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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표지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영중인 사람의 물 밑 그림자인데, 언뜻 봤을 땐 어깨와 배 부분이 동그랗게 뚫린 ‘옷’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다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라는 카피라니 표지 그림도 뭔가 나무늘보 같고.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내용인가 보다 했다. 2015년을 며칠 앞두고서 '휴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 손에서 놓을 수 없는 흡입력, 가벼운 내용이지만 독서 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 이렇게 삼박자가 히트작의 요건이 아닌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는 독서가 보는 독서가 된다, 이런 말인데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작가가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독서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얘기를 듣는 소설들이 그러한데, 궁극적으로 독자 수를 늘리는 데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읽다보면 빠져들기 마련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려는 욕망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볍다고 평가되는 소설들도 너무 후려쳐서는 안 된다 생각하지만 별점을 매기는 시간이 오면 언제나 고민이다. 소설이 속하는 장르 내에서 상대평가를 할 것인지, 리뷰 전체를 보아 평가를 할 것인지... 결국 그 때 그 때 내 마음대로지만, 어쨌든 대체로 별 넷은 읽을 만 하다(혹은 소장할 만하다)는 뜻이고 별 셋은 그보다는 약간 못하다는 뜻이 되겠다. 그렇게 별 셋(3.5/5.0)을 준 이 작품에 대해 소개해보자면, 이사카 고타로는 『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 등으로 유명한 작가라는데 나는 잘 모른다. 미스터리 작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남은 날은 전부 휴가』의 이야기들은 약간의 추리가 가미된, 대체로 휴머니즘적인 분위기이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어른의 성가신 오지랖」, 「불길한 횡재」,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 이렇게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려 있고 옴니버스 구성이다.
표제작인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오카다와 미조구치의 등장을 알린다. 첫 시작은 이렇다.
"사실은 바람을 피웠습니다."
식탁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말했다. '벚나무를 꺾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소년만큼이나 시원스러웠다. "상대는 같은 회사 사무직 여성, 스물아홉 살의 미혼입니다."
(중략)
"그거." 나는 김이 새서 뺨을 긁는다. "바람피운 게 무슨 비밀이야. 누구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됐는데." 가족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만 살기에 이 집은 너무 넓었다. 집값에 비해 방이 많다는 점이 역효과를 낳은 꼴이다. 그래서 팔기로 했다. 이사 준비가 끝나고 업자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돌자 "어차피 오늘로 하야사카 집안은 해체니까 그 전에 한 명씩 비밀이나 폭로할까" 하는 말을 꺼낸 것은 어머니였다.
이렇게 하야사카 가족의 해체를 알리는 순간에 휴대폰이 울렸는데, ‘친구 해요’라는 익명의 문자 알림이었다. 교통사고 사기단으로 활약하던 오카다가 탈퇴를 원하자 ‘이 문자에 긍정적 답장이 오면 너는 자유’라고 미조구치가 걸었던 조건이었다. 하야사카들은 가족이 해체하는 마당에 친구나 사귀자며 이 답장에 오케이 하고 오카다는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선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간다. 골 때리죠? 단편들은 계속 이런 식이다. 잠깐이라도 이름이 나온 인물들은 다른 이야기에서 언급되거나 출연하며 조금씩 반전을 풀어놓는다.
남을 협박해서 이윤을 챙기는 공갈단도 그 나름대로 따뜻한 마음을 베푼다는 것일까? 오카다도 미조구치도, 프로 사기꾼답게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그럴 듯한 상황 설정에 공을 들인다. 이 과정이 꽤 재미있다. 오카다의 어린 시절, 미조구치의 젊은 시절 그리고 하야사카 가족과의 계속되는 우정까지 읽어 내리노라면 나도 마음대로 “내일부터 전부 휴가!”라고 외치고 싶다. 다시 표지 얘기로 돌아와서, 소설을 다 읽고 표지를 보니 마냥 귀엽고 나도 저 물에 뛰어들어 유유자적 헤엄이나 치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놓자, 오카다는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한다. “꿈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