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1. 서울시 복지 재단에서 한국의 고독사 실태를 연구 조사한 송인주 연구위원에 따르면, “은퇴한 한국 남성들은 경제력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다고 생각해 사회적으로 쉽게 고립된다"라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고용동향 브리프’를 보면, 한국 남성의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은 2016년 기준 51.6살이다. 또한 통계를 찾아 보니 50대의 고독사가 제일 많았다고 한다. 50 초반대에 있어서 제일 큰 친구가 술병과 이력서라는 말이 웃스께로만 들리지 않는 지금이다. 분명한 것은 위기의 50대이다. 50이 되면 대부분 잘리거나 관둬야 할 나이일 텐데 오갈 곳을 못 찾는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할 것도 없다. 어느 세대이든 흙 수저의 인생이야 버거운 것은 비슷하게 쉬울 리가 없겠지만, 50대의 시간이라는 게 아직도 양육할 아이들이 있고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 있으니 책임이라는 무게가 더해져 있다. 존재의 멍에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으니까.
2. 학교 졸업 후 평생 노가다 회사 다니며 밥을 먹는 나로서는 만약에 MB(MB도 노가다회사 사장 출신이다.)처럼 우리 사장이 불법적인 일을 시키고 했다 치자. 불법이 까발려져서 검찰에서 조사받으라고 부른다면 소위 MB의 가신들과 거의 비슷하게 나도 당연히 모조리 다 불어 버릴 것이다. 아직까지는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모시는 사장이 검찰에서 부를 만한 짓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이 거느린 직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이다. 미련도 없다. 의리 한번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의리를 챙겨서 줄리는 없다. 그저 무미건조한 계약적인 관계일 뿐 여기에 심정적인 온정을 기대할 수야 없을 것이다. 그래서 들어가면 술 먹은 듯이 다 술술 불고 만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낱낱이. 그들은 의리로 뭉친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이상의 심리적 가치로 뭉친 사람들이라면 돈이라는 영향을 덜 받을 것이다. 일단 돈 보고 모인 사람들은 돈 앞에서는 허물어지는 거야 당연지사이다. 의리는 무슨. 그런 거 절대 없다. 손해날만한 거라면 뭐든 다 묻는 대로 다 까발리는 거야 뻔한 거 아닌가. 왜 쥐새끼인가 하면 불리하면 일단 쥐구멍을 찾아 도망가야 하거든. 일견 나도 쥐세끼가 아닐 수가 없다. 고양이에게 몰리면 텨야지 버틸 이유가 없거든. 자네가 나 대신 감빵 가주면 나중에 평생 책임져주지라는 유혹에는 절대 넘어가지 마시라. 검은 머리 짐승의 말은 믿은 순간 자신은 언젠가 멍청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진짜 책임지는 것은 감빵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책임이거든.
3. 미투 운동에 안희정 지사가 걸려들었다. 하기야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왜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거다. 시골 가서 농사 지었더라면 그럴 일도 없었을 텐데. 한방의 스트레이트 훅으로 푹 꼬꾸라질 마인드로 복싱의 글러브를 빼고 링에서 내려 가시라. 저명한 예술가 연극인, 영화감독, 정치인들이 줄줄이 아랫도리 불끈한 사생활이 까발려진다. 몸의 욕망이 자신의 위계와 함께할 때, 인간은 욕망에 화력도 좋은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그래서 말이다. 자기 육신의 수신은 지위나 위계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문구가 얼마나 공허한지 보고 있을 따름이다. 뭐 나는? 여자 셋(모친 와이프 딸아이)도 건사시키는 게 너무나도 버거워서 여자에겐 가급적 고개를 돌릴 힘도 없다. 나야 로맨스 따위는 별로 안 믿었지. 지금 내가 해야할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그 판단력. 이게 문제다. 다들 달게 감수해라. 누구에게 아픔을 주었다면 똑같이 아픔을 받아야 조금은 정상이다.
또한 짚어 봐야 할 문제는, 지위가 오를수록 멀쩡한 놈도 얼마든지 무고당할 수도 있다는 거다. 백퍼 피해자만 있겠는가. 미투 운동이 가해자로 지목하고 낙마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스파이 업계에서는 미인계가 여전히 통용되는 이유가 된다. 유혹에 넘어가는 실수도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여하튼 오얏나무 아래에 신발 끈은 고쳐 매지 않는 선비로 살기가 참 어렵다는 거다. 게다가 미투 운동을 망치는 것 중 하나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때이다. 경쟁자를 성 추문으로 몰아서 낙마시키고 나면 진짜로 성폭행의 피해자는 오히려 갈 곳이 더더욱 없어진다. 미투 운동을 결코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하여간 남자는 손끝, 말끝, 조끝. 그러니까 3끝이 정갈해야 한다.
4. 전혀 의외였다. 기숙사로 들어간 날에 딸아이가 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기숙사 방에만 있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간의 성격에 비추어 얼마든지 예상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개강 첫날. 강의도 첫날이라 수업 오리엔테이션만 하니 강의가 일찍 마쳤다고 했는데 첫날부터 바로 학과 동기들과 친해진 몇몇 이서 첫 개강 파티 겸 술자리였단다. 정말 의외였다. 낯선 곳에서 엄청 눈치나 보고 분위기 파악에 눈 돌아갈 줄 알았는데 너무 나대는 티가 팍팍 느껴졌다. 꽁하게 혼자 아싸로 빙빙 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은 새로운 모습이었다. 3년 동안 영어만 파고들어 영문학도를 꿈꾸었던 딸아이가 보험으로 들었던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떻게 경영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이 또한 전혀 의외였다. 딸아이가 술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빠를 닮은 딸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술 너무 마실까 걱정이 된다.
여튼 내가 키운 딸아이도 이렇게 모르는데 하물며 사회적 관계상 만나게 된 사람은 이름 석자와 생김새만 알 뿐 결코 다 모른다. 성향을 유추해도 전혀 그럴 수가 없었는데 인싸로 들어간다니 그래서 더 놀랍다. 생각하던 것과는 상반됨을 볼 때, 우리는 새로운 모습을 만난다. 자신의 내부에 어떤 새로운 모습이 있는지 내가 나를 모르듯이 우리도 우리를 모를 뿐이다. 그래도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한편으론 마음이 놓인다. 그래, 이젠 안달 복달하며 챙겨야 했던 그 의무감에서 조금은 해방된 느낌도 나쁘진 않다.
마침 오늘 딸아이 생일날이라 친구들과 맛난 거 사 먹으라고 몇만 원 보내 줬더니 좋아한다. 물론이다. 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기회, 줄 수 있을 때 주는 기회가 맞닿는 것은 작은 행복이다. 나도 울 엄마 아버지에게 생일날 선물은 고사하고 돈이라도 좀 받아 봤으면 좋겠다고 딸아이에게 말하니 딸아이가 또 훌쩍인다. 나중에 내가 돈 벌면 아빠에게 생일 선물 꼭 해줄게라고 운을 띄워도, 딸이 주는 거랑 마이 머더가 주는 거랑 같을 수야 없지. 어쩌겠나 아빠는 그런 기회가 없었을 뿐이 다라고 말했다. 행복이란 이렇게 울림이 있어야지. 그래야 떨리며 공명하고 전이되는 것. 그럴 때 눈물은 흐르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5. 당분간 책은 읽지 않고 있다. 책을 읽지 않으니 당연 리뷰가 없다. 책 읽고 싶은 욕구도 사라지고, 눈도 침침하니 당체 책이 펴지질 않는다. 이참에 누진 뭐시기 렌즈라며 안경을 새로 맞췄다. 주문 후 일주일 걸린다나. 뭐라나. 난시가 심하니 눈이 피로도가 비례해서 심해진다. 모니터를 안 볼 수도 없고 마냥 눈 감고 살 수도 없고, 게다가 랜즈 값은 카메라 렌즈 값 정도로 비쌌다. 또 부족한 용돈이 탈탈 털리는 기분. 더군다나 눈이 비정상적이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인가 가짜인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제대로 보기는 보고 있는지도 수상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책도 못 읽지만 사진도 거의 못 찍는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던데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몽골에서 1년만 살아보고 싶다. 넓은 초원에 거칠 것이 없이 공허한 곳에서 가리지 않는 곳을 보면 눈이 얼마나 시원하고 탁 트일까. 문자도 보이지 않고 건물도 보이지 않는, 오로지 지평선의 푸른 들판.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과 눈부신 볕과 파란 하늘. 딱히 돈 벌지 않아도 하루 한 끼 고기나 포식하면서 양 떼와 염소떼에게 풀이라도 먹이는 단순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복잡하고 다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도로를 달릴 필요도 없이 말을 타고 초원이라도 달리는 것이 오늘날의 도시의 삶과는 너무 대비된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한 인생 별것도 없는 건데 도시는 여전히 눈을 아프게 할 뿐이다.
책 리뷰 대신에 잡글이나 올리더라도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