 불끈!
근데 4원소 어쩐지 끄덕끄덕하게 되네요~재밌어요!
에이바님덕분에 또 바로 오스카 피터슨 주간이 돌아왔습니다~^^

에이바 2015-12-16 20:48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처음 들었던 피터슨이 아마 캐롤이었던 것 같아요 ㅎㅎ

AgalmA 2015-12-1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레이 페라이어 인용하신 글에서 ˝이상적으로는 머리로 듣는 소리를 곧바로 손끝으로 옮겨야야 한다˝는 부분은 이성복 시인이 머리가 아니라 언어-감각이 먼저 나가게 해야 한다 말하던 것과 비슷한 거 같아요.
원리는 참 비슷한데 그 실행이 참 난관~_~;

에이바 2015-12-16 20:51   좋아요 1 | URL
오 역시 예술은 통하는군요... 어떻게 보면 꾸준한 연습에 의한 체득 체화 이런데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 것도 같아요 실행은... ^^;;

물고기자리 2015-12-1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뭔가에 꽂히면 공부하듯 집중하는 성향이라ㅋ 에이바님의 독서 스타일이 정말 호감입니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가 있다는 것만큼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없는 것 같아요ㅎ

에이바 2015-12-17 17:22   좋아요 1 | URL
요즘 약간 시들해졌는데 물고기자리님 댓글보고 힘내야겠습니다 ㅎㅎ 그쵸 덕후 만세! 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15-12-1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부터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 잘 치지 못해도 고가의 악기인데, 피아노를 들여놓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들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가구처럼 한 구석에 남는 것도 같습니다. 오래된 피아노와 건반의 소리도 바이올린이 그렇듯 특별한 느낌이 있을지, 에이바님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 상상해보았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에이바님, 오늘도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에이바 2015-12-17 20: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오래된 업라이트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상태와 연주자는 엉망이지만요. ㅎㅎ 서니데이님도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단발머리 2015-12-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조율도 안 된 피아노로 쇼팽 왈츠를 한 페이지 치고는, 아.... 몰랑 하고 있었더랬죠.
저는 피아노를 사랑하지만, 연습은 안 한다는...

아는 이름이 별로 없어요.
공부할 게 많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ㅎㅎㅎ

로마 섭렵하시고 이제 클래식으로 가셨나봐요.
너무 멋져요, 에이바님. 진짜 교양인 인증, 알라디너 에이바님^^

에이바 2015-12-18 12:06   좋아요 0 | URL
몇 년 만에 치는지 손꼽아보기도 부끄럽더라고요. ㅎㅎ 일독만 했는데 다른 책들을 보면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재독할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클래식은 재밌는데 넘 어렵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ㅎㅎ
 
더 클래식 둘 -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 더 클래식 시리즈
문학수 지음 / 돌베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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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놀라운 점은 짧게는 4분, 혹은 20분, 또는 40분에서 1시간에 이르는 ‘긴’ 곡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이다. 클래식 얘기다.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토록 ‘집중해서’ 듣게 된 것은 오랜만이다.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던 얘기에 통학 혹은 출근시간에 듣냐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건 ‘감상’이 아니라고, 집중해서 음악에 몰두한 듣기가 음악 감상이라고 했었다. 동의한다. 10월부터 시작된 나의 클래식 음악 감상이, 지금은 막다른 골목에 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명성이 확인된,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들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펼친 책들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사실 일독에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도 사실 없다…


클래식 입문서들은 대체로 작곡가의 생애와 알려진 곡들을 다루고 있다. 초심자 수준을 벗어난 책을 읽고 싶어서 펼친 책은 『음악의 기쁨』이었는데 문제는, ‘문화의 총체’인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나의 모자란 배경지식이었다. 2권의 2/3 정도를 지나면서 휘발되는 흥미를 잡아준 것은 바로 『더 클래식 둘』이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익숙해진 문학수 기자의 친절한 배경 설명과 본문을 받쳐주는 자료, 그리고 추천음반까지 삼박자가 고루 어우러진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악장별 해설이다. 2악장은 안단테, 피아노로 시작해 바이올린이 이어받고 비올라가 주도하는 단조의 선율(슈베르트의 「송어」)와 같은 해설은 클래식에 무지한 이를 잘 이끌어준다.


『더 클래식 둘』은 ‘낭만파’로 분류되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쇼팽, 리스트, 베를리오즈, 브람스 그리고 무소르그스키, 차이콥스키,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에 이르기까지 보다 익숙한 이름들이다. 1권과 마찬가지고 34곡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고, 관심 있게 읽은 두 작품만 소개하려 한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장조

Franz Peter Schubert, Piano Sonata B-flat major(D.960)


슈베르트, 하면 떠오르는 라두 루푸의 연주회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기자는 지난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 미스 터치를 발견했다는 관객의 말에 안타까웠다고 한다. 정제된 녹음만을 듣다보면 미스 터치가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뭐, 그러한 터치마저도 공연의 일부라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케이지에 따르면 콘서트의 일부이기도 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한다. 미스 터치 안하려고 곡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잖은가 하는 생각이 들고…


슈베르트의 유작 소나타는 19번, 20번, 21번 세 작품이 있다. 앞의 두곡에서 베토벤의 느낌이 있다면, 마지막 21번은 슈베르트적인 개성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베토벤이 음악의 ‘구축성’을 느껴지게 한다면 슈베르트는 ‘선율의 흐름’을 따라가는 곡을 썼다. 베토벤의 음악이 ‘기악적’이라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성악적’이다. 즉 소나타 21번은 입으로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랫말처럼 들리는 작품이다. 문학수 기자는 빌헬름 켐프, 알프레트 브렌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의 음반을 추천하고 있다. 애잔한 노래로 듣고 싶다면 켐프를, 서사적인 문학으로 음미하고 싶다면 브렌델을 들어보라고…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Modest Petrovich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전람회의 그림》은 10개의 회화 작품을 10곡의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다. 곡 사이의 간주는 프롬나드Promenade로 표현된다. 무소르그스키는 친우- 화가이자 건축가, 디자이너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의 추모전에 다녀와 이 곡이 완성된다. 그는 유작 가운데 열 작품을 음악으로 옮겼다. ‘프롬나드’는 전시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의 느릿한 발걸음을 묘사하면서 ‘입체적 공간감’을 만들어내는데 일정하지 않다는 점도 기발하다. 이 작품은 모리스 라벨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는데, 다섯 번째 프롬나드는 생략되었다. 1곡에서 10곡까지의 연주시간은 약 35분으로,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 편곡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피아노 독주와 직접 편곡한 버전의 관현악,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음반을 추천하고 있다. 이 작품은 ELP가 록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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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2-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터치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끄네요.

그러니까, 이번 여름에 서울시향하고 손열음이 협연을 했는데,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거든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그 곡은 여러번 들어서요.
손열음이 치는데....
속으로 얼마나 떨리는지. 손열음 미스터치할까봐.
정작 손열음은 여유있게,자신만만하게 치는데, 저 혼자 막.... 여름인데 달달달 떨면서....
틀리면 안 되는데...

미스터치에 대한 강박이... 음악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게 하더라구요.
미스터치 나면 어때요? 그 순간을 즐기면 되는대요.... 그죠?

에이바 2015-12-18 12:10   좋아요 0 | URL
그쵸? 누가 그러더라고요. `소리`를 듣지 말고 `연주`를 들으라고요. 저도 그 말 듣고 아차 했다는... ㅋㅋ 그래도 즐겁게 관람하셨죠? 그러고보니 단발머리님이 공연에 대해 쓰신 글 본 것 같아요. 미스터치 안 나게 할 수 있대요, 어떤 피아니스트건... 근데 그러면 음악이 안 된다는... ㅠㅠ

단발머리 2015-12-18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는가 모르시나 모르겠지만....

에이바님은

어떤 흔녀의 고백으로 제 마음을 흔들었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
권인숙씨에게 짜증내는 저에게 `연대`가 중요하다며 저를 말려주셨고 (말려줘서 고마워요.)
인간이야? 쥐야?로 저를 칭찬해 주셨더랬죠. (사실은 게으른 엄마인데... )

고마워요, 에이바님~~~

에이바 2015-12-18 12:14   좋아요 0 | URL
아... 기억해주시니 너무 기뻐요. ㅎㅎ 은근히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근데 정말로 인간이야? 쥐야? 는 기억에 남아요. 저도 포트노이 읽어야 하는데 리뷰의 문제점은 그런 것 같아요. 잘 쓴 글을 보고나면 제가 그 책을 본 것처럼 착각한다는거죠! 단발머리님께도 감사해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ㅎㅎㅎ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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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문득, 서경식 선생의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서경식으로 검색했더니 창비 트위터에 팟캐스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재생시키고 잠시 다른 일을 하는데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서경식 선생님이, 바로 프리모 레비를 한국에 소개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이다. 나치즘으로 비롯된 인류의 비극에 대한 '증언 문학'으로 유명하다. 레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존엄성이 짓밟히고 희망조차 없는 곳, 그는 거기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았다.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한 다른 수감자들, 처벌받는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 느꼈던 잠시의 안도감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에게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전복된 그의 인생은 결국 투신자살로 끝난다. "내가 하는 말은 증언이 아니다. 목격자는 그 때, 그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다."


레비는 이 비극적 사건의 증언불가능성, 재현불가능성을 얘기한다. 목격자들이 가스실에서 사라진 지금,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비극은 생존자의 증언에 기대어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생존자들의 주관적 기억에 대한 신뢰성과, 청자가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사과를 먹는다 할지라도 각자가 느낀 맛이 다를진대, 하물며 경험하지 못한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이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이해는 그들의 상상에 달려있지만, 문제는 이 상상마저도 제한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쇼아Shoah』는 생존자, 관련자들의 증언으로만 9시간의 러닝타임을 채움으로써 비극의 재현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는 과연,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류의 비극'을 미학화할 수 있는가이다. 타인의 고통을 허구적인 장르로 다루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피해자가 생존하며, 사건의 여파가 현재진행형인 '실제로 일어난 역사'를 말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서정시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서정시를 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결과를 불렀는가 생각하면, 우리는 서정시를 쓰되 비극을 기억하고 상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재일한국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서경식 선생이 주류가 아닌 '민중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한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재일한국인. "한국인이면 다 알아"라던가, "재일조선인은 일본인 아닌가?"라는 말은 그를 슬프게 한다. 때로는 문화적 콘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에 답이 있다는 서경식 선생님.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그는, 주변화된 이들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조국의 민주화에 휩쓸린 두 형의 옥살이, 여권발급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를 건너 서경식 선생은 『나의 조선 미술 순례』를 통해 조선의 피를 이은 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라는 말을 삶의 맥락을 같이 해온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공통점 있는 사람들이라 정의하고 싶다는 그는 주변인, 경계인의 특성으로서 '객관화'를 꼽았다. 주류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 중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정연두가 유일하다. 이쾌대는 월북작가라 남은 자료도 얼마되지 않으며, 심지어 신윤복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책이 작가와의 인터뷰로 구성되었음을 볼 때, 이를 드라마 『바람의 화원』 작가 인터뷰로 교체한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웠던 작가는 다층적 디아스포라인 미희=나탈리 르무안이다. 김별, 기무라 별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부산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이였다. 궁금해서 구글링했더니 직접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투브 채널이 나왔다. 거기서 96년쯤 출현한 방송에서 송지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최근 업로드한 『hairy』라는 영상 작품도 보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벨기에의 어린 시절. 한국으로 와 엄마를 찾았는데 나의 반은 일본인의 피를 이었더라는 배경을 알면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까? 서경식 선생은 경계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작가들에 접근하고 있다. 신윤복 같은 경우, 그가 성 소수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인터뷰가 시작한다. 설득력이 있는 가정이다. 소개된 작가들의 디아스포라는 다음과 같다. 광주의 증거자, 주부로 살다 예술가가 된 여성, 입양아, 성 소수자, 파독 간호사, 월북 작가 등…


'우리'라는 범주를 조금 더 확장해 볼만한 것으로, 서경식 선생은 분류의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일본에서 미술서를 썼더니 작가가 재일한국인이니 그 서가로 가라 합니다. 해당 서가로 갔더니 미술서가로 가라고 하죠. 이것은 분류의 폭력입니다." 프랑스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가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베트남사람이 프랑스어로 쓴 소설이 프랑스문학이 아닌, 제3세계 문학서가에 꽂힌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로 쓰인 책이, 작품 혹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분류되어야만 했을까? 반대로 프랑스어로 쓰인 책은 무조건 프랑스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일까?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사미즈다트, 지하출판의 형태로 소련을 떠돌다 결국 파리에서 첫 출간되었다해서 우리가 그 작품을 프랑스문학으로 분류하는가? 작품 주제와 작가의 정체성이 서적 분류에 중요하다면 재미교포 작가인 김은국의 『순교자』는 어떠한가.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그린 작품은 영미소설로 분류된다. 영어로 쓰였지만 한국적 소재를 다루고 있고 작가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이 외 작품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투영된다. 왜 한국문학이 아닌가? 내용과 상관없이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영미소설이라면, 같은 작가의 『잃어버린 이름들』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썼다. 서가 어디에 분류되어야 할까?


입양아 문제를 보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 경우를 통해 '우리'의 범주를 논할 수 있겠다. 그녀는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어, 재능을 눈여겨본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이가 올랑드 정권의 첫 아시아계 장관으로 임명되자 대한민국은 다큐멘터리까지 찍어가며 그녀가 같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작 펠르랭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며, 친부모를 찾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엉뚱한 곳에서 '우리'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식선생은 자신이 일본어로 쓴 글을 일본인들이 멋대로 이해하는게 싫다고 말한다. 단지 일본어로 쓰였기 때문에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그것도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언어를 통해야 더 또렷하게 전달되는 아이러니가 슬프다.


이 나라의 민중미술이 퇴색되고 그 가치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서경식 선생은 선배의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인간을, 소외된 이를 바라보며 사회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국과 일본의 주변부에서 보낸 노교수의 '조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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