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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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문득, 서경식 선생의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서경식으로 검색했더니 창비 트위터에 팟캐스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재생시키고 잠시 다른 일을 하는데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서경식 선생님이, 바로 프리모 레비를 한국에 소개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이다. 나치즘으로 비롯된 인류의 비극에 대한 '증언 문학'으로 유명하다. 레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존엄성이 짓밟히고 희망조차 없는 곳, 그는 거기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았다.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한 다른 수감자들, 처벌받는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 느꼈던 잠시의 안도감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에게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전복된 그의 인생은 결국 투신자살로 끝난다. "내가 하는 말은 증언이 아니다. 목격자는 그 때, 그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다."


레비는 이 비극적 사건의 증언불가능성, 재현불가능성을 얘기한다. 목격자들이 가스실에서 사라진 지금,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비극은 생존자의 증언에 기대어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생존자들의 주관적 기억에 대한 신뢰성과, 청자가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사과를 먹는다 할지라도 각자가 느낀 맛이 다를진대, 하물며 경험하지 못한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이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이해는 그들의 상상에 달려있지만, 문제는 이 상상마저도 제한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쇼아Shoah』는 생존자, 관련자들의 증언으로만 9시간의 러닝타임을 채움으로써 비극의 재현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는 과연,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류의 비극'을 미학화할 수 있는가이다. 타인의 고통을 허구적인 장르로 다루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피해자가 생존하며, 사건의 여파가 현재진행형인 '실제로 일어난 역사'를 말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서정시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서정시를 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결과를 불렀는가 생각하면, 우리는 서정시를 쓰되 비극을 기억하고 상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재일한국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서경식 선생이 주류가 아닌 '민중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한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재일한국인. "한국인이면 다 알아"라던가, "재일조선인은 일본인 아닌가?"라는 말은 그를 슬프게 한다. 때로는 문화적 콘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에 답이 있다는 서경식 선생님.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그는, 주변화된 이들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조국의 민주화에 휩쓸린 두 형의 옥살이, 여권발급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를 건너 서경식 선생은 『나의 조선 미술 순례』를 통해 조선의 피를 이은 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라는 말을 삶의 맥락을 같이 해온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공통점 있는 사람들이라 정의하고 싶다는 그는 주변인, 경계인의 특성으로서 '객관화'를 꼽았다. 주류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 중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정연두가 유일하다. 이쾌대는 월북작가라 남은 자료도 얼마되지 않으며, 심지어 신윤복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책이 작가와의 인터뷰로 구성되었음을 볼 때, 이를 드라마 『바람의 화원』 작가 인터뷰로 교체한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웠던 작가는 다층적 디아스포라인 미희=나탈리 르무안이다. 김별, 기무라 별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부산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이였다. 궁금해서 구글링했더니 직접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투브 채널이 나왔다. 거기서 96년쯤 출현한 방송에서 송지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최근 업로드한 『hairy』라는 영상 작품도 보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벨기에의 어린 시절. 한국으로 와 엄마를 찾았는데 나의 반은 일본인의 피를 이었더라는 배경을 알면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까? 서경식 선생은 경계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작가들에 접근하고 있다. 신윤복 같은 경우, 그가 성 소수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인터뷰가 시작한다. 설득력이 있는 가정이다. 소개된 작가들의 디아스포라는 다음과 같다. 광주의 증거자, 주부로 살다 예술가가 된 여성, 입양아, 성 소수자, 파독 간호사, 월북 작가 등…


'우리'라는 범주를 조금 더 확장해 볼만한 것으로, 서경식 선생은 분류의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일본에서 미술서를 썼더니 작가가 재일한국인이니 그 서가로 가라 합니다. 해당 서가로 갔더니 미술서가로 가라고 하죠. 이것은 분류의 폭력입니다." 프랑스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가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베트남사람이 프랑스어로 쓴 소설이 프랑스문학이 아닌, 제3세계 문학서가에 꽂힌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로 쓰인 책이, 작품 혹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분류되어야만 했을까? 반대로 프랑스어로 쓰인 책은 무조건 프랑스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일까?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사미즈다트, 지하출판의 형태로 소련을 떠돌다 결국 파리에서 첫 출간되었다해서 우리가 그 작품을 프랑스문학으로 분류하는가? 작품 주제와 작가의 정체성이 서적 분류에 중요하다면 재미교포 작가인 김은국의 『순교자』는 어떠한가.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그린 작품은 영미소설로 분류된다. 영어로 쓰였지만 한국적 소재를 다루고 있고 작가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이 외 작품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투영된다. 왜 한국문학이 아닌가? 내용과 상관없이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영미소설이라면, 같은 작가의 『잃어버린 이름들』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썼다. 서가 어디에 분류되어야 할까?


입양아 문제를 보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 경우를 통해 '우리'의 범주를 논할 수 있겠다. 그녀는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어, 재능을 눈여겨본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이가 올랑드 정권의 첫 아시아계 장관으로 임명되자 대한민국은 다큐멘터리까지 찍어가며 그녀가 같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작 펠르랭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며, 친부모를 찾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엉뚱한 곳에서 '우리'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식선생은 자신이 일본어로 쓴 글을 일본인들이 멋대로 이해하는게 싫다고 말한다. 단지 일본어로 쓰였기 때문에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그것도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언어를 통해야 더 또렷하게 전달되는 아이러니가 슬프다.


이 나라의 민중미술이 퇴색되고 그 가치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서경식 선생은 선배의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인간을, 소외된 이를 바라보며 사회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국과 일본의 주변부에서 보낸 노교수의 '조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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