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개정판
마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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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유전학과 관련되어 자주 언급되어 이름만 익숙했던 초파리의 자세한 이야기와 생물학과 유전학에서의 위치와 역할을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다.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생물을 빼놓고 지금의 빛나는 생물학을 이야기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책의 내용은 초파리 연구의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계의 초파리와 관련된 스토리들이 논픽션 드라마처럼 이어진다. 초파리를 생물학계의 총아로 만든 인물인 토머스 헌트 모건이 초파리와 만나 생물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장면과 초파리 애호가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가 진화유전학을 탄생시키는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그 외에도 초파리의 학습 능력과 알코올에 대한 민감성, 생체 리듬 연구를 통해 이런 성질들과 인간 유전자와의 연관성을 연구했고 초파리를 통해 노화의 원리를 찾았으며 잊혀진 초파리 연구실의 위상을 회상하면서 초파리 게놈의 염기 서열 분석에 관해서도 논한다. 


초파리가 이렇게 과학연구에 이용되게 된건 기르고 먹이는 데 비용이 얼마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500밀리리터 크기의 우유병에 썩어 가는 바나나 한 조각만 넣어 두면 초파리 200마리가 2주일 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암컷 한 마리가 알을 수백 개나 낳기 때문에 번식시키기도 쉽다. 게다가 초파리는 한 세대가 사는 시간도 짧다. 태어나서 생식하고 죽기까지 불과 몇 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암컷을 조종하는 정액 단백질에 대한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정액은 단지 정자를 운반하는 액체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다. 그 속에 포함된 다양한 화학 물질은 정자가 난자를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을 돕기 위한 일종의 화학적 도시락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어디까지나 추측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초파리와 일부 곤충의 정액을 제외하고는, 정액 속에 포함된 화학 물질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의 경우에도 정액 속에 포함된 대부분의 성분들이 정확하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부모가 되기 위한 경쟁 때문에 정액 단백질은 암컷의 몸속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간다. 일부는 생식관 근처에 머물고, 일부는 아주 멀리까지 가는데, 혈액을 타고 흘러가 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진화는 자기도 모르게 암컷의 몸을 모든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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