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1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조민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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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미겔 데 우나무노, 내겐 낯선 작가다.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책 <안개>
읽고나니, 표지와 내용이 이렇게 알맞을 수가, 마치 화가가 이 책을 읽고 그려준 그림같았다.
서문부터 특이하다. 책 속 등장인물인 빅토르 고티가 서문을, 에필로그의 추도사는 주인공의 개 오르페오가 썼다.

남유럽의 키에르케고르, 실존철학자, 작가를 소개하는 문구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소셜이다. 그러나 소셜이란 새로운 이름에 매몰되지 말기를.
형식부터 내용까지 안개가 자욱한 소셜, 그 실체를 숨기고 이름을 지우길 바라는 글이다.
정해진 이름안에서 우리는 정작, 그 이름에 집착하며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
사랑이란 이름에 매몰되어 진짜 사랑을 모르는 것.
남자 주인공이 피아노 선생인 에우헤니아에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에우헤니아를 사랑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 일까.

(주인공 친구이자 서문을 써 준 빅토르 고티의 말들이다.)
“너는 여자라는 집단, 종 전체에 마음을 뺏긴 거지. 구체적인 것에서 종 전체로 옮겨간 거야.”

“내 소설은 줄거리가 없어. 다시 말하면 펜 가는 대로 쓰는거야 줄거리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지지. ~~~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따라서 만들어질 거야. 특히 말에 의해서 말이야. 그렇게 그들의 성격이 조금씩 형성되는데, 때때로 아무 성격도 없는 게 성격이 될 수도 있어.~~~ 작가가 오히려 자신이 낳은 허구적 산물의 장난감이 되며 끝나는 경우도 많거든....
그건..소셜이 될 거야.”
작가가 만든 등장인물들은 말을 통해 언어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져 간다. 펜끝에서 창조된 이들이 뼈와 살을 가진 실체가 되어가는 것.

(주인공과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작가와의 대화 중)
“친애하는 돈 미겔, 허구의 실체가 아니고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도 않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자는 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아닐지...선생님은 단지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만든 명제가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는 안개라고 말한다.
이름, 명제, 그리고 언어로 풀어내고 설명하면 할수록 그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아우구스토스는 그저 에우헤니에의 외모에 반했고, 그녀의 본질에 대해 다가서지 못했기에 사랑에 실패했다. 그의 사랑 또한 안개가 자욱하다.
불행속에서 자살하려던 아우구스토스는 자신의 창조주인 작가와 의견대립을 겪기도 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혹은 내 본질이 아닌, 누군가의 시선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내 이름, 내 외모와 내 행동들을 통해 그들은 잣대를 만들고 이렇다 저렇다 할 고정관념을 만든다. 그 테두리안의 내가 진짜 나일까. 그게 내 본질일까
입에서 입으로 혹은 글로 전해지면서, 언어는 오염되고 왜곡되고 전해지는 도구나 사람에 의해 생략되기도 하고 지리멸렬해지기도 한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지만 그렇다면 생각하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건가.
내가 사라진다면, 나는 그저 사람들의 언어로만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정말 나인가.
존재하기에 생각도 가능한 것, 생각보다 존재가 앞서는 것?
온갖 물음표와 생각들로 머릿속을 뿌연 안개로 가득채우는 소설이다.
이 책을 덮고나서도 여전히 안개속을 헤메는 기분.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쉬운 책이 아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야. 단지 존재하는 거다. 이유를 불문한다. 인간은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인간은 누구나 생각하잖아. 그래, 인간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우구스토는 사랑에 빠지지만, 그 대상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그녀에겐 배신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랑이란 없었으니 조롱이다. 아주 잔인한 농담같은 것, 네 감정은 네가 책임지고, 내 감정은 내가 책임지는 것.

죽음을 선택하려 할 때, 소설이란 형식이 오히려 죽임을 당한다.
사랑에 상심하며 아파하는 자신의 실체가 그저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같은 것,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구일뿐이란 사실앞에서, 죽음조차 자신이 선택할수 없단다.

“너는 자살할 수 없어. 너는 내 환상의 산물일 뿐이야.”
작가는 부활을 시도하지만,
아우구스토는 스스로 그 줄을 끊어내고 죽음을 택한다.
짜여진 각본과 소설의 플롯대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면 도대체 그 고뇌와 방황이 무슨 의미인건가. 결국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지, 이 아픔이 이 즐거움이 이 사랑이 정말 내가 느끼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세상 무엇보다 위선적 동물인 인간이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일을 표현할 때 견유주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개 같은 짓을 의미한다. 언어는 인간을 위선자로 만들었다. 그들이 파렴치한 것을 견유주의라고 부른다면 위선을 인간주의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우구스토의 개 오르페오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을 어떻게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가.”를 작가가 실험한 책이라고 한다.


“먹기전의 오렌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책 속 한 문장이다.
읽기 전의 책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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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07-08 2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주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mini74 2022-07-08 21:26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singri 2022-07-08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미니님 축하축하^^

mini74 2022-07-08 21:26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08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대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하고, 특정한 것을 부각시키기에 오히려 실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님 페이퍼를 읽으며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붙잡을수록 커지는 간극에서 오는 비극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mini74 2022-07-08 23:11   좋아요 2 | URL
안개같던 제 글에 호랑이님 댓글이 등대가 되어주시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호랑이님 *^^* 호랑이님도 축하드려요 ~

희선 2022-07-09 0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다 보고도 안개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 말로 한다고 해서 분명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미니 님 축하합니다


희선

mini74 2022-07-09 09:1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축하드려요 *^^*

bookholic 2022-07-09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이번 주말도 책과 함께 즐겁게~~^^

mini74 2022-07-09 09:1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북홀릭님도 축하드려요. 아이들과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강나루 2022-07-09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mini74 2022-07-09 18:49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강나루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러블리땡 2022-07-09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려요 ^^ 마지막 문장이 멋져요 ㅎㅎ 읽기 전의 책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mini74 2022-07-11 13:04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님 고맙습니다 *^^*

꼬마요정 2022-07-10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우와, 저도 마지막 문장 너무 공감하면서 갑니다.
읽기 전의 책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한 입 베어 문 오렌지의 기억이 달콤하듯, 읽고 난 후의 책은 또 얼마나 여운을 남길까요. 이렇게 여운을 남기는 책을 오래도록 읽고 싶습니다^^

mini74 2022-07-11 13:04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꼬마요정님 ~

thkang1001 2022-07-10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7-11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축하드려요**
이 책을 넘 읽고 싶게 만든 멋진 글, 역시~~

mini74 2022-07-11 13:04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페넬로페님은 더더 어려운 읽시찾 바람을 불러일으킨 분 ㅎㅎㅎ 고맙습니다. 페넬로페님도 축하드려요

scott 2022-07-11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 어려운 책으로
이달의 당선작으로 당선!ㅎㅎ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66

mini74 2022-07-11 13:03   좋아요 1 | URL
스콧님도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2-07-11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당선 축하드려요~^^

mini74 2022-07-11 13:0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독서괭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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