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세계사 - 세 대륙이 만나는 바다, 그 교류와 각축의 인류사
제러미 블랙 외 지음,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엮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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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세계사 


시중에 수많은 역사책을 만나볼 수 있지만 지중해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펼쳐내는 색다른 기획에 구미가 당겼던 책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미 지중해의 역사를 세계사 시간에 실컷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유럽이 모두 지중해에 접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읽어보니 지중해의 역사적 의미와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특히 데이비드 아불라피아와 석학 8인의 범세계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더욱더 귀한 읽을거리였고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해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륙의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다. 


책의 구성은 지중해란 무엇인가라는 서론부터 물리적 환경, 선사시대부터 서기전 1000년 무렵까지, 서기전 1000년에서 서기전 300년까지, 서기전 300년에서 서기 500년까지. 서기 500년에서 1000년까지. 서기 1000년에서 1500년까지, 1500년부터 1700년까지, 1700년부터 1900년까지, 1900년부터 2000년까지 8개의 시기를 8개의 챕터에 배정해서 설명한다. 


그 외에도 지중해의 역사를 만들어온 ‘개인’의 역할에 주목했고 아름다운 50장의 컬러 화보는 덤이다. 카르타고와 에트루리아의 상인, 에스파냐 마요르카의 선원, 1492년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유대인, 19세기 그랜드투어 시대 이후 지중해에 열광했던 북유럽인,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했던 현대의 이주민들을 조명하는 대목들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상상되기도 했다. 


지중해 지역에서 중요한 것은 바다로 인해 생기는 도전의 규모이며, 너른 대양에 비해 한계 내에서의 이동이 비교적 손쉽다는 점이다. 이동의 편의는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지중해의 역사는 공존의 역사다. 상업·문화·종교·정치적으로 말이다. 또한 그들의 때로 강력한 민족적·경제적(그리고 종교적) 차이를 자각하고 있는 이웃들 사이의 대결의 역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 짧게 언급되고 넘어갔던 페니키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페니키아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 민족들, 리비아인, 이베리아인들에게도 강력한 교역 활동의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모형, 사회 제도, 생활방식 전체의 확산에 기여했다. 그들이 수송한 사치품은 이데올로기가 전파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방 모델을 바탕으로 한 교류의 구조 자체는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원주민들을 만나는 지역에서 충실하게 재현됐고, 동방 문화가 확산되는 강력한 원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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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식탁 - 나를 위해 푸릇하고 뿌듯한
홍성란 지음, 안혜란 그림 / 샘터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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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식탁 


채소 소믈리에라는 색다른 이력의 홍성란 저자의 채소의 맛과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즐거운 읽을거리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채소에 생각, 느낌, 여러 에피소드를 담백한 에세이로 풀어내며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채소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식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까지 푸릇하게 가득 찬다는 저자는 쑥갓, 감자, 상추, 고수, 꽈리고추, 표고버섯, 방울토마토 등을 얘기한다. 다양한 채소 주인공으로 길지 않은 글들이 엮여있는 형식인데 읽고 나니 평소 식탁의 주인공은 고기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흔들릴 정도였다. 


또한 식품, 영양 전문 정보라기보다 일반인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채소 활용법과 팁들을 얻을 수도 있었다. 저자는 가장 먼저 할 일은 재료 구입도 아니고 레시피 습득도 아니며 채식접근자로서의 마음가짐이라고 알려준다. 


그 외에도 저자의 문학적 센스도 옅볼 수 있는 대목들이 즐겁게 읽혔다. 예를 들면 상추에 대해 이야기하며 찬물로 상추를 씻어서 물기를 탁탁 하고 털 때 느껴지는 경쾌함, 손으로 만질 때의 풋풋함, 입안에서 느껴지는 아삭함 등 상추로 느낄 수 있는 촉감과 소리 모든 것이 좋다는 식으로 글을 풀어낸다. 


그리고 책을 읽고 당장 샤부샤부를 해먹기도 했다. 


채식 요리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무조건 샤부샤부다. 다양한 채소를 양껏 먹을 수 있고, 이 채소들이 우러난 국물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 또 이들 샤부샤부에 육류나 해산물 같은 다양한 토핑까지 더할 수 있으니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함께 둘러앉아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기에 더욱 애정이 간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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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개정판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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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유전학과 관련되어 자주 언급되어 이름만 익숙했던 초파리의 자세한 이야기와 생물학과 유전학에서의 위치와 역할을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다.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물을 빼놓고 지금의 빛나는 생물학을 이야기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책의 내용은 초파리 연구의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계의 초파리와 관련된 스토리들이 논픽션 드라마처럼 이어진다. 초파리를 생물학계의 총아로 만든 인물인 토머스 헌트 모건이 초파리와 만나 생물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장면과 초파리 애호가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가 진화유전학을 탄생시키는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그 외에도 초파리의 학습 능력과 알코올에 대한 민감성, 생체 리듬 연구를 통해 이런 성질들과 인간 유전자와의 연관성을 연구했고 초파리를 통해 노화의 원리를 찾았으며 잊혀진 초파리 연구실의 위상을 회상하면서 초파리 게놈의 염기 서열 분석에 관해서도 논한다. 


초파리가 이렇게 과학연구에 이용되게 된건 기르고 먹이는 데 비용이 얼마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500밀리리터 크기의 우유병에 썩어 가는 바나나 한 조각만 넣어 두면 초파리 200마리가 2주일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암컷 한 마리가 알을 수백 개나 낳기 때문에 번식시키기도 쉽다. 게다가 초파리는 한 세대가 사는 시간도 짧다. 태어나서 생식하고 죽기까지 불과 몇 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암컷을 조종하는 정액 단백질에 대한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정액은 단지 정자를 운반하는 액체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다. 그 속에 포함된 다양한 화학 물질은 정자가 난자를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을 돕기 위한 일종의 화학적 도시락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어디까지나 추측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초파리와 일부 곤충의 정액을 제외하고는, 정액 속에 포함된 화학 물질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의 경우에도 정액 속에 포함된 대부분의 성분들이 정확하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부모가 되기 위한 경쟁 때문에 정액 단백질은 암컷의 몸속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간다. 일부는 생식관 근처에 머물고, 일부는 아주 멀리까지 가는데, 혈액을 타고 흘러가 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진화는 자기도 모르게 암컷의 몸을 모든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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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무휴 김상수 - 부암동 카페냥 김상수 상무님의 안 부지런한 하루
김은혜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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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무휴 김상수 


한동안 고양이 집사 열풍에 고양이 관련 이야기들이 담긴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스토리에 예쁜 고양이 사진들까지 더해진 멋진 책으로 꼽을 것 같다. 


책제목에 김상수는 주인공 고양이의 이름이었고 교육일을 하며 부암동 카페를 운영하는 저자의 반려묘였다. 언젠가 부암동을 가면 김상수를 만나러 가고 싶어졌고 한참을 읽다보면 옆에 김상수가 있을거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책의 내용은 김상수와 함께하는 부암동 카페무네의 일상과 저자의 생각, 느낌, 다양한 에피소드들이었고 그야말로 고양이 힐링 에세이였다. 이미 카페무네에는 손님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자주 오는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전부 ‘상수 앓이’에 빠진 손님들이다.


특히 CS 전문 강사라는 특별한 이력의 저자가 드문드문 더해주는 우리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도 귀담아 들을만 했고 실제 저자는 상수를 입양하기 전까지 우울감에 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상수의 ‘무소유’와 ‘자유’를 부러워하며 ‘아무 날도 아닌 날’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말은커녕 손짓, 몸짓, 발짓까지 동원해도 오해만 쌓이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상수의 마음을 잘 아는 손님들은 다가가기보다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런 손님들 옆엔 어느 순간 상수가 먼저 와서 앉아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 ‘계 타셨다.’고 말한다. 집사도 부러운 순간이다. 실제로 상수와 불통하는 손님이 종종 있다. 고양이는 귀가 쫑긋하면 불안하다는 것이고, 꼬리가 커지면 위협을 표하는 것이다.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표현들이지만 처음 고양이를 마주한 손님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지만, 상수를 마냥 귀엽게만 여기고 다가갔다 물리기도 한다. 귀찮아서 도망가는 상수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하시는 손님에게는 관계 개선을 위해 조용히 츄르를 드린다.


개인적으로는 저자 나름의 행복론에 대한 대목들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감정의 단어가 적으면 아는 단어 안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는 단어가 ‘화’밖에 없으면 조금만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도 쉽게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감정은 이름을 불러줘야 떠나간다. 우울도 슬픔도 화남도 안타까움도 안 느끼려고 하지 말고 정확히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놀라 쓰러질 만큼 엄청나게 대단한 일만 박수받을 축하는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피식하고 웃을까 봐 작지만 소소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일도 무심코 넘어가는 건 아닐까. 꾸준함과 평범함이 나의 무기가 됐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평범함 속의 깨알 같은 발견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나름 보통의 순간을 매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평범하지만 당연한 순간은 더 많이 기억되어야 한다. 아무 날도 아닌 날의 편지, 아무 날도 아닌 날의 선물, 아무 날도 아닌 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당연한 날들 속에 피어난 꽃 같다. 보통의 일상은 모두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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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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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국화와 칼부터 축소지향의 일본인, 일본은 없다 등등의 일본 문화에 대한 여러 책들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본 문화와 관련된 책이라면 이 책을 추천해야 될 것 같다. 1960년대부터 50년간 일본 문화에 대한 다양한 칼럼을 썼던 저자의 글들을 엮은 이 책은 서양인의 시선으로 일본 영화, 도시, 사회, 사람, 정원, 음식, 다도 등에 대한 분석과 해설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노재팬 열풍 이후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어가던 차에 만난 책이라 오히려 새롭고 흥미로웠는데 특히 일본 미학에 대한 깊은 사유와 분석들은 이전에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책의 구성은 62년도 일본의 형태라는 글부터 74년도 일본 영화에 대한 어떤 정의, 80년대 쓴 파친코, 워크맨, 망가, 90년대에 쓴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일본과 이미지 산업, 2000년대에 쓴 일본의 자동차 문화에 대한 단상,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일본 미학 소고 등 20개의 칼럼들이 엮여있다. 그야말로 50년 동안 일본 문화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최근 OTT드라마 등장하며 호기심이 생겼던 일본 특유의 파친코 문화에 대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파친코는 다른 모든 주요한 몰입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파친코의 진정한 목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다름 아닌 소멸이며 자기 소멸은 지극한 쾌락의 경지라고 해석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 상태가 무한히 계속된다. 여기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 기계를 찾아야 한다. 그런 기계는 나에게 맞춰 반응해주는 것 같은 조용한 벗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과 기계 사이의 이런 말없는 교감은 당신을 망각으로 이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반쯤만 의식하게 된다. 파친코 기계 앞에서 겉으로 행하는 행위의 목적은 의식하고 있지만, 동시에 진짜 이유는 기꺼이 망각해버린다. 파친코 업소에서 나올 때는 기운을 되찾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그 외에도 형식을 극히 중시하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의례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변형되고, 윤리라는 것은 즉흥성에 의해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패턴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이름은 글로 써서 읽을 수 있을 때에만 기억된다. 귀로 듣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고 눈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 일본은 명함과 온갖 광고의 나라다. 아마추어 화가들과 사진가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모두 그림을 그릴 줄 알고 사진을 찍을 줄 안다. 시각적 감각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아는 것이다. 마치 절대음감과도 같다.


저자는 한 나라의 패턴에 입문하려면 공중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라고 말한다. 잘 개간된 일본의 땅은 산과 산 사이로 논밭이 뱀처럼 구불구불 펼쳐지는데, 이는 독일의 말끔한 사각형이나 북미의 광활한 체스판과 크게 다르다. 저자는 여기서 자연을 본뜨는 일본인의 태도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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