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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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국화와 칼부터 축소지향의 일본인, 일본은 없다 등등의 일본 문화에 대한 여러 책들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본 문화와 관련된 책이라면 이 책을 추천해야 될 것 같다. 1960년대부터 50년간 일본 문화에 대한 다양한 칼럼을 썼던 저자의 글들을 엮은 이 책은 서양인의 시선으로 일본 영화, 도시, 사회, 사람, 정원, 음식, 다도 등에 대한 분석과 해설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노재팬 열풍 이후로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어가던 차에 만난 책이라 오히려 새롭고 흥미로웠는데 특히 일본 미학에 대한 깊은 사유와 분석들은 이전에 어디서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책의 구성은 62년도 일본의 형태라는 글부터 74년도 일본 영화에 대한 어떤 정의, 80년대 쓴 파친코, 워크맨, 망가, 90년대에 쓴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일본과 이미지 산업, 2000년대에 쓴 일본의 자동차 문화에 대한 단상,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일본 미학 소고 등 20개의 칼럼들이 엮여있다. 그야말로 50년 동안 일본 문화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최근 OTT드라마 등장하며 호기심이 생겼던 일본 특유의 파친코 문화에 대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저자는 파친코는 다른 모든 주요한 몰입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파친코의 진정한 목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대한 다름 아닌 소멸이며 자기 소멸은 지극한 쾌락의 경지라고 해석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 상태가 무한히 계속된다. 여기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 기계를 찾아야 한다. 그런 기계는 나에게 맞춰 반응해주는 것 같은 조용한 벗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과 기계 사이의 이런 말없는 교감은 당신을 망각으로 이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반쯤만 의식하게 된다. 파친코 기계 앞에서 겉으로 행하는 행위의 목적은 의식하고 있지만, 동시에 진짜 이유는 기꺼이 망각해버린다. 파친코 업소에서 나올 때는 기운을 되찾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그 외에도 형식을 극히 중시하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의례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변형되고, 윤리라는 것은 즉흥성에 의해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패턴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이름은 글로 써서 읽을 수 있을 때에만 기억된다. 귀로 듣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고 눈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 일본은 명함과 온갖 광고의 나라다. 아마추어 화가들과 사진가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모두 그림을 그릴 줄 알고 사진을 찍을 줄 안다. 시각적 감각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아는 것이다. 마치 절대음감과도 같다.


저자는 한 나라의 패턴에 입문하려면 공중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라고 말한다. 잘 개간된 일본의 땅은 산과 산 사이로 논밭이 뱀처럼 구불구불 펼쳐지는데, 이는 독일의 말끔한 사각형이나 북미의 광활한 체스판과 크게 다르다. 저자는 여기서 자연을 본뜨는 일본인의 태도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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