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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평점 :
블랙 하우스
스콧님 소개로 읽게 된 책이다.
외딴 섬, 폐쇄적인 분위기와 엄격한 종교단체의 규율이 법보다 우위에 서는 마을.
겉으로는 평범하고 도덕적이며 신앙심깊은 삶들이 흐르지만 그 아래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위선들이 깔려있다.
숨 막힐 듯 젊은이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속에서, 그들의 일탈은 오히려 다급하고 빠르다.
읽는 내내 습기가 가득한 낮고 우직한 바람들이 몰아쳤다.
어느 날은 세차게 불고, 어떤 날은 햇살에 조금 달궈져 희망을 가져볼까 싶은 속삭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온통 바다인 이 섬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차가운 바람도 따뜻한 바람도 이 섬의 끝에서 시작해 이 섬의 끝으로 달려보지만, 결국 부딪히고 부딪혀 삶을 파괴하는 회오리가 되고 만다.
출생의 비밀, 아동학대, 살인과 질투.
막장 요소들이 모두 갖춰졌지만, 결코 서두르지도 쉽지도 않다.
작가가 감춰둔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날때마다 인물들은 개연성을 가지게 되고, 그들의 눈에 어린 실패, 좌절, 우울의 이유에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섬은 갇힌 곳이다. 바다들로 둘러쌓여, 한치의 길도 내주지 않는다.
배를 타는 것도, 바다를 건너는 것도 그들이 하고자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늘 발목을 잡는 일들이 있다.
떠난 것에 성공했다 믿었지만, 축축하고 소금기 가득한 무언가가 그 섬과 자신을 이어주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고통과 악몽의 탯줄을 끊는 것은, 자신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고향의 서랍에 쑤셔 넣어 둔 고통의 기억들과 마주한다.
핀은 기억을 지우고 떠났다.
아슈타르는 매일 매 순간마다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받는다.
쫑쫑 땋은 양갈래 머리, 파란 눈에 어울리는 파란 리본을 묶은 아이 마샬리,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언제나 핀을 사랑했던 여인.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이지만, 실상 이 이야기엔 성장이 담겨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장이야기, 그러나 어린 시절 끔찍했던 고통과 기억을 버려두고 커버린 어른은 여전히 아이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성장하고 난 뒤의 관계는 언제나 어긋나고 쉽게 무너지며 알 수 없는 방황과 일탈 속에 늘 두려움이 자리잡는다. 애써 덮어둔 상처를 드러내는 건 고통스럽지만 지름길은 없다.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함께 묻어버린 사랑앞에도 진실해야 한다.
“수사보고서에 뭐라고 적히든 간에 이제는 반쪽짜리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진실은 이 섬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바위와 새들이 이루는 혼돈 속에서만 머물 테고, 바람만이 속삭일 것이다. 그리고 이날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들의 심장과 기억 속에서 함께 죽을 것이다. 오직 신만이 진실을 알게 돌 터였다.” 437페이지
(날씨에 대한 묘사가 정말 좋다. 날씨와 주인공의 감정, 폐쇄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섬에 대한 답답함마저 습기 가득한 바람이 한 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